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04화 (105/279)

104. 이상한 소문 - 2.

2019년 1월 둘째 주 화요일, 점심을 위해 시청 앞 한 식당을 찾았던 도훈은 밥 먹는 것도 잊고 TV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 경찰은 교육지원청 교육공무직원 채용과정에서 부정을 저지른 팀장 1명과 직원 1명을 긴급체포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무기계약직 신분인 교무행정사, 영양사, 돌봄전담사 등의 채용과정에서 300만 원에서 500만 원의 돈을 받고 특정 수험생의 서류심사 및 면접점수를 높게 주는 방식으로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부정합격자는 10여 명인 것으로···.

“... 드디어 터졌네.”

“그러게요.”

“10여 명이면, 생각보다 규모가 크네.”

“사람은 많은데, 금액은 적네요. 3백에서 5백이라니, 박리다매인 건가요?”

“교육공무직이 무기계약직이잖나. 당연히 정식 공무원보다 대우가 나쁜데, 주고받은 돈이 크면 그게 이상한 거겠지.”

“그나저나 요즘이 어떤 시대라고···.”

“그러게 말일세. 그래도 밝혀냈으니 다행이지.”

도훈이 말없이 TV를 보는 옆에서 두진과 영배가 말했다.

지난주, 여서진과 고정현을 만난 뒤 도훈은 두진과 영배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알아보자’는 계획을 취소하고 일체 사실을 함구할 것을 당부했다.

그래서 ‘투서’ 얘기는 정임이나 영진도 모르는 상태에서 1주일 만에 경찰이 행동에 나선 것이다.

“우리 시에서 근무 중인 사람도 있겠죠?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되긴? 당연히 합격을 취소해야지. 이게 지금 지역 뉴스에 나왔으니 망정이지, 전국적으로 알려졌다고 생각해 봐.”

“... 하긴요.”

경기가 나쁘고 실업률, 그중에서도 청년실업률이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이런 뉴스는 청년층의 불만을 폭발시킬 수도 있다.

가뜩이나 취업 기회도 많지 않은 상태에서, 정식 공무원도 아닌 무기계약직 직원 채용에 비리가 있다는 건 기회조차 공정하지 못함을 드러내는 것일 테니까.

작년 국정감사에서도 채용비리와 관련한 논란이 있었는데, 거기에 ‘친인척’이라는 단어가 곁들여지며 한동안 민심을 상당히 자극하지 않았던가.

물론, 방금 뉴스에 나온 경우는 3백에서 5백만 원의 돈이 오갔다는 게 확인돼 그 성격이 명확했지만, 뭐가 됐든 ‘채용비리’, 그것도 공직과 관련된 채용비리는 절대 간단한 사안일 수가 없었다.

때문에, 내부 비리가 터진 금산군 교육지원청 교육장은 물론, 충청남도 교육감도 언론과의 인터뷰를 청해 공개 사과를 하며 비리를 발본색원하고 추후로는 절대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다음으로는···.

TV 화면 속 앵커가 다른 주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다시 수저를 놀렸다.

“아무튼, 저렇게 처리돼서 다행이네요.”

“그러게 말일세.”

영배와 두진에 이어 내내 조용하던 도훈이 한마디 했다.

“우리도 다시 한 번 점검을 해보죠, 실장님.”

“점검? 우리 시청 무기계약직원들 말인가?”

“네. 채용과정만 살피자는 게 아니고요. 근무여건이나 대우, 복지 부분 등을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최선인 건 아니잖습니까. 정직원들보다 대우나 복지 조건이 아쉬운 게 사실인데, 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조정도 하고요.”

“흠. 알겠네. 내 들어가자마자 각 부서에 얘기해서 자료를 수집하지.”

무기계약직은 신분상 공무원이 아니고, 급여나 복지에서도 차이가 크게 난다.

공무원이 아니므로 연금도 공무원 연금이 아닌 국민연금을 받게 된다.

‘무기’라는 말처럼, 한번 채용되면 정년까지 고용은 보장되지만, 공무원처럼 호봉에 따른 급여 인상을 기대할 수 없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

담당하는 업무는 단순하지만 힘들고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

하지만, 그들이 담당하는 일은 절대 중요하지 않은 일이 아니다.

막말로, 환경미화원이 싹 사라진다면 그 일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데 며칠이나 걸릴까?

당연히, 도훈으로서는 신경을 쓸 수밖에.

영배가 도훈을 빤히 바라보고는 푸념하듯 한마디를 했다.

“어째 우리 시장님은 매사 일 줄여주지는 못해도, 늘리는 건 정말 잘하시는 것 같네.”

“... 이제 알았어?”

“아니.”

“팔자려니 하세요, 조 비서관님.”

담담하게 웃으며 말하는 도훈의 모습에 영배가 말없이 입을 삐죽거리더니 국밥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투서’ 건은 조용히 넘어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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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은 수면 밑에서 조금씩, 천천히 돌다가 어느 순간부터 ‘확’하고 퍼졌다.

처음엔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돌던 이야기가 넓게 퍼진 건, 소문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신빙성이 있었기 때문.

금요일 오후, 비서실.

한 주를 정리하는 회의 쉬는 시간, 화장실에 간다던 영배가 묘한 표정으로 돌아오더니 도훈을 포함해 모두가 모여 앉은 자리에서 방금 듣고 온 얘기를 입에 올렸다.

“... 뭐요?”

“시장님이 경찰에 연락해서 이번 교육지원청 비리가 터졌다고 하더라고요.”

“......”

화장실에 들어가 힘을 주고 있는데 누군지 모를 두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걸 들었단다.

“아주 확신하고 있던데요. 분명 시장님이 그랬을 거라고.”

“... 근거가 뭐라던가요? 혹시 그것도 들었어요?”

“네. 시장님 성향이 절대 그런 건 외면하지 못할 정도로 강직하고 청렴하기 때문이라던데요?”

“... 하하.”

“설사, 그 비리가 우리 시청이 아니라 소관이 아닌 다른 공공기관에서 벌어졌다고 해도, 시장님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그럴 분이라고도 하더군요. 아마, 단 1초도 고민하지 않고 결정하셨을 거랍니다.”

“......”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는 도훈과 비슷한 표정으로 말문을 잃은 두진.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영배와 눈을 말똥거리는 정임.

모두가 말문을 잠시 잃은 가운데, 입을 연 것은 영진이었다.

“그 소문, 화요일 저녁때부터 시청 내에 돌기 시작했습니다.”

“... 어떻게 시간까지 아세요?”

“제가 후배들한테 처음 들은 게 그때거든요. 아시죠? 운전하는 직원들이 소문 빨리 듣는 거?”

“... 그렇죠.”

시청 직원들이 모두 인정하는 소식통들은 죄다 운전을 하는 직원들이고, 그 운전하는 직원 중 가장 ‘빠르고 정확한’ 소식통이라 인정받는 영진.

그의 말이니 당연히 신빙성이 높았다.

가만히 영진의 말을 들은 도훈이 입을 열었다.

“... 제가 직원들에게 그렇게 비리를 외면하지 못하는 강직하고 청렴한 인상입니까?”

“그런 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시장님 취임하시자마자 공사 비리 파헤치는 거로 시작하셨잖아요. 대응도 단호했고요. 그뿐이 아니죠. 지하수 건도 있고, 그 왜 의회 사무과장 일도 그렇고요.”

“사무과장 일은 비리라고 하긴 뭐한데요? 그나저나 그 일도 직원들이 배경을 압니까?”

“네. 직원들 눈치도 보통은 넘으니까요. 그리고 비리라고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자기 직분을 넘어서는 일을 한 건 맞죠.”

“......”

“게다가 시장님이 예산 짜고 쓰는 일에 좀 깐깐하십니까? 본인 업무추진비부터 그렇게 엄격하게 쓰시는 데 직원들이 그런 인상을 느끼는 게 무리는 아니죠.”

“......”

영진의 말에 정임이 아주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고, 두진이 쓰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

“... 이거 참.”

“사실, 소문은 그게 다가 아닙니다.”

“... 그게 다가 아니라고?”

“네. 우리 시청 소관도 아닌 교육지원청의 비리를 누가 투서로 제보했는데, 시장님이 발끈해서 곧바로 경찰에 알렸다는 그런 부분이 있죠.”

“... 허허.”

두진은 다시 어이없다는 표정이 됐고, 도훈과 영배도 비슷했다.

‘투서’ 얘기를 아는 사람은 그 셋뿐.

정임과 영진도 그런 걸 받았다는 사실을 모른다.

만약, 소문을 처음 낸 사람이 추측한 게 아니라면, 평가서 대신 투서를 낸 장본인이 소문의 발원지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

허나, 어쩌겠는가.

헛소문이라고는 해도 ‘왜 그딴 소문을 냈냐’며 발원지를 찾아 추궁할 성격의 문제도 아닌 것을.

도훈은 ‘이것도 다 지나가겠지.’ 싶은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 괜한 헛소문에 신경 쓰지 말죠, 우리. 얼른 회의나 마칩시다.”

“네. 계속 진행하시죠.”

도훈의 말에 두진이 맞장구를 쳤고, 모두가 다시 회의에 집중했다.

그렇게 한 주가 평온히 마무리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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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대흥시청 시장실.

두진과 영진이 쉬는 날이라 도훈은 영배, 정임과 함께 출근해 비서실에서 서류를 읽는 중이었다.

휴일 업무도 일상으로 자리한 게 이미 오래라, 도훈의 별다른 지시 없이도 영배와 정임도 각기 할 일을 하는 그런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정임 씨, 이 서류 보셨어요?”

“음···. 네, 봤어요.”

“여기 근거자료로 언급된 거 혹시 우리한테 있어요?”

“네, 찾아드려요?”

“네. 이것만 봐서는 이해가 잘 안 되네요.”

“호호, 조 비서관님도 이제 제법 혼자 공부하는 데 익숙해지셨네요.”

“익숙해져야죠. 아무리 제가 초짜라지만, 계속 초짜로 머물 수는 없잖아요.”

“물론이죠. 잠깐만요.”

평화로운 분위기가 바뀐 건, 정임에게 전화가 와서 그녀가 잠시 밖에 나가 통화하고 온 직후였다.

“시장님.”

“네, 정임 씨.”

도훈이 서류에서 눈도 떼지 않고 답했는데, 뒤이은 정임의 말에는 고개를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제 시청에서 돈다는 그 소문 있잖아요.”

“네.”

“그거 교육지원청 쪽에도 돌고 있나 봐요.”

“네?”

“방금 남편과 통화했는데, 교육지원청 직원들 사이에 그 소문이 돌고 있다네요. 학교 선생님들에게도 퍼졌고요.”

“......”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라던데요?”

“......”

헛소문이라지만 소문이 도는 것 자체가 그리 큰 문제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정임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은 걸 본 도훈은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게 ‘소문이 돈다’는 것이 아님을 눈치챘다.

“... 소문에 대한 직원들 반응이 안 좋답니까?”

“... 그렇다네요.”

자기 조직 내에서 사달이 벌어진 걸 좋게 받아들일 사람은 별로 없다.

게다가 그 사달이 돈이 오간 ‘채용비리’라면 조직 구성원은 분노를 느끼거나 창피함을 느끼는 게 당연할 터.

팀장과 담당 직원이 구속까지 됐고 여전히 경찰이 수사하는 중이니, 당연히 요즘 교육지원청의 분위기가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아무리 비리라고는 해도 청 내에 그런 폭탄을 터지게 한 데 크게 일조한 것이 도훈이다?

비록 옳은 일을 했다고 하지만, 모두가 100% 좋은 감정을 가지지는 않을 터.

“... 대충 짐작은 가는데···.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었다 이거겠죠?”

“네. 그런가 봐요. 경찰에 넘기지 말고 교육장님께 알렸으면 되지 않냐고 성토하는 이들이 있대요. 지금 교육장님이 그런 일을 두루뭉술하게 넘기는 분이 아니라네요.”

영배의 말에 답하는 정임의 표정이 어두운 걸 보니, 지원청 사람들이 생각보다 도훈에게 크게 유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도훈이 경찰에 알린 것도 아닌데 말이다.

“휴우. 이거 헛소문이라고 그쪽에 찾아가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도 없고···.”

한숨을 내쉰 도훈이 투덜거리는데 정임의 말이 이어졌다.

“그게··· 그러셔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네?”

“교육장님도 이 소문 아신대요.”

“......”

“알고 제법 화가 나신 눈치라는데요?”

“......”

깜빡. 깜빡.

두어 번 눈을 깜빡인 도훈이 입을 열었다.

“... 정임 씨 남편이 그런 얘기를 일부러 전했을 땐 제법 신빙성이···.”

“... 높다는 거죠. 남편이 지원청에 무척 친한 사람이 있거든요.”

“......”

말을 잃은 도훈은 교육장의 얼굴을 떠올렸다.

‘인자한 교육자’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얼굴이랄까?

직원들에게 공정하고 정중한 사람이라는 평은 들은 적이 있었고, 일도 잘해 업무 협력에서도 지금껏 불협화음이 난 적이 없었다.

그런 사람이 화가 났다?

‘골치 아프네.’

속으로 중얼거린 도훈이 쓰게 웃고 있는데, 비서실 유선전화가 울렸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대흥시장 비서실입니다.”

전화를 받은 정임이 잠시 뭐라 통화하더니 좀 놀란 표정이 됐다.

“... 어딘데 그러세요?”

도훈이 묻자, 정임이 얼굴에서 전화기를 떼고 답했다.

“... 교육장 비서실인데요.”

“......”

“교육장님이 시장님과 통화하고 싶으시대요.”

“......”

모두가 말문을 잃은 가운데, 도훈이 한숨을 길게 내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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