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예산 시즌 - 1.
11월 셋째 주 수요일, 대흥시 간부회의.
“시설 점검 결과는 어떻습니까?”
“큰 문제가 발견된 곳은 없습니다. 시정 해야 하는 사항이 몇 개 있었습니다만, 고의에 의한 것이 아닌 실수였습니다. 다만, 참여한 시민감사위원이 보육원 시설과 집기 일부가 너무 낡은 걸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아, 그래요?”
“네. 건물 수리가 필요한 부분과 세탁기가 낡고 고장이 잦다는 얘기를 듣고 그런 지적을 했습니다. 그 부분은 내년 예산에 반영했다고 설명해드렸습니다.”
“알겠습니다.”
사회복지실 주도로 관내 복지시설 점검이 있었다.
원래는 좀 더 일찍 실시해야 했는데, 시민 참여의 하나로 시민감사위원이 동참하느라 좀 지체됐다.
대흥시에는 공립은 아니지만, 예산 지원을 받는 보육원이 있었고, 마을 경로당이나 어린이집 같은 곳들도 점검 대상에 포함됐다.
“오향마을도 특별 점검 대상으로 포함됐죠?”
“네. 거긴 저희 사회복지실에서 담당하지 않고 TF 팀에서 주도하고 있습니다.”
“아, 그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도훈의 옆에 앉았던 전경완이 나섰다.
전경완이 오향마을 문제를 전담하기로 한 뒤 이미 TF 팀도 만들어진 상태.
신경 쓸 일이 제일 많은 사회복지실 팀장 하나가 TF 팀장이 됐고 각 부서에서 선별된 직원 셋까지 네 명으로 이루어진 작은 TF 팀이 만들어졌다.
팀장이 있다지만, 부시장이 최종 보고를 받고 논의과정에도 참여할 수 있게 해 부시장 직할이나 다름없었다.
팀장이 이 간부회의에 참여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부시장이 발언했다.
“일단 오향마을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소방서, 파출소와 합동으로 점검하기로 했습니다. 연탄을 때는 곳이니만큼 가스 누출 점검도 하기로 했고, 혹여 보수해야 할 곳이 있다면 저렴하게 공사를 해줄 수 있다는 자원봉사자들도 확보했습니다. 또, OO 대학교 건축학과의 지원을 받아 다섯 채 정도 안전진단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상황이 나쁜 집부터 실시할 예정입니다.”
“... 소유주 쪽은 어떻습니까?”
“협조를 요청하는 서신을 보냈고, 팀장이 전화 통화를 한 번씩은 했는데 반응은 시큰둥하답니다.”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오향마을 일을 부시장에게 넘긴 뒤, 도훈은 보고서를 전달받을 뿐 TF 팀의 업무에 개입하지 않았다.
평상시 업무에서도 담당 직원, 간부 혹은 비서실장인 두진의 의견에 좀 더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조상님이 ‘힘’을 쓰는 경우는 최대한 자제하는 대신, 조상님과 업무를 놓고 토론하는 시간을 매일 퇴근한 뒤 잠깐이라도 가졌다.
조상님이 계속 ‘활약’하실 수 있게 하는 대신, 그 방향을 바꿨다고나 할까.
“오늘은 이걸로 회의 끝내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도훈이 걸음을 옮기려다 뒤늦게 떠오른 걸 입에 올렸다.
“아, 시의회 의장님이 다음 주 예산안 심사 때문에 의원들이 직원이나 간부들에게 자주 연락하거나 부를 수도 있다고, 미리 양해의 말을 전해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훈이 안준식의 말을 전했다.
시 집행부의 내년도 예산안이 월요일에 의회에 제출되어 심사를 앞둔 상태.
아무리 시장과 의장의 관계가 좋아도 예산은 민감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
또한, 시장과 의장의 관계가 어떻든, 의원 개인은 자기 지역구가 관련된 사업 혹은 공약한 사업을 챙기는 게 당연했다.
시의원들이야 자기 지역구 관련한 사업이나 예산을 최대한 늘리고 싶겠지만, 시청에서는 최대한 고르게 효율적으로 예산을 사용할 계획을 세웠다.
분명, 온갖 질의와 요구가 쏟아질 터.
“괜찮으려나 모르겠습니다.”
“뭐가 말입니까?”
시장실로 걸으며 두진이 하는 말에 도훈이 질문을 던졌다.
“이번이 시장님 표 첫 예산이잖습니까. 지금까지와 기조도 좀 다르고 항목도 차이가 있는데 그걸 의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무조건 딴죽만 걸지는 않겠죠. 의장님과는 전부터 몇 번씩이나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고, 의회에서도 거듭 제 예산 수립 기본 방침을 밝혔으니까요.”
“의장님과는 평상시에도 얘기가 잘 통하지만, 꼭 그렇지 않은 분이 여당에도 야당에도 있잖습니까. 그리고 의원들에게는 시장님 발언보다 실제 예산안이 더 신경 쓰일 게 뻔하잖습니까.”
“하하, 그렇죠.”
“평소 비협조적인 분만 합쳐도 이미 정족수의 반입니다.”
양상택의 사퇴 이후, 시의회 구성은 총 6인.
어느 안건을 표결할 때 찬반이 동수면 부결이 되니, 전원이 출석할 경우 4인 이상이 찬성해야 예산안이 통과된다.
대자당의 차혜진 의원, 민의당의 서태기, 장민호 의원 이렇게 셋은 도훈을 좀처럼 곱게 보질 않으니 예산안 통과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건 당연했다.
평범한 예산이라도 그럴 진데, 내년 예산은 도훈이 시장이 되고 처음으로 짠 것이었다.
당연히 도훈의 시정 철학이 반영될 수밖에.
물론, 전폭적인 변화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부분부분 도훈이 세심하게 살피고 조정한 부분이 많았다.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앞으로 잘 의논하며 설득할 수밖에요.”
“그렇긴 합니다만···. 예산안은 보통 사안이 아니라서요.”
“미리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예산안 고민하면서 예상했던 부분이잖습니까.”
“네.”
내년 예산안을 작성하면서 도훈이 우선 집중한 것은 두 가지.
복지 관련 예산을 소폭 증액하고 내실을 기하거나 범위를 확장하는 것과 일회성 혹은 소모성 예산을 축소한 게 그것이었다.
예를 들어, 복지 부분은 방학 동안 급식이 없으면 끼니를 거를 우려가 있는 아이들을 위한 식사지원책을 마련한 것이나 중학교 신입생 교복 비용 지원 등이 그것이었다.
소모성 예산의 대표적인 것이라면 연말에 보도블록 교체하는 걸 들 수 있는데, 도훈은 예산안 수립 과정에서 각 부서에서 제기한 소요와 실제 상황을 일일이 확인해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을 모두 감액 혹은 삭제토록 했다.
“지금도 많이 아쉬운데···.”
“그렇죠.”
비서실로 들어서며 두진이 투덜거렸고, 도훈이 쓰게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기초자치단체, 그것도 규모가 작고 특별한 세수가 없는 대흥시이니 전체 예산 중 자체적으로 조달하는 부분은 적을 수밖에 없었다.
중앙정부 지원금 의존도가 높은 데다가 인건비 등 경직성 예산의 비중도 컸다.
당연히, 예산을 자율적으로 수립하고 집행하는 게 쉽지 않을 수밖에.
“다녀오셨습니까.”
“네. 별일 없었죠?”
도훈과 두진이 비서실에 들어서자 영배와 정임이 두 사람을 맞이했다.
도훈이 별다른 뜻 없이 꺼낸 말에 영배가 쓰게 웃고는 입을 열었다.
“시의회 의장님께서 잠시 뵀으면 한다고 연락을 하셨었습니다.”
“무슨 일로요?”
“예산안 관련한 거라고 하시더군요. 의장님이 하실 말씀이 있어서가 아니라 의원들 반응을 전하시겠다고요.”
“... 심각하시던가요?”
“심각까지는 모르겠는데, 의원들 반응이 예상보다 격한 것 같다고는 하셨습니다.”
“... 격하다···.”
“휴우.”
도훈이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고, 두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의장 비서실에 전화해서 점심 같이 드시는 건 어떠냐고 물어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도훈에게 답한 영배가 전화기를 들었고, 도훈은 시장실로 들어갔다.
자기 책상에 앉으며 미간을 찌푸린 두진이 중얼거렸다.
“또 시즌이 시작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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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선면 군인아파트 단지 인근 상가의 한 식당.
도훈과 두진이 안준식 의장과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며 대화하고 있었다.
“... 그러니까 의원님들이 스스로 문제라고 판단하기보다는 지역위 분들에게 등을 떠밀리고 있는 것 같다는 말씀이시네요?”
“네. 시장님이 의원들에게는 그런 식으로 예산을 짜야 하는 필요성을 공들여 설명하신 적이 있으니까요. 이미 설명을 들었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흐음.”
“저한테도 그런 얘기를 하는 당원들이 있었습니다. 지역 예산이 너무 줄어든 거 아니냐면서요.”
꼭 필요한 게 아닌 소모성 예산은 삭제되거나 감액된 데다가 사업추진 필요성 재검토 과정을 통해 조정된 것들이 있는데, 그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모양이었다.
“서태기 의원은 원래 거기에 부정적이었고, 나머지 의원들은 대개 공감하는 분위기였는데 당원들이 그렇게 나오니까 부담을 느끼는 모양입니다.”
“... 제가 좀 더 열심히 설명했어야 했나 봅니다.”
“아뇨. 초선의원들이라 ‘예산’에 관한 문제를 당원들이 생각보다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는 걸 간과했던 것 같습니다.”
“... 의장님도 초선이신데요?”
“저는 대전에서 시민단체 활동할 때, 의원들이나 지역 당원들이 예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자주 보고 겪었으니까요.”
“아, 그러셨었죠, 참.”
도훈이 뒤늦게 안준식의 옛 경력을 떠올렸고, 안준식이 푸념하듯 말을 이었다.
“사실, 초선의원들은 다들 겪는 과정일 겁니다. 지역구가 있으면 지역 주민의 요구가 있는 건 당연한 거고 예산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그 요구를 조정하는 능력은 꼭 필요하고···. 뭐, 겪으면서 나아지는 부분이겠죠.”
“네. 경험이 필요한 부분일 거로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아쉬운 건 시장님의 이야기에 공감했다면, 당원들과 지역 주민들도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있다는 거죠.”
답답하다는 듯 말하는 안준식에게 도훈이 물었다.
“의장님은 어떠십니까?”
“제 나름으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불만이나 반발이 없는 건 아니고, 예산 중 수정이나 조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략적인 방향성에는 저도 공감하니까요.”
“... 그나마 다행입니다.”
도훈이 웃으며 말했고, 안준식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쨌든, 시의회에서 예산안 논의하는 거나 통과시키는 거,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뵙자고 한 겁니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의장님.”
“고맙긴요. 그나저나 생각보다 담담하게 받아들이시네요?”
“예상했던 부분이잖습니까.”
“음, 시장님이 통 큰 거야 저도 잘 아는데 한 가지 간과하신 게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지금 우리 민의당 의원들만 해도 이 정도인데, 차혜진 의원이 이상하게 잠잠하다는 거죠.”
“그렇습니까?”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하는 도훈에게 안준식이 진지하게 답했다.
“차 의원 성격에 뭔가 ‘건수’를 발견했으면 분명 티를 냈을 겁니다. 그런데 전혀 그런 기미가 안 보이거든요.”
“......”
“뭐, 시장님도 이제 겪어볼 만큼 겪어보셨으니 잘 아시겠지만요.”
“그분이 좀 그런 면이 있긴 하죠.”
‘좀’이라는 도훈의 ‘완곡한’ 표현에 안준식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 됐다.
주목받기 좋아하고 자기 잘난 맛을 즐기지 않는 정치인은 거의 없다지만, 차혜진 의원은 그 정도가 좀 심했다.
동료 의원인 자기가 봐도 그런데, 주로 차 의원의 표적이 되는 사람이 저렇게 말을 하니 느낌이 매우 색달랐다.
안준식이 왜 저런 표정인지를 알아챈 도훈이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시의회 의장님 앞에서는 표현을 자제해야죠.”
“... 속도 좋으십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안준식의 말에 내내 조용하던 두진이 맞장구쳤다.
솔직히 시의회 의원 중 도훈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대표 주자는 차혜진이 아닌 민의당의 서태기 의원이었다.
양상택이 사퇴한 후 좀 주눅 든 것 같던 서태기는 장민호가 도훈과 감정이 생긴 후 다시 기세가 살아나, 도훈이 의회에 출석할 때마다 감정 섞인 말을 서슴없이 할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비서실 직원들 입장에서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혹은 가장 조심하는 상대는 차혜진이 맞았다.
도훈의 흠을 잡으려고 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시장과 관련된 온갖 자료 제출을 요구함으로써 안 그래도 바쁜 비서실 직원들의 일을 늘리는 일등공신이 바로 그녀였으니까.
“자, 대충 이야기는 다 한 것 같으니까 얼른 식사하시죠. 빨리 먹고 들어가서 봐야 하는 자료가 많습니다.”
“네.”
안준식의 말에 다들 서둘러 밥을 먹는데, 도훈의 핸드폰이 울렸다.
“... 흠.”
메시지를 확인한 도훈이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고, 두진이 슬쩍 곁눈질로 액정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 주 내에 식사 한 번 같이하시죠, 시장님. 이건 제가 시장님께 예산안 순탄히 통과시킬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차혜진에게서 온 메시지에 시선을 고정한 도훈의 미간이 점점 더 일그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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