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80화 (81/279)

80. 한계 - 3.

10월 마지막 주 화요일 아침, 대흥시청 청사.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강 주무관님.”

“안녕하세요, 시장님. 안녕, 순심아.”

“안녕하세요, 이 계장님.”

언제나처럼 순심이를 안고 출근한 도훈이 지나치는 직원들과 담담히 인사했다.

“무슨 일 있으신가?”

막 도훈, 영배와 지나친 계장이 중얼거리자 옆에 섰던 부하 직원이 물었다.

“왜요, 계장님?”

“아니, 얼굴이 좀 푸석하신 것 같은데? 눈도 충혈된 건 같고 말이야. 마치 밤을 꼬박 새운 사람처럼.”

“아, 그거 때문인가?”

“뭐 아는 거 있어?”

계장의 질문에 직원이 답했다.

“어제 시장님이 오향마을에 연탄 나르기 봉사하고 오셨잖습니까. 아마 직접 가보신 건 처음일 걸요? 그래서인지 점심 때쯤 비서실에서 각 부서에 오향마을 관련 자료 전부 모아달라고 했다잖아요.”

“아, 그랬어? 우리는 관련이 없어서.”

“문화체육과야 그렇겠죠. 계장님은 다행이라고 생각하셔야 돼요. 어제 사회복지실, 건설교통과, 도시주택과 등 다 뜨끔했을 걸요? 드디어 올 게 왔다고.”

“이 사람 보게? 나 재작년까지 사회복지실에 있었어. 나도 그 마을 때문에 제법 속 끓였다고.”

“네. 압니다. 그러니까 다행이라고 하는 거죠. 지금은 그 건 안 다루시잖아요.”

부럽다는 표정의 직원에게 계장이 질문을 던졌다.

“세무회계과도 관련 있어?”

“거기 주민분 중에 세금 연체하신 분이 꽤 많거든요. 당연히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죠.”

“아, 그래?”

고개를 끄덕인 계장이 도훈이 사라진 방향에 시선을 주고 중얼거렸다.

“... 관련 부서들 오늘부터 긴장 좀 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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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한 도훈은 마침 다른 일정이 없어 시장실에 틀어박혀 업무를 봤다.

도훈이 다른 때와는 달리 직원들과 모닝커피도 함께 마시지 않고 방에 틀어박히자, 당연히 비서실 직원들이 도훈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기분이 어떠신 것 같나?”

“글쎄요. 아무리 봐도 좋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실장님.”

“잠도 못 주무신 것 같은데···.”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밤새 오향마을 관련 자료를 보셨나 봅니다.”

“에휴. 어제 집에 자료 가져가시는 거 보고 짐작은 했지만···.”

두진이 얼굴을 찌푸린 채 뒤통수를 긁었다.

늦게까지 자료를 읽다 채 못 읽은 것들을 집으로 챙겨가는 도훈이 너무도 심각한 표정이기에 끝내 아무 말도 못 했던 게 후회되는 모양이었다.

“실장님이 말린다고 안 가져가실 시장님이 아니죠. 한번 꽂히면 웬만해서는 뜻 안 꺾으시잖아요.”

정임이 쓰게 웃으며 말했고 영배가 맞장구쳤다.

“... 그렇죠. 그럴 때는 아무도 못 말립니다. 혹여···.”

“혹여 뭐요?”

“김 시장 아버지가 말리시면 또 모르겠네요.”

“... 그건 저희가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니잖아요.”

“뭐, 그렇죠.”

영배가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고, 두진이 입을 열었다.

“말릴 필요까지는 없지. 어차피 우리 시 문제이니 시장이 알아야 하는 것도 맞잖나.”

“... 그건 저도 동의하는데요, 실장님. 시장님이 어떤 일에 저렇게 진지하게 몰두하는 건 꽤 오래간만의 일이라서요. 좀 신경이 쓰입니다.”

“하긴, 나도 시장님 안 지 그리 오래 안 됐지만, 어제저녁처럼 심각한 표정은 처음 봤어.”

“저도요.”

“... 마찬가지입니다.”

영배, 두진, 정임에 이어 영진까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맞장구를 쳤고, 모두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껏 도훈이 어떤 문제에 집중하면, 대부분 좋은 결과를 냈다.

그런 결과를 내기까지 도훈은 온갖 자료를 검토하고, 담당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당사자나 관련 시민의 이야기도 들으며 취할 수 있는 모든 정보와 의견을 구한다.

문제에 부닥쳤을 때, 그런 집중력과 추진력을 보였기에 취임 넉 달을 채워가는 도훈을 평가하는 직원들의 점수는 무척 높은 편이었다.

그런 도훈임에도 지금 비서실 직원들의 태도가 걱정 일색인 것은, 이번에 도훈이 맞닥뜨린 문제가 그만큼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었다.

삐익.

모두가 잠시 말문을 잃고 있는데, 정임 책상의 인터폰이 울렸다.

정임이 인터폰 버튼을 누르고 말했다.

“네, 시장님.”

- 오향마을 관련해 현안이 있는 부서에 연락해서 의견서 제출하라고 해주세요.

“의견서라면, 현안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그 계획을 내라는 말씀이십니까?”

- 네.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는데, ‘진지하게’ 검토해서 의견 내라는 말은 꼭 덧붙여주세요.

“... 알겠습니다.”

뚝.

“휴우.”

인터폰이 끊겼고 스피커로 이야기를 전부 들은 모두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도훈이 ‘진지하게’라는 토를 달 때는, 당장 실행할 수 있을 정도의 완성도를 가진 의견을 원한다는 뜻이었으니까.

도훈이 이렇게 의견을 구하면서도 ‘진지하게’라는 토를 다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토를 달면 아주 예민하고 깐깐해진다는 건 다른 부서 직원들은 몰라도 비서실 직원들은 아주 잘 알았다.

“... 제대로 꽂힌 모양인데요.”

“그러게.”

영배와 두진이 푸념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띠리리리.

“네, 시장 비서실입니다. 아, 예. 네?”

전화를 받은 정임이 살짝 놀란 표정이 되더니 통화를 이어갔다.

“... 네, 알겠습니다.”

달칵.

정임이 전화를 끊었고, 두진이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인데 그러나?”

“사회복지실인데요. 부시장님도 시장님이 보시는 자료 요청하셔서 지금 올려보냈다고···. 알고 있으라고 전화했다네요.”

“부시장님이?”

“네.”

전경완 부시장은 취임 이후 도훈과 손발을 아주 잘 맞춰 일하고 있었다.

취임하고 채 한 달이 가기 전에 완전히 대흥시에 녹아든 그는, 점점 더 도훈의 업무 부담을 줄여주면서도 직원들을 잘 이끌어 나가고 있어 평판도 아주 좋았다.

아무래도 공직 생활이 오랜 사람이다 보니 직원들과 어울리고 그들을 이끌고 나가는 방법을 아주 잘 안다고나 할까?

도훈과 닮은 면도 닮지 않은 면도 있는 전경완이 도훈과 무척 비슷한 점 중 하나는···.

“... 설마 그 양반도 이 문제에 꽂히는 거 아냐?”

“... 글쎄요.”

“휴우.”

어이없어하는 두진의 말에 영배가 비슷한 표정으로 답했고, 정임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 불길한데···.”

책상에 앉아 뭔가를 적고 있던 홍영진이 불안한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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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안전진단 부분 말입니다.”

“네, 시장님.”

질문을 받은 도시주택과장이 표나게 긴장했지만, 도훈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서류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월요일 날, 제가 몇 시간 봉사하면서 살펴본 것만 해도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꼈습니다. 제일 급한 게 이 안전진단인 것 같은데, 과장님은 그렇게 생각 안 하십니까? 혹시 그 마을에 최근에 가보셨어요?”

“재, 재작년에 가봤습니다.”

“아, 재작년이요.”

도훈의 말에 과장이 움찔했다.

담담한 것도 같고 심드렁한 것도 같고, 표정변화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고저도 없는 감정을 싣지 않은 목소리 같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옆에 앉은 비서실장뿐만 아니라 과장도 잘 알았으니까.

일반 직원들 앞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도훈 특유의 상대를 압박하는 태도.

‘... 차라리 화를 내라.’

과장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간부들과 회의를 할 때, 도훈은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를 분명하게 말하는 편이었다.

화를 내는 적은 거의 없었지만, 이러이러해서 이 의견은 나쁘다. 혹은 성에 안 찬다는 식의 평가를 할 때는 그나마 기분이 덜 나쁜 상태.

부서에서 올린 의견이나 정책이 정말로 마음에 안 들면 저렇게 무미건조한 표정과 목소리로 일관하는데, 그럴 때마다 묘하게 뒷골이 저릿할 정도로 긴장됐다.

이제 제법 도훈에게 익숙해진 간부들도 저런 태도의 도훈을 본 적이 몇 번 안 되지만, 이럴 때는 최고로 긴장하곤 했다.

“재작년에도 안전 문제는 심각했겠죠?”

“네, 시장님.”

“그때도 권고만 했다가 집주인들이 전혀 반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이번에도 권고만 한다고 적힌 겁니까?”

“현실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리 노후주택이라고 해도, 공동주택이 아닌 경우 강제할 방법이 없습니다. 게다가 시에서 예산을 투입할 근거도 없고요.”

아파트나 빌라 같은 공동주택의 경우, 복층 구조이고 한 건물에 사는 인구가 많으므로 안전 문제에 훨씬 민감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공동주택관리법’이라는 걸 만들어 관리 운영부터 시작해 유지, 보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웬만한 지자체도 자체적으로 조례를 만들어 지자체의 사정에 맞게 공동주택의 관리에 개입하고 있다.

하지만, 단독주택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제가 서울 어느 자치구 사례를 본 적이 있는데, 관내 건축사 협회와 협의해 소액으로 노후 단독주택 안전진단을 시행한 적이 있던데요.”

“저도 압니다. 주인에게 비용을 부담시키지 않고 말씀이시죠?”

“네. 집 하나당 30만 원인가에 했다고 봤습니다.”

“그게··· 저희와 거기는 좀 사정이 달라서요.”

“어떻게 말입니까?”

도훈이 그제야 서류에서 눈을 떼고 과장에게 시선을 줬다.

도훈의 눈빛은 아주 담담했건만, 이럴 때의 담담함은 절대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기에 과장은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그 자치구는 자기 지역에 사무실을 가진 건축사 협회에 협조를 요청해 그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아무래도 경쟁이 치열하니까 가격이 저렴해도 선뜻 나선 건축사가 있었겠죠. 하지만, 우리 대흥시에는 건축사 사무실이 단 세 곳뿐입니다. 그나마 그중 한 사무실은 지난 사방공사 비리 건으로 운영을 제대로 못 하고 있죠.”

“... 네.”

“제가 알기로는 두 사무실 모두 일감이 부족한 때가 거의 없습니다. 당연히 서울 자치구와 같은 협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접촉해보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재작년에는 그랬지만, 이번에는 아직입니다.”

“... 흠.”

도훈의 미간에 주름이 패었지만, 과장은 못 본 척 말을 이었다.

“제가 부정적인 이유는 또 있습니다. 우리 대흥시와 같은 기초자치단체지만 서울의 자치구니까 노후주택이 많았겠죠. 당연히 안전진단 대상 주택의 숫자도 많았습니다.”

“과장님 말씀은 소액이나 평가 대상이 많아서 그 가격이 가능했다는 겁니까?”

“네. 반면에 오향마을은 모두 합해 33채의 단독주택이 있을 뿐입니다. 게다가 6채는 비어있죠.”

“... 그렇죠.”

“설사, 33채를 다 한다고 해도 1천만 원이 안 되지만, 시에서 전액 부담해야만 할 겁니다. 게다가 그 마을 집들에 안전진단하는 걸 집주인들이 원하지 않습니다.”

과장에 이어 두진이 끼어들었다.

“아예 싹 허물고 재개발할 게 아니면 단 한 푼도 돈 들이기 싫다는 게 집주인들의 태도입니다. 시장님도 보고서 보셨죠?”

“네.”

“하지만, 현재로써는 재개발해도 전혀 이익을 볼 거라고 기대할 수가 없죠. 그렇다고 시에서 이익을 보장해 줄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주인들이 요지부동인 거고요.”

“......”

담담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침묵하던 도훈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좀 더 고민해보죠. 과장님도 생각 좀 더 해주세요.”

“네, 시장님.”

과장이 얼른 몸을 일으켜 나갔고, 두진도 안쓰러운 시선을 잠시 도훈에게 보내다 비서실로 나갔다.

“휴우.”

한숨을 내쉰 도훈이 책상에 서류를 던지듯 내려놨다.

벌써 목요일 오후.

월요일 저녁부터 지금껏 오향마을 관련한 자료를 붙들고 씨름했다.

도훈 본인만 그런 게 아니라 각 담당 부서에 고민을 함께할 걸 요구했고, 어제부터 부서장들을 차례로 만나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도 속 시원한 제안을 내놓는 사람이 없었다.

“나도 답이 없는데 다른 사람한테 답을 내놓으라고 하는 거 자체가 모순이지.”

주민복지를 담당하는 사회복지실에서 가져온 제안이 그나마 현 거주민을 대상으로 이런저런 혜택을 늘리자는 수준이었고, 건설교통과나 도시주택과 등 근본적인 해결을 시도해야 하는 부서는 난색을 보일 뿐 제안 자체가 전에 비해 나아진 게 없었다.

한 마디로, 괜히 30년이 넘게 묵은 문제가 아니랄까?

“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데···.”

오향마을 문제를 해결할 때 우선 집중해야 하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

첫째로, 오향마을이 아닌 다른 저렴한 집을 주선해 현 거주민을 이사시키는 것, 둘째로, 그렇게 빈 오향마을 집에 새로운 주민이 들어가는 걸 막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런데, 그 둘 중 어느 쪽도 문제 해결에 가까이 가질 못하고 있었다.

“휴우.”

도훈이 한숨을 내쉬는데, 인터폰이 울렸다.

삐익.

“네.”

- 시장님, 부시장님이 오셨습니다. 잠깐 뵙자고 하시는데요.

“네.”

도훈이 걸음을 옮겨 시장실 문을 열었고, 전경완 부시장을 안으로 들였다.

“어쩐 일이십니까?”

소파에 앉은 도훈이 묻자, 담담한 표정으로 눈을 빛내던 전경완이 입을 열었다.

“요즘 오향마을 문제로 고민 많으시죠?”

“... 네.”

씁쓸한 표정으로 답하는 도훈을 향해 전경완이 말을 이었다.

“이 문제, 제가 나서보고 싶습니다.”

“......”

차분한 표정의 전경완의 말에 도훈이 눈을 크게 떴다.

그가 뭔가 의견을 낼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설 거라는 생각은 못 했으니까.

“... 어떻게 하시려고요?”

“일단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전경완이 설명을 시작했고, 쫑긋 귀를 세운 도훈이 온 정신을 집중해 경청했다.

두 사람의 진지한 대화가 길고도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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