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홧김에 시장 되다-79화 (80/279)
  • 79. 한계 - 2.

    도훈의 질문을 받은 두진이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젠 30년이 넘은 얘긴데··· 원래 운계면 사거리는 오향마을 근처에 생길 계획이었습니다.”

    “지금 자리가 아니고요?”

    “네. 지금 자리는 원래 계획을 급히 수정해서 위치를 바꾼 겁니다. 사거리에서 유서면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직선이 아니라 완만하게 휘어져 있잖습니까?”

    “그렇죠.”

    “그 도로를 직선으로 하면, 오향마을 입구의 야산 곁을 지나게 될 겁니다.”

    “......”

    “원래의 사거리는 그 자리에 생길 예정이었죠.”

    두진의 말처럼 대흥시에서 제일 번화하다고 할 수 있는 운계면 사거리를 관통하는 도로 하나가 완만한 커브를 그리고 있었다.

    만일, 그 구부러진 부분을 펴면 두진의 말대로 사거리는 오향마을과 훨씬 가까워질 터.

    “도로 위치가 바뀐 이유가 뭡니까?”

    “도로 건설 계획을 세우던 시점에 그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습니다. 계획이 행정당국 내부에서 확정되고 발표하기 전에 토지 매입단계에서야 그걸 알았다고 들었습니다.”

    “... 설마?”

    “네. 짐작하신 것처럼 오향마을 야산 일대와 마을 집들을 외부 투기꾼들이 미리 사버린 겁니다.”

    “... 흠.”

    “계획을 발표했다면 되돌리기 어려웠겠지요. 하지만, 발표 전이라 다른 선택이 가능했죠. 웃돈을 주고 토지를 매입하지 않고 위치를 변경해버린 겁니다.”

    “투기꾼들이 땅값을 세게 불렀나 보네요.”

    묵묵히 듣고만 있는 도훈 대신 영배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했고, 두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 이유도 있었겠지. 하지만, 핵심은 땅값이 아니었네.”

    “아니면요?”

    “그 정보를 투기꾼들에게 흘린 게 제법 직급이 높은 공무원이었다네.”

    “정말로요?”

    “그래. 기가 찬 건, 공무원이 정보를 유출하는 수준에서 그친 게 아니라 친척을 동원해 직접 개발 예정 토지 매입에 뛰어들었다는 거야. 유출 과정을 내사하다가 밝혀졌지.”

    “......”

    “당연히 해당 공무원은 파면에 고발을 당하는 등 법적 처벌을 받았지. 하지만, 그 공무원이 가족을 통해 땅을 매입한 건 되돌릴 수가 없는 일이잖나? 재판을 통해 어떻게 해볼 방법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을 수도 있고.”

    영배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도훈이 질문했다.

    “... 그래서 위치를 바꿨다는 겁니까?”

    “저는 그렇게 들었습니다. 제가 당시 금산군청 직원이긴 했는데 근무지가 이 지역이 아니었거든요.”

    “... 꽤 큰 사건이었나 보네요.”

    “네. 그랬습니다. 얘기가 여기서 끝이 아니거든요.”

    “네?”

    두진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위치가 바뀌어서 도로 건설 계획이 발표되니 공무원 말을 믿고 투기에 뛰어든 이들이 가만히 있을 턱이 없죠.”

    “......”

    “돈을 날리게 된 투기꾼들은 문제의 공무원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분풀이를 했다고 합니다.”

    “... 허.”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르겠지만, 공무원 본인은 감옥 안에서 죽었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죠. 직계 가족뿐만 아니라 가까운 친척까지 여럿이 피해를 봤습니다.”

    “... 친척들까지요?”

    “네. 그 친척 중에도 공무원이 여럿 있었습니다. 공무원 집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는데, 그 일로 공무원 사회 내부에서는 물론, 지역 사람들의 어마어마한 질타가 있었거든요. 결국, 그들 모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다 공직을 떠났습니다.”

    “... 흠.”

    “어설픈 부동산 투기 시도가 꽤 번듯하던 한 집안을 패가망신에 가까운 상태로 만들어 버렸죠.”

    말없이 미간을 찌푸린 도훈을 향해 두진의 말이 이어졌다.

    “옛날에는 공무원 부정부패가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했죠. 그래서 예방 교육 같은 게 많았습니다.”

    “그래서요?”

    “그 사건은 한동안 충청남도뿐만 아니라 전국 공무원들에게 ‘공무원이 딴짓하면 이렇게 된다’는 식으로 예방 교육에 종종 등장했습니다.”

    “......”

    말문을 잃은 도훈과 영배를 돌아보며 두진이 말을 이었다.

    “거기에 더해 이런 측면도 있을 겁니다. 지금은 그 마을 집들과 인근 토지 소유주가 좀 바뀌긴 했지만, 전체의 반 이상은 당시의 투기꾼들 혹은 그 자식들이 아직도 갖고 있습니다. 죄를 짓고 감옥에 갔다가 죽은 이도 공무원, 그 때문에 공직을 그만둬야 했던 이들도 공무원이니 이유야 어찌 됐든, 다른 공무원들이 그 투기꾼들에게 좋은 감정이 있을 리가 없죠.”

    “... 그럼?”

    “네. 오향마을은 그 사건 이후로 군이 됐든 도가 됐든, 그 어떤 행정당국 주도의 개발이나 환경정비에서도 제외됐죠. 반쯤은 의도적으로도 철저히 외면받아온 겁니다.”

    “... 허.”

    “여하튼, 그 일 이후로 오향마을과 관련한 문제는 대흥시가 생기기 전부터 공무원이면 그 누구도 건드리기를 꺼리는 사안이 됐죠.”

    “......”

    도훈과 영배가 말문을 잃었다.

    그리고 내내 듣기만 하던 이경재가 입을 열었다.

    “그 마을에 사는 분 중에 집 소유주는 거의 없을 겁니다. 대부분이 세입자죠. 그 마을 집들이 너무 낡아서 아마 전세 보증금이나 월세가 대흥시에서 가장 낮은 수준일 겁니다. 당연히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분들이 모여 사시겠죠.”

    “그런 것 같더군요.”

    이경재의 말처럼, 오늘 두 사람이 다녀온 오향마을의 모습은 정말 심각했다.

    서른 채가 조금 넘는 집 모두 40년 가까이 된 낡고 작은 단독주택.

    시가지에서 몇백m 정도 떨어져 있지만, 도시가스 공급이 되지 않는 상태였으며 기름보일러를 쓰는 집이 단 하나도 없이 모든 집이 아직도 연탄보일러를 쓰고 있으니 더 말해 뭐할까.

    “그 마을에 있는 집을 계약할 때는 한 가지 주의할 사항이 있습니다.”

    “뭡니까, 그게?”

    “계약 기간에 집에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주인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네?”

    “지붕이 무너지든, 벽에 금이 가든, 보일러가 고장 나든 그 집에 사는 동안 문제가 생기면 전부 세입자가 알아서 하라는 거죠.”

    “그게 말이 됩니까?”

    “말이 안 되는 정도가 아니고 위법으로 알고 있는데요?”

    영배와 도훈이 말했고, 이경재가 쓰게 웃으며 답했다.

    “말도 안 되고 위법한 것도 맞을 겁니다. 하지만, 워낙 임대료가 싸니까 그걸 감수하는 거죠. 거기 사는 분들은 그걸 모르고 계약하신 게 아닙니다.”

    “... 허. 점점···.”

    영배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고, 이경재도 공감한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 마을 집을 가진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투기 목적으로 웃돈을 주고 샀다가 실패한 거잖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그 마을 집들에 조금도 돈을 쓰려고 하지 않았답니다. 집 벽에 쩍 금이 가도 대충 때우고 마는데, 가스관 연결이나 보일러 교체 비용을 들일 리가 없죠.”

    “......”

    “그런 식으로 집주인들이 외면해온 게 수십 년이니 지금 그 모양이 된 거죠.”

    오향마을에는 달랑 집들만 있었고, 편의점은커녕 동네 구멍가게도 하나 없었다.

    마을에서 큰 도로까지의 길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다지만, 마을 안에 들어서면 어디를 봐도 낡고 다 부서져 가는 것투성이였다.

    그런 환경을 감수하고 사는 이들의 형편은 어떻겠는가?

    “올봄에 어르신 한 분이 고독사한 것도 그 마을이라면서요?”

    “네, 맞습니다. 아까 제가 자료를 확인했는데, 오향마을에 빈집이 여섯 채, 나머지 집 거주자 중 반 이상이 홀로 혹은 단둘이 사는 노인분들입니다.”

    “......”

    이경재가 차로 목을 축였고, 도훈과 영배가 미간을 찌푸리고 침묵했다.

    마을의 현 상태가 너무하다 싶을 정도여서 뭔가 사연이 있겠다 싶었지만, 이런 정도의 이야기일 거라고는 둘 다 생각지 못했으니까.

    삐걱.

    “얘기는 잘하고···.”

    아이를 데리고 나갔던 정임이 돌아와 말을 꺼내다 입을 다물었다.

    분위기가 너무 무거웠으니까.

    “엄마, 왜?”

    “응? 아, 아니야. 잠깐 있다가 오자.”

    정임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며 문을 닫았다.

    이경재가 좀 머쓱해 하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도훈의 침묵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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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 늦은 시각 도훈의 집.

    “흐음.”

    책상에 앉은 도훈이 시청에서 챙겨온 자료를 읽으며 여전히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 도훈의 어깨너머 허공에서 조상님이 질문을 던졌다.

    - 그렇게 안 좋냐?

    “네. 기록을 보니까, 그 동네 집주인들하고 행정당국의 관계는 한마디로 최악 아니면 철천지원수나 다름없겠습니다.”

    - 쯧쯧쯧.

    사건 후 30년이 넘게 지난 시간은, 큰돈이 뜻하지 않게 묶여버린 투기꾼들과 행정 당국 사이 갈등의 역사와도 다름없었다.

    초창기에는 고소, 고발도 심심치 않게 오갔다는데 대부분은 어떤 실질적인 문제 때문이 아닌, 극도로 사이가 나쁜 양측의 감정대립에 기인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집주인들이 민원을 쉬지 않고 줄기차게 제기했던 적도 있지만, 그 역시 어떤 실질적인 해결을 위해서가 아니어서 행정당국에서도 ‘무시’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다.

    한 10년 전부터 좀 잠잠해진 것은, 투기 당사자들이 고인이 되거나 고령이 되어 더는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는 상태인 때문이었다.

    “... 거기 살았고, 지금 사는 사람은 도대체 무슨 죕니까?”

    - ... 가난한 죄지.

    예전에는 그나마 괜찮았겠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오향마을의 거주 환경은 계속 나빠지기만 했다.

    아무리 집주인들이 밉다고 해도, 그 집에 실제로 거주하는 시민들의 불편함까지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

    결국, 대흥시의 첫 민선 시장이 그 일을 해결하러 나섰다가 아주 크게 싸운 뒤로는 시청 여러 부서에서 근본적인 해결이 아닌 그때그때 땜질식으로 주민 지원을 해온 게 거의 전부라 할 수 있었다.

    “몇몇 집은 붕괴위험이 심해 비워진 상태랍니다. 당장 내일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다네요.”

    - ... 원래 집이라는 게 사람 손을 타지 않으면 금세 그렇게 되는 법이지.

    “... 안전진단을 해야···. 이런.”

    도훈이 허탈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왜?

    “... 집이 그렇게 낡고 위험하면 안전진단을 해야 하잖습니까?”

    - 그렇겠지. 그런데 그게 뭐?

    “시청에서 안전진단을 하라고 권고했는데, 그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려고 주인들이 거부했답니다. 원래 소유주가 부담하는 게 원칙이거든요.”

    - ... 쩝.

    “그게 다가 아닙니다. 주민들이 계속 겁나서 못 산다고 민원을 제기하니까 시청에서 비용 일부를 부담하기로 마음먹었었네요. 그런데 그 제안도 거부당한 적이 있네요.”

    - ......

    조상님이 말없이 미간을 찌푸렸고, 비슷한 표정이 된 도훈이 야근을 마치고 귀가할 때 했던 두진의 말을 떠올렸다.

    - 이 문제, 각오 단단히 하고 임하셔야 합니다. 지금의 땅 주인들도 시청을 대하는 태도는 예전 투기꾼 부모들과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제가 직접 경험해 보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자세한 설명 없이, 두진은 집주인들을 만나는 것부터가 정말 힘들었고, 만났지만 대화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축객령을 당했다고 했다.

    두진이 만나 상의하려고 했던 문제는 거주자들의 ‘안전’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집주인들의 태도는 거의 대동소이했다나?

    “... 시청이 그나마 신경 쓰기 시작한 건 주로 오향마을 주민들의 안전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인데···. 와, 주인이라는 사람들 어떻게 이렇게나 철저히 외면할 수 있는지···.”

    - ... 그놈의 자식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나도 잘 모르겠구나.

    오향마을 집들의 안전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건 지방자치제도가 다시 시작된 후.

    불과 100명도 안 되는 주민들이 살지만, 그들 역시 유권자니까 선출된 단체장이 마냥 이전처럼 외면할 수는 없었을 터.

    지금에 비하면 오히려 그때 주민의 목소리가 컸다.

    그렇게 주민들이 요구해도 해결이 되지 않으니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그나마 형편이 나은 이들은 하나둘씩 그곳을 떠났고, 지금은 ‘극빈’에 가까운 경제 형편인 이들만 남은 것이다.

    “... 휴우.”

    - 땅 꺼진다.

    “... 절로 한숨이 나오네요. 아니, 점점 더 한숨만 나오네요.”

    - ... 알겠는데, 어떻게 할 생각이야?

    조상님이 딱하다는 표정으로 묻자 도훈이 조상님을 똑바로 바라보며 답했다.

    “좀 더 알아보고 고민도 해봐야겠지만, 상황이 비상인 건 확실합니다.”

    - 그래서?

    “... 비상인 상황에서는 비상한 방법도 고려해봐야겠지요.”

    - 쩝. 너무 성급하게는 판단하지 마라. 비상한 상황에서도 침착해야 실수를 안 한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대화를 마친 도훈이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집중하여 자료를 읽어가는 도훈의 표정이 딴 때 없이 굳어진 채 펴질 줄을 몰랐다.

    이날, 도훈은 끝내 한숨도 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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