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00화 (101/279)
  • 100. 그녀의 다짐.

    - ... 시민들이 시장님 계정에 옹호의 글을 달거나 링크를 걸면서 좀 더 화제가 됐습니다. 그렇죠?

    - 좀 더 가 아니고 그때부터 화제가 된 게 맞을 겁니다. 그러기 전에는 댓글 달러 놀러 오시는 분들 말고는 제게 관심이 없으셨죠.

    - 그런가요? 어쨌든, 저도 인터뷰 전에 시장님 SNS에 가서 글들을 읽어봤거든요? 재미있는 글도 있고 흥미로운 사건에 관한 이야기들도 많던데요?

    - 글쎄요.

    진행자는 어떻게든 ‘반응’을 끌어내려고 노력하는 게 뻔히 보였지만, 당사자가 너무 담담한 게 그다지 호응하지 않고 있었다.

    - 우선 ‘구일이’ 건만 봐도 그런데요. 구사일생으로 태어난 송아지라서 구일이라고 이름을 지었다는데, 실제 상황이 그랬습니까?

    - 저도 그 글과 사진을 봤는데요. 잠시 잠깐 위험한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만, 솔직히 구사일생이라고까지 할 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위험한 상황이었다면, 제가 직원들 데리고 농가를 찾아가질 못했겠죠.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잘 대처했고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글 쓰신 분이 화재 피해를 볼 뻔한 당사자인 부모님께 이야기를 전해 들으셨다는 걸 조금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 아, 네. 그렇군요. 그럼 다른 건으로 넘어가 볼까요? 화학약품 유출 건, 이건 지역뉴스에도 보도가 됐더군요.

    - 네. 초여름에 있었던 일이죠.

    가만히 컴퓨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대화에 귀 기울이고 있던 정임이 한마디 했다.

    “시장님, 좀 재미있게 하시지 그러셨어요?”

    “... 저것도 노력한 겁니다. 그리고 시사 프론데 굳이 재미있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에이, 요새가 어떤 시댄대요. TV도 아니고 라디온데, 그리고 진행자가 저렇게 노력하는데 분위기 좀 맞춰주실 수도 있었잖아요.”

    “쩝. 정임 씨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데요. 그러면 안 되는 사정이었잖습니까.”

    “그러면 안 되다뇨?”

    정임의 반문에 답한 건 도훈이 아닌 영배.

    “저 인터뷰 시장님 동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거잖아요. 물론 동생은 그래도 불만이 남은 것 같긴 하던데.”

    “... 적당한 선에서 타협한 거라고 해주세요.”

    “하하, 그거야 시장님 생각이고요. 어쨌든, 어쩔 수 없이 한 인터뷰가 너무 크게 화제가 되거나 재미있으면 또 인터뷰 요청이 쏟아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아예 재미없는 사람 컨셉으로 나간 거죠.”

    “아하.”

    도훈은 자신의 인터뷰 기사가 우리 뉴스에 나가기 전에 미리 도연에게 연락해 양심 고백을 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모든 언론에 인터뷰 안 하기로 했던 계획이 깨졌다고.

    아무리 공은 공, 사는 사라지만, 자신의 독점 인터뷰가 다른 매체에 떡 하니 나간 걸 동생이 보게 되면 더는 공사의 문제가 아니게 되니까.

    반색한 도연이 자기네 방송국 시사프로와 인터뷰하라고 ‘요구’했지만, 도훈은 방송국은 ITS로 하되 TV가 아닌 라디오 시사프로와 인터뷰하겠다고 했다.

    도훈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도연에 이어 최승범까지 나서서 노력했지만, 도훈은 생각을 바꾸지 않았고 3시간 안에 수용이냐 아니냐 결정하라며 배수의 진까지 쳐서 결국 ITS 라디오와 인터뷰를 했다.

    그것도 스튜디오 출연이 아닌 전화 인터뷰였다.

    여하튼, 그렇게 도훈이 라디오 시사프로에 출연한 게 오늘 오전의 일이었다.

    “우리 뉴스 왕 기자가 뭐라고 안 했습니까?”

    “저보고 고단수라고 한마디 하긴 했습니다만, 3시간 독점도 독점은 독점이니까요.”

    ITS 라디오 출연계획이 잡히고 도훈은 우리 뉴스 기자에게 연락해 라디오 인터뷰를 하게 됐으니 독점을 하고 싶다면 얼른 기사를 올리라고 친절히 ‘안내’까지 해줬다.

    그래서, 왕 기자는 라디오 방송 3시간 전에 부랴부랴 기사를 올려 3시간 동안이나마 독점 타이틀을 지키긴 했다.

    아무튼, 그렇게 언론사 두 곳에 도훈의 인터뷰가 나간 뒤 도훈의 SNS 계정은 물론, 시청 홈페이지 방문자가 엄청 늘어났다.

    “재미없는 인터뷰긴 했지만, 시장님 홍보 효과는 기대 이상입니다. 하하하!”

    “... 홍보해서 좋을 게 뭐가 있다고요. 우리 SNS 계정은 절 홍보하는 게 아니고 정책 홍보하는 거잖아요?”

    “하하. 그, 그렇죠.”

    환하게 웃는 영배에게 도훈이 살짝 눈을 부라렸고 영배가 찔끔했다.

    “댓글 놀이하는 사람은 싹 사라졌으니 어쨌든 좋은 거 아닙니까.”

    “그런 효과라도 있으니까 인터뷰를 했죠. 이젠 직원들에게 좀 덜 민망하긴 하겠네요.”

    “시장님 흉보는 직원 없습니다.”

    “전혀 없다고 자신하세요, 홍 주무관님?”

    “그, 극소수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극소숩니다, 극소수.”

    아주 진지하게 답하는 영진에게 도훈이 웃으며 말했다.

    “그냥 해본 소립니다. 예능을 다큐로 받으시면 어떻게 해요?”

    “하하, 그, 그렇죠?”

    영진이 머쓱하게 웃었고, 모두가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분위기가 좋아진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은 다들 하고 있었다.

    이제 임기 6개월이 다 되어가는 도훈과 비서실 직원들에게, 이번 일처럼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로 비판도 아닌 비아냥을 듣는 건 처음이었다.

    하긴, 누군들 흔하게 경험하는 일이겠는가?

    “그나저나 CH 신문 홈페이지는 아직도 그 상태던 데요?”

    정임의 말에 영배가 답했다.

    “그거, 그냥 항의하는 접속자 폭주가 아니고 누가 열 받아서 디도스 공격을 하는 거래요.”

    “디도스요?”

    “네. 댓글 놀이하던 사람 중 하나가 너희가 엉터리로 쓴 기사 때문에 우리까지 바보 됐다고, 그래서 이러는 거라고 친절하게 기자한테 이메일까지 보내서 알려줬다던데요?”

    “... 하, 하하.”

    어제부터 CH 신문 홈페이지는 접속 불가 상태.

    누구인지 모를 범인이 이유까지 알려줬다지만, 이유를 알면 뭐하겠는가.

    “오전에 정 변호사와 통화했는데, CH 신문 누가 고발했답니다.”

    “고발요? 누가요?”

    “경찰에서 그건 알려주지 않았답니다. 이름을 알리려는 단체나 개인의 행동은 아닌 것 같다고만 귀띔을 받았다네요. 우리 시민 중 한 분일 수도 있겠죠.”

    “... 흠.”

    기사로 인해 주되게 피해를 본 당사자인 도훈은 아직 변호사를 통해 절차를 밟고 있을 뿐, 고발은 하지 않았다.

    두루뭉술하게 넘길 생각은 없지만, 솔직히 고발까지 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좀 더 컸다.

    그런데, 누구인지 모를 제3 자가 고발을 해버렸다니 좀 어이가 없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변호사를 만난 게 지난주 금요일, 아직 며칠 지나지도 않은 상태.

    그런데도 그때와 지금은 완전히 지옥과 천국의 차이랄까.

    “... 아무리 SNS 시대라지만, 여론 동향이 굉장히 빨리 변하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그런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이렇게 경험하긴 처음입니다. 나이가 실감 나네요.”

    “나이 때문이 아닙니다. 저도 똑같이 생경한 걸요.”

    두진과 대화를 마친 도훈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모두에게 말했다.

    “근심거리가 해결된 것 같은데, 우리 오늘 회식이나 할까요?”

    “오! 회식! 그거 참 좋은 생각입니다.”

    “나쁘지 않네요. 지난번에 산불 나서 중단해야 했으니까요.”

    영배와 두진이 찬성했지만, 정임이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시장님, 오늘 저녁에 유서면 청년회 모임에 참석하시기로 약속 잡혀있는데요.”

    “... 그게 오늘이었습니까?”

    “네. 오늘입니다.”

    “... 아이고.”

    “쩝.”

    직원들이 아쉬워하자, 도훈이 담담히 말을 이었다.

    “뭐, 그럼 내일 하던가요. 어차피 내일이 금요일이니까 그게 더 낫겠네요.”

    “그러시죠.”

    “하하, 내일이 기대됩니다.”

    “자, 일합시다.”

    도훈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고 모두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활기가 돌아온 비서실 직원들 모두의 입가에 기분좋은 미소가 맺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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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 의원, 그 신문사 편집장이랑 기자 잘 다독여요. 일이 잘 안 풀린 건 어쩔 수 없고, 앞으로가 더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 네, 알겠습니다.”

    답하는 차혜진으로서는 직접 만나지 않고 전화로 통화하는 게 참 다행이었다.

    분노로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내비치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무척 딱딱한 그녀의 목소리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그대로 전하고 있었고, 차혜진도 그 정도는 숨기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상대가 도당위원장이라고 해도 말이다.

    - 잘 부탁합니다. 다음에 밥이나 같이 합시다.

    “... 네, 위원장님.”

    철컥.

    거칠게 전화기를 내려놓은 차혜진이 이를 악물었다.

    ‘잘 다독이라’고 말하는 도당위원장이 정말 원망스러웠으니까.

    - 차 의원, 대흥시 어때요? 혼자라서 힘들지 않아요?

    얼마 전, 차혜진은 오래간만에 마주한 도당위원장과 웬일로 독대를 했다.

    아무리 현역의원은 아니라지만, 2번의 국회의원 경력에 도당위원장이니 영향력은 차혜진에 비할 바가 아닌 사람.

    - 현역이 차 의원 하나라 힘들긴 하겠지만, 차 의원에게도 꼭 나쁜 건 아니에요. 다음 선거 때 여러 가지를 고려할 수 있잖아요.

    - 여러 가지라니요?

    - 하하. 시의원도 있고 도의원도 있고, 시장도 있잖습니까? 우리 당에서 그 자리에 다 후보들 내야 할 거 아닙니까. 차 의원이 대흥시의 유일한 현역이니 꼭 시의원 재선만 노리라는 법이 없잖아요.

    다음 지방선거는 3년도 넘게 남았다.

    그 3년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차혜진 본인도 그걸 잘 알고 있었지만, 도당위원장의 은근한 유혹에 흔들렸다.

    - 대흥시장, 요즘은 그다지 튀지는 않는 것 같던데···. 계속 무난하게 가면 그렇잖아요. 이쯤에서 좀 흔들어 볼 필요가 있지 않아요?

    지방선거 뒤 취임한 현 위원장은 한때 무소속인 도훈에게 관심을 가졌고, ‘영입’을 고민하며 도훈에 관한 정보를 모으기도 했었다.

    그런 그가 도훈을 영입의 대상이 아닌 ‘흔들기’의 타겟으로 보게 된 데에는 차혜진의 역할이 컸다.

    성향도 성향이거니와, 혹여 성향이 비슷하다고 해도 도훈이 대자당 소속이 되는 게 단기적으로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자신에게 전혀 득 될 게 없다고 판단했으니까.

    - 좀 흠집이 생겨야 여당 쪽과 더 가까워지는 것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차 의원이 일하기도 좀 편해질 테고 말이죠.

    뜻밖의 말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흔든다’는 게 뭔지 모르지 않았던 차혜진은 고민 끝에 ‘대가’가 뭐냐고 물었다.

    - 하하, 잘 되면 최우선으로 차 의원에게 좋은 거잖아요? 그리고 내게 차 의원의 능력에 대해 좋은 인상이 남을 테고요.

    차혜진은 고심 끝에 오랜 친분이 있던 CH 신문의 기자와 상의했고 기자를 통해 편집장의 조력 약속까지 받을 수 있었다.

    전임 시장들과 달리 지역 언론에도 깐깐하며 어떤 특혜도 인정하지 않는 도훈에게 그들도 ‘감정’이 있어서 협력은 쉬웠다.

    비밀이었지만, 차혜진은 CH 신문의 기자에게 생각이 있다면 다음 지방선거 때 시의원 후보로 적극적으로 추천하겠다고 제안해 그를 움직였다.

    그녀가 그런 결정을 한 건, 위원장의 은밀한 제안도 제안이지만, 한 번쯤은 ‘낭패한 시장’의 표정을 보고 싶다는 강한 욕구 때문.

    의회에서건 의회 밖에서건, 도훈과 맞서 단 한 번을 이겨본 적이 없는 차혜진이었기에.

    심지어, 모든 조건과 형편이 그녀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던 경우에도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전문가’에게 맡겼다.

    성공할 뻔했다.

    그것도 아주 통쾌한 성공을.

    ‘... 망할.’

    이를 악문 차혜진이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일이 잘 풀릴 때는 그것 보라는 듯, 내 능력이 이 정도라는 듯 으스대던 기자는 홈페이지가 터진 뒤로 코빼기도 보이지 않은 채 쥐구멍만 찾고 있었다.

    이런 지경에 이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편집장이 기자를 쥐잡듯이 잡고 있어서였다.

    - 의원님, 저희 대흥시청에서 완전히 찬밥 된 거 아시죠? 거기만 그런 거 아닙니다. 다른 관공서 출입 기자들도 눈치 보인다고 얼마나 하소연하는지 아십니까? 게다가 어떤 놈한테 고발까지 당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시장도 저희를 고소할 것 같은데, 이거 어쩌면 좋습니까?

    고소, 고발 한 두 번 당한 거 아니지 않냐고 차분히 법정에서 대응하다 보면, 사람들 뇌리에서 잊힌다고 그때를 기다리면 되지 않냐고 간신히 달랬다.

    그러나 자신과 CH 신문의 유대에 금이 갔음을 차혜진도 모르지 않았다.

    기자 개인은 모르겠지만, 편집장이 이쪽 뜻에 따라 선뜻 움직이기도 앞으로 어려울 터.

    결국, 이번 흔들기로 차혜진은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패의 효용도만 떨어뜨린 상황이었다.

    “... 빌어먹을.”

    번번이 지기만 하는 도훈과의 대결이었지만, 아직 차혜진은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4년 임기 중 이제 겨우 반년이 지났을 뿐, 앞으로 기회는 차고 넘칠 테니까.

    “어떻게 한 번은 꼭···”

    도훈의 담담한 표정을 떠올리며 차혜진이 전의를 다졌다.

    그렇게 연말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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