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이상한 소문 - 3.
도훈이 정임에게 다가가 전화를 건네받았다.
“김도훈입니다.”
- 아, 잠시만요. 교육장님 연결해드리겠습니다.
별말 없이 도훈이 등장해 놀랐는지, 상대가 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고 곧 교육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영민입니다, 시장님.
“안녕하십니까, 교육장님.”
- 여쭤볼 게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교육장의 목소리는 사무적이었다.
그간 도훈을 대할 때 살갑진 않아도 부드럽던 목소리가 아니라는 건 그만큼 ‘감정’이 상했다는 뜻일 터.
“말씀하세요, 교육장님.”
- ... 실례라는 건 압니다만, 단도직입적으로 묻지요. 정말 시장님이 경찰에 알린 게 맞습니까?
“아닙니다.”
- 정말 아닙니까? 김 시장님이 투서를 받아서 경찰에 알렸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그 소문, 저도 어제 들었는데요. 사실이 아닙니다.”
- ......
상대가 침묵했고, 도훈은 짧게 심호흡한 뒤 말을 이었다.
“제가 지난 연말에 시청 소속 전 직원 대상으로 평가서를 요청해 받았다는 건 아십니까?”
- 네. 들었습니다.
“익명으로 평가서를 받았는데, 그중에 투서가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투서가 교육지원청에 채용 비리가 있다는 내용이었던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교육장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대흥시장이고 교육지원청에 아무런 책임과 권한이 없습니다.”
- ......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대전에 있는 경찰관 지인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분이 알아보시더니 충남지방경찰청에서 실제로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함구해줄 것을 요구받았고 그대로 한 겁니다.”
- ... 그게 언제입니까?
“지인을 만난 게 1월 1일이었습니다.”
- ......
이영민 교육장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
- ... 내게 귀띔해주는 건 왜 고려하지 않았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일단, 경찰이 본격적으로 수사 중인 사안이고 곧 행동에 나설 거라는 얘기를 들었던 요인이 컸습니다. 그리고 투서에 특정인이 아닌 지원청 고위직이 관련 있다고 언급되어 있었습니다.”
- ... 나도 관련되어 있을 수 있다고 여겼다는 겁니까?
“죄송합니다만, 지원청 최고 고위직은 바로 교육장님이십니다. 제가 교육장님은 관련이 없을 거라고 확신할 정도로 교육장님을 잘 아는 것도 아니고요.”
- ......
“제 입장을 이해 못 하시겠습니까?”
- ... 이해합니다. 이해는 하는데···.
“서운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 ......
담담한 어투로 통화하고 있었지만, 도훈의 마음까지 편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해명’해야 할 필요가 없는 일임에도 도훈이 이런 통화를 하는 이유는 교육장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이영민 교육장 본인은 비리와 관련이 없었지만,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기관 내에서 비리가 적발되어 두 명이나 구속됐다.
더구나 그중의 한 명은 팀장급 간부.
함께 일하던 사람이 교육장 모르게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충격과 배신감이 클 테고, 왜 그 비리를 사전에 방지하거나 적발하지 못했는지 자책감이 들 터.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들려온 소문은 내부적 해결의 기회를 도훈이 날려버렸다는 원망의 불씨가 되었을 터였다.
긴 침묵 끝에, 교육장이 말을 이었다.
- 미안합니다, 시장님. 제가 무례를 범한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교육장님 심정,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네. 들어가세요.”
뚝.
통화를 마친 도훈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고, 영배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 납득하신 것 같습니까?”
“글쎄요. 미안하다고 하시는 걸 보니 이성적으로는 이걸 내게 추궁할 일은 아니라는 건 본인도 아시는 것 같아요. 다만, 마음이 복잡하니까 이렇게 전화를 하실 수도 있겠죠.”
영배에게 답하던 도훈이 정임에게 말을 걸었다.
“표정이 왜 그래요, 정임 씨?”
정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도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 투서가 진짜였다는 얘기가 좀 놀라워서요.”
“흠. 일부러 정임 씨하고 홍 주무관님에게는 얘기 안 했습니다. 만약 소문대로 제가 행동에 나서야 했다면 달랐겠지만, 아까 말한 것처럼 경찰이 곧 나설 타이밍이어서 조용히 묻었던 겁니다.”
“네. 그나저나 이거 어제 홍 주무관님 말씀처럼, 시장님께 투서를 보낸 직원이 소문을 퍼뜨렸을 수도 있겠네요.”
“글쎄요.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 않네요.”
“어쨌든, 교육장님이 더는 오해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러시겠죠.”
담담히 답한 도훈이 자리로 돌아가 다시 서류를 집어 들었고, 도훈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기분임을 알아챈 영배와 정임도 조용히 일에 집중했다.
‘소문’의 영향이 더 이어질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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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비서실 조회 시간.
“오늘, 내일은 별다른 외부 일정이 없는데요. 수요일 오전에 상인연합회 총회에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상인분들이 제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고 했죠?”
“네. 경기가 나쁘니까 어떻게든 시청에서 도움을 좀 줬으면 한다는 내용일 겁니다. 제 기억으로는 거의 매년 초에 반복되는 일이에요.”
“알겠습니다. 그날 논의할 걸 예상했다면, 시청 입장도 정리됐겠죠?”
도훈이 묻자 정임 대신 두진이 답했다.
“지역경제과에서 준비한 게 있긴 합니다. 다만, 참신하거나 묘수라고 할만한 게 없는 게 아쉽습니다만.”
“우리끼리 논의하면서 좀 고민해보죠. 그런데, 내일 외부 일정이 없어요? 제 기억에 저녁에 선생님들하고 저녁 같이 먹기로 했던 것 같은데요?”
도훈이 묻자 정임이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게, 그쪽에서 미루자고 연락이 왔다네요.”
“미뤄요? 왜요?”
“글쎄요. 이유는 딱히···.”
올해 예산에 학생과 청소년에 대한 다양한 지원안이 반영되어, 그 예산의 효과적인 집행을 위해 여러 사람에게 조언을 듣기로 했다.
그 첫 번째 대상은 아무래도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건 당연지사여서 작년 말부터 조정해 잡은 일정이었다.
“... 이거 혹시 소문 때문인 겁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도훈이 묻고, 정임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도훈이 미간을 찌푸리는데, 두진이 말을 이었다.
“토요일에 시장님과 교육장님이 통화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교육장님은 어느 정도 오해가 풀리셨겠습니다만, 일선 교사들 귀에까지 그 얘기가 전해진 건 아니겠지요.”
“저도 주말에 제 남편에게 그 얘기를 해줬거든요. 남편도 사정을 듣고 나서야 오해가 풀렸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해명이 아직 우리 시 선생님 모두에게 알려지지는 않았겠죠. 아무래도 지금 교육장님이 교사들에게 지지를 많이 얻고 있는 분이어서 시장님께 심정적인 저항감이 있는 모양이에요.”
“... 쩝. 어쩔 수 없네요. 기다릴 수밖에요. 사회복지실에 다시 일정 잡으라고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입맛을 다신 도훈은 다시 회의에 집중했다.
도훈도, 다른 직원들도 시간이 좀 지나면 도훈의 해명이 교사들에게 알려지고 오해가 풀릴 거라고 여겼다.
근데, 그런 교사들의 모습에 발끈한 이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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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퇴근 시간 무렵, 운행대기실에 갔던 영진이 비서실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곧바로 두진을 대동하고 도훈의 사무실에 들어왔다.
“... 네? 뭐라고요?”
“직원들이 교육지원청 쪽이랑 선생님들 욕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시장님.”
“......”
말문을 잃은 도훈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했다.
사회복지실에 교사들과의 약속을 다시 잡으라는 지시를 내리며, 교육장과 통화해 오해를 바로잡았으니 그 얘기가 평교사들의 귀에 들어갈 정도의 여유를 두고 추진하라는 얘기를 한 게 불과 몇 시간 전.
그런데 선생님들이 모임을 연기하겠다는 연락을 직접 받은 사회복지실 담당 팀은 안 그래도 기분이 별로였는데, 도훈의 담담한 반응에 ‘엉뚱한 놈이 더 화를 낸다’며 발끈했다나?
“진짭니까?”
“네.”
“... 심해요?”
“심하다고까지 할 건 아닌데, 빠르게 퍼지는 것 같긴 합니다.”
“......”
“솔직히, 이번 일에 시장님은 아무런 관련이 없잖습니까? 그런데 저만 해도 선생님들이 소문만 듣고 그런 식으로 나오는 게 좋아 보이지는 않으니까요.”
“......”
비리 사건으로 곤혹스러운 처지이지만, 교육장에 대한 교사들의 지지는 높았다.
만약 내부에서 먼저 알았더라면 당연하게도 경찰이 나서지 않아도 문제를 원칙적으로 해결했을 거라고 믿을 정도로.
그러니, 도훈이 그 기회를 주지 않고 곧바로 경찰에 알렸다는 소문에 ‘반응’하는 것일 터.
그런데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청 직원들의 도훈에 대한 지지도 그리 낮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생각을 정리한 도훈이 묘한 표정으로 두진에게 물었다.
“... 이걸 좋아해야 하는 겁니까 슬퍼해야 하는 겁니까?”
“글쎄요. 저도 좀 애매합니다.”
도훈의 말에 두진이 웃으며 답했다.
교육지원청 얘기를 들은 도훈은 시청 무기계약직 직원 채용이나 대우 등을 점검했다.
그 와중에 시가 고용한 무기계약직 직원 전원을 모아 간담회도 했다.
그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개선 가능한 부분은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많은 얘기가 오갔고, 도훈은 즉각 개선할 수 있는 것과 점차 반영할 수 있는 것들을 나눠 조치하도록 했다.
물론, 수용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런 부분은 솔직히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했다.
이 일은 당사자인 무기계약직 직원은 물론, 시청 정규직 직원들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정규직 직원들도 무기계약직 직원의 처우를 잘 아니까 말이다.
아마, 이런 분위기의 연장이 아닐까.
“... 선생님들도 우리 직원들도 이해가 가는데 말이죠.”
“... 네.”
교육지원청 직원이나 선생님의 반응도 이해가 됐고, 그에 대한 시청 직원들의 반응도 이해가 됐다.
다만, 이해가 되면서도 이런 반응이 오래가거나 확산하게 놔둘 수는 없었다.
자기 직무에 충실한 기관장에 대한 직원들의 지지야 환영할만한 일이겠지만, 득이 될 게 전혀 없는 감정싸움은 전혀 다른 일이니까.
“실장님. 교육장님과 면담 약속 좀 잡아주세요.”
“언제로 말입니까?”
“가능하면 빨리요. 내일 당장에라도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연락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직원들에게는···.”
“제가 전 직원 대상으로 이메일을 하나 보내겠습니다. 이건 가라앉거나 지나가길 기다릴 성질이 아닌 것 같네요.”
“그게 좋겠습니다.”
두진과 영진이 나간 뒤, 도훈은 컴퓨터 앞에 앉아 직원들에게 보낼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런 도훈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조상님이 등 뒤에서 말을 걸었다.
- 좋냐?
“솔직히,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네요. 하지만, 좋지만도 않아요.”
피식.
입가에 실소를 머금은 조상님이 말을 이었다.
- 인마, 자만하면 안 돼. 너 이제 겨우 반년 넘었어.
“잘 알고 있습니다.”
- 그리고 직원들에게 지지받는 건 좋은데, 관리 잘해야 한다. 팬하고 극성 팬은 달라.
“그래서 지금 메일 쓰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극성 팬이요? 공무원들이 얼마나 보수적인데요.”
- 드러내놓고는 티를 안 내겠지. 하지만, 남들 모르게 어떤 일을 할 줄 알아? 소문내는 것이나 약속 연기했다고 벌컥 화내는 것, 내가 보기엔 딱 팬들이 자기 좋아하는 연예인한테 하는 느낌인데.
“... 좀 그런 면이 없지는 않네요.”
- 내 생각인데, 아마 분명 젊은 여직원일 거야. 너한테 투서를 보내고 소문을 낸 사람 말이다.
“... 글쎄요.”
심드렁한 도훈의 말에 조상님은 소리 없이 혀를 찼다.
평소에 도훈을 따라다니다 보면, 시청 내에서도 도훈에게 아주 부드러운 눈길을 보내는 젊은 여직원이 제법 있었다.
도훈의 아버지도 도훈에게 ‘시청에 참한 아가씨 없더냐?’라고 물으며 은근한 눈빛을 보냈지 않았나.
그런데 도훈은 그런 여직원에게 정중하기는 해도 다정하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 거리를 철저히 유지한다는 뜻.
시장과 직원이라는 관계를 생각하면 올바른 대처방법일 테지만, 문제는 저게 의도적인 게 아니라는 거다.
- 이놈의 자식, 이거 정말 시장 임기 끝나고 난 뒤에야 가능성이 있으려나?
이제 서른여섯이 된 후손을 딱하다는 듯 바라보며 조상님이 가만히 중얼거렸다.
조상님이 뭔 생각을 하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도훈은 직원들에게 정중한 어투로 자제를 당부하는 글을 쓰고 있었다.
그 메일을 받은 직원 중 하나가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을 건 생각도 못 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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