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81화 (82/279)

81. 한계 - 4.

토요일 저녁, 도훈의 단골집인 중국관 홀.

“사장님, 이제 문 닫으셔야 할 시간이죠?”

“그렇긴 한데, 시킨 건 먹고 가야지. 단골인데 그 정도는 봐줘야지.”

“감사합니다. 장사도 끝났는데, 한잔하시겠어요?”

“그럴까?”

중국관 사장이 앉자 도훈이 잔을 건네고 소주를 따라주었다.

“요즘 장사는 잘 되세요?”

“장사? 우리는 그나마 낫지. 나름 맛집이라고 인정받아서 단골이 좀 되니까. 하지만, 매출이 좀 줄긴 줄었어.”

“... 네.”

“우리는 그나마 나은 편이고 사정이 심각한 집도 있지. 고깃집 같은 곳 말이야. 짜장면, 짬뽕이야 못 먹어도 1주일에 한 번은 먹는 게 한국사람들이잖아. 하지만, 고깃집은 좀 경우가 다르지.”

“그렇죠. 단순히 식사하러 오는 손님보다 외식이나 회식하러 고깃집을 찾는 이들이 많죠.”

“그러니까 말이야. 경기가 나쁘면 사람들이 제일 먼저 외식을 안 하잖아. 경기가 나쁜 게 1, 2년 사이의 일이 아니긴 하지만.”

살짝 술기운이 오른 채 사장과 대화하는 도훈은 웬일로 영배도 대동하지 않은 혼자였다.

전에는 종종 혼자 와서 양장피에 짬뽕을 시켜놓고 술을 마시곤 했었는데, 시장이 된 이후로는 혼자 온 게 처음이었다.

쨍.

“크으!”

잔을 비운 사장이 도훈의 잔에 소주를 따라주며 물었다.

“뭔 일 있어?”

“아뇨. 아무 일도 없어요.”

“그래? 다른 때보다 더 차분한 게 기분이 별로인 것 같은데, 아니야?”

“하하. 온종일 잠만 자서 그런가 봅니다.”

“종일 잤다고? 어디 아팠어?”

“그건 아니고요. 이번 주에 좀 무리했거든요.”

월요일 밤을 꼬박 새운 도훈은 화요일 이후로도 하루에 세 시간 이상 잠을 잔 날이 없었다.

피곤해 자려 누워도 머릿속에 오향마을 관련한 자료들이 계속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목요일 오후 부시장과 대화하며 다른 의미에서 충격을 받기도 해 잠을 못 잤다.

금요일 밤부터 시작해 오늘 낮 대부분을 잠으로 보낸 게 무리도 아니었다.

“무슨 일로?”

“쉽게 안 풀리는 문제 때문에요. 오향마을요.”

“아, 거기. 쯧쯧. 쉬운 문제가 아니지.”

대흥시 토박이인 중국관 사장의 반응만 봐도 절대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30년이 넘게 묵은 사건이고, 집들이 낡아가며 이런저런 문제가 생긴 뒤부터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보려 한 사람이 도훈 하나만이 아닐 터.

“우리가 봐도 한숨만 나오는데,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더하겠지. 시장은 당연히 골치가 아플 테고.”

“하하. 뭐, 그렇죠.”

“그래도 너무 속 끓이지 마. 단칼에 해결할 묘수 같은 게 지난 30년 동안 없었는데, 김 시장이라고 다르겠어?”

“... 네.”

다독이듯 말하는 중국관 사장에게 답한 도훈이 속으로 쓰게 중얼거렸다.

‘... 부시장님 말대로 내가 너무 급했던 건가?’

중국관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서 말문을 잃은 도훈의 어깨를 다독이듯 두들겼다.

“천천히 마셔. 어차피 주방부터 정리할 거니까 이것까진 마시고 가도 돼.”

“... 고맙습니다, 사장님.”

간판의 불을 끈 사장이 주방으로 모습을 감췄고, 도훈은 술잔을 손에 들고 목요일 전경완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도훈과 마주 앉아 자기가 나서보겠다고 한 다음 전경완이 입에 올린 건 ‘해결책’이 아니었다.

“제 생각에는 말입니다. 지금처럼 하시면, 오향마을 문제 해결 못 하실 겁니다.”

담담하게 단정하는 전경완의 모습에 도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부시장이 오향마을 관련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는 걸 알고는 그의 오랜 경륜에서 나온 해법은 기대했어도, 그런 부정적인 ‘단언’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너무 거기 몰입하셨으니까요.”

“......”

“시장님은 지금 너무 그 문제를 가까이서 보고 계십니다.”

“...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십니까?”

“그 정도면 다행이겠죠. 제가 보기엔 지금 시장님은 마치, 활활 타오르는 화재 현장에 막 도착해서는 앞뒤 가리지 않고 그 안으로 뛰어들려 하는 신참 소방관 같은 위태위태한 모습입니다.”

“......”

말문을 잃은 도훈에게 전경완이 말을 이었다.

“이번 주 들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이 일에 집중하셨죠?”

“... 어떻게 아십니까?”

“비서실장님께 들었습니다.”

“......”

“낮에는 원래의 일정과 업무를 소화하시고 야근도 하신 다음, 퇴근한 뒤 오향마을 문제를 고민하시는 것 같다는데, 맞습니까?”

“... 네, 그랬습니다.”

“휴우, 시장님.”

전경완이 한숨을 내쉬었고, 도훈이 머쓱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견딜 수 있으니까 하는 겁니다.”

“그러실 테죠. 아직 젊으시니까요.”

“네.”

“하지만, 계속 그러실 수 있겠습니까?”

“네?”

의아해하는 도훈에게 전경완이 재차 질문했다.

“뾰족한 수를 찾으셨습니까?”

“... 아뇨, 아직.”

“뭔가 실질적인 개선책은요?”

“... 그것도 아직입니다.”

담담히 도훈을 바라보는 전경완의 눈빛에 안쓰러움이 어렸다.

“시장님.”

“... 네, 부시장님.”

“아무리 위중하고 큰 문제라고 해도 매달리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 그렇죠.”

“어떤 때는 문제의 핵심에 과감하게 뛰어들 필요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문제, 적정한 거리를 두고 지켜봐야 전체를 볼 수 있는 문제도 있다는 거 시장님도 아시잖습니까?”

“... 네.”

이해한다는 듯한 눈빛을 한 전경완이 잠시 말을 끊었다 이었다.

“저도 전부터 오향마을 얘기를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만, 이처럼 심각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습니다. 마을의 현재 상황에 충격을 받았고, 왜 진즉에 챙기지 않았는지 자책이 되더군요.”

“......”

“시장님도 그러셨을 거로 생각합니다. 월요일에 처음 가보신 거라면서요?”

“... 네.”

“그래도 지금처럼 하신다고 답이 나오는 게 아닙니다.”

“......”

도훈이 머쓱한 표정으로 말문을 잃었다.

전경완의 말이 틀린 곳이 하나도 없다는 걸 자신도 잘 알았으니까.

시장이라고 해도 시 내부의 일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해서도 안 됐다.

시장 아닌 도지사, 도지사 아닌 설사 대통령이라고 해도 주어진 권한에는 한계가 있는 법.

게다가 그 권한이라는 것도 법과 제도의 틀을 깨서는 안 되는 것이니까.

- ... 저 녀석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다. 알지?

‘... 네. 제가 괜히 비상한 수단도 고민했던 게 아니니까요.’

지켜보던 조상님의 말에 도훈이 씁쓸하게 답했고, 전경완이 말을 이었다.

“비서실 직원들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 비서실이요?”

“네. 제가 시장님 뵙자고 한 건 꼭 그 때문만은 아니지만, 비서실장님이 부탁하시더군요. 좀 말려봐 달라고 말입니다.”

“......”

안 그래도 두진이 진지하게 너무 서두른다고, 좀 장기적인 관점으로 살펴보자고 이야기를 했었다.

알았다고 답하기는 했지만, 밤에 집에 돌아가 공부하고 고민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지나치게 몰두했다고 하면 딱히 변명할 말은 없지만, 그 문제에 사로잡혀 중심을 잃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곁에서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시장님이 이렇게 급하게 나오시면 도움이 안 될 겁니다. 시장님의 다급함은 직원들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우리 쪽에서 그런 태도를 보이면 상대해야 할 집주인들이 더 배짱을 부리기가 십상이잖습니까?”

“... 네.”

“시장님 임기 4년입니다. 이제 그 4년 중 넉 달밖에 안 지났고요.”

“... 네.”

“좀 더 길게 보셔야 합니다.”

“......”

말문을 잃은 도훈에게 전경완이 그제야 오향마을과 관련된 자기 생각을 털어놨다.

“이 문제는 너무 느긋해도 안 되지만, 조급하게 달려든다고 해결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관련 부서에서 최소한의 인원을 뽑아 작은 TF 팀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관리는 제가 하고요.”

“TF 팀이요?”

“네. 한 부서에서 전담할 성격도, 규모도 아니니까요. 관련 부서에서 최소한의 인원을 선별해 유지하되 꾸준히 이 문제를 관리하는 거죠.”

“......”

“그렇게 TF 팀을 운영하면 비슷한 성격의 문제를 다룰 때 도움이 될 겁니다. 오향마을이 좀 많이 심각하긴 하지만, 우리 시에 어려운 처지의 시민이 그분들뿐인 건 아니지 않습니까? 외곽 농촌 마을에 가보면 오향마을 집보다 더 위태위태한 집이 적지 않습니다.”

“... 그렇긴 하죠.”

“일단 안전과 관련된 건 좀 서두를 필요가 있겠습니다만, 그 밖의 일은 차분히 움직여야 합니다.”

전경완의 말에 도훈이 반론했다.

“상황이 어려울 때는 비상한 수단을 쓸 필요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아무리 고민해도 딱히 비상한 수단이 떠오르질 않았는데, 시장님께는 따로 생각하신 게 있는 겁니까?”

도훈이 의아해하는 전경완을 빤히 바라봤다.

믿는 구석이자 ‘비상한 수단’이 바로 등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지만, 도훈은 그걸 언급할 수가 없었다.

“아뇨.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도훈이 얼버무렸고, 전경완이 쓰게 웃고는 말을 이었다.

“시장님 심정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비상한 수단이란 건 일반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죠.”

“그렇긴 하죠.”

“행정은 비상한 수단을 잘 짜내는 게 아니라 일반적인 해결책을 수립하고 그 범위를 확대해 나가며 오류를 수정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아시잖습니까?”

“네. 압니다.”

전경완이 잠시 말없이 도훈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제게 맡겨주시겠습니까?”

질문을 받은 도훈은 한참 만에야 답했다.

“...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그럼 이제 제가 이 문제를 살펴보고 나름 고민한 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 네.”

그리고 길게 이어진 전경완과의 대화.

결론적으로, 전경완이 짚은 문제는 도훈도 짚어냈고 전경완이 과제로 꼽은 건 도훈도 똑같이 과제로 꼽았다.

다만, 그 문제를 풀고 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접근 방법이 도훈과 차이가 났다.

도훈은 당장 적용할 수 있고 단칼에 해결하는 방식 위주로 고민했다면, 전경완은 주민들에게는 가능한 최대한을 지원하고 소유주들에게는 관계 개선 혹은 문제를 함께 풀어가려는 태도를 갖추게 하는 데 중점을 맞췄다.

전경완이 언급했던 ‘일반적인’ 행정이라 할 수 있는 고민이었다.

그런 차이의 원인은 다름 아닌···.

‘나도 모르게 조상님을 지나치게 의지하고 있는 건가.’

조상님이 나서면, 잠깐 소유주들을 홀려 어떤 계약서나 합의서 같은 것에 사인도 받을 수 있다.

그 가치가 크지 않다지만, 소유주가 자신들의 재산이 축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효과가 영구적인 게 아니니까 어떤 식으로든 뒷말이 나오거나 계약 혹은 합의를 무효화 하기가 십상이다.

즉, 도훈이 원하는 것처럼 신속한 해결이 아닌 오히려 또 다른 분쟁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실행’에 나서지 못하고 오향마을 문제를 붙들고 끙끙댔던 것인데, 비서실 직원들이 걱정할 정도였던 것.

전경완과의 대화 이후, 도훈은 한가지 반성을 했다.

따로 ‘믿는 구석’이 있어서, 자신이 너무나 과감하거나 섣부르거나 ‘일반적일 수 없게’ 행동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 나 혼자 하는 일이라면 그래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 하지만···.’

작은 중소도시라지만, 도훈은 엄연히 한 기초자치단체의 장.

3백이 넘는 직원이 도훈의 뜻과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스스로 조상님께 지나치게 의지하면 안 된다고 아주 오래전부터 다짐하며 살아왔건만, 개인으로서의 일상에서는 몰라도 시장으로서의 업무에서는 꼭 그럴 수만은 없었다.

문제는, 그런 도훈의 모습이 안정적인 시 행정의 정립에 꼭 플러스 요인이 될 수만은 없다는 것.

결과가 좋다고 모든 게 무마되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는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한 것이고, 지방자치는 그런 민주주의의 꽃이라 이야기하는 제도가 아닌가.

도훈 자신이 그 누구보다 자치 행정, 지방자치의 중요성을 시민들에게 강하게 역설하며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음에도 자신이 일하는 방식이 그에 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도훈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도훈이 한 일의 성과물은 ‘일반적인’ 정책 혹은 해법으로 의미가 있어야 하니까.

‘... 행정이란 게 모두를 만족하게 하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님에도 난 다르다고 아니, 다를 수 있다고 행동한 거지.’

목요일 오후에 받은 부시장의 요청에 아직도 답을 못한 도훈.

부족했던 잠부터 보충하고 예전 느긋했던 일상을 잠시 흉내 냈더니, 결론은 생각보다 쉽게 나왔다.

- 오향마을 문제, 부시장님께 맡기겠습니다.

전경완에게 메시지를 보낸 도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장님, 저 갈게요.”

“그러시게. 자주 와, 김 시장.”

“노력하겠습니다.”

중국관 사장에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온 도훈이 심호흡했다.

“... 이제부터 좀 더 빡세질 겁니다.”

- 내가 아니면 네가?

“아마 둘 다요?”

- ... 뭘 어떻게 하려고?

“더 잘하려고요.”

싱긋 웃은 도훈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신에게도 한계가 있다는 걸 새삼 확인한 도훈.

그걸 그대로 두지 않을 거라고 그는 다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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