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인사이동 - 2.
“네, 도지사님.”
- 통화 괜찮습니까?
“네. 말씀하세요.”
- 저런, 바로 본론입니까? 이젠 좀 그럴 때가 지나지 않았어요? 우리 사이에.
‘우리 사이가 도대체 어떤 건데?’ 하고 쏘아붙이고 싶은 유혹을 꾹 누른 도훈이 최대한 심드렁하게 말했다.
“용건 없으시면 나중에 통화하시죠.”
- 아, 끊지 마요. 용건 있어요. 그것도 무려 공무.
“공무요? 뭔데 그러십니까?”
공무라는 말에 도훈이 몸을 일으켰다.
- 신임 부시장 임명 건으로 물어볼 게 있어서요.
“말씀하시죠.”
- 내가 염두에 뒀던 간부들에게 넌지시 의사를 물었는데, 생각보다 거기 가겠다는 직원이 많네요. 그래서 말인데···.
“......”
- 부시장으로 여자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흠, 자질과 자격이 있다면 성별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환영이기도 하고요.”
- 하하, 그렇군요. 그럼··· 그··· 저기···.
강정문이 말을 못하고 망설이자 도훈이 의아한 마음으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 아, 아닙니다. 하하. 혹시 김 시장, 애인 있습니까?
“... 예?”
문 손잡이를 돌리려던 도훈의 움직임이 멎었다.
- 사귀는 사람 있냐고요.
“... 그건 왜 물으시는데요?”
황당한 표정으로 도훈이 묻자 강정문의 능글맞은 목소리가 돌아왔다.
- 아, 너무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나? 하하, 미안해요. 갑자기 할 말이 떠오르질 않아서요. 그런데 대답은 안 했는데요?
“... 현재로써는 없습니다만.”
- 음, 그렇군요.
말문을 잃고 눈만 깜박거리던 도훈이 입을 열었다.
“... 공무 때문에 전화하셨다면서요?”
- 미안해요. 잠시 얘기가 옆길로 샜네요.
“......”
- 부시장 후보로 몇 사람 생각 중인데, 딱 이 사람이다 싶은 사람이 없어서 말이에요. 좀 젊은 사람은 어때요?
“얼마나 젊은 사람입니까?”
- 김 시장이랑 비슷하다면요?
손잡이를 반쯤 돌렸던 도훈의 움직임이 다시 멎었다.
도훈과 비슷한 나이의 부시장이라면 9급 혹은 7급으로 임용된 사람일 수가 없었다.
아마 행정고시 합격한 사람일 가능성이 컸다.
그런 이가 광역단체는 몰라도 기초자치단체에 근무하는 일은 무척 드물었다.
“... 저 하나만 생각해도 파격적인데, 부시장까지 그러면 파격이라는 말로는 모자라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저부터 좀 걱정되는데요.”
- 하하, 그래요?
강정문이 담담히 웃었고, 바로 이 순간부터 도훈의 머리가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 안 그래도 보수적인 공무원 사회라면 대개 다 그런 생각을 할 텐데, 왜 이런 얘기를 하는 거지?’
부시장을 빼가도 되겠냐, 이런 사람을 보내도 되겠냐고 전화해 상의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으나 도지사로서는 상당히 도훈을 배려한 행동이라 할 수 있었다.
배려는 좋으나, 문제는 수요일 통화의 목적은 명확했는데 지금 통화는 강정문의 의도가 잡히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 다른 후보도 있어요. 일은 잘하고 성품도 좋은 분인데, 한 가지 단점이라면··· 술을 좀 좋아하고 술에 취하면 사람이 좀···.
‘그런 부시장 절대 사절입니다.’라는 말을 꾹 억누르며 도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 수긍이 안 가는 사람을 부시장으로 어떠냐고 묻는 이유가 도대체···.’
- 음, 또 다른 후보도 있어요. 어떤 분이냐면···.
전화기 너머에서 강정문이 뭐라 뭐라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도훈은 강정문의 의도를 파악하려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드디어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 설마?’
- ···한 사람이에요. 단점이라면···.
“도지사님.”
- 응? 왜요, 김 시장?
“도대체 어떤 사람을 부시장으로 보내시려고 이렇게 겁을 주시는 겁니까?”
- ... 겁을 주다뇨?
“그게 아니면 바람을 잡으신다고 할까요?”
- ......
강정문이 조용해졌고, 감을 잡은 도훈이 말을 이었다.
“저나 직원들이나 희망하는 부시장감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로 생각합니다. 성실하고, 직원들 잘 챙기고, 일에 집중하는 그런 사람이요.”
- 하하, 그, 그렇겠죠.
“어떤 분이든 방금 제가 언급한 조건을 충족하면 충분할 겁니다. 괜히 거기에 지사님과 친하다거나, 지사님과 막역하다거나, 지사님과 동지적 관계라거나··· 뭐 이런 꼬리표가 붙을 필요는 절대 없을 것 같은데요?”
- ......
강정문의 말이 없자, 도훈은 자신이 제대로 추측했음을 확신했다.
강정문은 단점 많은 후보를 나열해 도훈을 기함시켜 놓고는, 실제로는 자신과 도훈의 관계 증진에 플러스 역할을 할 사람을 보낼 계획이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부시장은 도지사가 임명하는 거라 그쪽 영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가 없는데···.’
속으로 투덜거린 도훈은 또박또박 상대가 잘 알아들을 수 있게 말을 이었다.
“부디 저와 지사님의 ‘보편타당’한 관계 형성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 분이 부시장이 되면 좋겠습니다.”
- 크, 크흠. 어, 뭐라고? 알았어. 미안해요, 김 시장. 와이프가 불러서 이만 끊어야겠습니다. 또 통화합시다.
뚝.
강정문은 서둘러 전화를 끊었고 도훈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큰일 날 뻔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도훈이었다.
‘묻지도 않고 그냥 임명했으면 어쩔뻔했어? 그렇게 안 봤는데 그 양반 허술한 면이 있네. 가만, 설마··· 내가 그렇게까지 얘기했는데 임명 강행하는 거 아니겠지?’
도훈이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뒤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던 영배가 물었다.
“... 야, 뭔 일인데 그래? 도지사에 부시장이 어쨌길래?”
도훈이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 방바닥에 앉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잔을 들어 단번에 비워버렸다.
꿀꺽. 꿀꺽. 꿀꺽.
“... 휴우.”
“무슨 일인데 그래?”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영배에게 도훈이 힘없이 웃으며 답했다.
“... 형.”
“응.”
“이건 내 추측인데 말이야.”
“뭐가?”
“나 방금 도청에서 투하한 폭탄이 시청에 떨어질 뻔한 걸 막아낸 것 같아.”
“... 폭탄? 무슨 폭탄?”
“음, 인사 폭탄?”
“... 그게 무슨 소리야?”
어리둥절한 영배에게 도훈이 쓰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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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충남도청이 있는 내포 신도시의 어느 빌라.
실내가 아주 청결하고 깔끔한 집 안 식탁에 강정문이 누군가와 마주 앉아 있었다.
“쩝,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구나. 그 친구가 눈치가 비상하거든.”
“......”
“그리고 나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장과 부시장이 둘 다 30대? 좋게 볼 사람이 거의 없을 거다. 시장은 선출직이니 그래도 낫다만 넌 문제가 다르지. 거기 직원들부터가 널 곱게 볼 리가 없어.”
“... 알았어요. 제가 포기하죠. 고려해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해요.”
“감사는 무슨···.”
강정문은 조금은 시무룩한 젊은 여자의 ‘포기’라는 말에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써야만 했다.
실제로는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젊은 여자에게 그런 속내를 들켜 좋을 게 전혀 없었으니까.
“누굴 보내실 건가요?”
“글쎄다. 주말 동안 생각 좀 더 해보고 결정해야지. 일단은 셋을 염두에 놓고 고민 중이다.”
“... 그중에 전경완 과장도 있어요?”
“솔직히··· 있다.”
강정문의 말에 젊은 여자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강정문이 조금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네가 전 과장한테 많이 의지하는 건 아는데, 어찌 보면 그 친구가 딱이야.”
“알아요. 저 신경 쓰실 것 없어요. 거기로 가면 전 과장도 좀 편해지겠죠. 제가 이젠 애도 아닌데요, 뭘.”
“정말 괜찮겠냐?”
“그럼요. 제 나이가 벌써 서른둘이에요.”
밝게 웃으며 말하는 여자는 서글서글한 눈망울을 가진 지적인 느낌의 미녀였다.
가만히 여자를 바라보던 강정문이 담담히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
“이만 가야겠다. 저녁은 잘 먹었다.”
“뭐, 엄마가 보내준 것들 데우기만 한 건데요.”
“하하, 이모님께 안부 전해다오.”
“네, 그럴게요.”
강정문이 현관에서 여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말했다.
“나오지 마라.”
“네. 조심해서 가세요.”
철컥.
문이 닫힌 얼마 뒤, 강정문 앞에서는 내내 얌전한 표정이던 여자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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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대흥시 시의회 청사.
소회의실에서 비서실장 송두진이 의회 사무과장과 마주 앉아 있었다.
사무과장의 얼굴이 흥분해 붉어진 반면, 두진은 싸늘하게 가라앉은 상태.
“... 제가 왜 거기로 가야 합니까? 이건 부당합니다, 실장님.”
“......”
“아무리 시장님이라도 이럴 수는 없···.”
“내가 건의했네.”
“... 네?”
과장의 말을 끊는 두진의 표정은 더욱 차가워져 있었다.
“시장님은 그냥 놔두자고 했지만, 내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했단 말일세.”
“... 왜, 왜요?”
“몰라서 묻나?”
차가운 두진의 눈빛을 받은 과장의 얼굴이 굳어졌고, 두진이 싸늘하게 말을 이었다.
“자네가 의회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의원들과 적정선을 지켰어야지.”
“... 제가 뭘 어쨌다고···.”
“끝까지 발뺌할 건가?”
“......”
“사실 난 몰랐어. 시장님이 알려줘서 알았지.”
“... 뭐, 뭘 말입니까?”
“차 의원에게 간부들 일 귀띔해준 거 자네잖아.”
흠칫.
“그게 시장님을 공격할 무기가 될 걸 알면서도 말이지.”
“... 즈, 증거라도 있습니까?”
“지난달 30일 저녁에 차 의원과 만났잖아.”
“......”
“논산 가는 국도변 식당 뒷방에서 말이야.”
“......”
파르르.
과장이 몸을 떨었고, 두진의 눈빛이 한층 차가워졌다.
“식당 이름도 말해줘?”
“......”
과장이 고개를 푹 숙였고, 두진이 잠시 그를 노려보다 몸을 일으켰다.
“좌천이 아닌 걸 다행으로 알게. 난 인사위원회를 열자고 주장했었네. 시장님이 끝내 수용하지 않았지만 말이야.”
“......”
문 손잡이를 잡은 두진이 돌아서,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과장에게 말했다.
“자네가 자중하고 업무에 집중하는 한 이 이상의 불이익은 없을 거라고 시장님이 말씀하셨네. 단, 시장님 재임 중에 의회로 돌아올 수는 없을 거야.”
“......”
“앞으로는 자중하게. 자네 자신을 위해서라도.”
싸늘하게 말하고 돌아선 두진이 밖으로 나와 문을 닫았다.
긴장을 풀려는 듯 한숨을 토해낸 그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 시장님은 도대체 어떻게 아신 거지?’
고개를 갸웃거린 그가 다시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애써 얼굴을 푼 그가 마주치는 직원들과 담담히 미소 지은 얼굴로 인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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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시장실.
“잘 마무리했습니다.”
“불만을 토로하지 않던가요?”
“처음엔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유를 알려주니 아무 말 안 하더군요.”
“... 쩝.”
“원래 아둔한 사람은 아니니 알아들었을 겁니다.”
의회 사무과장이 차혜진에게 정보를 넘겼다는 건 조상님이 알아냈다.
안준식이 차혜진의 정보 소스를 귀띔해주던 날, 출처가 어디인지는 알아야겠다 싶어서 조상님께 부탁해 확인했다.
과장 문제를 놓고 고민하다 두진에게 상담을 했는데, 두진이 사무과장을 더 의회에 놔둬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사무과장 본인은 물론, 차혜진을 위해서도.
“... 알겠습니다.”
“나가보겠습니다.”
두진이 나갔고 도훈은 빤히 문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고민 끝에 두진에게 털어놨지만, 그에게도 모든 걸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차혜진이 과장에게 먼저 접근한 게 아니라 그 반대라는 것을.
그랬다면, 두진은 분명 이동에 그칠 게 아니라 징계해야 한다 주장했을 텐데, 도훈은 그렇게까지 할 건 아니라 판단했다.
- 그 의원, 너한테 쌓인 게 많은 것 같다는 얘기는 내가 했지?
“... 뭐, 그럴 수도 있겠죠. 고군분투 중이잖습니까?”
- 타협하라는 얘기는 안 하마. 대신 삐진 아이는 혼내기보다 달래는 게 잘 통할 때도 있다.
“하하, 생각해보겠습니다.”
도훈이 조상님과 대화를 마치고 비서실로 나가는데, 직원들이 영배의 책상에 모여 수군거리고 있었다.
“... 진짜예요?”
“네.”
“흐음, 이걸 반가워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알쏭달쏭하네요.”
도훈이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도청에서 부시장 내정자를 알려왔습니다. 16일로 정식 발령입니다.”
답하는 두진뿐 아니라 정임의 표정도 묘했기에 도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누군데 그러세요?”
“전경완이라고···. 지금 도청 감사과장입니다.”
“... 무슨 문제가 있는 분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성실하고 능력 있다고 잘 알려진 친구죠. 정년이 아마 2년 정도 남았을 겁니다.”
“... 그런데 왜요?”
어리둥절한 도훈에게 정임이 답했다.
“시장님, 저희가 도청 직원을 안다는 게 좀 특이한 거예요. 도청 직원이 엄청 많은데 저희가 그 사람들 다 알 수가 없잖아요.”
“그런가요? 그래서 뭐가 특이한 건데요?”
도훈의 말에 정임이 쓴웃음을 물었고, 담담한 표정의 두진이 답했다.
“그 친구, 내부고발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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