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반짝반짝 빛나는… 1.
운계면 주민센터 옆 주차장 땅을 시청에서 매입한 건 시청과 시의회뿐 아니라 운계면 주민들 사이에서도 꽤 화제가 됐다.
“진짜?”
“그렇답니다. 도장 꽝 찍었대요.”
“서명운동 영향인가?”
“에이, 설마요. 그거 끝나지도 않았잖아요. 영향이 있으려면 서명받은 걸 시청에 가져다 보여준 다음이어야죠.”
“하긴, 시청 쪽에서 일절 반응이 없었지. 그래도 모르잖아?”
“글쎄요. 그거 받고 다니던 사람들 언젠가부터 잘 보이지도 않던데···. 여하튼 잘됐지 뭐에요.”
“그러게.”
시민들이 땅 매입을 반가워하는 쪽이었다면, 시청과 시의회에서는 그 건에 관련된 다른 화제가 더 관심을 모았다.
“아주 아득바득 싸웠다던데요?”
“제가 직접 봤잖아요. 사람들이 다 보는데 두 사람이 고성에 막말에···. 그 장 의원님 외사촌이라는 여자분이 장 의원 멱살 붙들고 고래고래 고함치는 게···. 어휴, 친척이 아니라 원수가 따로 없더라고요.”
장민호와 이혜미가 청사 옆 자판기 앞에서 대판 싸움을 벌인 건 꽤 널리 화제가 됐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평일 출근 시간이 갓 지나 시청에도 시의회에도 사람이 많았고, 싸우는 두 사람의 목소리는 멀리까지 들릴 정도로 아주 컸으니까.
“여자분이 장 의원 미쳤다고 그러더라니까?”
“너 때문에 땅값을 제대로 못 받았다나 어쨌다나···. 하여간, 참 가관이었어요.”
“우리 추측대로 그 사람들이 시장님 헛소문 배후였겠죠?”
“모르죠. 어쨌든, 시에서 생각보다 훨씬 싸게 그 땅 매입했으니 헛소문이고 뭐고 그 작전은 실패한 거죠.”
“그렇죠. 그게 중요한 거죠.”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이성을 잃은 외사촌과 싸운 장민호는 한동안 시의회에 나타나지 않았다.
귀신이라도 씌었는지 잡담을 아주 심각한 대화로 들었던 것에 대한 뒤늦은 충격 때문이기도 했고, 잘못된 정보를 전해 배신한 게 아니냐는 외사촌들의 추궁 때문이기도 했다.
시세보다 10% 저렴하게 문제의 땅을 매입 계약을 체결한 시청도 잔소리를 듣긴 해야 했다.
“예산이 한두 푼 들어가는 일도 아닌데, 너무 독단적으로 일을 벌인 거 아닙니까? 아무리 과거 시의회에서 재차 공감한 사항이고, 접근성 좋은 현재의 위치에 주민센터를 새로 지을 좋은 기회였다고는 쳐도, 의회 하고는 사전에 한마디 상의조차 없었잖아요? 아주 우려스러운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도훈을 시의회 발언대에 세우고 차혜진이 따졌다.
물론 협의는 필요하겠지만, 주민센터 신축과 관련한 내용은 과거 모든 시의회에서 추인하고 신속한 사업집행을 촉구했던 사업임에도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훈도 별다른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 너무 좋은 기회였고 시간이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주민센터 확장 신축 세부 계획을 세울 때는 의회와 긴밀히 상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도훈의 반응에 차혜진은 의외라는 표정이긴 했지만, 더는 추궁하지 않았다.
그녀 자신도 주민센터 확장 신축이 시청은 물론 운계면 주민들이 오래전부터 원했던 일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으니까.
“도대체 어떻게 계약이 가능했던 겁니까? 전임 시장들도 다 매달렸지만, 끝내 고개만 내젓고 물러났는데.”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묻는 안준식에게 도훈은 담담히 웃으며 답했다.
“그냥 운이 좋았던 겁니다. 땅 주인의 사정이 급했다니까 말입니다.”
아무리 계획을 잘 짰다고 한들, 자금이 쪼들린 땅 주인이 ‘작전’까지 써가며 급매에 나서지 않았다면 전혀 소용이 없었을 터.
그런 면에서 도훈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물론, 그 말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 이도 있었다.
- 그래도 일등공신은 나 아니겠냐?
“틀린 말씀은 아니죠. 그래서 이번에 제사상 거하게 받으셨잖아요.”
- 쩝, 더 거할 수도 있었는데.
“... 이번에 거의 보통 때의 두 배가 들었습니다.”
장민호에게 빙의해 서명운동과 헛소문으로 시청을 압박하라는 아이디어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도, 나중에 또 빙의해 도훈과 안준식의 잡담을 주민센터 이전이라는 심각한 대화로 인식하게 한 것도 조상님.
당연히 그 일에 대한 ‘보상’으로 거한 제사상을 받았는데, 입맛을 다시는 걸 보고 도훈은 어이가 없었다.
오래 묵은 과제 하나를 해결했다고 일이 줄어드는 건 절대 아니었다.
“여하튼, 당장 내년 예산에 주민센터 신축 관련한 거 반영해야 하니까 또 일이 쌓였습니다.”
“... 어쩔 수 없죠. 즐겁게 해야죠.”
“그렇죠. 안 되는 것보다 되는 쪽이 좋으니까요. 여하튼, 이번 건으로 협조 구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시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실장님.”
주민센터 신축은 대흥시 예산만으로 가능한 사업이 아니다.
대흥시가 부담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겠지만, 특별교부금 같은 국비는 물론이고 가능하면 충남도로부터도 지원을 받아야 할 터.
당연히 중앙정부와 도에 해당 사업의 필요성을 재확인받고 예산을 타내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래서, 땅 매입을 마친 도훈은 제일 먼저 지역구 국회의원인 김용진과 대흥시를 지역구로 하는 도의원에게 연락부터 했다.
- 저도 얘기 들었습니다. 그 안건, 몇 년째 시장님들 골치 아프게 했던 일인데 드디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네요.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런 때 지역구 국회의원이 발 벗고 나서야죠.
- 축하드립니다, 시장님. 도에서 예산 지원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두 사람에게 긍정적인 답변을 들은 도훈은 기획감사실에 운계면 면사무소와 협의하고 주민 의견을 수렴해 새 주민센터 설계공모를 진행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렇게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10월 셋째 주 수요일.
출근한 도훈이 비서실 소파에 앉아 일정표를 보고 있는데 두진이 입을 열었다.
“오늘 오후에 도청에서 선발대 옵니다.”
“아, 시장, 군수 회의요?”
“네.”
내일 오후 대흥시청에서 도지사 주재하에 두 번째 충청남도 시장, 군수 회의가 열릴 예정이었다.
“준비는 다 됐죠?”
“아시다시피 저희가 할 건 딱히 없습니다. 선발대가 쓸 사무실에 컴퓨터랑 프린터, 복사기 같은 것 준비해 주는 게 거의 전부였으니까요. 선발대가 오늘 자기들 숙소도 알아서 다 잡았더라고요.”
“몇 명이 옵니까?”
“민세경 과장까지 네 명입니다. 우리 자치행정과에서 직원 둘이 지원하기로 했고요.”
“... 흐음.”
첫 회의 때 인사했던 충남지역 기초자치 단체장들의 면면을 떠올리며 도훈이 침묵했고, 영배가 질문을 던졌다.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아니, 그게···. 그간 그 회의에 대해 별생각이 없어서 잊고 있었는데, 분위기가 괜찮을지 신경이 쓰이네요.”
“분위기라뇨?”
“거기 여당 소속이 다수고 몇몇 대자당 소속 단체장들이 있거든요. 첫 미팅은 서로 간을 보는지 어쩐지 좀 지나치게 인사성 밝은 자리였습니다. 이번 회의는 어떨까 싶어서요.”
“별일 있을까요? 국회도 아닌데···.”
영배의 말에 이어 정임이 끼어들었다.
“흠, 아무 일 없으라는 법도 없죠. 야당 소속 단체장들 그간 꽤 시달렸을 테니까요.”
“... 시달려요?”
“어디든 기초 의회 다수가 여당이잖아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야당 소속 단체장님 중에 시의회랑 사이좋게 지내는 분은 거의 없을 걸요?”
“아하?”
“임기 초 탐색전도 끝났을 테고, 본격적으로 서로 견제하기 시작했을 텐데, 국회 정도는 아니더라도 지방 의회도 만만찮아요. 뭐, 우리 대흥시 의회는 그래도 양반이라고 할 수 있죠.”
정임의 말에 도훈과 영배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표정이었다.
두진이 말없이 웃고만 있는데, 영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모든 의원님이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 의회는 의장님부터 시작해 다수 의원이 시장님과 최소한 대화는 되잖습니까. 시장님이 무소속인데도 말입니다.”
“그렇죠. 대화는 되죠.”
“네. 우리는 형편이 좋은 겁니다. 그리고 다른 곳은 우리 대흥시 같지 않은 상황일 확률이 높죠. 단체장이랑 의회 다수파가 서로 소속이 다르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기거든요.”
이번엔 정임이 영진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그런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면 은연중이든 의도적이든 밖으로 표출되기 마련이거든요.”
“......”
“회의 끝나고 회식까지 하잖아요? 술, 그게 괜히 요물이 아니죠.”
“......”
초짜인 도훈과 영배보다 두진과 정임, 영진이 시장과 시의원을 많이 겪어본 건 틀림없는 사실.
웃고만 있던 두진이 상황을 정리했다.
“뭐, 크게 신경 쓰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회식 때 너무 긴장 풀지는 마십시오.”
도훈을 비롯한 모두가 두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무슨 일 있겠어?’하는 심정에서였다.
그리고 그런 모두의 예상은 여지없이 틀려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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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오후, 대흥시청 소회의실.
“이 정도로 오늘 회의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도지사 강정문이 회의 종료를 알리자 시장과 군수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가나다’ 순으로 자리한 단체장 사이에서 박수를 치는 도훈은 나름 속으로 감탄한 상태.
‘괜히 4선 의원 출신이 아니네.’
당선 후 나름 강정문과 개인적인 인연이 생긴 도훈이었지만, 그를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좀 능글맞으면서도 실속은 확실히 챙긴다는 정도?
국회의원에 4번이나 당선된 사람이니 당연히 능력은 어느 정도 이상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과연’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회의가 도청에서 열리지 않아서 회의 안건으로 오른 문제를 담당하는 부서 간부 대부분이 참석하질 못했다.
상견례 의미가 컸던 지난 회의와 달리 이번에는 본격적인 논의와 토론이 필요한 안건이 상당수임에도.
그런데도 강정문은 질문이나 의견을 받을 때마다, 스스로 해당 안건의 세세한 부분까지를 언급하며 아주 능숙하게 회의를 진행했던 것이다.
“아이고, 장 군수. 가긴 어딜 갑니까? 밥은 먹고 가야지요.”
“오 시장님. 뒤풀이에 참석하실 거죠? 안 그러면 섭섭합니다, 하하하.”
어느새 야당 소속 단체장들을 쫓아다니며 챙기고 있는 강정문의 모습에 도훈은 혀를 내둘렀다.
어떤 이에게는 아주 친근하게, 어떤 이에게는 격식을 갖췄으면서도 아주 부드러운 강정문.
‘천상 정치인이네.’
도훈이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시장님.”
“아, 민 과장님.”
어제 선발대로 왔으나 민세경이 회의 준비로 바빠 잠깐 얼굴만 보고 넘어갔었다.
왠지 급하고 초조해 보이는 표정의 민세경이 도훈에게 작게 속삭였다.
“죄송한데, 도지사님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무슨 말씀이세요?”
“야당 단체장님들이 뒤풀이 안 하고 그냥 가시겠다고 갑자기 그러시네요.”
“네 분 전부요?”
“네. 아마···.”
“자기들끼리 미리 얘기한 모양이군요.”
지난 지방선거 결과 충남의 기초단체장 중 야당 소속은 단 넷으로 줄었다.
그 전에는 제1야당인 대자당 소속 기초단체장이 전체의 반 이상이었던 걸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라 할 터.
이 결과는 일부 지역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이 비슷한 양상이었기에 야당들은 ‘민심’이 두렵다며 뼛속까지 반성하고 성찰하겠다 입을 모았었다.
하지만, 넉 달이 지난 현재 국회 등 중앙정치판은 물론 지역에서도 야당은 여당에 각을 세우고 있었다.
야당 소속 단체장들이 뒤풀이에 불참하겠다고 하는 건 아마 그 연장선일 터.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장님.”
“천만에요. 여기 제 구역이잖습니까.”
민세경에 담담히 웃어 보인 도훈이 강정문과 야당 소속 단체장들에게 다가갔다.
“...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요. 죄송합니다, 도지사님.”
“허허, 이거 준비한 사람 성의를 봐서라도···.”
“그러게 말입니다. 이 동네 사람으로서 아주 서운해지려고 하네요.”
고개를 빳빳이 세운 야당 소속 단체장들과 도지사 사이에 도훈이 끼어들었다.
“저희가 회의 내용은 도울 게 별로 없었지만, 식사랑 뒤풀이는 다릅니다. 아주 신경 많이 썼단 말입니다. 그런데, 야당 단체장님들이 이렇게 나오시면 정말 서운합니다.”
“아, 그게···.”
“네 분이 뜻을 같이하시는 건 압니다만, 이런 때까지 그러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커, 커험.”
네 단체장이 머쓱한 표정을 했고, 강정문이 묘한 표정에 기대감 어린 눈빛을 했다.
“설마, 제가 야당 소속 아니라고 대흥에서 하는 뒤풀이 참가 안 하시려는 건 아니시죠?”
웃으며 말하는 도훈은 추궁하는 게 아닌 살살 달래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흠!”
“오늘 식사하실 곳 우리 대흥에서도 아주 맛있기로 소문 난 집입니다. 그냥 가시면 후회하실 텐데요?”
“맞아요. 나랑 김도훈 시장이 정말 정성껏 준비했단 말입니다. 성의를 봐서라도 식사는 하고 가요.”
“......”
야당 단체장 넷을 향해 서글서글하게 눈을 빛내는 강정문과 그 옆에서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지만, 거절은 사양하겠다는 태도인 도훈.
저만치서 도훈을 바라보는 민세경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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