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홧김에 시장 되다-54화 (55/279)

54. 매사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다 - 1.(무료연재 끝)

9월 하순의 어느 금요일 저녁, 대흥시 금선면 군인아파트 단지 인근의 한 식당.

“... 그러니까 중학교 옆에 있는 공원 재건축하자는 거잖아요?”

“재건축까지는 아니고 보수 공사 혹은 증축 공사를 하자는 거죠. 지금은 그냥 애들 놀이터 수준인데, 옆에 몇 년째 방치된 공터를 합해 제대로 만들자는 거니까요.”

“흠, 공원을 제대로 만드는 건 좋은데 개방하는 게 걸려요, 저는.”

“아마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실 걸요.”

식당 내부 길쭉한 방 하나를 차지하고 앉은 사람들은 저녁을 먹으면서도 대화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도훈도 누군가와 공원에 관한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다.

“시 입장에서는 공원다운 공원을 만드는 것도 좋습니다만, 가능한 많은 주민에게 혜택이 가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해는 합니다. 이해는 하는데··· 단지 주민만 쓰던 공원이 개방된다니까 주저하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도 이해합니다. 아파트 단지라지만, 군인 관사니까 보통 동네 이웃보다 더욱 유대감이 큰 분들의 공동체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우려가 있으시겠죠.”

도훈의 말에 주민 대표의 표정이 조금은 풀어졌다.

“시가 공원 증축을 결정하면 국방부에서 공원 부지를 무상 제공하는 건 분명합니까?”

“확정된 건 아닙니다만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습니다. 물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공원 조성 예산은 전적으로 시에서 책임진다는 조건으로요.”

도훈은 두진, 정임과 함께 군인아파트 주민 대표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 자리에 참석한 이유는 공원을 만들어달라는 금선면 주민들의 내년도 주민참여 예산 제안을 구체화 시키기 위함이었다.

금선면에는 북쪽 끝 야산에 있는 공원 말고 다른 공원이 없어 전부터 주민 휴식 공간으로 공원을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시에서는 적당한 부지가 없어 고민하다가 군 관사인 아파트 단지 구석 놀이터와 그 옆 공터를 합쳐서 공원으로 개발하는 건 어떠냐는 의견을 내놨다.

“제가 봐도 공원 들어서면 좋을 것 같긴 합니다.”

“네. 공원을 가운데 두고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가 마주하고 있으니까요. 저희 판단으로는 그 자리가 가장 적당합니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생각하던 주민 대표가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일단 저 개인적으로는 시 계획에 찬성합니다. 저 말고도 찬성하는 분의 숫자가 적지 않으니 주민 의견을 모아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아파트 주민들의 찬성이 필수적이었기에, 주민 대표의 말이 기꺼울 수밖에 없는 도훈이었다.

도훈은 주민들에게 인사한 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온 도훈이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좀 미지근하긴 해도 긍정적이라 다행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시장님.”

“제가 뭘요. 이건 전적으로 건설행정팀 박윤환 주무관이 고생해서 이룬 겁니다.”

아파트와 주택가 사이에 공원을 조성하자는 이 계획은 도훈이 아닌 담당 부서 주무관의 생각이었다.

그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것에 그치지 않고 놀이터 부지 소유권을 가진 국방부에 의견을 구하고, 아파트 단지 주민 대표 및 주택가 통, 반장들의 의견을 구하는 등 초기 단계의 일을 아주 잘해냈다.

오늘 도훈이 아파트 주민 대표들을 만난 건 그런 주무관의 계획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실무 담당자가 생각해낸 게 좌초되지 않아 더 기쁜 도훈이었다.

“부시장님 공도 잊으시면 안 되죠, 시장님.”

“그렇네요. 깜빡했습니다. 하하.”

정임의 지적에 도훈이 웃으며 답했다.

실무자의 아이디어에 담당 부서장이 회의적이었다는데, 그 아이디어를 듣고 처음으로 ‘적극적으로 추진해 보라’고 밀어준 게 바로 전경완 부시장이었다.

그는 말로만 지지한 게 아니고 공원을 주민참여 예산 사업으로 제안한 사람과 주거지역 통, 반장들을 설득하는 담당 주무관과 몇 번 동행해 무게감을 실어주었다.

“요새 부시장님이 아주 열심이신 것 같습니다.”

“좋은 일이죠.”

부시장 전경완이 업무에 적극적인 직원을 격려하고 지원하는 건 이 사업 담당자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지난번 화학물질 누출 사고 이후, 아주 의욕적이 된 전경완은 빠르게 제 자리를 잡고 활약하는 중이었다.

그의 활약이 직원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을 끌어내는데 플러스 요인을 톡톡히 하고 있었기에 도훈으로서도 아주 기꺼웠다.

“저는 좀 놀란 게 부시장님이 직원들과 아주 적극적으로 소통하신다는 겁니다.”

“실장님 현역 때랑은 다르게 말이죠?”

“쩝. 고 주무관이 그렇게 얘기하니까 내가 할 말이 없네.”

“호호. 삐지지 마세요. 저는 실장님 편이니까요.”

“... 고맙다고 해야 하나?”

“천만에요.”

도훈 주변에 부시장에 비견될만한 인물이라면 단연 비서실장 송두진을 꼽을 수 있었다.

긴 경력도 그렇고 업무에 두루 빠삭한 것도 비슷한 두 사람인데, 사람을 대하는 스타일에 차이가 있었다.

이른바 ‘까칠’의 대명사였던 두진에 비해, 부시장은 상대가 누구라 해도 먼저 다가가 쉽게 친해진다는 것.

아마 성격은 물론 개인사의 차이로 인한 것일 텐데, 이유야 어쨌든 부시장의 ‘활약’ 덕분에 시 행정에 눈에 띄게 활력이 붙었다.

“아직도 간부들이랑 좀 사이가 데면데면한 게 걱정이긴 한데···. 뭐 그 양반이라고 만능은 아닐 테니까.”

“그 부분은 실장님이 잘하시면 되겠네요. 아직도 실장님한테 꼼짝 못 하는 간부들 제법 있잖아요.”

“나도 젊은 친구들하고 어울리는 게 더 좋다고.”

앞서 걷던 도훈이 툭탁거리는 두 사람을 돌아보고 말했다.

“어서 가시죠. 좀 늦었습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한 주의 업무를 마친 후련한 얼굴로 걷는 도훈.

오늘은 한 달 만에 도훈과 비서실 직원들이 회식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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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비서실 직원 전원, 법무팀 일부, 농업정책팀 일부, 예산팀 일부가 참여한 오늘의 회식.

“건배!”

“건배!”

도훈의 선창에 모두가 화답했다.

열 명이 넘는 인원이 참석한 오늘의 회식은 한 가지 일을 마무리한 것을 축하하기 위함이었다.

“영감님 설득하시느라 수고 많았어요, 강 주무관님.”

“아닙니다. 마지막에는 시장님이 직접 대면하셨잖습니까.”

“전 마침표를 찍은 것뿐입니다. 거기까지 협의를 이끌고 가느라 강 주무관님이 고생한 것 우리 모두가 잘 알아요.”

도훈이 농업정책팀 남자 직원에게 말했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한 달여 전의 사고로 피해를 본 논 주인을 주로 상대하며 달래고 설득하느라 애썼다는 걸 이 자리에 있는 사람치고 모르는 이가 없었다.

화학물질 누출로 오염된 논은 방제 작업을 한 뒤 흙을 파내고 새 흙을 채우는 1차 복구작업을 마쳤고, 망친 올해 농사는 작년 수확량 기준으로 보상하기로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화학물질 잔류 검사를 해, 필요할 경우 다시 흙을 교체하는 등 복구작업을 이어가기로 했다.

보상 합의에 이르기까지 한 달 정도 시간이 걸린 것은 시청과 논 주인의 입장 차이 때문이었다.

논 주인은 복구는 논외로 하고 3년 치 수확에 대한 일괄보상을 요구했지만, 시청은 매해 초 검사에서 농사를 짓기에 부적합할 정도로 화학물질이 검출되면 농사를 포기하고 보상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처음엔 완강했던 논 주인이 기존 입장을 철회하고 시의 제안에 동의한 것은, 화학물질 및 오염된 논물의 수거가 빨라서 인근 논이 오염되지 않았고 문제의 논도 추가 복구가 필요할 가능성이 작다는 조사 결과 때문이었다.

여하튼, 시와 사고 난 탱크로리를 보유한 화학 회사와의 협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피해 농민과의 협상은 일단락된 상황.

“제가 되도록 그 영감님 이야기를 잘 들어주라고 한 것 때문에 더 힘들었을 겁니다.”

“그런 면이 전혀 없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이야기를 하시며 어르신 화가 누그러지고 점점 이성적인 모습이 되셨으니 올바른 지시를 하신 겁니다.”

남자 직원이 일을 끝내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말했고, 다른 직원이 말을 받았다.

“도지사님 제안도 도움이 됐죠.”

“맞아요. 그 논하고 인근 논에서 난 쌀이 문제가 없는데도 안 팔리면 도에서 사서 직원 식당에서 사용하겠다는 제안이 꽤 먹혔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직원들의 말에 도훈이 말없이 웃었다.

강정문의 제안은 원래 도훈의 아이디어였다.

도훈 스스로가 제안할 수도 있었지만, 시에서만 나서는 것보다 농민들 설득이 쉽지 않겠냐는 생각에 도지사가 나서달라고 부탁해 강정문이 나선 것이었다.

“여하튼 법정으로 안 가고 이렇게 끝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여러분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하, 아닌 게 아니라 끝나서 후련하긴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자, 이제 편하게 마십시다. 각자 주량 생각해서 적당히 드세요.”

도훈이 말을 마치자 직원들이 조금은 편한 표정으로 회식을 즐겼다.

시장과 동석했으니 분위기가 딱딱해질 법도 하건만, ‘필요 없는 자리에서까지 격식 차리지 말자’는 도훈의 취향을 이젠 직원들도 아는 터.

완전히 풀어지지는 않았어도 크게 자신을 의식하지 않는 직원들의 모습에 도훈도 간만에 마음 편히 술잔을 기울일 수 있었다.

“시장님도 후련하신 것 같네요?”

“당연하죠. 제가 가해자인 거나 마찬가지인데요.”

“에이, 가해자는 좀 심한 말이고요.”

“아뇨. 가해자가 맞아요. 엄연히 피해를 본 분이 계신 데 가해자가 없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도훈의 담담하지만 단호한 말에 마주 앉은 정임이 불평하듯 말을 이었다.

“시장님, 그런 면에서 융통성이 없는 건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이기도 해요. 작아도 엄연히 한 시의 책임자이신데, 좀 더 신중하시고 융통성을 발휘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정임에 이어 두진도 말했다.

“100%는 아니지만, 저도 고 주무관의 말에 공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태도를 바꾸는 것도 곤란하지만, 시장님은 너무 그 반대십니다. 좀 걱정될 정도로 말입니다.”

“두 분이 뭘 걱정하시는지 압니다. 제 생각은 좀 다르긴 하지만, 앞으로는 신중하도록 하겠습니다.”

도훈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고, 두진이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심의위원회 구성은 시장님 뜻대로 되어가는 겁니까?”

“보고받기로는 제 예상보다 부진합니다만, 지금보다 위원 숫자를 늘리는 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뭐, 첫술에 배부를 수야 없겠지요.”

두진이 언급한 심의위원회는 주민참여예산을 검토하고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시민 위원회를 말하는 것으로 대흥시의 현재 위원회 정원은 15명이었다.

현 위원 사이에 다툼이 있었지만, 도훈은 조례 개정을 통해 위원 숫자를 늘려 이해 당사자 외의 인물을 위원회에 추가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었다.

“수요일에 의회 의장님과 잠깐 대화했는데 조례 개정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일단 30명 선을 얘기했는데 의장님도 동의하더군요.”

“차혜진 의원은 반대하는 것 같던데 말입니다.”

“민의당 의원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게다가 의장이 개정에 동의하니까요.”

“흐음···.”

“왜 그러십니까?”

미심쩍은 표정의 두진에게 도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모든 민의당 소속 시의원이 조례 개정에 동의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를 낮에 우연히 들어서요.”

“진짜로요?”

“네.”

도훈의 표정이 표나게 굳어진 건 안준식이 ‘별문제 없을 거다.’라고 얘기했을 때 뭔가를 숨긴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

“동의하지 않는 인원이 많답니까?”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다만 뭡니까?”

“한 사람이 아닌 ‘복수’라고 들었습니다.”

“......”

여러 직원이 함께한 회식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도훈은 표정관리를 완전히 잊고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공약의 하나인 ‘기획부터 시민이 참여하는 행정’을 정착시키기 위한 시발점으로 이 주민참여예산 심의위원회에 주목했던 도훈이기에 당연한 반응이라 할 수 있었다.

“... 실장님이 들은 이야기의 신빙성은요?”

“반은 넘을 거로 생각합니다.”

“......”

말문을 잃었던 도훈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전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가는 도훈의 모습을 두진과 정임이 걱정스럽게 바라봤고, 정임이 두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실장님 말씀 진짜예요?”

“응. 나도 오후 내내 신경 쓰여서 내 나름대로 알아보고 말씀드린 거야.”

“... 의장님께 전화하러 가신 거겠죠?”

“아마도.”

“어쩌면 좋아요.”

“......”

정임이 도훈이 사라진 문에 시선을 주고 안타까워했다.

두진의 우려가 현실이 되기라도 한 듯, 안준식에게 전화하러 자리를 뜬 도훈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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