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매사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다 - 2.(유료연재 시작)
금요일 밤 내내 연락이 되지 않던 안준식과 도훈이 만난 것은 토요일 오전.
두 사람이 만난 곳은 시청이나 시의회가 아닌 안준식의 집 인근 커피숍이었다.
“... 진짭니까?”
“네.”
개인적인 일로 지난밤 대전에 다녀왔다는 안준식은 도훈의 말을 듣고 놀라 오히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군지는 모르시고요?”
“그것까지는 비서실장님도 못 들으셨답니다.”
“... 허.”
“지금 놀라고 충격받아야 하는 사람은 의장님이 아니라 접니다. 처지가 바뀌었다는 생각 안 드세요?”
“......”
도훈의 냉랭한 말에 안준식은 두어 번 눈을 깜빡이고는 말을 이었다.
“저··· 시장님. 제가 연락 못 받은 게 좀 죄송하긴 한데요. 하지만, 비서실장님 말이 꼭 사실이라는 근거가 없잖습니까.”
“그걸 확인하려고 하는 거잖습니까. 제가 어제 몇 번이나 전화한 줄 아세요?”
“... 여덟 번이던데요.”
“......”
도훈이 ‘지금 나랑 말장난하냐?’라는 눈빛으로 쏘아보자 안준식이 머쓱하게 웃었고, 도훈이 말을 이었다.
“설마 의장님이 저 속이신 건 아니죠?”
“저요? 제가 뭘요?”
“의장님부터 속으로는 조례 개정에 반대하고 계신 거 아니냐고요.”
“에이, 장난칠 게 따로 있지. 어떻게 이런 걸 갖고 장난을 칩니까? 안 그래도 올해 선정된 위원들 사이 안 좋다고 말 많은데.”
정색하는 안준식의 얼굴에서 도훈은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수요일에 저랑 이 얘기로 대화하실 때 분명 민의당 의원은 전부 찬성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억하십니까?”
“물론입니다. 이 조례 개정안, 우리 당 의원들 회의에서 정식 안건으로 논의했었고 별다른 반대 없이 넘어간 거라고요.”
“그 이후로 더 논의하신 적은 없습니까?”
“공식적으로는 없죠. 회의도 없었···.”
이야기하던 도중에 뭔가 떠오른 듯 말을 멈춘 안준식.
“... 뭔가 짚이는 게 있으신 거죠?”
“아니, 그게··· 짚인다기보다···.”
“뭔데 그러십니까?”
“잠깐만요.”
도훈을 제지하고 뭔가를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안준식은 한참 만에 말을 이었다.
“장민호 의원이 서기태 의원과 지난주 내내 붙어 다녔습니다. 제가 본 건 아니고 송 의원이랑 밥 먹다가 지나치듯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
“정확하게는 장 의원이 서 의원을 계속 쫓아다닌다는 거였죠.”
“장민호 의원님이요?”
“네.”
장민호는 민의당 소속 초선 시의원으로 50대 인물이었다.
“그게 왜요?”
“장민호 의원 외가 쪽 사촌 여동생인지 여동생 남편인지가 공인중개삽니다. 지금 심의위원 중에 그 여동생 아니면 남편과 무척 친한 사람이 있어요.”
안준식이 ‘공인중개사’를 언급하자 도훈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 혹시 운계면 주민센터 신축 관련 안건입니까?”
“네.”
“......”
운계면 주민센터는 대흥시가 생기기 오래전부터 쓰던 낡은 단층 건물이었다.
대흥시가 생기고 운계면이 시에서 가장 인구도 많고 번화한 곳이 되면서 행정 및 복지 수요가 커지는 건 당연지사.
때문에, 주민센터를 확장할 필요성은 시에서도 인정했다.
거기에 운계면에 시립 도서관 하나 말고는 별달리 주민을 위한 공공 공간이 없어, 주민센터를 새로 짓는 김에 주민복지를 위한 공간도 고려하자는 요구가 전부터 있었다.
지금의 자치센터 터에 현재 주차장으로 활용되는 센터 옆 나대지를 합하면 시와 주민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센터 신축이 가능했다.
문제는 그 나대지의 주인이 요구하는 땅값이 너무 비싸다는 것.
“그 땅 얘기는 저도 들었는데···. 그 주인이 장 의원 친척인 줄은 몰랐습니다.”
“뭐, 외가 쪽이니까요. 사실, 더 적극적인 건 장 의원이 아니라 장 의원 외사촌 여동생 부부 쪽입니다. 그 땅 주인을 대리하고 있거든요.”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위원회에 공인중개사 입김이 들어간 사람이 있다는 것도 보고받았고요. 이번에도 주민참여 예산안에도 올라왔더군요.”
주민센터를 허물고 새로 짓는 건 당연히 주민참여 예산으로 감당이 안 된다.
그런데도 계속 올라오는 건 주민들의 요구가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올해만큼은 문제의 땅 주인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갔다고 시청 담당 부서가 파악하고 있었다.
심의위원회 위원 하나가 예산 제안이 끝나기도 전부터 주민센터 신축을 최우선 순위로 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니니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
주민참여 예산으로 감당이 안 되는 줄 뻔히 아는 사업을 높은 우선순위로 선정해 임기 첫해부터 새 시장을 압박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는 보고를 도훈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도훈이 질문을 던졌다.
“지난 회의 때 반대가 없었다는 건 장 의원님도 반대하지 않았다는 거 아닙니까?”
“대놓고 반대하지 않았지만 저나 다른 의원들처럼 적극 찬성도 아닙니다. 그 양반 말고 나머지는 조례 개정에 찬성인데 혼자 나서면 뭐하겠습니까? 아무리 친척과 관련된 일이라도 의원 다수는 생각이 다르니 어쩔 수 없겠구나 생각했죠, 저도. 그런데 서 의원에게 공들였다는 말을 생각하니···.”
현재 시의회 의원은 7명.
하지만, 검찰 기소 후 거의 칩거 중인 양상택을 제외하면 조례 개정안이 상정될 월요일 시의회에는 6인이 출석할 게 거의 확실했다.
주민참여예산 심의위원회 위원을 늘리자는 조례 개정안에 대자당 의원은 이유는 몰라도 명확한 반대였다.
거기에 대세에 묻혀가려던 장 의원이 반대로 돌아서고 한 명만 더 끌어들이면, 조례 개정안은 찬반이 3 : 3 동수로 부결이 된다.
‘... 설마···.’
같은 당 소속이자 의회 의장인 안준식이 모르고 있다는 건 은밀하게 움직였다는 얘기.
그리고 비서실장 송두진이 ‘나름 확실한’ 소식통에게서 들었다는 건 신빙성이 최소한 50%는 된다는 얘기였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 네.”
얼굴이 굳어진 도훈의 말에 안준식이 동의했다.
“의장님도 조례 개정 필요하다는 건 인정하시죠?”
“물론입니다. 주민참여는 확대되면 확대될수록 좋은 거니까요.”
“의장님은 다른 의원들을 확인해주세요. 저는 장 의원, 서 의원을 만나봐야겠습니다.”
도훈의 말에 안준식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혼자 되겠어요?”
“우선 의사를 확인하려는 거니까요. 반대로 돌아선 게 확실하면 그때 저 좀 도와주십시오.”
“알았습니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도훈이 커피숍 밖으로 나와 차에 올랐다.
“어떤 것 같냐?”
“... 아직 모르겠어. 하지만 느낌이 안 좋아.”
차에서 기다리고 있던 영배가 묻자 도훈이 굳은 표정으로 답하고는 서태기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 만에 상대가 전화를 받았고, 느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서 의원님. 저 김도훈 시장입니다.”
- 허허. 이거 시장님께서 제게 직접 전화를 다 주시고··· 해가 서쪽에서 뜨겠습니다. 어쩐 일이십니까?
“잠깐 만나 뵙고 드릴 말씀이 있는데, 지금 시간 있으십니까?”
- 글쎄요. 제가 약속이 있어서 밖에 나가기 직전이라···. 이따가 시간 나면 전화 드리지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비꼬는 게 역력한 목소리였지만, 도훈은 치미는 성질을 꾹 참고 담담히 말했다.
“... 기다리겠습니다.”
- 네.
뚝.
“뭐래? 시간 안 된대?”
통화를 마친 도훈이 미간을 찌푸렸고 영배가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답을 못하는 도훈의 뇌리에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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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훈의 걱정대로, 장민호, 서태기 두 의원은 조례 개정에 반대 견해로 돌아섰다.
토요일 내내 도훈은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약속이 있다.’, ‘바쁘다.’고 둘러대던 두 사람은 나중에는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아침부터 시청에 나가 두진과 대책을 논의하던 도훈이 두 의원을 만난 건, 일요일 늦은 오후 안준식과 함께였다.
도훈은 몰라도 안준식의 만나자는 강력한 요청까지 거부할 수 없었는지, 도훈은 토요일 안준식과 만났던 커피숍에서 의장과 함께 두 의원과 마주 앉았다.
도훈이 주민참여예산 심의위원회 위원 확대의 당위성을 이야기하고 이에 공감하는 안 의장이 차분히 설득했지만, 두 의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 시장님 얘기의 요점은 알겠고, 전혀 공감이 안 가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굳이 올해 심의위원부터 늘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5월에 이미 추첨으로 뽑은 위원들이 기분 나빠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과정은 어쩔 겁니까? 심의위원들 오리엔테이션도 하고 교육도 하고 회의도 두 번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갑자기 추가로 인원을 뽑으면 그분들 교육은 할 수 있어요?
- 교육도 교육인데 모양새가 안 좋잖습니까. 공무원들 번거롭기도 하고 시민들 보기에도 뒷말 듣기 딱 좋은 거 아닙니까? 예산에 인력 낭비될 거 뻔하고, 안 들어도 될 뒷말 듣지 말자는 건데 뭐가 문젭니까?
서태기, 장민호 두 의원의 말에 도훈은 화를 참느라 애써야 했다.
시에서 심의위원회 인원 확대 문제로 조례 개정을 요청할 때, 새로 뽑힌 심의위원의 교육 계획도 이미 밝혔었다.
여유롭게 진행할 수는 없겠지만, 심의위원회의 기존 일정이라는 게 못 따라잡을 정도로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시가 계획한 것처럼 반나절 정도 집중한다면 충분히 내용을 소화하고 무리 없이 심의위원으로 역할을 해낼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혹여,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MT라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을 터.
더욱 열 받게도, 두 의원은 시에서 제출한 심의위원 교육계획에 무리가 없다고 이미 넘어가 놓고선 다른 말을 했다.
안준식이 얼굴을 붉히면서 강하게 얘기하고 도훈도 마지막까지 설득했지만, 두 의원은 설득되지 않았다.
장 의원의 외가 쪽 친척 얘기는 도훈도 안 의장도 끝까지 꺼내지 않았지만, 두 사람 모두 변심의 진짜 이유가 그것이라는 건 모르지 않았다.
두 의원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도훈은 고심 끝에 두진과 함께 어느 곳을 찾아갔다.
해가 기울어갈 즈음 목적지에 도착해 차를 세우자 조수석의 두진이 말했다.
“함께 갈까?.”
“아뇨, 저 혼자 만나보겠습니다. 아마 상대도 그걸 선호할 것 같고 말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럼 난 여기서 기다리지.”
“네.”
어느 건물 2층에 올라간 도훈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노골적으로 심드렁한 표정인 남자가 만나기로 약속한 상대의 사무실로 안내했다.
“어서 오세요, 시장님. 갑자기 만나자고 하셔서 놀랐어요.”
“일요일인데 뵙자고 해서 죄송합니다, 의원님.”
반갑지 않다는 표정으로 맞이하는 차혜진 의원에게 도훈이 인사했고, 곧 두 사람은 소파에 마주 앉았다.
“무슨 일이세요?”
“월요일 조례 개정 때문에 상의드릴 게 있어서요.”
도훈의 말에 차혜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 시에서 처음 안건을 올렸을 때 명확히 반대를 표명했던 그녀였다.
“이 안건이 왜 꼭 통과되어야 하는지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도훈의 말에 차혜진이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글쎄요. 이미 다 들었던 얘기인데요.”
“그래도 다시 한 번···.”
차혜진이 가만히 손을 들어 도훈의 말을 끊었다.
“아무리 시민 참여가 중요하다고 해도 절차라는 걸 무시할 수는 없잖아요. 시민 참여 좋죠. 그리고 그걸 확대하는 것도 좋아요. 하지만, 이미 정해진 절차를 바꾸면서까지 그래야 할 긴급한 필요성은 못 느끼겠네요.”
“......”
잠시 말문을 잃은 도훈을 흘끔 한 차혜진은 커피잔을 들어 우아하게 한 모금 마셨다.
그런 차혜진에게 도훈이 말을 이었다.
“의원님도 시민 참여가 중요한 걸 아신다니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하지만, 절차라는 게 당장 가능한 시민 참여 확대를 제한할 정도로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릅니다, 저는.”
피식.
차혜진은 살짝 웃고 도훈의 말을 받았다.
“좋아요. 시장님 논리에 강하고 말씀 잘하시는 건 제가 잘 알죠. 토론해도 이기기 어려울 것도 잘 알아요. 그러니까 넘어가죠.”
“네?”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요.”
시의원 중에 도훈이 논리에 강하고 말 잘한다는 걸 제일 뼈저리게 실감해 본 게 다름 아닌 차혜진.
그 때문인지 차혜진은 도훈과 토론을 할 생각은 전혀 없는 듯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 네.”
“만약, 이 안건에 협조하면 제가 뭘 얻을 수 있죠?
“......”
도훈은 잠시 말문을 잃었고, 차혜진은 주도권을 잡았다는 듯 의기양양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시장님, 경험이 짧아서 잘 모르시나 본데 정치도 거래에요.”
“......”
“거래는 당연히 주고받는 게 있어야 하지 않아요?”
“......”
계속 침묵하는 도훈에게 차혜진이 말을 이었다.
“제가 그 안건에 찬성하면, 시장님은 제게 뭘 주실래요?”
비웃음과 의기양양함이 반씩 섞인 미소를 머금은 차혜진에게 도훈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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