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바꿔치기 - 1.
토요일 아침.
“어디 보자. 흠, 눈 위에 상처 큰 거야? 혹시 꿰맸어?”
“아니. 살짝 긁힌 거야. 흉터도 남지 않을 정도야.”
“그래? 그럼 뒤통수는?”
“아직 좀 부어 있긴 한데, 가라앉겠지. 상처도 안 났어.”
“그래? 다행이네. 난 또···.”
“어제 말했잖아. 나 괜찮다고. 왜 다들 내 말을 안 믿는 거야?”
도훈의 말에 한결 안심했다는 표정의 진주가 답했다.
“정말 괜찮았으면 바로 퇴원해서 순심이 데리러 왔겠지. 병원에서 하루 잔다길래 완전 멀쩡하지는 않은가 보다 싶었지, 나는.”
“... 하하.”
소파에 앉아 순심이를 쓰다듬는 도훈이 쓰게 웃었다.
“가해자는 도망갔다던데, 잡혔어?”
“그랬대. 잡고 보니까 고딩이더란다.”
“고딩? 고등학생?”
“응. 무면허에 음주운전에, 사고 내고 뺑소니까지···. 요즘 고딩들 무서워.”
“하. 기도 안 차긴 하는데, 이따금 뉴스에 중학생, 고등학생이 차 운전하다 사고 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하니까.”
“내가 직접 겪을 줄은 몰랐지.”
“그나저나 차는 많이 부서졌니?”
“... 조금. 고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도훈의 말에 진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수리비보다 새로 사는 게 낫지 않겠니? 많이 낡았잖아.”
“글쎄다. 두고 보면 알겠지.”
고개를 끄덕인 진주가 주방으로 가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렸다가 아침 먹고 가.”
“응. 그나저나 박 소령은 이번 주도 못 왔어?”
“말도 꺼내지 마라. 안 그래도 아빠 못 온다고 준수가 시무룩하니까.”
도훈이 쓰게 웃었다.
진주 남편이 아무리 전방부대에서 근무한다지만, 도훈이 시장에 취임하고 그의 얼굴을 본 게 단 한 번.
그때 말고 집에 다녀간 적이 두 번 더 있긴 했지만, 반년이 넘는 사이에 집에 단 세 번만 왔다는 건 좀 심하지 않은가.
진주와 준수가 남편을 보러 올라간 적이 몇 번 되니까 생이별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 다음에 보면 한마디 해줘야겠어.’
진주의 남편과 절친하다고까지 할 사이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절친’의 남편이니 적당한 친분은 있었다.
진주 남편 박경민 소령은 이른바 애처가의 전형으로, 그는 지난번 도훈과 만났을 때도 ‘내 아내를 잘 지켜다오’하는 눈빛을 마구 보냈었다.
‘... 그러고 보니 박 소령 나무랄 때가 아니네.’
같은 시기, 도훈이 집에 가서 아버지를 뵌 건 단 한 번.
아무리 일이 바빠서라지만, 대흥시에서 아버지 집까지는 겨우 한 시간 거리에 불과하니 남한테 충고나 할 입장은 아니었다.
‘... 쩝. 아버지가 오지 마라셨으니 망정이지···.’
도훈이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는데 업무용 핸드폰이 울렸고, 발신번호를 확인한 도훈이 전화를 받았다.
“김도훈입니다.”
- 시청 당직실입니다. 저 민원봉사과 장영식 주무관입니다, 시장님.
“아, 장 주무관님. 어쩐 일이세요?”
- 그전에··· 괜찮으시다는 말씀을 듣긴 했는데, 정말 괜찮으신 거 맞죠?
“네. 괜찮습니다. 지금은 병원도 아니에요.”
- 다행입니다. 어휴, 어제 지구대에서 연락받고는 놀라 기절하는 줄 알았거든요.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 아, 전화 드린 이유요? 어제 사고와 관련이 있는데, 지금 시청에 시장님께 사죄한다고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 저한테 사죄한다고요?”
- 네. 가해 차량에 학생들이 타고 있었다면서요? 학생 부모님하고 변호산데요.
“... 흠, 저 괜찮으니까 그냥 가라고 하시는 건 무례일까요?”
도훈의 말에 당직자가 살짝 웃고는 답했다.
- 하하, 무례라고 할 것까지 있겠습니까? 어쨌거나 시장님이 피해자이신데요. 그런데, 그렇게 말한다고 돌아가실 것 같지는 않네요. 학생 부모님이··· 뭐랄까, 마치 대역죄인이라도 된 것 같은 모습이거든요. 꼭 시장님 뵙고 사죄드린다고 하시네요.
“... 알겠습니다, 곧 가죠.”
- 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도훈이 주방의 진주에게 말했다.
“나 잠깐 시청에 갔다 올게.”
“왜?”
“누가 나 만나러 왔대.”
“금방 와?”
“응. 오래 안 걸려.”
대답한 도훈이 신발을 신는데 진주가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갔다 올 건데?”
“어떻게는? 내 차 타···.”
멈칫.
자신의 차가 공장에 견인된 상태라는 걸 뒤늦게 깨달은 도훈.
피식.
진주가 슬쩍 웃고는 키를 내밀었다.
“내 차로 갔다 와.”
“... 쌩큐.”
“단, 사고는 내지 마.”
장난기 가득한 표정의 절친에게 도훈은 진지하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 노력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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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
시청 당직실에 들어선 도훈을 보자마자 허리부터 90도로 숙인 남자.
괜찮다고 다행히 다치지 않았다고 말해도, 여전히 계속 사과하는 남자.
아무리 고등학생인 아들이 술 마시고 뺑소니 가해 차량에 타고 있었다고는 해도 정도가 좀 심하다 싶었는데, 당직자가 귀띔했다.
“저분 아들이 운전했답니다.”
“... 아.”
무면허에, 음주운전에, 단속을 회피하고 도주하다 사고를 내고 뺑소니.
형사처분은 피할 수 없을 터.
어떻게든 가벼운 처분을 받게 하려면 피해자와 얼른 합의하고 ‘중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탄원서라도 한 장 받는 게 좋을 테니 부모의 마음이야 급할 수밖에.
“... 그런데 아이들은···?”
“학생들은 아직 경찰서에 있습니다. 조사가 끝나지 않아서요. 함께 와서 사죄하는 게 당연하겠습니다만, 아버님이 혼자라도 가시겠다고 해서···.”
담담한 표정으로 말하는 변호사.
세련된 스타일의 정장을 입은 말쑥한 변호사와 여전히 연신 허리를 굽히고 있는 학생 아버지를 한눈에 담은 도훈은 곧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 아이들이 조사를 받는 중이면, 변호사는 당연히 거기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피해자를 다독이는 게 중요하다지만, 경찰 조사보다 중요한 건 아닐 텐데?’
“시장님, 아이들 조사 끝나면 뒷덜미를 붙들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제발 너그럽게 생각해주세요.”
“... 아, 예.”
도훈의 시선이 학생 아버지에게 머물렀다.
손에 잔 상처와 군살이 가득하고 까맣게 탄 얼굴에도 주름이 많은 게 아무래도 블루칼라 직종에 속하는 일을 하는 듯했다.
옷차림도 허름해 형편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 그런 형편인데 저런 변호사를 사고 직후에 구했다고···? 이거 좀···.’
도훈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조상님의 말이 들려왔다.
- 저 둘, 뭔가 수상하다.
‘저도 좀 느낌이 이상하긴 한데···.’
- 꿍꿍이가 있는 느낌이야. 뭔진 몰라도 숨기는 게 있어.
‘... 숨긴다고요?’
- 그래.
조상님의 단언에 도훈이 눈을 가늘게 떴고, 변호사가 말을 이었다.
“아버님 마음도 있지만, 부탁을 드리려고 찾아뵌 겁니다.”
“... 네?”
“아무래도 피해자가 현직 시장님이시니, 언론에서 알면 앞다투어 보도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 처벌이 엄해질 것이 우려됩니다.”
“... 네.”
“경찰 쪽에도 간곡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이들이 잘못한 건 맞지만, 자칫 여론의 주목을 받아 가혹하게 벌 받지 않게 조용히 처리하고 싶다고요.”
“... 흠.”
“앞길이 구만리 같은 고등학생들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시장님.”
“부, 부탁합니다, 아니, 부탁드립니다, 시장님.”
변호사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고, 학생 아버지는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숙였다.
도훈이 담담히 답했다.
“이게 뭐 좋은 일이라고 언론에 알리겠습니까. 저는 그럴 생각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학생 아버지가 연신 고개를 조아렸고, 변호사가 살짝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조사가 끝나면, 배상문제는 섭섭한 마음 안 드시게끔 신경 쓰겠습니다.”
“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몸조리 잘하십시오. 또 찾아뵙겠습니다.”
“... 네.”
목적을 달성했다고 여겼는지 변호사가 학생 아버지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도훈은 유리문 너머로 멀어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다 손에 든 변호사 명함에 시선을 줬다.
- 법무법인 공영, 양세민 변호사.
‘... 왜 이렇게 찜찜하지?’
당직자에게 인사하고 청사 밖으로 나와 진주의 차에 오른 도훈은 찜찜함이 가라앉지 않자 생각 끝에 지구대에 전화를 걸어 어제 현장을 담당했던 팀장을 찾았다.
다행히, 교대 직후라 팀장과 통화할 수 있었다.
- 괜찮으시다니 다행이네요.
“덕분입니다, 팀장님.”
- 하하, 덕분은요. 운이 좋으셨습니다.
안부의 말을 주고받은 도훈이 질문을 던졌다.
“어제 가해 차량 말입니다. 혹시 애들이 훔치거나 한 건 아니었죠?”
- 게레시즈요? 훔친 게 아니라 한 녀석이 어머니 차를 끌고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멈칫.
“... 게레시즈요? 가해 차량이 게레시즈였어요?”
- 네. 게레시즈 맞습니다.
“......”
‘게레시즈’는 국내 자동차 회사 하나의 최고급 브랜드.
- 폐차 직전의 상태니 못해도 몇천만 원은 날아간 거죠. 뭐,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겠습니다만.
“... 네. 혹시 거기도 학생 아버지와 변호사가 찾아갔었습니까?”
- 저희가 애들 붙잡아서 부모들에게 연락했는데, 변호사만 왔었습니다. 그 변호사 동의하에 본서로 넘겼죠.
“양세민이라는 사람이던가요?”
- ... 음, 이름은 정확히 기억 안 나는데 양 씨는 아니었는데요?
“... 40대로 보이는 남자 아니었나요?”
- 아뇨. 30대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습니다.
좀 더 대화하다 통화를 마친 도훈이 생각에 잠겼다.
어제 지구대로 찾아간 변호사와 오늘 도훈이 만난 변호사는 다른 사람.
‘... 둘을 고용한 건가? 아니면 법무법인과 계약하니 둘을 보낸 건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왠지 계속 찜찜했다.
결국, 도훈은 고심 끝에 자신의 ‘댓글’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정대영 변호사에게 전화했다.
그가 대전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공영’이라는 법무법인에 대해 잘 알 테니까.
그런데, 정대영의 말은 찜찜함을 가라앉힌 게 아니고 더 키웠다.
- ... ‘공영’이요? 거기 대전에서 제일 큰 법무법인인데요. 단순히 교통사고 가해자 변호하는 그런 곳 아닌데···.
“단순 교통사고는 아닙니다. 무면허 운전, 음주운전, 뺑소니 이런 게 한꺼번에 터진 일이거든요.”
- 단순한 사고가 아니긴 한데, 그래도 공영에서 교통사고 가해자 변호했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습니다. 거기 규모도 규모지만, 대표변호사가 정치인 지망하거든요. 이미지 관리도 하는 법무법인입니다.
“... 정치인요?”
- 네. 지난 지방 선거 때 출마하려고 물밑에서 열심히 작업했던 사람이거든요. 끝내 출마는 안 했지만요. 아마, 총선을 노리거나 다음 지방 선거를 노리는 거겠죠.
정대영과 통화를 마친 도훈은 다시 지구대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질문을 던졌다.
팀장의 대답은 도훈이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과 같았다.
- 블랙박스 메모리 카드는 있었죠. 그런데 녹화는 안 되어 있었습니다. 아, 글쎄 차 주인 아들이 엄마한테 나중에라도 걸릴까 무서워서 미리 빼놓았다네요. 조수석 글로브 박스 안에서 찾았습니다.
팀장의 말에 도훈은 잠시 고민하다가 질문을 이었다.
“어제 사고 났을 때 운전하던 게 차 주인 아들인가요?”
팀장의 답은 이번에도 도훈이 예상대로였다.
- 저희는 알아내지 못했어요. 애들이 차 버리고 도망갈 때 누군지 알아볼 정도로 순찰차가 가까이 있지 않았고, 잡은 다음에 아무리 말하라고 다그쳐도 애들이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나중에는 변호사가 와서 본서에 가서 조사할 때 밝히겠다고 해서 본서로 넘겼죠.
“......”
도훈이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지구대에서는 누가 운전했는지 말하지 않던 아이들이 경찰서에 가서는 순순히 밝혔다.
그 사이에 변호사와 접촉이 있었고, 그 변호사는 대전에서 제일 큰 법무법인 소속의 변호사.
그리고 그 법무법인은 교통사고 가해자 변호 같은 ‘잡일’은 안 하는 곳.
도훈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혹시 학생들 부모님이 어떤 분들인지 확인하셨어요?”
- 가족관계는 확인하고 연락했죠.
“... 직업은요?”
- 그것까지는 안 했습니다.
도훈이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혹시, 학생 부모 중에 김형일이라는 이름이 있었습니까?”
- 어? 어떻게 아셨어요? 차 주인 아들 아버지 이름이 김형일이던데···.
“......”
김형일은 정대영이 알려준 이름.
그는 다름 아닌 ‘공영’이라는 법무법인의 대표변호사였다.
그러니까, 사고를 낸 게레시즈는 공영 대표변호사 부인의 것이고 사고 차량에는 그의 아들이 타고 있었던 것.
도훈이 다시 머릿속을 정리했다.
확증은 없다.
오로지 심증만 있다.
그것도 전문가도 아닌 도훈의 일방적인 추측.
하지만,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 넌 심증이겠지. 난 확신한다.
조상님의 진중한 말에 주저하던 도훈이 입을 열었다.
“팀장님.”
- 네, 시장님.
팀장도 도훈이 ‘그냥’ 질문한 게 아니라는 걸 눈치챘는지 목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 이건 제 추측일 뿐인데 말입니다.”
- 네, 말씀하세요.
“변호사가 어제 사고 났을 때 운전한 사람을 바꿔치기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
지구대 팀장과 통화하는 도훈이 담담히 미소 짓던 변호사의 얼굴을 떠올리며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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