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49화 (50/279)
  • 49. 그는 과연? - 2.

    8월 셋째 주 금요일 점심 시각, 대흥시청.

    외부에서 점심을 먹고 들어온 도훈이 두진, 정임과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시장님 팬 하겠다는 가게 사장님들 얘기 잘 안 믿겼는데, 실제로 보니 대단하네요.”

    “그냥 오늘 만난 분이 좀 유난하신 거겠죠.”

    “어휴, 시장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 사장님이 서운해하실 걸요?”

    “......”

    도훈이 정임의 말에 대꾸를 못 한 건, 오늘 점심을 먹었던 백반집 사장이 정말 도훈을 열렬히 환영해줬기 때문.

    중국관 사장에게 받은 리스트의 식당 중 처음 간 곳인데 사장이 ‘고생한다’, ‘잘하고 있다’, ‘지금처럼만 해라’고 격려하는 건 물론, 몇 번이고 필요한 건 없냐 밥 더 먹겠냐 챙겨줬다.

    다음에 또 오면 더 맛있는 걸 먹게 해주겠다며 떠나는 순간까지 도훈에게 호의적인 모습만 보였다.

    물론, 사장님과 사진도 찍고 사인도 했고.

    처음 들어갈 때와 나오기 전 사장님과 악수한 시간을 합하면 못해도 3분은 넘을 터.

    ‘여자분이니까 좀 더 그러셨던 걸 테지.’

    선거 때도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자신에게 호의적이었던 걸 되새기며 도훈이 비서실에 들어섰다.

    그런데 안에 의외의 인물이 와 있었다.

    “점심 맛있게 드셨습니까?”

    “네. 부시장님은 식사하셨습니까?”

    “구내식당에서 밥 먹다가 조 비서관이랑 홍 주무관을 만나서 차까지 얻어 마시고 있네요.”

    “아, 네.”

    소파에 앉아 대화하던 전경완이 도훈에게 수더분하게 웃으며 말했다.

    도훈은 잠시 소파 곁에 서서 대화를 나누다 커피를 챙겨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전경완은 도훈보다는 두진에게 신경을 집중하고 있어서 그리했는데, 영배가 따라 들어왔다.

    “무슨 얘기 했어?”

    “시시콜콜한 얘기.”

    도훈이 속삭이자 영배도 조용히 답했다.

    “사람 친해지는 데 시시콜콜한 얘기 나누는 것만큼 좋은 게 없지.”

    “그렇지. 전 부시장님 생각보다 재밌는 얘기 많이 아시더라.”

    “그래? 좀 의왼데?”

    전경완이 수더분하게 잘 웃는 건 맞지만, 익살스러운 캐릭터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도훈이었다.

    “그게 사연이 좀 있더라고. 사모님이 우울증이 있으시대.”

    “저런.”

    “부시장님이 한직을 떠돌 때 앓기 시작하셨고 지금은 많이 좋아지셨는데, 전부터 사모님 웃게 하려고 재미있는 얘기 수집하신대.”

    “... 그렇군.”

    도훈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데, 영배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저번에 봤던 부시장님 조카는 진짜 조카가 아니란다. 임용 직후부터 아주 친하게 지냈던 공무원 선배 딸이래. 친형제처럼 친하게 지내서 가족들끼리도 사이가 좋다나? 그 선배라는 양반은 10여 년 전에 사고로 돌아가셨지만.”

    “흐음.”

    “그리고 그 조카 우리 후배라던데?”

    “후배?”

    “응. K대 행정학과 나왔대.”

    “아, 그래서 그랬나? 어디서 한두 번쯤 본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

    도훈의 말에 영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 친구도 공무원이래. 도청에서 근무한다더라.”

    “......”

    “행시 패스하고 한번 승진해서 지금 서기관이래.”

    “......”

    “... 왜?”

    도훈이 말없이 쳐다보자 영배가 머쓱한 표정으로 물었다.

    “뒷조사라도 한 거야?”

    “그건 아니고 네가 신경 쓰는 건 같아서 오늘 내가 이것저것 여쭤봤어.”

    “내가 궁금한 건 부시장님 개인 사정이 아니라 도지사와의 관곈데?”

    “대화에도 단계가 있는 건데 어떻게 곧바로 핵심을 찌르냐? 너 같으면 혹시 도지사님하고 친하십니까, 지령 같은 거 안 받으십니까 하고 물어볼 수 있어?”

    “... 쩝.”

    영배의 반격에 도훈은 입맛을 다셨고, 용건을 마친 영배가 비서실로 나가며 한마디 보탰다.

    “앞으로도 기회 되는대로 정보 수집해서 알려주마. 그런데, 윗사람이고 권력자라고 친하게 지내고 시키는 대로 할 분 같지는 않아. 최소한 지금까지는 느낌이 그래.”

    “......”

    영배가 나갔고 도훈은 피식 웃으며 닫힌 문을 향해 중얼거렸다.

    “하여튼, 사람 상대하는 건 정말 잘한다니까···.”

    도훈이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더는 그의 머릿속에 영배에게 들은 이야기가 남아있지 않았고, 제법 미인인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거나 하지도 않았다.

    전경완이 영배에게 ‘조카’ 얘기를 일부러 신경 써서 해 준 보람이 전혀 없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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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 체육대회가 3주 정도 남았죠?”

    “네. 9월 둘째 주 금, 토요일입니다.”

    사회복지실장의 답에 도훈이 좀 아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우리도 대회 유치하면 좋을 텐데, 이것 참··· 배보다 배꼽이 크니 아쉽습니다.”

    “하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장님.”

    매년 개최되는 충남 장애인체육대회라는 게 있다.

    말 그대로 충청남도 장애인들이 모여 여러 종목의 체육경기를 가지며 친목을 도모하는 행사인데, 도내 자치단체들이 번갈아 개최하고 있었다.

    행사를 유치하면 몇천이나 되는 선수가 참가하니 단발성이라도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될 터.

    다만, 대흥시는 그 유치전에 쉽사리 뛰어들 수가 없는 게 대회 진행을 위한 인프라가 많이 부족했다.

    경기장은커녕 인조잔디가 깔린 축구 구장도 없는 대흥시.

    시의 초, 중, 고교에 있는 운동장, 체육관을 활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소화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여하튼, 꼭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이런저런 행사를 치를 수 있는 문화센터나 경기장 건설 요구가 그래서 전부터 있었다.

    다만, 상시 사용할 것도 아닌 그런 시설 건설에 예산을 투입하기에는 대흥시 살림의 규모가 작았고, 먼저 예산을 투입해야 할 현안은 항상 넘쳐났다.

    한 마디로 누가 공짜로 지어준다면 몰라도, 시 예산으로 그런 시설을 짓는 건 요원한 일.

    “설사 우리 시에 충분한 경기시설이 있다고 치더라도 유치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몇천이나 되는 선수단의 숙소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시는 행인지 불행인지, 관내에 모텔도 많지 않습니다.”

    “아, 그랬죠.”

    대흥시에는 숙박시설도 별로 없었다.

    있어 봤자, 국도 인근에 드문드문 있는 몇 개의 모텔이 전부.

    사회복지실장은 나름 위로한다고 한 말인가 본데, 전혀 위로가 안 되는 도훈이었다.

    ‘하기야 대형 마트조차 없는데···.’

    분명 시(市)임에도 불구하고 대흥에는 다른 시와 비교해 없는 게 많았다.

    애초에 인구가 5만도 안 되는 곳이니.

    “선수단 지원 내용은 협의가 끝났습니까?”

    “최종 조율 중입니다. 굵직한 건 다 결정됐고, 자잘한 부분에서 조정할 게 몇 가지 남아서요. 대회가 가까운 곳에서 열리니 그런 것 같습니다.”

    “선수단 측 입장을 최대한 반영해주세요. 그게 중요합니다.”

    “알겠습니다.”

    미팅을 마친 사회복지실장이 나간 뒤, 도훈이 푸념하듯 입을 열었다.

    “일반인일 때는 당연하게 생각되던 게 시장이 되니 또 느낌이 다르네요.”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두진이 묻자 도훈이 쓰게 웃으며 답했다.

    “예를 들면 숙박시설 같은 거요. 경기장이야 효용 문제가 분명하니 최소 향후 몇 년은 시 예산으로 고려할 사항이 아니지만, 숙박시설 같은 건 시 예산으로도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왜 지방 도시에 모텔만 잔뜩 있는 구획이 심심찮게 있는데, 우리 시에는 그런 게 없잖습니까. 전에는 모텔촌 같은 건 없는 게 낫다고만 생각했는데, 숙박시설 생각하니까 못 보던 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뭐든지 동전의 양면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그나저나 오늘도 야근해야 합니다. 공부할 게 더 쌓였으니까요.”

    어느새 6시가 다 된 시계를 바라보며 두진이 그렇게 말하고 몸을 일으키는데 도훈이 만류했다.

    “잠깐 앉아보세요, 실장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두진이 다시 앉으며 물었고 도훈이 답했다.

    “부시장님 관해서 잠깐 얘기 좀 하시죠.”

    “야근 때문에요?”

    “뭐, 그것도 있고 부시장님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좀 듣고 싶습니다.”

    도훈은 아직 부시장의 함께 야근하며 공부하자는 제안에 대해 답을 못했다.

    부임 이틀째일 뿐이라 평가 자체가 이르니 최소한 비서실 직원의 이야기라도 들어볼 생각이었다.

    뭐, 조상님께 잠시 빙의해 달라고 하면 확실하겠지만, 웬만한 사건, 웬만큼 문제가 있는 사람을 상대할 때가 아니면 그러지 않는 도훈이었다.

    조상님이 기운을 소모하는 것도 있지만, 보통 사람은 그런 ‘치트 키’가 없으니까.

    조상님이 관상을 봐주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아직 더 겪어봐야겠지만, 최소한 속내를 숨긴 채 어떤 목적을 갖고 연기를 하지는 못할 사람이라고 봤습니다. 언뜻 들으니 도청에서 솔직담백한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다고 하더군요.”

    “도청 직원들 평가는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알아낸 게 아닙니다. 홍영진 주무관이 귀띔해 준 겁니다.”

    “아, 예.”

    도훈의 주변에서 사람을 상대하는 데 영배 만한 사람이 없다면, 이런저런 정보를 모으는 데 홍영진 만한 사람이 없었다.

    물론, 도훈이 그 정도까지 그의 능력을 알 거나 활용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럼 실장님은 부시장님과 함께 야근해도 괜찮다는 생각이시겠네요.”

    “일단은 그렇습니다. 대흥시가 처음이라고 해도 그 사람 경력이 몇 년인데 공부를 오래 할 것 같지도 않거든요.”

    “흐음.”

    “뭐, 최종 판단은 시장님의 몫이죠. 저는 나가보겠습니다.”

    “네.”

    두진이 나가고 혼자 남은 도훈이 생각에 잠겼다.

    도훈의 머릿속에서 전경완의 수더분한 얼굴과 함께 ‘yes’와 ‘no’가 번갈아 깜빡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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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시각, 시청 부시장실.

    비서를 막 퇴근시킨 전경완이 책상에서 서류를 보는데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위이잉.

    “... 쩝.”

    발신자를 확인한 전경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받았다.

    “오냐.”

    - 저에요, 삼촌. 퇴근하셨어요?

    “아직이다. 오늘도 야근이다.”

    - 또요? 어제도 야근했다면서요?

    “공부할 거 많아. 당분간은 계속 이럴 것 같다.”

    - ... 에고. 힘드시겠네요.

    “힘들 것까지야···. 도청에 있을 때보다는 훨씬 편하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전화했어?”

    심드렁한 목소리로 묻는 전경완에게 민세경이 아양을 떨었다.

    - 에이, 삼촌. 다 알면서···.

    “어제는 운이 좋아서 시장님이랑 밥도 먹고 그런 거지. 오늘은 점심때 이후로는 못 뵀다.”

    - 히잉.

    어제도 민세경과 통화했던 전경완이었다.

    그것도 시장인 도훈을 화두로.

    “세경아.”

    - 네, 삼촌.

    “너 너무 급하다거나 나를 너무 밀어붙인다는 생각 안 드냐?”

    - 헤헤. 그게 하도 오래간만에 눈으로 실물을 보니까 그런가 봐요. 그리고 제가 기댈 데가 삼촌밖에 없잖아요.

    “기대? 채찍질하는 하는 거 아니고?”

    - 절대 아니에요.

    “쯧쯧쯧. 여하튼 오늘은 별거 없다. 새로 알려줄 게 생기면 내가 전화하마.”

    - 헤헤, 고마워요, 삼촌.

    통화를 마친 전경완이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얘가 정말 진심이긴 한가 보네.”

    대흥시 부시장으로 내정된 직후, 그는 조카에게 아주 이상한 ‘청탁’을 받았다.

    - 거기 시장님에 대해 정보 제공 좀 해주세요.

    당연히 이유를 물었고, 조카는 생뚱맞은 답을 내놨다.

    - 김도훈 시장, 제 학교 선배거든요. 학교 행시반에 있을 때 잠깐 봤었어요.

    - 그게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냐? 솔직히 얘기 안 해?

    정색하는 자신에게 조카는 이렇게 답했다.

    - ...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 선배한테 관심 있어요. 남자로서.

    한편으로 충격이었고, 한편으로 반가웠다.

    능력도 있고 미모도 출중한 조카는 대시도 많이 받았고 선도 많이 들어왔지만, 지금껏 그다지 신통한 결과가 없었다.

    잘해야 두어 번 만나본 다음 ‘안 되겠다’고 퇴짜를 놓기가 일쑤.

    오죽하면 형수가 ‘결혼정보회사’ 운운했을까.

    - 너 진지한 거야?

    - 네. 그러니까 삼촌이 조금만 도와줘요.

    그렇게 속내를 드러낸 조카는 화요일에 연차를 내고 자신을 따라오기까지 했다.

    시간은 없는데 할 일은 많아 끝까지 만류하지 못했고 운 좋게도 김도훈 시장의 배려로 차도 마시고 밥도 같이 먹게 됐는데, 지켜본 결과 조카 민세경은 진심인 듯했다.

    직장에서는 잘 웃지 않는 녀석이 시장 앞에서는 방긋방긋 잘도 웃었으니까.

    다만, 문제가 있었다.

    ‘시장님은 녀석에게 그다지 관심 있는 것 같지 않단 말이지.’

    세경의 아버지는 전경완이 공무원이 돼 처음 부임했던 부서의 선배이자 동료.

    나이 차가 좀 났지만, 곧 친형제와 마찬가지가 된 사람이었다.

    그래서 전경완은 민세경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껏 30년 넘게 지켜봐 왔다.

    10여 년 전, 민세경의 부친이 사고사한 뒤로 전경완은 진짜 삼촌보다 더 살뜰히 민세경을 챙겼고 민세경도 전경완에게 많이 의지했다.

    당연히···.

    “아무리 시장이라도 우리 조카한테 어울리는지부터 확인을 해야 돼.”

    어제야 어쩔 수 없이 조카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해줬지만, 앞으로도 순순히 정보를 넘길 생각은 없었다.

    최소한 도훈이 민세경의 상대로 자격이 있다고 결론 내릴 때까지는.

    야근을 함께하고자 했던 건 업무파악을 빨리하기 위한 게 51%, 도훈을 좀 더 알기 위한 게 49%랄까.

    “일을 위해서나 제 조카를 위해서나 부디 인심 좀 넓게 쓰십시오, 시장님.”

    중얼거리는 전경완은 누군가 자신을 아주 흥미진진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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