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홧김에 시장 되다-72화 (73/279)

72. 반짝반짝 빛나는… 2.

시장, 군수 회의 종료 후 두 시간 정도 지난 대흥시 유서면의 한 가든.

도에서 가든 전체를 빌린 가운데 식사를 겸한 회식이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도지사님과 한편 먹기로 한 겁니까?”

“이번 회식에 한정해서는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다른 때는 다르지 않겠습니까? 뜻이 맞는다면 장 군수님과 협력하지 말라는 법은 없죠.”

“허허, 이거 참 못 당하겠네. 누가 김 시장을 초짜라고 하겠어요?”

“과찬이십니다.”

공손한 태도의 도훈은 대자당 소속의 재선 군수 하나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식사는 이미 다 마치고 본격적으로 술과 이야기가 오가는 분위기.

밥 먹을 때는 시장, 군수들만 자리했던 방안에는 어느새 단체장들의 비서진들도 동참해 대화와 술잔이 활발하게 오가고 있었다.

“한잔 받아요, 김 시장.”

“네. 군수님.”

야당 단체장 넷 중 셋은 식사를 마친 직후 자리를 떴으나, 최소한 화기애애하게 밥 먹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으니 최소한의 협조는 했다고 보는 게 맞았다.

지금 도훈과 나란히 앉은 장길영 군수는 도훈이 같이 어울려 주면 좀 늦게 가도 괜찮다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이나 당선 횟수로는 야당 단체장 중 최고참이 아니었지만, 한눈에 봐도 그는 같은 당 소속 다른 단체장들을 이끄는 리더의 모습이었다.

“편하게 마셔요. 굳이 여기서까지 예절 차리지 않아도 됩니다.”

“예절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언제 어디서나 똑같이 통용되는 거라고 배워서요.”

“하하, 누구한테 배웠는지는 몰라도 제대로 배우셨네요.”

두 시간 정도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해본 결과, 도훈이 보기에 장길영 군수는 비록 보수 정당에 소속됐으나 평균 이상의 합리성을 가진 인물이라 할 수 있었다.

한반도 평화 기조가 기본적으로 옳다고 말하고, 보수 정치세력이 꽤 많은 부분에서 구태를 제거해야 한다는 데도 동의했다.

물론, 현 정권의 정책 중 수정 혹은 노선 전환이 필요한 부분이 상당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그가 근거로 내세운 것은 하나같이 ‘민생’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정치적 신념이 다른 점에서 근거하는 당위적 태도도 아니었고, 이념적 경직성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비웠으니 채워야죠?”

“네, 받으십시오.”

나이가 60이 넘은 사람이 아직 마흔도 되지 않은 도훈에게 전혀 권위적인 모습도 보이지 않고 계속 존대를 하는 것만 봐도 뭔가 남다른 면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김 시장 개인의 정치적 성향은 진보죠?”

“네.”

“여당이랑 가깝습니까?”

“글쎄요. 어떤 면에서는 여당보다는 진보정당 쪽이 더 낫다고 판단합니다.”

“어이쿠, 좌파 중에서도 좌파 쪽인 모양이네요. 이거 내가 조심해야겠어요.”

“오히려 제가 군수님께 포섭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허허, 빈말인지 뻔히 알면서도 듣기는 좋네요.”

싹 다 가겠다고 했다가 밥은 먹고 장 군수만 남기로 한 게 작전인지 아니면 도훈과 강정문이 설득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도훈은 설득의 결과라고 믿고 싶었다.

그만큼 두 시간 정도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눠본 장 군수는 합리성을 가진 호감 가는 사람이었으니까.

조상님께 관상까지 물어 확인하진 않았지만, 도훈이 보기에 그다지 욕심 많은 사람도 아닌 것 같았고.

“무슨 얘기를 그리 재미있게 하십니까?”

“그냥 이런저런 겁니다.”

“저랑도 재미있는 얘기 좀 하시죠, 장 군수님.”

“허허, 글쎄요.”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돌며 분위기를 주도하던 강정문이 맞은 편에 앉으며 말했고, 장 군수가 담담히 웃으며 답했다.

“저는 잠깐 다른 분들께 인사하고 오겠습니다.”

“그러세요. 내가 김 시장을 너무 오래 독점했네요.”

“아닙니다, 군수님. 다녀오겠습니다.”

강정문이 장 군수와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 눈치여서 도훈은 술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의 모든 테이블에서 열띤 대화가 오가고 있었기에 분위기를 보던 도훈은 우연히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고, 그쪽에서 열심히 손을 흔들기에 웃으며 다가갔다.

“앉아도 될까요?”

“물론이죠! 어서 앉으세요.”

“고맙습니다. 참, 여러분,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뭘요. 시장님도 수고 많으셨어요. 그리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까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맞아요. 고맙습니다, 시장님.”

민세경을 비롯한 도청 직원들의 자리에 앉은 도훈이 담담히 웃었다.

“그나저나 이 집 해신탕 정말 맛있네요.”

“그래요? 다행입니다.”

“대흥시에는 이런 맛집 많나요?”

오늘의 메뉴는 백숙에 각종 해물이 추가된 해신탕.

“글쎄요. 제가 다니는 음식 잘하는 식당은 여럿 있는데 여긴 처음이라서요.”

“어머? 아까는 뒤풀이 준비에 신경 많이 쓰셨다면서요?”

“식당 추천은 저보다 더 맛집을 잘 아는 직원에게 맡겼죠. 그거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거 아닌가요?”

“호호, 그도 그러네요.”

도청 직원들과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나이가 비슷한 이들이다 보니 분위기는 좋았다.

“시장님, 술 잘하세요?”

“좋아는 합니다. 퇴근하고 맥주 한잔, 직장인의 낙이죠.”

“어머, 저도 그래요. 근데, 시장님··· 스스로 직장인이라고 생각하세요?”

도청 홍보실 여직원이 묻자 도훈이 담담히 웃으며 답했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고, 한 달에 한 번 월급 받으니까 직장인 맞죠.”

“호호! 틀린 말씀은 아니네요.”

“저는 맥주, 제 식구는 안주를 밝히는 편이죠. 야근이 잦아서 퇴근하고 맥주 마시는 걸 자주는 못 하지만요.”

“식구요? 시장님 결혼하셨습니까?”

“하하, 아니요. 저랑 같이 사는 개 말입니다.”

“어머? 강아지 키우세요?”

“네. 저랑 같이 출퇴근합니다.”

“어쩜! 혹시 사진 있어요?”

“잠깐만요.”

도훈이 개인 핸드폰을 꺼내 순심이 사진을 보여주자 민세경과 여직원이 예쁘다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어머!”

“귀여워!”

도훈이 직원들과 순심이 사진을 돌려보며 한참 즐거운 대화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도훈의 어깨를 살짝 쳤다.

“뭐가 그리 재밌습니까?”

“아, 윤 시장님.”

어느새 도훈의 옆에 와 있는 것은 도훈을 제외하고 충남 기초자치단체장 중 가장 젊은 47세의 윤길현.

살짝 술기운이 오른 얼굴로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그가 도훈에게 일렀다.

“도 직원들과 즐겁게 얘기하시는 것도 좋겠지만, 김 시장 고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를요?”

“네.”

윤길현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한 테이블에 민의당 소속 시장, 군수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있었다.

“얘기 좀 더 하시다가 저쪽으로 오실래요?”

“그러겠습니다.”

도훈이 선선히 답하자 윤길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단체장들이 모인 테이블로 걸어갔다.

도훈이 윤길현에게 시선을 거두고 앞을 바라보는데, 직원들의 표정이 좀 묘했다.

“... 왜들 그러십니까?”

“하하. 그, 그게···.”

도훈과 시선이 마주친 남자 직원은 선뜻 대답을 못 했고, 민세경이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휴우, 윤 시장님을 필두로 저분들 중 몇 분은 작정하면 술 드시는 게 장난이 아니거든요.”

“... 그래요?”

“네. 이번에 새로 당선된 분들은 대개 전부터 인연이 있던 분들이라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마음먹고 판 벌이면··· 도지사님도 못 당하신대요.”

“... 흐음.”

“시장님은 개인적으론 잘 모르시죠?”

“지난 회의 때 인사야 나눴습니다만, 그 이후로는···.”

“아무래도 좀 짓궂은 마음을 먹으신 것 같은데···.”

민세경이 시장, 군수들이 모여드는 테이블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쪽을 흘끔 하며 웃으며 쑥덕대는 게 분명 도훈을 두고 무슨 꿍꿍이를 짜는 듯한 모습이었다.

‘오호라?’

두진이 ‘너무 긴장은 풀지 말라.’고 말했던 걸 도훈이 떠올렸다.

도훈과 비서실 직원들은 야당 단체장들만 생각하고 있는데, 정작 태클을 걸어올 건 여당 쪽 사람들인 모양.

피식.

가만히 웃고 난 도훈이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제가 우리 아버지 아들이라 웬만해서는 술로는 안 지죠.”

“... 그러세요?”

“네. 저분들 저 오기만 기다리는 것 같은데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조심하세요. 시장님.”

“하하, 네.”

도훈이 도청 직원들과 인사하고 단체장들의 테이블로 걸어갔다.

그런 도훈의 뒷모습을 도청 직원들이 걱정된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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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김 시장 혹시 말술 아닙니까?”

“글쎄요. 그런 얘기는 못 들어봤습니다.”

“말술 맞는 것 같은데, 어째 술이 아니고 물을 마시는 느낌입니다. 나는 아까부터 슬슬 취기가 올라오는 것 같은데···.”

“저런, 천천히 드세요.”

“하하, 왠지 얄미워 죽겠어요.”

부드럽게 웃으며 대꾸하는 도훈을 질린다는 듯한 표정으로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었다.

도훈이 다른 단체장들과 합류한 지 아직 30분이 안 지났다.

그런데, 테이블 옆으로는 빈 소주병이 여럿 놓여있었다.

그게 다 도훈이 합류하고 ‘전투적으로’ 술을 마신 결과.

그중 도훈은 ‘후래자 3배’라는 단체장들의 이구동성 때문에 소주 석 잔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따라주는 술을 비우느라 제일 많이 마셨다.

그런데도 얼굴이 살짝 발그레하게 변한 것 말고는 눈빛도 아주 초롱초롱했다.

마주한 이들의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에 조금은 게슴츠레하게 변한 눈빛에 비해 도훈은 아주 쌩쌩한 모습이었다.

“좀 페이스를 늦추죠. 잘못하면 다들 오 군수님처럼 실려 나가겠어요.”

“그러는 게 좋겠습니다.”

도훈의 옆에 앉아 ‘전투적으로’ 술 먹이기를 하다 유탄에 희생되어 장렬하게 전사하고 비서에게 업혀 나간 단체장도 이미 하나 있었다.

밥만 먹고 먼저 간 야당 소속 단체장 셋, 피치 못할 일이 있다며 일찍 일어난 둘, 술에 취해 먼저 퇴장한 셋, 아직도 강정문 도지사와 마주 앉은 야당 소속 장길영 군수를 제외한 일곱 명의 시장, 군수가 모두 모여 앉아 있었다.

그중 한 명의 재선 시장을 제외하고 도훈을 포함한 여섯 명이 모두 지난 선거에서 처음 당선된 이들이었다.

“김 시장, 시장 되기 전에 공직 경험 없죠?”

“네. 회사원 생활 3년 정도 한 적 있지만, 공직은 경험이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김 시장에게서 공직자 분위기가 아주 진하게 느껴져요. 허허, 관록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너무 띄워주시네요.”

“빈말 아니에요. 내가 김 시장 나이 때는 지시받은 업무 처리하러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김 시장은 매사에 여유가 있어요. 부러울 정도로 말이죠.”

“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정말 부럽다는 표정인 윤길현은 전전전 정부 때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한 적이 있었고, 이후 도의원을 거쳐 이번에 처음 시장이 됐다.

“윤 시장은 마흔 넘어서도 여유 없었어.”

“맞아요. 도의회에서 제일 바쁜 척한 게 누군데.”

“그랬어? 나한테는 맨날 술 사달라고 전화했었는데.”

윤길현을 제외한 이들도 대개 50대 초반으로, 공직 경력이 긴 사람이 거의 없었다.

- 그래서 그런지 물이 나쁘지 않아.

‘... 그렇습니까?’

- 오냐. 전혀 안 묻은 건 아니다만, 못쓰겠다 싶을 정도로 때 묻은 놈들은 아니야.

‘다행이네요.’

아까부터 도훈의 등 뒤 허공에 자세를 잡고 앉아 단체장들의 관상을 살피던 조상님의 말이 아니더라도 도훈이 안 좋은 느낌을 받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 물론, 전부가 그런 건 아니다.

‘... 저도 압니다.’

마침, 도훈의 느낌상 소수에 속하는 사람이 입을 열었다.

“지역 뉴스에 대흥시 얘기가 꽤 자주 나옵디다.”

“뭐, 그랬죠.”

“아주 박진감 넘치는 곳인 모양이에요, 대흥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활력은 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일은 할 만해요?”

“열심히는 하고 있습니다.”

피식.

비웃음에 가까운 웃음을 머금고 문제의 남자가 작게 중얼거렸다.

“뭐, 초심자의 운이라는 게 정치판에도 있기는 있는 모양이네.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작지만 마주 앉은 도훈이 듣기에는 충분한 소리.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의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빈정거림에 가까운 말이었다.

‘... 실장님이 이 순간을 예언하신 건가 보네.’

속으로 중얼거리는 도훈의 담담한 눈 안에서 이 자리에 유일한 재선 단체장의 대머리가 조명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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