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뜬금없는 시비 - 2.
12월 세 번째 토요일 오후 늦은 시간, 순심이를 안은 도훈은 진주의 집에 들어서고 있었다.
“어서 와.”
“웬일이야, 갑자기?”
“준수가 고기 먹고 싶다고 해서. 준수야! 삼촌 왔어.”
진주가 부르자 제 방에서 준수가 쪼르르 달려 나왔다.
“삼촌!”
“오냐.”
“순심이.”
“... 오냐.”
도훈 앞에 와 선 준수는 팔을 활짝 벌리고 순심이를 찾았고, 도훈에게 안긴 순심이도 준수를 향해 살랑살랑 꼬리를 쳤다.
준수가 순심이를 정말 예뻐하고 순심이도 준수를 잘 따른다는 걸 아는 도훈이었지만, 이럴 때는 섭섭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방에 가서 놀고 있어. 아직 시간 좀 있으니까.”
“응!”
순심이를 안은 준수가 냉큼 제 방으로 사라졌고, 쓰게 웃은 도훈이 안으로 들어섰다.
소파에 앉은 도훈에게 진주가 새로 내린 커피를 가져다줬다.
“오, 향 좋은데?”
“선물 받은 원두야. 비싼 거라고 하더라.”
“종류가 뭔데?”
“몰라. 듣긴 했는데 잊어버렸어.”
“네가 그러면 그렇지.”
원래도 도훈 못지않게 털털한 성격이었던 진주는 학원 원장이 된 이후에는 그런 면이 좀 더 심해졌다.
“야, 나 뭣 좀 물어보자.”
“물어봐.”
“너 말이야.”
“응.”
“저번에 산불 났을 때 있잖아.”
“... 뭔데 그래?”
진주답지 않게 질문에 뜸을 들이기에 도훈이 물었고, 진주가 말을 이었다.
“그때 정말 소 날랐어?”
“뭐?”
“소를 들어서 옮겼냐고.”
“... 응.”
“... 산불이 났는데 소를 나르고 있었다고? 진짜로?”
“산통을 오래 해서 지친 암소였지. 그 암소가 누워있는 축사 바로 옆에 불난 야산이 있었지. 점점 불은 축사 쪽으로 번져오는 상황이었고.”
“아, 그런 거였어?”
“... 어. 갑자기 그건 왜 물어?”
도훈이 묻자 진주가 미간을 찌푸리고 반문했다.
“너 요즘도 SNS 잘 안 하니?”
“그렇지. 난 별 재미를 못 느끼겠던데.”
“하기야 그건 나도 그런데···. 아무튼, 너 요즘에 온라인에 소나 나른다는 얘기가 돈다는 거 알아?”
“아니. 너한테 처음 들었다.”
도훈의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에 진주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쯧쯧. 아주 유행하거나 하는 건 아닌데, 일부 사이트 이용하는 사람들이 쓴다는 것 같더라.”
“무슨 뜻인데?”
“무척 긴급한 상황에서 딴청 피우거나, 중요한 일은 따로 있는데 엉뚱한 짓 하는 그런 뉘앙스라더라.”
도훈이 얘가 뭔 황당한 소리를 하고 있냐는 표정으로 진주를 바라보다 뒤늦게 뭔가를 깨달았다.
“... 설마, 너 지금 그 말이 날 지칭한다는 거냐?”
“설마가 아니라 너에 관한 기사에 그런 비판이 있더라고.”
“기사?”
“응. 이 동네 인터넷 뉴스라던데?”
“......”
뭔가 감을 잡은 도훈이 스마트폰을 꺼내 ‘CH 신문’을 검색해 사이트를 찾아 들어갔다.
“... 헐?”
며칠 전, 공보팀장과 얘기했던 다음 날 공보팀이 CH 신문에 도훈의 개인전 유감을 전달했던 건 이미 확인했다.
그런데 그에 대한 특별한 반응이 없다는 얘기만 들었는데, 그제와 어제 한 건씩 도훈과 관련한 기사가 새로 올라와 있었다.
둘 다 도훈을 비판하는 기사로, 비판 지점은 전과 대동소이했다.
다만, 각각의 기사에 도훈이 현장을 쫓아다니며 혼란을 초래하거나 얼굴을 파는 데 여념이 없어 문제를 일으킨 사례로, 여름에 논 주인에게 뺨을 맞고 몇 대 매질을 당했던 것이나 산불이 났을 때 소방관들은 불이 확산하는 걸 막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도훈은 공무원들을 시켜 ‘소나 나르고 있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뿐 아니라, 시민들 모임을 줄기차게 찾아다니며 자기 얼굴 알리느라 열심이고, 야근과 휴일 근무를 밥 먹듯이 하는데 직원들이 시장 눈치를 보며 괜한 야근을 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
‘... 저번보다 더 작정하고 기사를 썼네.’
‘주민참여’를 독려하는 한 방편으로 이런저런 시민들 모임을 여전히 찾아다니는 건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얼굴이 알려지는 건 몰라도 그걸 목적으로 한 적은 없었다.
게다가 시청 직원 중 도훈, 영배, 두진만큼 야근에 휴일 근무를 많이 하는 사람도 없지만, 도훈은 그럴 때마다 시장실에 틀어박혀 일하거나 공부를 했다.
이따금 당직근무자가 있는 상황실을 찾은 적은 있어도 다른 사무실에 누가 야근하는지 아닌지 확인해 본 적은 전혀 없었다.
‘... 야근 많이 한다고 일 잘하거나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야근에 휴일 근무를 하면서도 도훈 본인은 수당을 받은 적이 없었다.
영배나 두진은 각자가 알아서 하게끔 했지만, 실제 시간보다 훨씬 적은 시청 직원 ‘평균’만큼 정산해 받는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
시장과 비서실에서 그러니 오히려 불필요하게 야근하는 이들이 줄었다는 얘기를 회계팀장에게 들은 적이 있는 도훈이었다.
‘... 쩝.’
도훈이 개인용 핸드폰을 내려놓고 업무용 핸드폰으로 SNS 계정에 들어갔다.
요즘 새로 게시한 글은 없었고, 산불을 끈 직후 올린 소방관들의 활약으로 큰 피해 없이 산불을 진화할 수 있었다는 내용의 글이 마지막.
그런데, 그 글 밑에 진주가 말한 ‘소나 나르고 있었겠지.’라는 댓글이 열 개 조금 안 되게 달려 있었다.
“넌 이 기사 봤냐?”
“미쳤냐? 내가 그런 기사나 보고 있게.”
“그럼 어떻게 알았어?”
“학원 다니는 중딩 녀석 하나가 알려주더라. 네가 내 친구인 거 아는 녀석이거든. ‘선생님 친구, 저 자주 가는 사이트에서 완전 X신 취급당하고 있어요.’라고 하더라.”
“......”
“내가 그 녀석한테 너 그런 사람 아니라고, 뭘 제대로 모르면서 사람 비난하거나 놀리는 거 정말 나쁘고 위험한 거라고 한 마디 해주긴 했다만···.”
“... 애들이니까···.”
“그래. 그 녀석 자주 가는 사이트가 그 문제의 무슨 베스튼가 하는 거기야.”
진지하게 말하는 진주에게 도훈이 피식 웃고는 답했다.
“거기에서 나온 비난치고는 수위가 좀 약한데.”
“... 지금 그런 소리 하고 있을 때냐? 대응해야 하지 않아?”
“... 1차 대응은 이미 했지.”
“했다고?”
“응. 며칠 전에 CH 신문에 첫 번째 기사가 올라간 직후에.”
“... 대응이 약한가 보네. 또 비난 기사가 올라온 걸 보면.”
“... 쩝.”
도훈이 입맛을 다셨다.
사실에 근거한 비판이라면 귀담아들을 일이고, 그렇지 않은 비난이라면 흘려들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었다.
기사나 댓글에 일희일비하는 성격도 아니고, 이런 종류의 일은 경험한 적이 없지만 ‘잘못 건드리면 덧나는 상처 같은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이트에서 놀림감이 되고 있다는 것 이전에, ‘유감 표명’을 했음에도 문제의 언론사와 기자가 이런 식으로 계속 기사를 쓴다는 건 진주의 말처럼 대응이 충분치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하아, 이런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너보다 더 심하게 당하는 사람들은 신경 쓰고 싶어서 쓰겠니?”
“......”
진주의 추궁에 도훈이 대꾸를 못 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위이잉.
“... 안 오고 왜 전화야?”
- 어. 가야지. 곧 갈 건데···.
“... 그런데 뭐?”
영배가 우물쭈물하다가 슬그머니 말을 이었다.
- 너 혹시 SNS에 댓글 달린 거 봤냐?
“... 응. 조금 전에.”
- ... 그거 가만히 있어도 괜찮겠냐? 당장에 뭐든 해야 하는 거 아니냐?
“......”
- 아니, 그거 비판도 아니고 비난도 아닌 게··· 비아냥이라고 해야 하나? 네가 뭔 잘못을 했다고 그런 일을 당해?
“......”
영배의 진지한 말에 도훈이 말문을 잃었다.
마주 앉아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절친과 전화기 너머에서 아주 우려스러운 목소리를 보내는 또 다른 절친에게 도훈은 한참이나 대꾸를 못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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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점심시간, 대흥시청 시장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돌아온 도훈이 책상 위에 업무용, 개인용 두 핸드폰을 나란히 늘어놓고 보고 있었다.
- 난데, 이거 이대로 놔둘 거야? 사실이 아닌 건 바로잡아 달라고 해야 하지 않아? (도연)
- 시장님. 우리 정치부에서 여전히 시장님께 관심 두고 있습니다. 쓸데없는 논란도 잠재울 겸 인터뷰 어떠십니까? 아, 저 차승범입니다. (원흉)
- 시장님, 괜찮으시죠? 요새 도는 헛소리들 신경 쓰지 마세요. 도청에서 그거 믿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파이팅! (도청 민 과장)
- 허허허. 김 시장, 드디어 유명인의 반열에 들어섰네요. (반갑지 않은)
걱정이 돼서 보낸 게 분명한 문자 중 도훈의 가장 큰 실소를 자아낸 건 다름 아닌 아버지가 보낸 문자였다.
- 요즘 네가 어디선가 인기 폭발이라며? 자만하지 마라. (아버지)
SNS를 일절 하지 않는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요즘 상황을 ‘비유’한 말을 들었는데 그걸 곧이곧대로 알아들으신 모양이었다.
“... 다행히 인기 폭발까지는 아닙니다, 아버지.”
도훈의 공식 SNS 계정의 댓글 중 ‘소나 나르고 있었겠지.’라는 내용의 글은 곧 100개를 돌파할 예정이었다.
공보팀을 통해 문제의 CH 신문에 기사에 대해 항의하고 사실관계를 바로잡아 달라고 요청한 게 월요일.
도훈은 대응 수위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비서실 직원들과 공보팀장이 빨리 대응해야 한다고 말해 그에 응했다.
그런데 공보팀장에게 전해 듣기로는 CH 신문 쪽의 반응이 한마디로 ‘심드렁’이라나?
-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이라고나 할까요? 이 사람들이 완전히 작정하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시장님, 아무래도 더 강경하게 대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제 오전 공보팀장의 울분에 찬 보고를 받고도 아직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은 건, 주변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화를 내지만 정작 도훈 본인은 별다른 ‘느낌’이 없어서였다.
‘소나 나르고 있었겠지.’, 혹은 ‘소나 나르고 있었다며?’라는 말을 온라인이 아닌 현실 생활 중에 마주친 사람이 했더라면 좀 생각이 달랐겠지만, 온라인 SNS 계정이 어떻든지 간에 도훈의 일상생활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평소와 똑같이 출근했고, 똑같이 일했고, 똑같이 야근하고 퇴근하는 그런 생활.
그 와중에 마주치는 낯익은 시청 직원이든 낯선 시민이든, 대흥시 사람 중 도훈에게 그 정신없는 와중에 소나 나르는 한가한 짓을 하고 있었냐고 비난하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팩트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그렇게 비아냥거리지 않는데, 적어도 대흥시 사람은 전혀 그런 비아냥에 호응하지 않는 것 같은데 굳이···.’
시장 임기가 끝나고 다시 재선에 도전한다거나 혹은 다른 선거에 임하겠다는 전망이 있다면 모르겠으나 현재로써는 전혀, 앞으로도 99.9% 이상 그럴 마음이 없을 것 같은 도훈.
따라서 이유 없는 비아냥과 비난은 잠시 참으면 잠잠해질 테니 무시하면 그만이라고 여기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 원인’을 차단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에는 좀 수긍이 가기도 했다.
“그냥 확 변호사에게 맡기고 잊어버려?”
주변 사람 중 가장 강력한 대응을 주장한 건 영배로,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을 맡기고 우리는 일에나 전념하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비서실 직원 모두가 이에 동의했는데, 이는 공보팀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CH 신문 측이 전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가 아니어서였다.
“이거 참···. 별것도 아닌 일로 고민이네.”
도훈이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개인용 핸드폰이 울렸다.
“어, 나다.”
- 통화 괜찮아, 오빠?
“응. 말해.”
- 저기 말이야···.
“저기 뭐?”
- 아빠도 요새 오빠에 관해 SNS에서 오가는 얘기 아셔?
“모르실걸? 왜?”
- 확실해?
“확실하진 않은데, 그럴 거라고 추측되게끔 문자가 왔었거든.
- .......
잠시 말을 끊었던 도연이가 한숨을 푹 내쉬고 말을 이었다.
- 오빠. 아빠가 아무래도 아셨나 봐. 좀 전에 나한테 전화해서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서 물어보시긴 했는데, 혹시 오빠에 관해 안 좋은 얘기가 인터넷에 떠도냐는 얘기였어.
“... 뭐라고 답했냐?”
- 검색만 해봐도 나오는 걸 아니라고 할 수는 없잖아. 시장쯤 되는 사람한테는 헛소문 들러붙는 게 흔한 일이라고 했지. 금방 지나갈 거라고.
“... 반응이 어떠시디?”
- 그러냐 하고 알았다고 끊으셨는데···. 신경이 쓰이네.
“......”
말문을 잃었던 도훈은 도연과 얼마 더 대화한 뒤 전화를 끊었다.
“휴우.”
통화를 마친 도훈의 미간이 잔뜩 일그러졌다.
도훈의 기분은 통화하기 이전과 비교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자신이야 당사자니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게 있다지만, 아버지는 전혀 그렇지 않았으니까.
한동안 잔뜩 굳어진 얼굴로 생각하던 도훈이 영배에게 문자를 보냈다.
- 형 뜻대로 변호사 선임합시다. 맡길게요.
핸드폰을 내려놓은 도훈이 의자를 돌려 창을 바라봤다.
유리창 밖 차가운 12월 공기처럼, 도훈의 눈빛도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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