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결정은 내가, 매도 내가 - 1.
끼이익!
도훈의 차가 급정거했고, 차가 멈추자마자 도훈과 전경완이 부리나케 내렸다.
장소는 토사붕괴 사고가 있었던 남가동에서 유서면으로 넘어가는 다리 인근.
전과 다른 점이라면, 토사붕괴는 다리 건너편에서 일어났지만, 이번 사고는 다리를 넘기 직전 지점에서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 허, 이런.”
“......”
현장을 본 전경완이 신음했고, 도훈은 말문을 잃었다.
짐칸 부분이 잔뜩 구겨지고 뒤틀어진 1톤 트럭이 도로를 가로막듯 조수석을 하늘로 하고 누운 가운데, 그보다 조금 다리와 가까운 자리에 25톤 탱크로리가 운전석을 하늘로 하고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아마도 탱크로리가 1톤 트럭을 추돌하고 지나친 뒤 균형을 잃고 옆으로 쓰러진 듯했다.
지구대에서 순찰차 2대로 출동한 경찰관들이 현장 정리와 교통 통제를 하는 가운데, 지구대장과 젊은 여자 하나가 도훈에게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시장님.”
“네. 상황이 어떻습니까, 대장님?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 많이 다쳤습니까?”
“일단 사망자는 없고, 트럭에 탄 사람들은 천만다행으로 경상입니다. 탱크로리 운전자 쪽이 문젠데, 의식이 없는 상태로 구급차에 실려 갔습니다.”
지구대장의 설명을 들으며 도훈은 젊은 여자, 정임에게 눈으로 인사했다.
대형교통 사고가 발생했다고 도훈에게 전화한 게 바로 그녀였다.
우연히 지나가다 현장을 본 듯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었다.
지구대장과 대화하면서 도훈은 탱크로리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지구대장이 도훈의 팔을 붙잡았다.
“이 이상 가까이 가시면 안 됩니다.”
“네?”
“탱크로리에 실린 게 위험 물질입니다. 지금 조금씩 새고 있고요.”
그제야 도훈이 주변을 다시 살폈고, 탱크로리 옆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두 명의 소방관이 모두 방화복을 입고 산소호흡기를 착용하고 있는 걸 알아챘다.
게다가 출동한 경찰관들도 차량을 통행시키는 게 아니라 도로를 막고 돌려보내고 있었다.
- 사고가 심상치 않아요. 바로 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정임이 다급하게 했던 말을 되새긴 도훈이 지구대장에게 물었다.
“저기 실린 게 뭔데 그러시는 겁니까?”
“디니트로 어쩌고 하던데 약자로는 DNT 라는 화학물질이랍니다. 폭약 원료로도 쓰이는 거라는데, 들이마시면 무척 위험하다는군요. 죽을 수도 있답니다.”
“발암물질이기도 하다고 했어요.”
지구대장에 뒤이어 정임이 끼어들었다.
DNT 라는 말에 얼굴이 딱딱해진 전경완이 입을 열었다.
“DNT 가 확실합니까?”
“안전센터장이 확인해 준 겁니다. 그래서 금산 소방서는 물론 대전 소방본부에 지원 요청을 이미 했답니다.”
“... 맙소사.”
굳은 얼굴의 전경완이 말을 이었다.
“시장님, 저거 대단히 위험한 겁니다. 제가 잘 아는 건 아닌데, 숨 쉬다가 공기 중에 증발한 화학물질을 들이마시면 피가 산소를 제대로 운반하지 못한다는 건 확실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증상이 심하면 사람이 죽을 수도···.”
“어쨌든, 독가스나 다름없다는 말씀이네요.”
“네.”
도훈의 시선은 넘어진 탱크로리 주변의 아스팔트에 고정되어 있었다.
멀쩡하다면 저렇게 바닥이 젖어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아직, 흘러나오는 게 보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만의 하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방서 지원이 오려면 얼마나 걸립니까?”
“그건 저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확인해 볼까요?”
지구대장이 좀 더 현장 가까이에 차를 세우고 무전기로 뭐라 대화하는 안전센터장을 보고 말했고, 도훈이 답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지구대장이 안전센터장을 향해 뛰어갔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도훈은 도로변으로 걸음을 옮겼다.
“왜 그러세요, 시장님?”
“... 배수구요.”
“네?”
도로와 인도가 맞닿은 지점, 배수구에 시선을 고정한 도훈이 빠르게 앞뒤를 살폈다.
배수구로 흘러내린 물은 배수로를 타고 다리 밑 하천으로 흘러내리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흘러내린 물은 당연히 하류로 흘러갈 터.
‘... 맙소사.’
이 다리 하류에 시청 앞 상가는 물론, 아파트 단지가 있다.
그나마 상가는 하천과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었지만, 아파트 단지는 거의 하천 변에 붙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바람조차 잘 불지 않던 이번 여름 다른 날과는 달리 오늘은 제법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것도 하천에서 아파트 단지 쪽으로.
그 이후에도 계속 하류로 흘러갈 독성 화학물질은 대흥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 만약에 흘러내려 가기라도 하면···.”
도훈이 중얼거리자, 말뜻을 알아들은 정임이 불안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설마 그렇게까지···.”
정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훈은 저만치 쓰러진 탱크로리 쪽에서 소방관 하나가 달려오는 걸 봤다.
탱크로리와 어느 정도 떨어진 소방관이 산소호흡기를 벗고 고함쳤다.
“누출량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고 현장의 모두가 얼어붙은 가운데, 도훈이 차갑게 굳은 얼굴로 정임에게 말했다.
“정임 씨.”
“... 네.”
“직원들 비상연락망 가동하세요,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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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벅, 벅벅.
“어휴, 아빠!”
“... 왜?”
“그렇게 옷 속으로 손 넣어서 긁지 마라니까! 아저씨 같잖아.”
“... 아저씨 맞는데 뭐.”
“아, 쫌!”
타박하는 중학생 딸에게 심드렁하게 답하는 홍영진은 소파에 옆으로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아저씨라 해도 아닌 척할 수는 있잖아. 그렇게 대놓고 티를 내야 돼?”
딸의 날 선 타박에 응한 것은 영진이 아닌 그의 아내.
“그 아저씨 덕분에 태어난 데다, 아무 걱정 없이 먹고 사는 주제에 태도가 무척 건방지다?”
“왜 엄마는 맨날 아빠만 편들어?”
“당연하지. 부부인데.”
“쳇!”
옆에 앉은 와이프가 냉랭하게 대꾸하자 홍영진이 피식 웃었다.
자기 덕분에 딸이 태어난 건 50%만 맞지만, 아무 걱정 없이 먹고 사는 건 와이프 덕이 100%에 가까웠다.
아무리 영진이 공무원이라지만, 절대 넉넉하지 않은 월급을 알뜰히 모아 아파트까지 장만한 건 다 와이프의 공이었으니까.
앞으로 10년 넘게 은행 대출금을 갚아야 하긴 했지만, 와이프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생활은 결코 없었을 터.
‘내가 다른 건 몰라도 결혼은 참 잘했지.’
영진이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머리맡의 핸드폰이 울렸고, 핸드폰을 집어 든 영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 사고? 가, 가스?”
긴 메시지 내용을 확인한 영진은 굳어진 채로 잠시 눈만 깜빡였다.
“뭔데 그래요?”
“......”
질문을 던지는 아내에게 고개를 돌린 영진의 눈에 아내의 얼굴 뒤 유리창 너머 작은 하천이 들어왔다.
자신의 집으로부터 직선거리로 불과 수십 m.
그 하천으로 독가스를 뿜어내는 화학물질이 흘러내린다면···.
벌떡.
영진이 갑자기 몸을 일으키는 바람에 아내와 딸이 움찔 놀랐다.
영진은 분주히 움직여 자신의 집 유리창이 전부 닫힌 걸 확인하고는 황급히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런 영진의 모습에 아내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뭔데 그래요, 여보?”
“저기 다리 근처에서 사고가 났대. 사고 난 게 탱크로린데 화학물질이 유출될 수도 있대.”
“네?”
“하천으로 흘러내리면 이 앞으로 지나가. 그 화학물질을 들이마시면 죽을 수도 있대. 그러니까 절대 창문 열지 마. 알았지? 절대 창문 열지 말라고!”
“... 아, 알았어요.”
영진이 신발을 신는데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어, 고 주무관. 나 지금 나가는 중이야. 바로 다리로···.”
- 아뇨! 이리로 오지 마시고 경비실로 가세요!
“경비실?”
- 홍 주무관님 T 아파트 사시잖아요. 맞죠?
“응.”
- 바로 나오지 마시고 경비실 가서 단지 전체에 안내방송부터 해달라고 하세요. 당장요!
“아, 알았어.”
정임에게 답한 영진이 집을 나서며 아내에게 소리쳤다.
“내가 괜찮다고 전화할 때까지 밖에 나오지 마, 알았지?”
“네, 당신이나 조심해요!”
“아빠, 조심해!”
벌컥.
집을 나선 영진이 엘리베이터로 달렸다.
“빨리 와라, 빨리. 아, 젠장.”
버튼을 눌러도 꼭대기 층에서 꼼짝하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더는 기다리지 못한 영진이 계단으로 달렸다.
얼마 뒤.
- 주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주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갑작스럽고 다급한 목소리의 안내방송에 주민들이 의아해하는 가운데, 단지 내 곳곳에서 ‘집으로 돌아가라’, ‘안으로 들어가라’고 사람들이 소리치며 뛰고 있었다.
그렇게 대흥시 전역에서 공무원들이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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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인력은 곧 도착하지만, 화학차가 문제입니다. 하필,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대전시 화학차가 모두 출동한 상태랍니다. 한 대를 바로 빼서 보내준다고는 했는데···.”
“... 얼마나 걸릴 거랍니까?”
“장담을 못 하겠습니다. 금산 본서에도 요청했는데 거기 화학차는 본서에 없고 저 동쪽 센터에 있습니다. 앞으로 20분 정도 걸릴 겁니다.”
안전센터장과 대화하는 도훈은 넘어진 탱크로리 주변의 아스팔트 젖은 부분이 빠르게 넓어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지금 상태로도 20분이면 분명 유출된 화학물질이 배수로를 타고 하천으로 흘러나갈 터.
문제는 유출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진다는 데 있었다.
“... 배수로의 하천 연결 부분을 막으면 어떻습니까?”
“막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나갈 곳이 없으니 화학물질이 배수로에 고일 겁니다.”
“......”
“그리고 혹시나 양이 많아지면 역류할 겁니다. 저쪽으로요.”
“......”
안전센터장이 가리킨 곳에는 상가가 있었다.
다행히 사고 현장 주변은 다 논이고 가장 가까운 건물도 100m가 넘게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경사가 거의 없는 지역인지라 하천을 향해 기울어진 배수로를 막으면 좁은 배수로에 고인 화학물질이 어디까지 역류하고 새어나갈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자칫, 흐르다 못해 터지기라도 한다면, 최대 25톤이나 되는 엄청난 양이 상가 쪽 배수로를 타고 흘러갈 터.
‘... 어쩌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도훈이 초조하게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저쪽에서 경찰관이 커다란 트럭을 멈춰 세우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트럭 짐칸에 실린 걸 본 도훈의 눈빛이 변했고, 주변을 다시 한 번 빠르게 살폈다.
빠르게 머리를 굴려 뭔가를 생각해 낸 도훈이 중얼거렸다.
“... 차라리···.”
“네?”
“... 차라리 흘러내리게 하는 건 어떻습니까?”
“흘러내리게 해요? 하천으로요?”
대화하던 안전센터장은 물론, 숨까지 죽이고 듣고 있던 정임과 전경완의 눈이 놀라 둥그렇게 커졌다.
그들의 눈앞에서 도훈의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 아뇨, 저기로요.”
도훈의 손이 도로 바로 옆 논을 가리키고 있었다.
“논으로 말씀이십니까?”
“네.”
“저리로 화학물질이 흘러들어 가면 저 논은 최소한 올해는 끝장입니다.”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것보다는 그게 낫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 그렇기야 하지만 어떻게 물길을 냅니까? 사람이 할 수···.”
“저게 있잖습니까.”
안전센터장의 말을 끊은 도훈이 가리킨 것은 저만치 앞 도로에 세워진 트럭 짐칸의 포크레인.
도훈의 시선이 안전센터장을 향했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그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고, 도훈이 차분히 말했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집니다.”
“... 시장님.”
“판단도 제가 했고, 책임도 제가 집니다.”
“......”
“센터장님은 배수로 막아주세요.”
도훈이 단호히 지시하자 전경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 시장님, 누출이 심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전에 화학차가 올 수도 있고요.”
“가능성에만 기대기엔 위험이 너무 큽니다.”
“......”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제 독단으로 진행합니다.”
“......”
전경완을 침묵시킨 도훈이 센터장을 바라봤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센터장이 무전기를 들고 탱크로리 쪽으로 뛰었다.
“부시장님과 정임 씨는 직원들과 함께 이쪽과 하천 주변으로 시민들이 접근하지 않도록 안내를 해주십시오.”
“... 알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말을 마친 도훈이 트럭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도훈의 등에 시선을 고정한 전경완의 눈이 이채롭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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