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구일이’와 … 1.
“김도훈입니다.”
“정대영입니다.”
금요일 오후, 도훈은 사무실에서 변호사를 만났다.
영배가 법조계 인맥을 통해 소개받은 대전에서 활동하는 변호사로, 특이한 건 안준식 의장과 친분이 깊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안 의원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좋은 이야기였으면 좋겠네요.”
“하하, 대부분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좀 고집이 세시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그것도 나쁜 얘기가 아니죠.”
“다행입니다.”
적극적으로 활동하진 못해도 오랫동안 시민단체 회원자격을 유지하고 있다는 정대영과 도훈, 두진, 영배가 마주 앉았다.
“정말 제게 모든 걸 맡기시겠다고요?”
“네. 제가 변호사를 선임하는 건 이 일에 관심을 끊고 업무에 집중하기 위한 게 제일 큽니다. 물론 대응방향은 사전에 논의해야 하겠지만요.”
“흠. 그러시다면 저도 좀 편하긴 하겠습니다.”
도훈은 변호사와 대응방향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기본적인 건 신문사에 대한 대응으로, 사과와 정정기사, 적절한 배상이 그것이었다.
“타협 없이 가신다고요?”
“네. 제 쪽에서 유감도 표명했고, 기사 정정도 요구했는데 반응이 별로라는군요. 기회는 충분히 줬다고 생각합니다.”
도훈이 또 한 가지 대응원칙으로 삼은 것은, 단순히 댓글을 단 개인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을 하지 않는 것.
SNS 계정의 댓글은 200개를 넘어 300개를 바라보고 있는 형편이었다.
댓글 중 ‘소나 어쩌고’ 하는 단순한 내용이 아닌 것도 있지만, 그런 것들도 댓글을 삭제하고 사과한다면 눈감아 주기로 했다.
“이번에 관용을 베푸시면 혹시 나중에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같은 일이 반복될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다르게 대응하더라도 이번에는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처음이니까요.”
도훈은 30분 정도 이야기를 한 뒤, 논의를 마무리했다.
“오늘부터 곧바로 절차를 진행하겠습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도훈에 이어 비서실 직원들도 제각기 변호사에게 당부의 말을 했다.
“혼내주세요!”
“기자랍시고 거들먹거리며 거짓말 더 못하게 해주십시오!”
직원들의 ‘좀’ 격한 반응에 변호사가 살짝 놀랐다가 웃으며 답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직원들이 그런 반응을 보인 건, 엊그제부터 도훈의 개인 SNS 계정뿐만 아니라 대흥시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도 ‘소나 어쩌고’하는 글을 쓰는 이들이 출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관공서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글을 쓰려면 실명이 공개되는 특성 때문에 그 숫자는 많지 않았으나, 글의 내용이 유쾌하지 않으니 짜증스러운 건 당연했다.
“사정을 설명했는데도 이러니···. 사람들이 참, 쯧쯧.”
게시판을 살피던 영진이 혀를 찼고, 같은 모니터를 바라보던 영배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게시판에 도훈을 비아냥거리는 글이 올라온 뒤, 어쩔 수 없이 기사에 적시된 일들이 실제로 어떻게 일어났고 어떻게 처리됐는지를 설명하는 글을 올렸다.
CH 신문의 기사에서는 앞과 뒤가 잘렸다거나 사건을 단편적으로만 적었더라도, 그 글을 읽으면 전후 사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데도, 비아냥으로 점철된 글을 지우거나 사과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답답할 수밖에.
“우리가 할 일은 다 했어요. 게시판 붙들고 키보드로 전투할 수도 없는 일이니까 다들 일에나 집중하죠. 다음 일정은 뭡니까, 정임 씨?”
“음, 30분 뒤에 지역경제과 회의에 참석하셔야 합니다.”
“30분이요?”
“네.”
“그럼, 저 안에서 자료 읽고 있겠습니다.”
도훈이 담담하게 말하고 시장실로 들어간 뒤, 비서실 직원들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비아냥거리고 비난하는 글에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나는 건 당사자인 도훈이 제일 심할 텐데 직원들 앞에서는 일절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하기로 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지켜보는 사람들이 속이 터져도 벌써 터졌을 정도로 무덤덤한 도훈이었다.
“자, 다들 일에 집중합시다. 어제 시장님이 직원들에게 메일까지 보냈는데, 비서실 사람들이 이러면 어떻게 하나?”
“알겠습니다, 실장님.”
도훈에 대한 때아닌 비아냥과 비난이 온라인에서 쏟아지고, 시청 홈페이지에도 그런 글이 등장하자 직원들이 어수선한 반응을 보였다.
대개, 잘 알지도 못하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하는 이가 다수였는데, 도훈이 그런 얘기를 들을 정도로 ‘극성’인 건 맞다는 반응도 소수 있었다.
어쨌든, 도훈은 직원들에게 이 일에 반응하거나 신경 쓰지 말고 업무에 집중하라는 메일을 어제 보냈다.
직원들을 다독인 두진이 자리에 앉아 회의 자료를 집으며 중얼거렸다.
“... 되도록 빨리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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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선임의 영향은 토요일 오전부터 나타났다.
띠리리리리.
“대흥시장 비서실입니다.”
책상에 앉아 서류를 읽던 영배가 전화를 받더니 미간을 확 찌푸렸다.
“저기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변호사님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전화기 너머 상대가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 않았지만, 도훈은 영배의 미간이 점점 더 찌푸려지는 걸 보고 누가 전화했는지 즉각 알아챘다.
“저는 더 드릴 말씀이 없고요. 시장님께서도 변호사님께 전부 맡기셨습니다. 그러니까 이리로 전화하셔도 통화 연결 못 해 드립니다.”
분명 CH 신문에서 걸려온 게 틀림없는 전화.
아침부터 서너 차례 전화를 걸어와 도훈과 이야기하고 싶다는 얘기만 했다.
사과하겠다거나 정정기사를 내보내겠다는 게 아니라서 도훈은 전화를 받지 않고 영배를 통해 ‘변호사와 상의하라’고만 응답하는 중이었다.
“뭐, 있는 그대로 말씀드린 거고요. 기사를 쓰신다고 해도 저희 대응은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협박이요? 시장 안 바꿔주면 기사 쓴다고 하는 건 협박이 아닙니까? 참고로 이 통화 녹음되고 있다는 말씀은 드리죠.”
영배는 심드렁하게 말한 직후 전화를 끊더니 말없이 바라보는 도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또 거기야.”
오늘은 두진 없이 도훈과 영배만 출근했다.
순심이를 진주네 집에 맡겨놓고 도훈이 먼저 출근했고, 집안일을 좀 한 영배는 천천히 나와 공부하는 중이었다.
“형, 정 변호사가 무슨 요구를 했길래 반응이 저렇지?”
“글쎄다. 배상금을 좀 세게 불렀나?”
“그랬다고 그 목 뻣뻣한 사람들이 벌써 절절대?”
“겉으로는 배짱 있는 척했어도 자기들이 잘못했다는 걸 모르지는 않을 테니까.”
시청 공보팀장을 상대할 때 상대는 ‘심드렁’ 혹은 ‘당당’으로 일관했다고 도훈은 전해 들었다.
소속이 어찌 됐든, 기자들은 공무원을 상대로 ‘딱 필요한 정도’의 예의만 갖추고 살짝 세게 나오는 경향이 있었다.
기자 개인에 따른 차이는 좀 있지만, 공통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대동소이한 경향이었다.
‘공보팀장이라지만 홍보 전문가가 아닌 공무원이니까 그랬던 건가? 변호사는 좀 무서운 건가?’
실소하며 그렇게 중얼거린 도훈이 다시 서류에 눈을 돌리는데, 이번에는 도훈의 핸드폰이 울렸다.
“... 설마 CH 신문이냐? 거기면 받지 마.”
“아니야. 정 변호산데?”
“그래?”
“응. 벌써 전화할 정도로 일이 잘 풀렸나?”
영배에게 답한 도훈이 전화를 받았다.
“김도훈입니다.”
- 안녕하세요, 시장님. 저 정대영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 여쭤볼 게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말씀하세요.”
- 혹시 ‘구일이’ 얘기 아세요?
“... 구일이가 누굽니까?”
도훈이 의아한 목소리로 되묻자, 변호사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 인터넷에 검색해 보시면 나올 겁니다. 여하튼, 시장님은 모르고 계셨군요?
“... 전혀 모르겠는데요.”
- 하하. 검색 한 번 해보시고요. 시장님 SNS 계정도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어제 하고는 조금 양상이 다르네요.
“... 알겠습니다. 아, 그나저나 아침부터 CH 신문에서 계속 전화가 와서 저를 찾는데, 거기에 뭐 요구하셨어요?”
- 그렇습니까? 전화 받거나 하신 건 아니죠?
“당연히 아니죠. 직원을 통해 정 변호사님과 상의하라고만 하고 있어요.”
- 계속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제가 배상금액을 세게 불렀거든요. 그랬더니 그런가 보네요.
“아, 예.”
- 이만 끊겠습니다. 검색 꼭 해보세요.
“네, 수고하세요.”
통화를 마친 도훈은 옆에 있던 노트북 자판을 두들겨 ‘구일이’를 검색했다.
“... 엥?”
도훈의 이상한 소리에 자기 책상에 있던 영배가 의자를 밀어 이쪽으로 다가왔다.
“뭔데 그래?”
“... 얘 좀 봐.”
도훈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모니터에는 웬 눈이 똘망똘망한 귀여운 송아지 한 마리가 불에 그슬린 축사를 배경으로 서 있었다.
“여기, 야산 옆 그 농가 아니냐?”
“맞는 것 같은데. 형, 얘가 그 날 태어난 송아진가?”
“글쎄다? 그나저나 누가 쓴 글이야, 이거?”
“어디 봅시다.”
블로그에 올려진 사진과 글은 야산 산불 때 태어난 그 송아지에 관한 게 맞았다.
블로그를 작성한 사람은 대전에서 대학에 다닌다는 그 축산농가의 딸로, ‘소나 나르고 있었겠지.’라는 도훈에 대한 비아냥이 횡행하는 걸 보고 분개해서 글을 작성한다고 했다.
- 소 키우는 농가에서 소가 얼마나 중요한지 니들은 아냐? 집 바로 옆 야산에 불났는데, 대피는커녕 제일 먼저 소부터 챙겨야 할 정도로 귀한 게 소야. 어미 소가 오랜 산통으로 탈진해 누워있으니까 불이 덮쳐오는 축사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게 소 키우는 사람들이라고. 그 사정을 듣고 사람을 모아 소를 직접 들고 나르자는 판단을 한 게 뭐가 문제야?
“어라?”
“... 이거 그 날 사진인 것 같은데, 누가 찍었지?”
글 중간에 올려진 사진에는 불길이 넘실거리는 야산 정상 부위가 멀리 보이고, 재와 불똥이 떨어지는 축사에서 여러 사람이 소를 들고 빠져나오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밤이고 거리가 있어 사람의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저만치 넘실거리는 불길에다 하늘에서 계속 불똥이 떨어지는 걸 무릅쓰고 소를 옮기는 장면은 제법 위태로워 보였다.
“... 이 정도로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는데.”
“... 그, 그랬냐? 이 사진으로 보기에는 아주 위험해 보이는데?”
“... 그러게.”
- 소방관님들은 불이 축사에 옮겨붙지 않게 물 뿌리느라 정신없어서, 우리 동네 시장님이 주민센터 직원들까지 불러서 소를 들고 날랐대. 그뿐인 줄 아냐? 겁나서 못 오겠다는 수의사 대신, 금산군에서 다른 수의사를 수배해 모셔온 게 시장님이야. 수의사 선생님이 와서 다행히 송아지가 태어났고 어미 소도 무사해. 송아지 태어났을 때, 시장님은 일손이 필요한 다른 곳에 계셨지만, 시장님 비서가 수의사 선생님을 직접 안내해서 왔고, 계속 거기 머무르면서 소방관님들하고 수의사 선생님 필요한 걸 챙겼대. 이렇게 시민의 어려움 해결하는 데 충실한 게 우리 동네 시장님이야. 니들이 사는 동네 시장님은 다 이분보다 훌륭해서 비아냥거리는 거지?
“... 너보고 훌륭하단다.”
“... 나도 보고 있어.”
- ... 우리 동네 시장님은 위의 사진처럼 불똥을 맞으며 직접 소 나르다가 머리까지 탔다고 하더라. 우리 엄마가 미안하고 고마워서 어쩔 줄 몰라 했는데, ‘시장이 별겁니까? 시민들 도움 필요할 때 부응하는 사람이죠, 뭐.’ 하고 웃으며 가셨대. 나도 이날 집에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얼마나 상황이 급했으면 우리 아빠, 엄마가 송아지 이름을 ‘구사일생’을 줄여서 ‘구일이’라고 지었겠냐?
“... 구사일생의 구일이란다.”
“... 그 정도까지는 솔직히 아니었는데.”
“... 그러게.”
- 나도 그 기사 찾아봤는데, 별 거지 같은 것들이 기자랍시고 자기들 쓰고 싶은 말만 썼더라. 팩트를 제대로 전하지 못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딴 기사를 쓰는 기자나 그것만 보고 비아냥거리는 니들이나 똑같은 ‘찌질이’들이야.
“... 이건 좀 과격한데?”
“... 많이 열 받아서 그랬겠지.”
영배와 도훈이 ‘과격’하다고 한 건, 글의 마지막 부분.
- 어쨌든, 니들은 계속 그렇게 우리 시장님과 직원분들이 또 어디선가 도움이 필요한 시민의 ‘소를 나르고’ 있든지 말든지, 그렇게 떼로 몰려다니며 전혀 사실과 다른 일에다 비아냥거리는 댓글이나 싸지르고 개떡 같은 기사나 퍼 나르며 낄낄거리고 다녀라. 이 한심한 찌질이들아.
글 밑에는 퍼간다는 댓글이 꽤 달려 있었다.
“... 조회수가··· 마, 많네?”
“그러게.”
도훈이 핸드폰을 꺼내 공식 SNS 계정에 접속했다.
“... 누가 여기에 이 글을 링크 걸어놨어.”
“흠. 어제저녁이네.”
블로그 글이 올라온 건 어제 낮, 도훈의 SNS 계정에 링크가 걸린 건 어제저녁이었다.
“댓글 흐름이 좀 달라졌는데?”
“그러게.”
그렇게 도훈과 영배가 댓글을 살피고 있는데 누가 새로운 글의 링크를 걸었다.
“... 이건 또 뭐야?”
“가보면 되지.”
SNS에 별다른 재미를 못 느끼는 두 사람이 어느새 핸드폰 안으로 뛰어들 정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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