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85화 (86/279)

85. 공략 포인트 - 1.

“보니까 말입니다. 농림과의 작년도 예산 미집행률이 제일 높았어요. 그런데, 농림과 예산 항목이 작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이러다 내년에도 똑같은 일이 발생하는 거 아닙니까?”

“그 부분은 작년에 추진하려던 금선면 공원조성 사업이 중단됐던 것 때문입니다. 공원조성팀 예산 중 비중이 컸던 공원 용지 매입을 진행하지 않아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농림과의 다른 사업은 미집행된 사업이 거의 없습니다, 의원님.”

“방학 중 결식아동급식비 지원하기로 한 거 있잖습니까. 안 하던 사업을 시작하는 건 좋은데, 급식 단가를 좀 현실에 맞게 상향해야 한다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애들이 먹는 밥입니다, 이거.”

“송 의원님 지적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새로 시작하는 사업이라 다른 지역의 예를 참고했고 준비과정에서 교육지원청 등과 협의해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올리는데 동의 안 하시는 거예요?”

“좀 더 검토하고 논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작년에 지방세 과, 오납 때문에 민원이 여러 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일은 금액이 적어도 곧바로 행정신뢰도의 저하로 이어집니다. 당연히 그런 일이 재발하면 안 되겠지요. 대책은 마련했습니까?”

“우선 담당 부서장으로서 다시 한 번 업무 실수를 사과드립니다. 당시 과, 오납의 원인은 입력 실수였는데, 이 입력 실수로 인한 부분은 전수 조사를 통해 오류를 수정했고, 이후 복수의 직원이 크로스 체크를 통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은 그 어느 때보다 열띤 질의와 응답이 오가고 있었다.

지켜보는 시민이라곤 없는데도 의원들은 준비한 질문을 연신 던지며 공무원들을 추궁했고, 질문받은 공무원들은 때때로 진땀을 흘리며 성의껏 답하고 있었다.

10시에 개회한 특별위원회는 정오가 살짝 지나서야 정회했다.

“점심을 위해 정회하겠습니다. 오후 2시에 다시 개회하겠습니다.”

땅, 땅, 땅.

의회 부의장이자 특위 위원장인 심남진 의원이 의사봉을 두들겼고,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실을 나서는 공무원들이 한결같이 넥타이 깃을 슬쩍 풀거나 한숨을 토하는 등 긴장을 푸는 모습이었다면, 의원들은 대개 애써 뿌듯함을 감추는 표정이었다.

다만, 평상시 의회 정회 때와 차이가 있다면 의원들 간에 대화가 거의 없다는 것이랄까.

“실장님.”

“아, 의장님.”

느지막하게 회의실을 벗어나던 두진을 안준식이 불렀고, 둘은 함께 회의실을 나서 복도를 걸었다.

“고생 많으십니다.”

“고생은요. 저야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을 뿐인데요. 답변하느라 간부들이 진땀을 뺐죠.”

두런두런 대화하던 두 사람은 시의회 청사 현관이 얼마 남지 않은 실내에서 걸음을 멈췄다.

“시장님은 어떠십니까?”

“... 솔직히 말씀드릴까요?”

“네.”

두진이 살짝 주변을 두리번거려 듣는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작게 속삭였다.

“어제 오후부터 매우 기분이 안 좋으십니다.”

“조정요청안 그때 확인하셨나 보죠?”

“네. 토요일은 쉬고 어제 오후에 나오셨거든요.”

“휴우, 무리도 아니죠.”

예산팀이 정리한 의원들의 예산조정요청안은 오늘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도 보고가 됐다.

차혜진과 서태기가 ‘뭉텅이’로 조정안을 들이밀었다는 걸 말로만 들었던 안준식도 그 서류를 보고 한숨만 나왔다.

전체 요청의 6할 정도가 차혜진, 서태기 두 사람에 의한 것이었으니까.

“시장님이 그 두 분에게 화가 나신 건 맞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다른 의원님들께 아무런 감정이 없는 건 아닐 겁니다.”

“... 네.”

“아마, 다른 의원님들께 더 화가 나셨을지도 모르죠.”

“그러고도 남죠.”

안건 하나씩을 일일이 설명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도훈이 의원들에게 예산 수립의 ‘원칙’을 반복해 설명하고 설득했던 걸 기억하는 안준식은 도훈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차혜진, 서태기 두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의원들은 도훈이 제시한 예산안 수립 방향성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왔으니까.

아무리 초선이고, 예산안을 처음 다뤄보는 것이라 해도 자기 입으로 ‘대체로 공감하고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놓고선, 당원들의 불만과 다른 의원의 돌출행동에 놀라 줏대 없이 뒤따라버린 모양새가 아닌가.

“의장님은 조정요청을 한 건만 하셨던데요.”

“시장님의 예산 수립 방향성에 제일 먼저 동의했던 게 접니다. 그 한 건 말고도 조정이 필요한 게 있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그건 다른 분이 하실 것 같아서요. 실제로 하셨더라고요.”

“네.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두진의 말에 안준식이 쓰게 웃으며 반문했다.

“지금 제 걱정을 해주시는 겁니까?”

“차 의원님이랑 너무 대비될 것 아닙니까?”

“그러라죠, 뭐.”

담담하게 답하는 안준식에게 시선을 고정한 두진은 남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의원들의 눈치가 이상하다는 걸 알고서 두진이 가장 걱정한 것은, 의원 모두가 예산안 문제에서 도훈에게 등을 돌리는 것이었다.

차, 서 두 의원이야 그렇다 치고 장민호 의원도 쉽지 않겠다 여겼다 치더라도, 다른 의원들까지 이렇게 나온 건 솔직히 두진도 무척 불쾌했다.

그나마 의원 중에서 가장 개혁 성향이 뚜렷한 안준식이 혼자서라도 도훈과 뜻을 함께하고 있다는 걸 무척 다행이라 여기는 두진이었다.

솔직히 예산 문제에서, 다시 말해 지역구 유권자에게 제대로 생색낼 수 있는 국면에서, ‘대의’를 앞세우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거 참 일이···.”

안준식이 미간을 찌푸리고 투덜거렸고, 다시 주변을 살핀 두진이 작게 속삭였다.

“좀 기다려 보시죠. 시장님이 위원회 끝나기 전에 뭔가 해결책을 내놓겠다고 하시더라고요.”

“... 해결책이요?”

“네.”

“어떤···?”

“그건 말씀 안 하셨고요. 너무 큰 기대는 말라는 말씀도 하시더군요. 그리고 저를 포함해 오늘 위원회에 출석하는 간부들에게 당부하셨습니다. 부디 진지하게 의원들 설득해 달라고요.”

“... 흐음.”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안준식에게 두진이 한 마디 더했다.

“이건 시장님께서 제게만 슬쩍 해주신 말인데요. 먼저 심 부의장님이 공략 포인트가 될 거라고 하시더군요.”

“... 심 의원님이요?”

“네.”

안준식이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두진 역시 도훈이 해준 말을 그대로 전할 뿐 더 보탤 말이 없었다.

“흐음.”

“... 쩝.”

말을 잇지 못하는 두 사람의 표정이 묘하게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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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대흥시 시의회 청사 대회의실.

특위 개회를 앞둔 대회의실은 어제보다 더 차분했다.

의원들은 서류를 보느라 여념이 없었고, 참석한 시청 간부들 역시 제각기 예상 질문에 대한 답과 자료를 확인하느라 다른 데 신경 쓸 여유가 없는 모습이었다.

의장석에 앉은 심남진 역시 자료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데 의회 사무과 직원 하나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위원장님.”

“네.”

“저기, 기자가 한 명 찾아왔는데, 위원회를 참관하고 싶답니다.”

“기자요?”

“네. ‘우리 뉴스’ 기자랍니다.”

“인터넷 신문요?”

“네.”

인터넷 신문이라지만, 역사가 오래됐고 가장 지명도 있는 인터넷 신문이기도 해서 심남진은 그냥 허락하는 게 아니라 직접 기자를 만나러 걸음을 옮겼다.

“우리 뉴스 기자시라고요?”

“네. 왕민상이라고 합니다.”

“아, 예. 심남진입니다.”

명함을 교환한 심남진은 상대의 명함에 ‘시민 기자’가 아닌 ‘기자’라고 적힌 걸 놓치지 않았다.

“우리 뉴스는 시민 기자 제도로 유명한데, 왕 기자님은 정식 기자이신가 봅니다?”

“아,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 위원회는 왜···?”

처음 보는 기자가 나타났기에 자연스레 던진 질문이었고, 기자가 수더분하게 웃으며 답했다.

“제가 예전에 김도훈 시장님 인터뷰하고 특종 했었거든요. 혹시 기억하십니까? 선거 직후에 나온 건데, 김 시장님이 전임 시장님의 막말에 열 받아서 출마를 결심했다는 기사요.”

“아, 예. 기억합니다. 그 기사 쓰신 기자님이세요?”

“하하, 네. 그 기사 쓰고 반응이 좋아서 대흥시라면 왠지 느낌이 좋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김 시장님이 예산안 수립하면서 새로운 철학을 담았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어서요.”

움찔.

‘시장의 새로운 철학’이란 말에 심남진이 움찔했다.

그게 뭔지는 여러 차례 들었고, 자신도 크게 공감했으나 정작 예산안이 제출된 후 도훈의 뒤통수를 때리는 데 뒤늦게라도 동참했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존재감이 없는 심남진이라고 해도 눈앞의 기자에게 ‘동요’를 들킬 정도로 허술하지는 않았다.

잠시 굳어진 얼굴을 얼른 펴며 심남진이 미소를 지었다.

“아, 그거에 관심이 가신 겁니까?”

“네. 그래서 좀 방청을 하려고요. 괜찮겠죠, 위원장님?”

“물론이죠. 하하.”

“고맙습니다.”

“천만에요.”

기자를 여유 있게 상대하고 돌아선 심남진이 얼굴을 굳혔다.

어제 시작한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오늘부터 본격적인 예산안 조정 논의에 들어간다.

의원들이 요청한 조정안들을 확인하며 시 집행부의 견해를 듣게 될 터.

때문에, 어제와 오늘 오전까지는 도훈 대신 비서실장이 참석했지만, 오후부터 도훈이 직접 위원회에 출석할 예정이었다.

‘... 지금 분위기로는···.’

의장석으로 돌아온 심남진이 심각해진 표정으로 속으로 중얼거렸다.

도훈의 시정 철학은 여러 면에서 개혁적이고 실용적이지만, 굳이 표어처럼 말해보자면 ‘시민의 눈높이에 맞춘 삶을 행복하게 변화시키는 행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시에서 제출한 예산안에는 전적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그런 도훈의 철학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파격까지는 아니더라도 전과는 분명 ‘결’이 다른 부분이 많았기에, 당원들의 이견이나 불만이 있었던 것.

그리고 오늘, 아무래도 시장에게 호감이 있는 게 분명한 기자가 방청하는 상황에서 일부 ‘마음먹고’ 일을 벌인 의원과 나머지 ‘등 떠밀린’ 의원들은 시장의 그런 철학을 ‘난도질’하게 될 터.

그것도 심남진 자신이 위원장으로 사회를 보는 상태에서 말이다.

‘... 이거 괜히 허락했나? 아니야. 막을 근거도 없잖아.’

자신도 공감했던 예산안 수립 방향성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시청, 시의회 관계자 치고 도훈이 말을 잘한다는 것, 그것도 아주아주 잘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자신이 사는 곳이라 해도 시 행정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요즘 사람들이 도훈을 만나 이야기한 뒤 괜히 ‘주민참여’를 실천하는 게 아니라는 걸 심남진도 안다.

그런 도훈을 상대로 예산안을 두고 ‘철학적 논쟁’이라도 벌어진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지금껏 시의회에서 도훈을 상대로 ‘논쟁’을 시도해 이겨본 적이 없는 의원들인데 말이다.

- 개혁을 실천하려는 시장과 그걸 가로막는 의회.

인터넷 신문에 그런 제목의 기사가 올라오고 자신이 위원장석에 앉은 사진까지 곁들어진 화면을 상상한 심남진의 표정이 심각한 것으로 변했다.

‘좋은 일로 이름을 알리긴 어려워도 오명을 뒤집어쓰는 건 순식간이라 했던가?’

심남진은 인터넷 신문에 기사가 나가고, 엄청난 악플 공세에 시달리는 자신을 상상하고 등에 소름이 돋았다.

자신이 존재감 없음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걸 그런 식으로 극복하고 싶은 마음은 절대 없었으니까.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실을 살펴보던 심남진의 눈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회의를 준비하는 안준식이 들어왔다.

‘... 수정 요청을 거의 하지 않은 건 안 의장뿐인데···. 내가 위원장만 아니더라도···.’

사회를 맡는 위원장이 아니라면 눈치 봐 가며 질문을 조절할 수도 있지만, 불행히도 심남진은 위원장석에 앉아 있었다.

‘... 하필 이럴···. 가만···.’

심남진의 머릿속을 스치는 어떤 생각.

그걸 실천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를 상상해가며 심남진이 득실을 따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하는 심남진에게 안준식이 시선을 보냈다.

‘... 심 의원을 도대체 어떻게 공략할 생각이지?’

안준식이 궁금증 가득한 눈빛을 보내는 것도 전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심남진은 ‘계산’에 열중해 있었다.

그렇게 도훈의 ‘공략’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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