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68화 (69/279)

68. 꼼수가 항상 묘수인 건 아니다 - 1.

도훈이 소문에 대해 접하고 이틀이 지난 목요일 낮.

“안녕하십니까.”

“아, 예. 안녕하세요, 의원님.”

“요즘 운동 열심히 하시나 봅니다. 얼굴이 좋아지셨어요.”

“하하, 뭐 꾸준하게는 합니다.”

안면이 있는 지역 주민과 화기애애하게 인사를 주고받는 시의원 장민호.

그의 미소가 워낙 자연스러워 악수하던 주민이 물을 정도였다.

“뭐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아이고, 별 게 있겠습니까? 이렇게 주민들과 인사하는 게 좋은 일이죠.”

천연덕스럽게 이유를 갖다 붙였지만, 실제로 그는 요즘 기분이 좋았다.

외사촌 동생과 일로서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긴 했지만, 그가 조언한 일이 효과를 보는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주되게는, 그 와중에 얄미운 누군가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제법 크게 돌고 있어서이기도 했다.

‘좀 더 자근자근 씹히면 정말 즐거울 텐데.’

추석 연휴에 잠깐 만났던 외사촌 여동생은 땅 문제로 마음이 급했다.

대리인인 여동생이 마음이 급한 건 역시 장민호의 외가 친척인 땅 주인이 급전이 필요해 그녀를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 아, 밥도 뜸을 들여야 맛있게 되는 거잖아. 그런데 지금껏 여유 부리더니 뭣 때문에 그런지 갑자기 빨리 팔아치우자고 난리야. 나한테 빨리 처리 못 해줄 거면 다른 중개인 구한다고까지 하더라니까?

여동생이 장민호를 붙들고 하소연을 한 건 그가 좀 나서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터.

그러나 명색이 시민의 대표인 시의원이 아무리 외가라도 친척의 일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는 건 욕 먹기 딱 좋은 일일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그간 시청 쪽에서 골칫거리로 여겼던 땅 매매 문제는 단순히 욕먹는 수준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몇 마디 ‘조언’을 해주는 선에서 발을 뺐다.

‘의장부터 시작해서 시장에 호의적인 인사들이 당내에 무척 많단 말이지.’

도훈이 뚜렷한 정치색을 드러낸 적이 없지만, 대강의 정책 방향만 봐도 진보적 입장을 가졌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장민호 본인과는 좀 생각의 차이가 있지만, 여당의 젊은 사람들과는 그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을 터.

게다가 여야를 막론하고 시장 정도 되면 정치권에서 생활한 닳고 닳은 ‘정치꾼’의 면모를 조금이라도 갖기 마련인데, 젊고 초짜인 시장은 전혀 그런 면이 없었다.

생각이 비슷하고 허울보다 실체에 관심이 많으니 자연스레 ‘협력’이 될 수밖에.

‘... 내가 어쩌다 양상택, 서기태랑 어울렸다가···.’

시의원이 되기 위해 여당 지역위 ‘고참’이라고 할 수 있는 양상택, 서기태와 가깝게 지냈던 장민호.

선거를 치르고 난 뒤에야 고참이 꼭 좋은 게 아닌 새로운 흐름에 밀려나는 구시대의 ‘유물’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뒤늦게 태세 전환을 노렸지만, 운 나쁘게도 외사촌의 일을 도와주려다 조례 개정 건으로 시장과 감정이 생겼다.

실제로는 도훈은 장민호에게 전혀 유감이 없었지만, 장민호는 달랐다.

‘... 왠지 얄밉단 말이지. 나이도 어린 게 싸가지까지 없고 말이야.’

안준식 의장을 비롯해 민의당 소속 시의원 중 도훈과 관계가 나쁘지 않은 이들은 모두 40대.

반면에, 올해 54세인 장민호는 도훈과 스무 살 가까이 나이 차가 났다.

세대 차도 세대 차지만 성격상 ‘새파란’ 시장에게 선뜻 가까이 갈 수가 없었던 장민호.

서기태야 이미 진즉부터 도훈이라면 눈에 쌍심지를 켰고, 대자당 차혜진은 도훈에게 시비를 걸었다 당하기를 반복하는 상황.

장민호도 고까운 마음에 한 번 나섰다가 된통 당할 뻔했으나 공개적인 망신은 다행히 면했다.

도훈이 장민호의 질문에 ‘비공개’로 답했던 건, 충격적인 영상에 개인 신원 문제도 있었으나 장민호를 배려한 것이기도 했으니 장민호는 도훈에게 감사해도 모자랄 일.

그런데도, 장민호는 전혀 도훈에게 고까운 마음이 줄어들질 않았다.

그래서 외사촌 여동생에게 기발한 방법을 조언했다.

‘이런 쪽의 일은 정치권에 묘수가 많으니까···.’

여동생에게 ‘민심’, 혹은 ‘소문’으로 시청을 압박하라고 조언한 장민호.

선거 때, 아니면 어떤 상황 변화를 노릴 때 민심을 모으고 소문을 퍼뜨리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전국, 혹은 대도시권과의 차이라면 그쪽은 온라인으로 해결되지만, 작은 대흥시에서는 ‘어르신’들을 통해야 한다는 것.

소도시라 해도 젊은 층 사이에서는 ‘이웃’이라는 개념이 많이 사라졌으나 어르신들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입소문이라는 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정말 무섭지.’

같은 어르신들이라도 대도시와 대흥시의 어르신들은 생활환경이 달랐다.

인구 5만이 안 되는 작은 도시, 그것도 어르신들의 환경은 절대다수가 도시보다 농촌에 가깝다.

그분들은 스마트폰을 활발하게 사용하기보다 마을, 혹은 동네 노인정 같은 곳에 빈번하게 드나들며 이미 친분이 깊은 이들과 어울린다.

당연히 온라인의 생경한 정보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이 효과가 훨씬 컸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선 장민호는 미소 띤 얼굴로 시민들과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입가에 접대성 미소를 머금은 그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데 뒤편에서 미소를 더욱 짙게 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시장이 땅 투기? 에이, 그게 말이 되냐?”

“당사자가 직접 한다는 얘기가 아니야. 그래서 가족이 나섰다던데? 구체적으로 시장 어머니가 부동산에 관심이 많대.”

“야,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이 작은 동네에서 그런 일을 해? 하, 그걸 믿는 네가 이상하다.”

“내가 믿는다는 게 아니야. 우리 아버지가 친구분한테 들었다고 하시더라고. 뭐, 나야 그럴 리 없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상당히 신빙성 있는 얘기 아니냐고 하시더라.”

장민호가 흘끔 하니 대화를 나누는 이들은 중년 남자들이었다.

소문이 진짜라고 믿는 것 같진 않지만, 어쨌든지 간에 저런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 ‘의심’의 씨앗이 뿌려지게 마련.

그리고 헛소문이라 해도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입에 여러 번 오르내리면 그 의심의 씨앗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게 될 터.

‘... 효과 좋구만.’

장민호가 속으로 득의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갑자기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소문, 전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개소리에요.”

‘어떤 놈이 초를···.’

미간을 찌푸린 장민호가 슬쩍 고개를 돌리니 대화를 나누던 남자의 옆 테이블에서 다른 남자가 말하고 있었다.

“뭐가 사실이 아니라는 겁니까?”

“내 동생이 시청에 근무해서 들은 건데, 복부인이라는 시장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이미 20년이 넘었답니다.”

“그래요?”

소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두 남자가 눈을 휘둥그레 크게 떴고, 장민호도 속으로 움찔했다.

시장 어머니가 예전에 죽었다는 건 장민호도 몰랐던 사실이니까.

끼어든 남자의 말이 이어졌다.

“시장도 지금 어딘지는 몰라도 빌라에서 투룸 전세를 산다는데 땅 투기할 돈이 있겠냐고 합디다.”

“... 아버지나 다른 가족이 나설 수 있는 건 아닙니까?”

“우리 어머님이 똑같이 질문했다가 동생한테 면박만 받았어요. 시장이 진즉에 자기 가족이든 친척이든 친구든, 시청에 연락하거나 직원에게 연락해 영향력 행사할 일 없을 거라고 단속했대요. 그런 사람 있으면 즉시 경찰에 신고하라고 했답니다.”

“흐음.”

“지금 시장 친구 하나가 비서실에서 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대요. 그 사람이 8급이랍니다, 8급. 말이 8급이지 말단 아니오?”

“아, 그렇대요?”

“네. 내 동생이 그럽디다. 매사에 원칙적이고 말단 직원한테도 공손하고 반말 한 번 하는 걸 본 적 없는 시장인데 왜 이런 헛소문이 도는지 모르겠대요. 소문대로 땅 투기 같은 걸 할 사람이라고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면 시청 직원들부터 그 소문에 화가 나지 않았을 거라고 합디다.”

남자의 말에 대화를 나누던 이 중 하나가 이채롭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직원들이 시장 헛소문 때문에 화가 났다고요?”

“그렇대요. 전부는 아니겠지만, 최소한 그런 직원이 반은 훨씬 넘을 거라고 장담합디다.”

“반이 훨씬 넘는다···.”

“웃긴 건, 정작 시장은 일절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답니다. 그런데 시장이 그러고 있으니 직원들이 더 열 받아서 어떤 놈이 어떤 불순한 목적을 갖고 소문을 퍼뜨렸는지 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대요. 오죽하면 공무원 노조에서 대신 경찰이나 검찰에 신고할까를 고민한다고 하겠소.”

“호오?”

“아무튼, 내 동생 얘기로는 그 헛소문 때문에 시청 직원들이 무척 열 받았대요. 일 잘하고 더 열심히 하려는 시장을 헛소문 같은 치졸한 수법을 써서 음해하는 놈을 꼭 잡아야 한다면서요.”

남자의 말에 소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두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동생이 시청 직원이라고 하셨는데, 그 동생분은 뭐 짐작 가는 게 없답니까?”

“있죠.”

“그게 뭡니까?”

“말 그대로 짐작이에요. 어디 가서 함부로 옮기지 말랍디다.”

“에이, 클라이막스에서 발을 빼시면 재미없죠.”

두 남자가 몇 번 더 재촉하고 나서야 동생이 공무원이라는 남자가 못 이긴 척 입을 열었다.

“그 소문에 운계면 주민센터 얘기 나오잖아요? 주민센터 신축 건으로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고 내 동생은 의심하더라고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러게. 그쪽이 좀 더 그럴듯한데?”

맞장구치는 두 사람에게 남자의 말이 이어졌다.

“시의원 중에 그쪽이랑 짝짜꿍이 맞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는 얘기도 있답니다.”

흠칫.

움찔한 장민호가 놀라 고개를 원위치시켰다가 더 크게 놀랐다.

어느새 음식점 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고 식사하던 사람들이 남자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어서였다.

장민호와 마주 앉은 민의당 지역위 소속 사람이 장민호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랐다.

이 가게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문제의 그 땅이 장민호의 외가 친척의 것이라는 걸 그는 알았으니까.

“커, 커험! 소문이 참··· 진짜보다 더 진짜 같네요. 안 그렇습니까?”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태연하게 웃고 있었지만, 가슴이 철렁한 장민호의 심장은 벌렁벌렁 뛰고 있었다.

이런 대화가 대흥시 곳곳에서 조금씩 점점 더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그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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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대흥시청 시장실.

- 흠, 직원들이 네 녀석이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예상하지 못했는데요.”

여론의 ‘대반전’까지는 아니지만, 돌고 있는 ‘땅 투기’ 얘기가 헛소문이라는 얘기가 급속히 퍼진다는 건 도훈도 보고를 받았다.

그 원인이 소문에 발끈한 직원들이 열성적으로 지인들에게 해명하기 시작한 때문이라는 데에 적잖이 놀랐기까지 했다.

- 직원들 덕분에 일은 좀 편해졌다만, 문제의 핵심은 이걸로는 해결 안 될 거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조상님이 장민호에게 빙의한 덕분에 이번 헛소문 소동의 원인, 목적, 범인 등은 이미 알아낸 도훈이었다.

- 어쩔 거야?

“고민 중입니다.”

엊그제 소문이 퍼진다는 걸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별의별 방법을 생각한 도훈이었다.

운계면 주민센터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것부터, 아예 임기 내에는 아무런 사업도 진척시키지 말까도 생각했었다.

조상님이 처음 제안했던 것처럼, 땅 주인에게 잠깐 빙의해 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생각해봤는데 왠지 그 방법들 모두가 뭔가 부족한 것처럼 느껴졌다.

“뭐가 부족한 걸까요?”

- 글쎄다. 상대에 대한 응징?

“... 그럴까요?”

- 원흉이 땅 주인, 대리인, 그 의원 놈의 셋이라고 봤을 때 땅 주인이 목적했던 것만큼 돈을 못 번다는 것 말고 손해 보는 게 없잖아.

“... 흐음.”

곰곰이 생각하는 도훈을 바라보며 조상님이 혀를 찼다.

- 쯧쯧. 꼼수도 써본 놈이 쓰는 거라니까.

“맞는 말씀이죠. 하지만 제 잔머리도 웬만한 사람 못지 않습니다.”

- 뭐 좋은 생각이라도 났냐?

“이러면 어떨까 싶습니다.”

- 어떻게?

도훈의 차분한 설명을 듣는 조상님의 표정이 이렇게 저렇게 변하더니 마지막에는 살짝 감탄한 표정이 됐다.

- 꼼수 면에서는 네가 나보다 낫다.

“그냥 잔머리라고 해주세요. 꼼수보다는 그쪽이 낫네요.”

- 어찌 됐든, 그걸로 할 거야?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묻는 조상님에게 도훈이 진득하게 웃으며 답했다.

“네.”

그렇게 도훈의 은밀한 반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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