109. 바꿔치기 - 2.
일요일 낮, 도훈의 집.
크게 다치지 않았다고 해도 잠시 기절까지 했던 도훈이었기에, 두진이 강력히 주장해 이번 주말은 출근하지 않고 쉬기로 했다.
도훈의 상태를 보러 온 영배는 멀쩡한 도훈을 보고 안심해 웃으며 대화하다 들은 뜻밖의 말에 굳어져 있었다.
“... 정말 그렇게 생각해?”
“추측이긴 한데, 강하게 의심이 가서 말이야.”
“... 그래서 팀장님이 뭐랬어?”
“자기가 지구대장님이랑 상의해서 알아보겠다고 하셨는데, 아직 연락이 없어.”
“왜 그렇게 생각한 건데?”
“왜냐하면···.”
가해 차량을 운전했던 사람이 바꿔치기 됐을 수도 있다는 말에 놀랐던 영배는 도훈의 설명을 듣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할만 하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어.”
“뭐가?”
“그 변호사 아들 말이야. 경찰기록에는 남지 않았는데, 이런저런 사고를 제법 쳤다나 봐.”
“그건 어떻게 알았는데?”
“대전에 있는 아버지 후배한테 물어봤는데,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고.”
팀장과 통화한 뒤, 도훈은 혹시 자기가 괜한 의심을 한 게 아닌가 걱정되어 ‘서진 누나’에게 연락해 법무법인 공영의 대표변호사 아들, 김진수에 대해 아는 게 있냐고 물었다.
그녀가 여성청소년계에서 근무하고 있었으니까.
- 난 직접 본 적 없는데, 애가 사고치고 부모가 얼른 뒷수습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있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그런 적이 한 번은 아니었을걸? 그런데 왜?
얼버무리려 했지만, 서진 누나가 꼬치꼬치 캐물어 교통사고 당했던 걸 얘기해야 했다.
화들짝 놀라 당장 오겠다는 사람에게 병원 검사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걸 거듭 말하고서야 넘길 수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 이 사실을 절대 말하지 말라고 다짐을 두었다.
특히, 아버지께.
그렇게 여서진이 대흥시로 달려오는 건 막을 수 있었지만, 왜 김진수에 관해 묻는 거냐는 질문에는 답할 수밖에 없었다.
- 흠, 이거 좀 의심이 가긴 하는구나. 알았어. 차가 대전에서 대흥으로 간 거니까 내가 좀 알아볼게.
여하튼, 도훈은 지구대 팀장에게 서진이 ‘알아보겠다’는 부분을 빼고 김진수에 관해 전해 들은 사실을 알렸고, 지금껏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설마 네 추측이 진짜로 맞은 걸까? 그런 게 아니면, ‘알아봤는데 바꿔치기한 게 아니랍니다.’라는 전화가 와야 하는 거 아니냐?”
“...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내가 전화해볼까?”
도훈이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놔둬. 우리가 재촉한다고 달라지는 일이 아니잖아. 온전히 경찰이 해결할 문젠데.”
“그렇긴 하다만···.”
“이건 내 생각인데, 형 말처럼 내 추측이 맞았다면 아마 지금 경찰서 상황도···.”
“... 평화롭지는 않겠지?”
“......”
잠시 말을 끊은 도훈과 영배가 눈빛을 교환하고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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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경찰서.
일요일임에도 서장 이하 간부 전원이 출근해서 회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회의의 주제는 금요일 도훈이 당한 뺑소니 사건이었다.
“... 확실한 건가?”
“CCTV에 확실히 찍혔답니다.”
“하, 이런···.”
서장은 물론 간부 대부분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인데 반해 과장 한 사람은 태연한 표정을 하려 애쓰고 있었다.
쾅!
“아니, 조사를 어떻게 했길래 애들 말만 믿고 운전자를 특정했단 말이야! 지금 장난해?”
금산서에서 조사한 결과, 뺑소니 사고 당시 차를 운전한 건 이영훈이라는 고1 짜리 학생이었다.
이영훈 본인은 물론 차에 타고 있던 다른 두 아이도 그렇게 진술했다.
그런데 오늘 오전, 대전지방경찰청에서 문의가 와서 그렇게 답했더니 자기들이 파악하기로는 다르다는 게 아닌가.
그 증거로 대전에서 대흥으로 이어지는 국도 진출 지점에서 찍힌 CCTV 영상을 보내왔다.
거기에는 이영훈이 아닌 김진수라는 고 2 아이가 운전석 차창을 열고 침을 뱉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중간에 운전자를 바꿨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런 얘기는 진술서에 없단 말이야! 자네 부하들이 조사한 바로 그 진술서에 그런 얘기가 없다고!”
“......”
운전자 교체 가능성을 얘기했다가 서장에게 호통을 들은 건 애써 태연한 표정을 하고 있던 그 과장이었다.
“... 하, 이게 무슨 망신이냔 말이야!”
서장이 버럭 고함을 질렀고, 과장이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선팅이 짙게 되어 있어서 어떤 사진에도 찍히지 않았을 거라더니.’
과장이 운전자를 바꿔치기하자고 변호사와 거래한 당사자였다.
블랙박스 영상도 없고, 게레시즈의 모든 유리에 선팅이 짙게 되어 있어서 내부가 찍힌 CCTV가 없을 거라고 자신했기에 가능했던 일.
학생들끼리 입을 맞추는 건 변호사가 책임졌는데, 어떻게 구슬렸는지 학생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까지 나타나 분위기를 잡았다.
피해자인 대흥 시장을 찾아가 언론에 알려지거나 소문나지 않게 조용히 처리하자는 동의까지 받았다고 해서, 자신의 ‘모험’이 성공할 줄 알았다.
그래서 지구대에서 조심스럽게 ‘바꿔치기’ 한 거 아니냐는 의견을 전해왔을 때, 본서에서 그 정도 의심도 없이 허투루 조사했을 것 같냐고 호통을 치기까지 하질 않았던가.
이렇게 만 하루도 지나기 전에, 완벽할 것 같은 계획이 파탄 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 일 처리가 이렇게 허술할 거라고는···.’
과장이 변호사의 거래 제안에 응한 것은 돈 때문이 아닌, 변호사의 뒤에 있는 사람 때문이었다.
법무법인 ‘공영’의 대표변호사 김형일.
대전에서 가장 큰 법무법인의 실소유주이며, 본인 역시 별다른 흠 없는 경력을 가진 변호사였다.
재산이 많은 건 둘째 치고, 그는 정치권 진입을 꿈꾸며 기반을 다지고 있었는데 다가오는 총선에 여당 후보로 유력시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관가에서 ‘출세’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든든한 배경으로 생각하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못 이기는 척 변호사의 거래 제안에 응했는데···.
‘... 빌어먹을!’
과장이 그렇게 속으로 욕하고 있는데, 서장이 다시 호통쳤다.
“이 사건, 어떻게 처리할 건가? 이대로 사건이첩 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잔뜩 화가 난 서장의 말에 과장도 더는 어쩔 수가 없었다.
“.... 재조사하겠습니다.”
“눈 똑바로 뜨고 재조사하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두고 볼 테니까.”
“... 내일 애들을 불러서···.”
“내일은 무슨 내일! 당장 나와서 조사받으라고 해! 이게 어디 보통 일이야! 그리고 그 망할 변호사 새끼는 이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하고!”
“......”
서장이 ‘거래’를 짐작하는지 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맙게도’ 그것까지 파헤치려 하지 않았다.
그도 운전자의 아버지가 김형일 변호사라는 걸 알고 흠칫했지만, 조사가 부실하다는 게 다른 경찰청의 지적으로 밝혀진 지금 그딴 게 문제가 아니었다.
자칫하면, 당장에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닌가.
“그리고 자네 이하, 이번 사건 조사한 직원들은 전부 시말서 준비해!”
“... 알겠습니다.”
“나가 봐!”
간부들이 몸을 일으켜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마지막으로 회의실을 나서는 과장의 표정을 똥을 씹은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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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오후.
- 늦게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시장님.
“아뇨. 지구대에서 조사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요.”
팀장의 연락을 받은 도훈의 표정은 담담했다.
하지만, 그와 마주 앉은 두진과 영배의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 결과부터 말씀드리면, 첫 번째 조사는 실수였다고 하네요. 세 아이의 진술이 일치했고, 별다른 증거가 없어서 그걸 그대로 믿어버렸답니다.
“... 사실은 아니었단 말씀이네요?”
- 네. 사고 났을 때 운전하고 있었던 건, 차 주인 아들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운전대에서 지문을 떠서 확인했는데, 지문도 나왔답니다.
“그럼 확실한 거군요.”
- 네. 하하, 이거 제가 조사한 건 아니지만, 엄연히 우리 경찰이 실수한 거라 좀 민망하네요.
“... 그럴 수도 있겠죠. 사람이 하는 일인데요. 어쨌든 실수를 스스로 바로잡았잖습니까.”
-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죠.
마주 앉은 두진과 영배가 미간을 팍 찡그렸고, 도훈도 비슷한 기분이었지만 언급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저 때문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 아닙니다. 이게 제 일인데요. 그만 끊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뚝.
“실수는 무슨.”
도훈이 통화를 마치자마자 영배가 투덜거렸다.
“팀장님이 그런 게 아니잖아.”
“그렇긴 하다만, 분명 본서에서 무슨 농간이 있었을 거야. 실수라고? 그게 믿기냐, 너는?”
“... 안 믿기지. 괜히 시말서를 쓴 게 아닐 테니까.”
지구대 팀장도 본서 조사과정을 세세히 알지 못했지만, 두진은 귀신같이 담당 과장과 경찰관들이 시말서를 냈다는 사실을 알아왔다.
시청 내에서 가장 빠르고 정확한 소식통은 영진이었지만, 두진의 인맥은 대흥시를 벗어나서 오히려 빛을 발할 경우가 많았다.
“아마, 자네가 아버님 후배와 통화했던 게 영향이 있었을 거야. 실수를 금산서 내에서 자체적으로 밝혀낸 게 아니고 대전청에서 영상을 보내서 알았다고 하니까 말일세.”
“네. 안 그래도 그 누나가 재수가 정말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두진의 말에 답한 도훈이 쓰게 웃었다.
남편을 닦달해, 지난 금요일 저녁 문제의 게레시즈 차량이 찍힌 CCTV를 뒤졌는데 떡 하고 운전자가 침 뱉는 그 장면이 나왔다고 들었다는 서진의 자랑을 한참이나 들어줘야 했었으니까.
무리한 거 아니냐는 도훈의 걱정에 서진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이렇게 답했다.
- 어차피 사건이 대전으로 이첩될 거였으니까, 우리는 좀 일찍 자료를 검토했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지. 덕분에 엉뚱한 녀석이 벌 받을 뻔한 일을 막았잖아. 아닌가? 사고 친 놈이 빠져나가는 걸 막은 건가?
서진도 변호사가 나서서 뭔가를 ‘거래’했을 거라는 의심은 했지만, 그것까지 캐내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혹시 변호사한테서 또 연락 왔냐?”
“아니.”
“하긴 사기 치려다 걸렸는데 뻔뻔스럽게 나타날 수는 없겠지. 나타나도 다른 사람이 오겠지.”
“아마도?”
“그나저나 이렇게 처리돼도 난 걱정이다.”
“뭐가 말인가?”
두진의 물음에 영배가 미간에 내 천(川)자를 만들고 답했다.
“그 녀석 아버지가 유능한 변호사에 대전에서 제일 큰 법무법인 사장이잖습니까. 운전자를 바꿔치기하는 건 걸려서 무산됐지만, 재판에서 판사들 구슬려서 가볍게 처벌받게 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요.”
“... 하긴.”
두진이 영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도훈이 입을 열었다.
“저는 그것보다 시청에 왔던 그 아버지란 양반이 어디까지 알고 그랬는지가 궁금합니다.”
“뭐가?”
“아들이 정말 운전했다고 생각했다면 이해가 가는데, 운전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는데도 그랬다면 도대체 뭘 대가로 받기로 했기에 그랬을까? 아무리 사고를 쳤어도 자식이잖아.”
“... 그건 그러네.”
도훈과 영배의 말을 듣고 있던 두진이 입을 열었다.
“나는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제 자식 보호하겠다는 변호사 아버지 쪽이 더 신경 쓰여.”
“네?”
“목적을 세우면 어떻게 해서라도 달성해야 한다는 이런 사람이기 십상이잖아. 그런 사람이 정치인을 꿈꾼다며?”
“... 그렇다죠.”
“이번 일, 당사자들 말고는 아무도 몰라. 과연 그 변호사가 이번 일로 정치인 되는 거 포기하겠어?”
“... 아니겠죠.”
영배가 답했고 두진의 시선이 도훈을 향했다.
“그 사람이 자네한테 유감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 뺑소니 피해자는 전데요?”
“하는 짓을 보면, 그런 거 따질 사람 같지 않아서 그래.”
“......”
두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하는 말에 도훈은 뭐라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침묵하던 도훈은 둘러대듯 답했다.
“뭐, 그 사람이랑 얼굴 마주할 일을 안 만들면 되겠죠.”
“그게 어디 사람 마음대로 되나?”
“... 최소한 노력은 해야죠, 뭐.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 차라리 그렇게 하는 게 마음 편하겠네.”
두진의 말에 영배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다사다난한 시장 생활인데, 지역은 다르다고 해도 ‘힘’ 있는 사람과 척을 지는 건 좋은 일은 아닐 테니까.
“자, 일이나 하시죠.”
“그러세.”
도훈의 말에 두진과 영배가 몸을 일으켰다.
세상에는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걸 곧 실감하게 될 것은 예상하지 못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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