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96화 (97/279)

96. 뜬금없는 시비 - 1.

밤 1시경, 산불이 났던 야산.

큰불은 모두 꺼졌고 소방대가 먼저 소방호스로 물을 뿌린 다음, 금선면 주민센터 직원들이 소방대원의 통제를 받아 잔불 정리를 하고 있었다.

치이익!

“잔불 조심하세요! 꼼꼼하게 확인해야 합니다!”

“네!”

인솔하는 소방관에 이어 도훈이 소리쳤다.

“천천히 합시다!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조심해서 천천히요!”

“알겠습니다.”

직원들의 대열 한가운데에 선 도훈은 등에 물통을 메고 분사기로 불이 보이는 곳마다 꼼꼼히 물을 뿌리고 있었다.

야간인데도 잔불 정리에 나선 것은 일단 큰불이 모두 꺼졌고, 야산의 경사가 완만하며 조명을 충분히 밝힐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방대, 의용소방대, 주민센터 직원을 2개 조로 나누어 교대로 휴식과 야식을 먹게 하며 이렇게 잔불 정리를 하고 있었다.

“시장님, 여기요.”

“네.”

치이익.

도훈이 물을 뿌리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띠리리리.

“네. 김도훈입니다.”

- 저, 조 비섭니다. 송아지 방금 태어났습니다!

“아, 그래요?”

- 네. 선생님 말씀이 어미 소도 송아지도 괜찮을 것 같답니다.

“휴우, 다행입니다.”

두진의 인맥은 역시 대단하달까?

대흥시가 아니라 금산군에 사는 사람이어서 도착하기까지 좀 시간이 걸렸지만, 두진의 부탁을 받은 수의사가 밤길을 뚫고 달려왔다.

영배가 수의사와 합류해 길을 안내했고, 도로에 세워놓은 차에서 의료장비와 약품을 나르는 등의 수고를 했다.

수의사가 수배된 후 도훈은 농가를 나왔고, 영배에게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이제 무사히 송아지가 태어난 모양이었다.

다행히, 농가에도 별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불똥이 튀어 짚더미에 불이 붙고 축사 한쪽 벽을 타고 불길이 솟아오르는 아찔한 순간이 있긴 했지만, 소방관들의 빠른 조치로 축사 벽이 좀 그슬린 정도로 끝났다.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도훈은 안전센터장과 함께 있었지만, 나서지 않고 묵묵히 안전센터장과 현장 소방관의 무전을 듣기만 했다.

이 화재진압의 지휘는 도훈이 아닌 안전센터장이 하는 게 맞으니까.

“조 비서관이 수의사 선생님 마지막까지 잘 챙겨드리세요.”

- 알겠습니다.

“그쪽도 잔불 정리하고 있습니까?”

- 네. 소방관들이 하고 있습니다. 이쪽은 어두워서 위험할 수도 있다고, 안전센터장님이 대원들만 나서라고 하셨답니다.

“알겠습니다. 거기 있으면서 지원 필요하거나 다른 요청이 있으면 즉시 조치하세요.”

- 네.

도훈이 전화 통화하는 잠깐 사이에도, 잔불 정리를 하는 직원들의 대열은 한참 나가 있었다.

얼른 대열로 돌아가는 도훈의 귀에 소방대원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 정도면 됐습니다. 나머지는 소방관과 의용소방대에 맡기고 직원분들은 내려가셔도 됩니다.”

“얼마 안 남았는데 함께 빨리하시죠?”

“아, 여기서부터는 소화 호스로 방수하려고요. 그래야 저 반대쪽으로 물이 흘러내릴 것 같습니다. 저쪽은 좀 가파르니까 사람이 직접 하기 뭐하잖습니까.”

“아, 예. 알겠습니다.”

주민센터 간부와 소방관의 대화를 들은 도훈은 더 나아가지 않고 기다렸다가 직원들과 함께 야산에서 내려왔다.

도로까지 나와보니 먼저 잔불 정리에 나섰다가 물러난 이들은 야식을 먹고 쉬는 중이었다.

“오셨습니까.”

“아, 센터장님.”

금선면 주민센터장과 안전센터장이 도훈을 맞이했다.

“소방차가 줄어든 것 같습니다?”

“네. 대전과 금산에서 나온 지원인력은 복귀했습니다. 큰불은 다 꺼졌으니까요.”

“벌써요? 야식 먹을 시간도 없었을 것 같은데요.”

도훈의 말에 주민센터장이 웃으며 답했다.

“한 일이 별로 없는데 밥까지 얻어먹고 가기는 염치없다고 극구 그냥 돌아가더군요. 사실, 얼른 돌아가 출동대기 해야 한다고 하니까 붙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그러네요.”

“하하, 신경 쓰지 마세요. 저희 일이 다 그런 거죠, 뭐.”

안전센터장의 말에 도훈과 주민센터장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도훈이 질문을 던졌다.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건데, 대원 중에 다친 사람 없죠?”

“네. 없습니다.”

“이 정도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도 되겠죠?”

“그럼요. 천만다행이죠. 3년 전에 산불 났던 것에 비하면 이건 산불이라고 하기도 뭐한 정돕니다. 뭐, 아예 안 난 것보다는 못 하겠지만요.”

3년 전 봄, 대흥시 동쪽 금산군과의 경계 지점에서 산불이 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제법 높고 큰 규모의 산이 반 넘게 불탔고, 대흥시와 금산군뿐만 아니라 인근의 소방대가 총출동했으며, 소방헬기의 지원까지 받았으면서도 완전 진화까지 거의 하루가 걸렸다.

당시 다행히도 바람이 세게 불지 않아서 그 정도로 끝났지 오늘처럼 바람이 불었더라면 피해 규모는 더 컸을 터.

“그때 대형 산불을 겪어서 소방대, 의용대, 시청까지 연습이 좀 됐나 봅니다. 오늘 보니 손발이 잘 맞았습니다.”

“그렇게 느끼셨다면 다행이고요. 안전센터장님이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이게 제 일인걸요. 에고, 그래도 이렇게 한고비 넘기고 나니까 시장님이 소방서 개원 앞당기려고 노력하셨던 게 정말 아쉽습니다.”

“... 네.”

현재 대흥 안전센터의 규모와 인력은 다른 안전센터보다 분명 크고 많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는 걸 오늘도 확인했다.

막말로, 오늘은 적극 진화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기에 망정이지 번지는 불을 결사적으로 막아야 했더라면, 소방대는 분명 그에 실패했을 테고 지금 이렇게 속 편한 대화를 하고 있지도 못할 터.

‘... 다시 한 번 시도를 해봐?’

도훈이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의용소방대 여성대원이 도훈을 불렀다.

“시장님도 와서 야식 드세요.”

“아, 예.”

도훈이 안전센터장, 주민센터장에게 묵례하고 걸음을 옮기는데, 여성대원이 불빛에 드러난 도훈의 머리를 보고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어머! 시장님, 머리 탔어요.”

“네?”

“여기 불똥이 튀었나 봐요. 좀 많이 그을렸는데요? 안 뜨거우셨어요?”

“... 전혀 몰랐네요.”

“어떻게 해요!”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이발할 때 됐는데요, 뭐. 좀 짧게 자르면 되겠죠.”

털털하게 웃으며 답한 도훈이 걸음을 옮겼다.

산에서 내려온 직원들이 의용소방대 여성대원들이 준비한 국수를 배식받고 있었다.

늦은 시각, 긴급 소집되어 위험할 수도 있는 일에 동원됐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표정이 밝은 편이었다.

분명, 피해가 크지 않은 때문이리라.

‘... 정말 다행이야. 이 정도여서···.’

산불에 마침표를 찍었다 생각한 도훈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직원들의 대열로 향했다.

그렇게 끝이 난 줄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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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시장님, 공보팀장이 왔는데요.”

“공보팀장님요?”

“네. 급한 일이랍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정임이 문을 열고 비켜서자 문화체육과 공보팀장이 두진과 함께 들어섰다.

담당 업무가 업무다 보니 항상 웃고 다니는 사람이 굳은 표정을 하고 있어 도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그게··· 좀 안 좋은 기사가 났습니다.”

“안 좋은 기사요?”

“네.”

“뭐에 대해서 말입니까?”

“시장님에 대한 겁니다.”

“저요?”

도훈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했다.

최근에 화재 말고는 별다른 일이 없었고, 언론에 비판받을 정도의 사건도 없었으니까.

“이겁니다, 시장님.”

공보팀장이 출력한 기사를 내밀었고, 종이를 받아든 도훈이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 CH 신문이네요?”

“네.”

CH 신문은 창간된 지 10년이 좀 안 된, 대전과 대흥시, 금산군, 계룡시 등 충남 남부 지방에 배포되는 지역신문이었다.

원래는 주 1회 정도 신문을 인쇄, 배포했었다는데 지금은 종이 신문을 제작하지 않고 인터넷으로만 기사를 유통했다.

도훈이 그 이름을 아는 것은 그런 역사를 알 거나 신문이 영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 신문의 대흥시 담당 기자가 시의원 중 한 사람과 자주 어울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흠.”

기사를 읽어내려가는 도훈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며칠 전 산불이 났던 일에서 시작하고 있지만, 기사의 주된 내용은 도훈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리고 비판하는 지점은, 시장이 어떤 상황에서든 중심을 잡고 차분히 문제에 대처하는 게 아니라 일이 터지면 자꾸 현장에 달려가 자기 얼굴을 파는 데 주력한다는 것이었다.

“사실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교묘하게 섞어서 쓴 기사입니다.”

“... 그러네요.”

기사에는 도훈이 현장을 중시하며 이리저리 시정 일선을 돌아다니지만, 그로 인해 업무 혼선이 발생하기도 하고 담당자가 혼자 해결해도 되는 일이 시장의 개입으로 불필요한 ‘힘’이 들어간다는 등의 주장이 실려 있었다.

지난 산불 때도 상황실에서 차분히 살펴도 될 것을 굳이 현장으로 달려가 직원들을 몰고 다니며 부담스럽게 했다는 내용은, 도훈의 실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 ... 익명을 요구한 한 직원은, 시장이 거의 모든 현장에 빠지지 않고 출몰하기 때문에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도 있는 대수롭지 않은 일도 눈치 보게 된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기사를 다 읽은 도훈이 고개를 들어 질문을 던졌다.

“직원들이 실제로 이렇게 느낄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글쎄요. 시장님이 현장을 중시하고 자주 찾으시는 건 사실입니다만, 담당 부서나 직원의 업무 처리 방식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처리하신 적은 한 번도 없는 것으로 압니다.”

“그랬던가요?”

“네. 여름에 있었던 화학물질 누출 때도 현장에서 긴급한 판단을 하실 필요가 있었기에 그랬던 거 아닙니까? 며칠 전 산불 때는 확인만 하시고 안전센터장의 판단과 지휘를 믿으셨잖습니까.”

“그야 당연히 전문가가 담당할 부분이니까요.”

“아마, 시청 직원 중 잘못하거나 비리를 저지른 직원이 아니라면 기사에 지적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 거의 없을 겁니다.”

“... 흠, 그래도 저로서는 한 번쯤 새겨들을만한 말이긴 합니다.”

도훈의 반응이 예상 밖이었는지 공보팀장이 묘한 표정을 하고 말을 이었다.

“... 저, 그 기사가 제법 많이 읽히고 있는데요.”

“그래요?”

“네. 수도권 인터넷 매체에서 받아 쓴 곳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시장님 비판 기사로는 처음이나 마찬가지잖습니까.”

“흠···.”

“악의적인 목적으로 쓴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겠습니까?”

“... 글쎄요.”

도훈이 곧바로 답을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업무용 핸드폰과 연동된 SNS 계정에도 욕이나 비난 댓글이 심심치 않게 달렸지만, 아무리 수위가 심해도 일절 대응한 적이 없는 도훈이었다.

“꼭 대응해야 합니까?”

도훈이 묻자 공보팀장 대신 두진이 답했다.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팩트’에 근거한 제대로 된 비판이라면 할 말이 없겠지만, 이건 기사의 방향을 미리 설정해 놓고 적당히 ‘비벼서’ 쓴 거니까요.”

“공보팀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네. 저도 최소한 언론사에 유감 표명을 하거나 정정보도 요청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직원들과도 얘기해봤는데,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담당 직원과 팀장이 그렇게 판단했다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알겠습니다. 정정보도 요청은 좀 너무 나간 것 같으니 유감 표명을 하는 선으로 하죠.”

“네. 알겠습니다.”

“대신에 시청 공식 입장이라고 하지 말고, 제 개인적으로 유감이라고 전해주세요. 내용은 방금 얘기했던 수준이면 무난할 것 같습니다.”

“네.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공보팀장이 나가고 도훈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두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 그 양반이 영향을 끼친 걸까요?”

“그러고도 남죠.”

“그러고도 남을 거라는 데는 저도 동의합니다만, 실제로 그랬는지는 모르죠.”

“저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만, 왠지 심하게 의심이 갑니다. 예산안 이후로 조용했잖습니까.”

“... 흠.”

아주 ‘유감스러운’ 표정으로 예산안 통과에 ‘찬성’하던 모 시의원의 얼굴을 떠올린 도훈이 한숨을 내쉬었고, 두진도 끌끌 혀를 차고 비서실로 나갔다.

‘... 뭐, 이 정도로 감정을 풀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 완전히 풀릴 리는 전혀 없겠지만.’

속으로 중얼거린 도훈이 머릿속에서 신문기사를 지우고 다시 서류에 집중했다.

일이 커질 거라는 예상은 전혀 하지 못한 채로.

#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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