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53화 (54/279)

53. 결정은 내가, 매도 내가 - 3.

지역 뉴스에 다시 대흥시가 등장했다.

- ... 그렇게 누출된 DNT라는 화학물질은 다행히 하천이 아닌 인근 논으로 흘러들어 갔습니다. 이는 당시 연락을 받고 급히 현장을 찾은 대흥시 시장의 판단이었습니다. 이 결정으로 9,000ℓ나 되는 화학물질이 하천으로 유입되는 걸 막을 수 있었습니다.

멀찍이서 핸드폰으로 촬영한 듯한 영상이 조금씩 흔들렸다.

방열복과 산소마스크를 쓴 소방관들이 분주히 오가는 가운데 배수로와 논 옆에 크고 작은 농업용 대형 물탱크가 여럿 놓였고, 그 안으로 양수기가 배수로와 논에서 화학물질과 오염된 물을 퍼 올려 담고 있었다.

- 이 DNT라는 물질이 다행히 휘발성이나 부식성이 강하지는 않습니다. 맨살에 원액이 닿거나 증발한 가스를 마시면 위험합니다만, 저렇게 장비를 제대로 갖춘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습니다.

소방관의 인터뷰에 이어 기자가 영상에 등장했다.

기자의 뒤로 어느 공터에 줄지어 놓인 농업용 탱크들이 여럿 보였다.

- 저 안에 담긴 것이 DNT라는 화학물질 원액, 그리고 화학물질과 뒤섞인 논의 물입니다. 화학물질을 회수하는 작업은 관계자들의 빠른 대처로 사고 난 탱크로리에서 여전히 누출이 진행되던 시점부터 시작됐고, 사고 발생 6시간 만인 일요일 밤 10시경 오염된 논의 물까지 모두 퍼 올리며 완료됐습니다. 저 물통들은 월요일 낮, 이 자리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고 곧 폐기물 처리 업체로 넘겨질 예정입니다.

영상에 다시 사고 현장이 나왔다.

방제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이들이 양수기로 논에서 물을 퍼 올리고 있었다.

- 어젯밤 우리나라를 관통한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내렸고 논에 고인 물을 다시 퍼 올리는 모습입니다. 다행히 우려했던 것보다 강수량이 많지 않아 문제의 화학물질이 빗물에 섞여 하천에 유입되지는 않은 것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화면에 등장한 것은 근심스러운 표정의 노인.

다름 아닌 오염된 논의 주인이었다.

- 어쩌겠어요. 위험한 게 강으로 흘러가는 걸 막으려고 그랬다는데···.

- 당분간 농사는 힘들 것 같은데요?

- 올해 농사는 말할 것도 없고 내년, 내후년도 문제지요. 시청에서 복구를 책임지겠다고는 했는데, 그게 제대로 될지 그것도 걱정이요.

- 심정이 어떠십니까?

- 농사꾼이 논이 망쳐졌는데 속이 편할 리가 있어요? 속은 썩어들어가는 심정이지만, 다행히 시청에서 그런 부분까지 고려해서 보상을 논의하자고 하니까···.

기자와 인터뷰하던 노인은 말끝을 흐리더니 좀 머쓱한 표정으로 화제를 돌렸다.

- 그나저나 내가 좀 흥분해서 시장 양반을 때렸는데, 그건 미안하다고 하고 싶네요. 차분히 생각해보니까 그 사람으로서는 다른 도리가 없었던 것도 같고···.

인터뷰 영상이 끊기고 뉴스 진행자가 화면에 나타났다.

- 여러분 중 온라인을 통해 유포된 해당 영상을 보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논이 오염되어 흥분한 논 주인이 자초지종을 듣기 전에 그런 결정을 한 시장을 책망하며 매질을 하는 영상이었습니다. 농부가 받았을 충격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놀라운 건 맞는 사람이 묵묵히 그 매를 견디기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흥분한 농부에게 달려들어 말리자, 오히려 농부를 방해하지 말라 말하고 다시 허리를 깊이 숙이며 매를 청하는 듯한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영상이 아닌 뿌옇게 처리된 사진 하나가 화면에 등장했다.

막대기를 높이 치켜든 농부 앞에 허리를 숙인 도훈의 모습이었다.

- 저희 취재진은 취재과정에 김도훈 대흥시 시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김도훈 시장은 사고 수습으로 바쁘고 인터뷰까지 할 일이 아니라고 말하며 거절했습니다.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는 영상에 대해 한마디 해달라는 취재진의 요청에 김도훈 시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논 주인을 비난하는 분들이 있나 본데, 옳은 일이 아니다. 역지사지해보길 바란다. 그리고 그런 결정을 내가 했으니, 매도 내가 맞는 게 맞다. ’고 말입니다.

딱히 특별할 것 없는 말입니다만, 그걸 실천하는 시장의 모습은 멋지고 특별해 보입니다. 이상 ITS 대전 뉴스를 마칩니다.

뉴스가 끝났고 도훈은 마우스를 조작해 뉴스가 재생되던 인터넷 창을 닫았다.

도훈은 논 주인에게 맞아 멍든 팔을 가리기 위해 여전히 긴 팔 상의를 입고 있었다.

“... 좀 심한데···.”

중얼거리는 도훈의 표정은 전혀 밝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젯밤 저 뉴스가 나간 뒤, 꽤 많은 메시지가 업무용, 개인용 핸드폰에 쏟아지고 있었으니까.

그중 중요한 것들만 추려보자면 다음과 같았다.

- 역시 우리 오빠야. 이젠 승범 선배 말이 좀 이해가 되네. (도연)

- 또 방송 타셨네요. 우리 정치부에서 시장님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참, 할머니가 감자탕 먹으러 오라고 전하랍니다. 아, 저 최승범 기잡니다. (원흉)

- 맞아도 싸다, 이놈아. (아버지)

- ... 어쨌든 잘했다. (아버지)

- 사고 대응 잘했다는 얘기 하려고 전화했습니다. 왜 사무실로 전화하면 받으면서 핸드폰은 안 받습니까? 지원 필요한 게 있으면 뭐가 됐든 얘기하세요. (반갑지 않은···.)

- 시장님, 고생하셨습니다. 혹시 이 사고 복구 관련해서 제가 도움될 일이 있으면 아무 때나 연락 주세요. (김용진 의원.)

이외에도 많은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지만, 도훈은 아예 개인 핸드폰은 꺼놓고 업무용 핸드폰에 온 연락도 피할 수 없는 것만 응했다.

업무용 핸드폰과 연결된 SNS 계정은 한동안 조용하더니 매 맞는 영상이 화제가 된 뒤 개통 직후처럼 다시 방문객이 늘어났다.

계정 방문객들의 반응은 칭찬과 비판이 섞여 있었는데, 다행히 칭찬이 더 많았다.

방문객들이야 뭐라 얘기하든, 도훈은 아무런 글도 올리지 않고 침묵하는 중이었다.

“... 전처럼 시간 지나면 조용해지겠지.”

본격적인 정치인이 될 생각도 없고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는 도훈이었기에, 그간 공식 SNS 계정도 그리 활발하지 않았다.

“... 그나마 욕만 먹는 게 아니라서 다행인가?”

심드렁하게 중얼거리는 도훈은 어서 시간이 흘러 자신이 잊히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이번 일로 ‘유명세’ 말고 다른 것도 얻은 게 있음을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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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송합니다.

- 시장이면 다냐! 시장이면 다여! 네깟 놈이 뭔데 남의 논을 망쳐! 이 망할 놈아!

- ......

짜악! 퍽! 퍽퍽!

화를 못 이긴 논 주인 할아버지는 먼저 시장의 뺨을 때리더니 근처에 있던 막대기를 집어 들고 시장의 등과 팔을 몇 대 때렸다.

시장은 할아버지를 말리는 직원들을 다시 물러나게 하고 다시 때리라는 듯 허리를 깊이 숙였었다.

다행히, 노인은 더는 막대기를 휘두르지 않았다.

- 보상비 제대로 계산하세요. 복구 비용까지 전부 우리가 책임집니다.

자초지종을 듣고 화가 조금 누그러진 할아버지가 돌아간 뒤 담담하게 말하던 시장.

- 자, 소방관 여러분. 무척 덥고 힘드시겠지만, 이 작업부터 해야겠습니다.

탱크로리의 화학물질이 다 새어 나오기도 전에 양수기와 농업용 대형 물탱크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 하천으로 유출을 막은 건 다행이지만 끝은 아니죠. 저 화학물질 밀폐용기에 보관해야 한다던데 그걸 위해 준비시켰습니다.

시장은 화학물질이 본격적으로 누출되기도 전에 비서실장에게 말해 양수기와 대형 물탱크를 준비시켰다.

비서실장은 시 농업기술센터가 보유한 양수기를 동원하고 철물점에서 물탱크를 조달했다.

곧 두꺼운 합판으로 배수로와 물길 연결 지점을 막아 안에 고인 화학물질부터 퍼 올리기 시작했다.

양수기와 물탱크가 더 도착할 때마다 배수로에서 직접 퍼 올리는 화학물질의 양이 많아져 결국에는 논으로 더 흘려보내지 않아도 됐다.

실로 빠른 대처라 할 수 있었다.

우연히 난 사고였지만, 자칫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분명 운이 좋았던 측면이 없지 않으나, 시장의 빠른 판단과 결단이 더 큰 피해를 막은 가장 중요한 요인임을 현장에 있던 모두가 인정했다.

- 천만다행입니다. 과장··· 아니, 부시장님.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사님.

- 하하, 김도훈 시장에게 고생했다고 전해주세요. 부시장님도 고생하셨습니다. 필요한 지원은 최대한 할 테니 후속 조치도 잘해주시고요.

- 알겠습니다.

- 더 겪어보시면 더 잘 아시게 되겠지만, 김도훈 시장 뛰어나기도 하지만, 사람도 괜찮습니다. 부시장님과 손발이 잘 맞을 테니 좋은 활약 보여주십시오.

- 네.

양수기가 가동되기 시작한 직후, 당장 할 수 있는 건 다했다고 판단한 시장은 전경완에게 도지사에게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도지사의 말은 부시장 임명을 통보받는 자리에서도 들어봤지만, 새삼 강정문 도지사가 그런 말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떠올렸다.

- 결정도 제가 했고, 책임도 제가 집니다.

전경완은 단호하게 말하던 도훈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시장으로서는 괜찮은데···.’

담담히 중얼거리는 전경완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도 지난 선거 이후 당선인과 시장으로서의 도훈에 대한 직원들의 평가를 들었다.

그에 따르면 도훈은 괜찮은 정도가 아닌 모범적인 시장에 가까웠다.

자신이 봐도 도훈에게 ‘흠’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건 시장으로서 그런 것일 뿐 그의 삶 자체는···.

‘... 파란만장할 테지.’

소신을 품고 실천하는 행정가의 삶이 평탄하기만 할 수는 없다는 걸 전경완은 잘 알았다.

그리고 그런 평탄하지 못한 삶에 본인만이 아니라 가족이 상처받는다는 것도.

그의 아내도 묵묵히 따돌림을 감수하는 남편을 안타까워하고 세상을 원망하다 우울증에 걸렸으니까.

그래서 더 고민됐다.

조카의 옆자리에 도훈이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게.

‘당장은 시장으로서 100점을 줘도 모자라겠지만, 세경이 상대로는···.’

속으로 중얼거리는 전경완의 귓가에 도훈의 말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 ... 제가 책임집니다.

‘... 시장은 그런 사람인데···.’

다시 중얼거린 전경완의 눈빛이 조금 매서워졌다.

“... 현재 이해 당사자들의 입장을 청취하고 있습니다. 다만, 양쪽 입장이 워낙 강경해 쉽게···.”

전경완은 현안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매서워진 눈빛으로 간부들을 하나씩 살피는 전경완은 못마땅함이 얼굴에 드러내지 않도록 애쓰는 중이었다.

새 부시장 앞에서 긴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일 수 있다.

그러나 애초에 납작 엎드려 눈치를 살피는 보신적인 태도를, 전경완은 좋아하지 않았다.

간부 모두가 그런 건 아닐 테지만, 최소한 아직은 간부들에게 좋은 인상을 받지 못한 전경완이었다.

“...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간부의 발언이 끝났고 전경완이 차분히 입을 열었다.

“도시주택과의 의견은 뭡니까?”

“네?”

“이해당사자의 태도야 강경할 수밖에 없겠죠. 그건 알겠는데, 어떤 식으로 해결하는 게 좋겠다는 담당 부서의 생각은 못 들어서요.”

당황한 과장은 선뜻 말을 잇지 못했다.

“설마 의견이 없는 겁니까?”

“... 그, 그게···.”

얼굴이 빨개진 과장이 버벅거리자 옆에 앉은 다른 간부가 입을 열었다.

“저희가 쟁점을 명확히 정리하는 식으로 회의하는 데 익숙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 회의에서 정리한 안건의 최종 결정은 2주마다 열리는 확대간부회의에서 내려지니까요.”

“전에는 이 자리에서 담당 부서 의견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까?”

“안건마다 다르긴 한데, 주로 확대간부회의에 맞춰서 부서 입장을 정리해왔습니다.”

전경완이 가만히 미간을 찌푸렸다.

어차피 시장의 의사가 중요하니 그러는 게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주요 결정을 시장에게 미룬다면 도대체 왜 이런 회의를 하고 간부가 존재하며 담당 부서에 담당자가 필요한가?

“앞으로는 현안 회의에 맞춰 준비해 주세요. 각 부서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한다 생각하시고요.”

“...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시죠.”

부시장의 말에 토를 다는 간부는 없었고, 전경완은 회의를 이어갔다.

‘... 세경이와의 일은 좀 더 고민해보자. 일단 내 일부터 제대로 해야겠어.’

시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직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할수록 좋은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았다.

좋은 행정의 수혜자는 당연히 시민이 될 터.

‘시민을 행복하게 하는 좋은 행정’은 공무원으로서 전경완의 오랜 꿈.

태도와 능력 양면에서 도훈은 충분히 기대를 걸어볼 만했다.

그렇다면 직원들이 더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하며 도훈에게 힘을 실어준다면···.

‘... 잘하면 공무원 생활 끝자락에 현실로 볼 수 있을 지도···.’

공무원으로서 마지막 소임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한 전경완.

그렇게 도훈에게 또 하나의 든든한 우군이 생기고 있었다.

그리고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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