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67화 (68/279)

67. 해묵은 과제 - 2.

“흐음, 이때 할 수 있었네. 아무리 봐도 이때가 딱 좋았네.”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아, 대흥시 생기기 직전에 금산군에서 운계면 주민센터 신축 계획이 있었어.”

“금산군? 도대체 언제 얘기야?”

“11년 전이다.”

“... 헐.”

빨간 날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에 나와 자료를 보고 있던 도훈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했다.

현안은 두루 꿰고 있다고 쳐도 제대로 짚어보기 위해 옛 자료까지 다 살피고 있다지만, 11년 전은 너무 갔다 싶었으니까.

도훈은 대흥시가 생긴 이후의 계획부터 보고 있어서 건너뛴 부분을 영배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읽고 있었다.

“그땐 왜 무산된 거야, 형?”

“이렇게 쓰여 있다. 행정구역 분리가 예상되므로 군 예산을 대규모로 투입해 신축할 필요성에 강한 의심이 든다고.”

“... 돈 들여도 우리 거 안될 거니까 넘어갔다는 얘기구만?”

“그런 셈이지.”

“행정이 됐든 뭐가 됐든 좀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실행해야 하는데···. 그때 해결 안 하고 넘어가니 지금은 훨씬 일이 힘들게 됐잖아.”

“그러게 말이다.”

영배가 맞장구를 치며 돌아보니 도훈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뭘 보고 있기에 그렇게 인상을 쓰냐?”

“대흥시 생기고 처음 주민센터 신축 추진할 때 경과보고서 보고 있어.”

“그게 왜?”

“... 그 공터 땅 주인이 요구하는 땅값이 점점 올라.”

“뭐?”

“이때 세 번 만나서 교섭했는데 처음엔 시세보다 20% 비싸게 불렀는데, 마지막엔 50%를 더 달라고 했다네.”

“... 그래도 지금보다는 싸네.”

영배의 말에 도훈이 미간을 찌푸린 그대로 답했다.

“지금보다 쌌다고 해도 이런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었겠지. 내가 이때 시장이었어도 안 하겠다.”

“하긴···.”

대흥시가 생긴 이후로 시가 ‘작심’하고 주민센터 신축을 추진한 게 세 번.

그중 한번은 현 위치가 아닌 다른 곳으로 신축 이전을 검토했고, 다른 두 번은 현 주민센터 옆 주차장을 매입해 확장 신축을 검토했다.

확장 신축은 주차장 매입 비용 부담이 커서 무산됐고, 이전 신축은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주민들의 반대 의견이 높아 무산됐다.

아무리 대흥시 중심가라고 해도 대도시 외곽보다 땅값은 매우 싸다.

하지만, 평균 시세보다 훨씬 높은 비용을 주고 매입하는 건 아무리 사정이 급해도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나저나 그 주차장 땅 주인도 참 끈질기다. 10년이 넘게 이러고 있다는 거잖아.

“중간에 땅 주인 바뀌었어. 원래 주인은 돌아가시고 아들이 상속했다네.”

“그래? 그럼 2대째 그러고 있다는 거야? 아니, 그 땅에 무슨 사연이라도 있대?”

“그런 얘긴 없어. 경과보고서 다 살펴봤는데, 온갖 사소한 얘기 다 적어놨는데 별로 특별한 건 없네.”

“그럼 시세 차익을 목적으로 계속 버틴다는 거네?”

“그런 것 같아.”

“하! 답 없네, 이거.”

영배가 혀를 끌끌 차고는 다시 서류에 시선을 옮겼고, 두 사람이 하는 양을 곁에서 지켜보던 조상님이 입을 열었다.

- 그냥 나 써먹어. 그럼 쉬울 거 아니냐?

‘... 안 그래도 고민 안 해본 게 아닙니다. 하지만, 그건 사기나 다름없잖아요.’

- 인마. 그럼 땅값 두 배 달라는 놈은 정상이냐? 내가 보기엔 그쪽이 더 사기 같다.

‘... 쩝.’

가장 최근에 시청이 땅 주인 측과 협상을 한 게 만으로 2년이 조금 넘었다.

당시 협상은 땅 주인의 대리인이 시세의 2배를 요구하며 결렬되었고, 그 대리인이 장민호 의원의 외가 쪽 사촌 여동생이었다.

주민센터 신축 및 주민 복지 공간의 마련이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대도시 땅값에 비하면 문제의 주차장 땅이 훨씬 저렴하다고 해도, 시세의 2배를 주고 사는 건 분명 합리적이지 않다.

더군다나 민선 자치단체장이 그런 결정을 하는 건 구설수 수준을 넘어 경력에 흠이 될 수도 있다.

‘... 일방적으로 유리한 쪽이 배짱을 튕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야, 이건.’

도훈은 문제의 주차장 부지를 포함한 현 주민센터의 확장 신축은 답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땅 주인 쪽은 주민센터의 확장 신축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쓸 거라는 것도.

‘... 이거 서명운동이 무슨 연관이 있는 줄 모르겠지만, 단순히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겠는데···.’

도훈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영배가 말을 걸었다.

“접촉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

“접촉? 누구랑?”

“누구긴 누구야? 땅 주인이지.”

도훈이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이런 상황이면 우리가 먼저 만나자고 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 기만 살려줘.”

“쩝. 하긴···.”

도훈과 영배가 그렇게 마주 앉아 인상을 쓰고 있는데 도훈의 핸드폰이 울렸다.

액정을 확인한 도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정임 씨.”

- 시장님, 어디세요? 사무실이세요?

“네. 그런데요.”

- 저 지금 시청에 거의 다 도착했어요.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 무슨 일인데 그래요?

- 뵙고 말씀드릴게요. 실장님도 지금 나오시는 중일 거예요. 끊겠습니다.

뚝.

통화를 마친 도훈의 표정이 묘했기에 영배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래? 정임 씨가 뭐라고 했기에?”

“그게 와서 말해준다는데?”

“뭐?”

“시청에 거의 다 도착했대. 실장님도 나오신다는데?”

“......”

도훈과 영배가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데, 두진과 정임이 차례로 비서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두진은 자초지종은 모르고 연락을 받고 달려온 듯 정임을 향해 궁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상기된 표정의 정임에게 도훈이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시장님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어요.”

“... 소문··· 이요?”

“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기에 도훈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는데 잔뜩 미간을 찌푸린 정임이 말을 이었다.

“안 좋은 소문이에요.”

“정임 씨나 실장님이 이렇게 연락도 없이 나오실 정도면 당연히 안 좋은 소문이겠죠. 도대체 뭔데 그래요?”

담담한 도훈을 향해 정임이 입을 열었다.

아주 얼토당토않은 이야기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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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비서실 소파에 도훈과 직원들이 둘러앉은 가운데 정임의 이야기가 막 끝났다.

도훈은 물론, 영배와 두진도 무척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문을 잃은 가운데, 먼저 입을 연 것은 영배였다.

“... 그러니까 우리 시장님이 주민 자치센터 신축 건으로 땅 투기를 하려고 한다는 거죠?”

“네. 현 위치에서 확장 신축하는 건 이미 포기했고 다른 부지를 찾아 시장님이 미리 사놓았다가 시청에 비싸게 되팔려고 한다는 거예요.”

“... 허허.”

제일 어이없다는 표정인 두진이 헛웃음을 흘리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 말 같지도 않은 헛소문을 사람들이 믿는단 말이야?”

“대부분 안 믿겠죠.”

“그런데 자네 왜 그렇게 다급하게 내게 연락한 거야? 그 헛소문이 무슨 영향이 있으니까 그랬을 것 아닌가?”

두진의 말에 정임이 한숨을 내쉬고 답했다.

“이 헛소문이 주로 어르신들 사이에 돌고 있는 모양이에요. 저도 옆집 할머니가 물어보셔서 알았는데, 그 할머니는 노인정에서 들으셨대요.”

“어르신들?”

“노인정?”

다들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인 가운데, 정임이 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이런 얘기를 조금만 이성적으로 판단해 보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는 건 너무나 명확해요. 하지만, 그건 주로 젊은 사람들의 반응이겠죠. 어르신들 세대에서는 공무원들도 별의별 해괴한 짓을 많이 했잖아요.”

“......”

“이건 그냥 저의 판단일 뿐이지만, 지난 선거 때 시장님 찍은 이들은 대부분 젊은 사람들일 거예요. 그들은 시장님께 관심을 가졌던 만큼 이런 얘기가 악의적인 헛소문일 거라는 판단도 하겠죠. 하지만, 어르신들도 과연 그럴까요?”

두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도훈과 영배가 시선을 마주했다.

“소문은 시장님이 땅 투기를 하려고 한다는 게 전부가 아닌 것 같아요.”

“... 다른 것도 있다고요?”

“땅 투기를 직접 할 수 없으니까 가족 명의로 땅을 알아본다는 얘기도 있대요.”

“... 가족이요?”

“예. 옆집 할머니 말씀으로는···, 대단히 죄송한데 시장님 어머니가 등장하신대요.”

“... 하하.”

두진과 영배가 심각한 표정을 했고 당사자인 도훈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도훈 본인은 물론, 아버지도 땅 투기 같은 건 생각도 해본 적이 없거니와 어머니는 진즉에 돌아가시지 않았던가.

하지만, 시민들이야 도훈의 개인 성향이나 사정, 가족사항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 못하니 소문이 도는 것일 터.

“... 이것 참 악랄하네.”

두진이 성질 난 표정으로 중얼거렸고, 영배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명운동’은 모르겠지만, 돌고 있다는 헛소문이 뭘 노린 것인지는 분명했다.

혹시 주민센터를 현재의 자리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려 한다면, 헛소문을 통해서라도 여론을 움직여 그 계획에 차질을 주겠다는 목적일 터.

거기에 도훈 개인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는 건 덤이랄까?

“... 혹시 전에도 주민센터 문제로 이런 소문이 돈 적 있습니까?”

“아뇨. 그런 적 없습니다.”

도훈의 질문에 답한 두진이 생각을 정리하는 듯 미간을 좁히고 말을 이었다.

“장 의원이 전에는 시의원이 아니라 시의원 희망자였잖습니까. 그러니 본인이 됐든, 본인 친척이 됐든 시장이나 여당 지역위 사람들과 척을 질 정도의 일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최소한의 제어 장치 역할을 했겠죠.”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고 영배가 말을 받았다.

“장 의원은 이미 시의원이 됐고 시장님은 지금 여당 소속이 아니니까 지금은 이렇게까지 한다는 겁니까?”

“내 짐작은 그래. 그리고 이건 그냥 추측인데, 아마 장 의원 본인은 뒷짐 지고 있을 뿐 이 일에 개입하지 않았을 거야. 다만 만류하지 않는 게 전과 달라진 것이겠지.”

“흠···.”

얼굴이 무표정하게 변한 도훈이 가만히 손가락으로 소파 팔걸이를 두드렸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물증 없이 짐작만으로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 신빙성은 최소한 51%는 되어 보였다.

직접적인 이해 관계자가 아닌 바에야 이렇게까지 ‘뻔한 거짓말’을 유포시킬 필요가 없으니까.

도훈이 말없이 손가락만 두들기고 있자, 얼마간 모두가 침묵하다가 두진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시장님?”

“아직 확인된 건 하나도 없는 걸요.”

“그래도 의도가 너무 명백하잖습니까? 경찰에···.”

“물증이 없잖습니까.

“......”

“저도 좀 추측되는 게 있는데, 그건 땅 주인 쪽이 이런 방법을 쓸 정도로 급한 게 아닐까 하는 겁니다.”

“... 흐음.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도훈이 시장이 된 뒤로 운계면 주민센터 신축은 시정과제로 내부적 검토만 됐을 뿐, 본격적인 논의조차 한 적이 없었다.

당연히 땅 주인과 만난 적도 없어 여전히 땅값을 시세의 두 배나 받길 원하는지 아닌지도 몰랐다.

그런 판국에 서명운동에 헛소문까지 내가며 시청을 압박한다는 건, 뭔가 상대방에게 사정이 생겼다는 게 아닐까?

‘... 좀 알아봐 주세요.’

- 내 네 녀석이 그 소리 할 줄 알았다. 인마, 아깐 내가 나선다고 해도 만류하더니?

‘아까는 아까고 지금은 지금이죠. 누군지는 몰라도 반칙을 하고 있잖습니까.’

- 몰라, 인마. 정 날 움직이고 싶으면 다음 제사상에 메뉴 두 개 추가다.

‘... 이 판국에 그런 얘기가 나오세요?’

- 이런 건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나중에 딴소리가 안 나오거든. 어때, 추가야 아니야?

‘... 알겠습니다.’

조상님과의 협상을 마친 도훈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죠. 유포자가 확실하지도 않고, 그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도 불확실하니까요.”

“... 하지만···.”

“그냥 뜬금없는 헛소문이 잠깐 돌다가 그칠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두진이 말끝을 흐렸고 도훈이 담담한 표정으로 결론을 내렸다.

“일단 당장은 헛소문에 신경 쓰지 말고 우리 일이나···.”

위이이잉!

도훈의 말이 끊긴 건 업무용 핸드폰이 울렸기 때문.

발신자를 확인한 도훈은 직원들에게 눈빛으로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네, 홍 주무관님.”

- 시장님, 제가 방금 이상한 소문을 들었는데요. 아, 글쎄···.

영진이 살짝 성질 난 목소리로 정임이 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소문’을 언급했다.

홍영진과 통화하는 도훈 입가의 쓴웃음이 점점 더 진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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