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45화 (46/279)

45. 인사이동 - 1.

8월 둘째 주 금요일 점심시간, 시청 구내식당.

“축하드립니다, 부시장님!”

“축하드려요!”

“축하드립니다!”

식당에 들어서다 직원들에게 둘러싸여 축하인사를 받는 여성식을 바라보며 식기를 반납하던 도훈이 묘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 너 인마, 표정이 묘하다? 아주 고소한 모양이야?

‘... 그런 건 아니고요. 이렇게 결론이 나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서요.’

- 진짜로?

‘네.’

- 흠.

수요일, 도훈과 통화한 도지사 강정문은 곧바로 일을 추진했다.

- 충남 공무원교육원 교육총괄과장을 맡아주시겠습니까?

여성식은 고민 끝에 이를 수락했고, 다음 주에 정기가 아닌 ‘수시 인사’로 발령이 날 터.

오늘 아침 도청으로부터 전해진 그 ‘내정사항’은 이미 시청에 쫙 퍼졌다.

얼마 전, 교육총괄과장이 병으로 사직해 자리가 비었는데, 교육원의 과거 인사 잡음이 포착돼 내부에서 임명하기 어려운 형편이란다.

때마침, 선행으로 지역 뉴스에 소개된 여성식을 강정문이 눈여겨봤는데 알고 보니, 그가 바로 교육원 출신.

대흥시가 생기기 전 이 지역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던 여성식이 부시장으로 대흥시에 금의환향하기 직전 근무지가 바로 공무원교육원이었다.

확인해 보니 일 처리는 물론이고 처신도 깔끔하다고 유명했던 인물.

그렇게 필 받은(?) 강정문은 도훈의 평가를 듣고 여성식을 발탁했다.

부시장에 임명되면 대부분 정년까지 이동이 없다는 걸 생각하면 매우 흔치 않은 경우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부시장 승진을 위해 전부터 친분 있던 전 대흥시장의 연줄을 이용했던 여성식이니 세상일은 참 알다가도 모른달까.

- 저놈, 요새 욕심이 모락모락 커지고 있었는데 말이야.

‘... 뭐 때문에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번 일로 조금은 해소되겠죠.’

- 안 그래도 삿된 기운이 많이 가셨다.

‘다행이네요.’

3년 뒤를 꿈꾸며 한참 의욕을 불태우던 그가 강정문의 전화 한 통에 노선을 수정한 이유.

- 교육원장이 내년 6월로 정년퇴직합니다. 내 제안을 수용하면 여 부시장을 차기 원장 후보 중 하나로 고려하겠습니다.

확답은 아니지만, 4급 서기관에서 3급 부이사관으로 승진할 기회.

부시장직을 유지하면 정년까지 승진의 기회는 없을 게 분명하니 여성식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식기를 반납한 도훈이 정임, 두진과 함께 식당 밖으로 나가다 여성식과 마주쳤다.

“축하드립니다, 부시장님.”

“감사합니다.”

“거기 가서도 활약하시길 바랍니다.”

“노력하겠습니다.”

답하는 여성식의 눈빛이 조금은 맑아졌다고 도훈은 느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환한 미소로 여성식과 악수를 교환한 도훈이 자리를 떴고, 정임과 두진도 축하인사를 한 뒤 도훈을 따랐다.

그런 도훈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한 여성식은 씁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 엊그제 일도 있고 여 부시장님 인사기록도 인사기록이지만, 김 시장 평가가 아주 좋았습니다.

- ... 김도훈 시장 말씀이십니까?

- 네. 제가 그 사람 좀 겪어봤는데, 누구 앞이라 해도 마음에 없거나 허튼소리는 절대로 안 하는 사람이거든요.

- ......

왜 나를 골랐냐는 질문에 대한 강정문의 답.

통찰력이 보통이 아닌 도훈이 분명 뭔가 눈치를 챘다고 생각했던 여성식.

그 때문에 요즘 표정관리에 완전히 실패할 정도로 움츠러들고 초조해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강정문에게 ‘아주 좋은’ 평가를 해줬다는 말에 여성식은 자신의 그릇이 도훈보다 한없이 작다는 걸 느꼈다.

‘애초에 도지사가 날 눈여겨본 방송도 김 시장 덕분에 나가게 된 거나 마찬가진데···.’

폭염 순찰을 생각해낸 것도, 인터뷰를 자신에게 넘긴 것도 도훈.

이번 발령이 그렇게 질시하던 도훈의 덕이나 다름없음에, 여성식은 ‘계획’까지 세웠던 자신이 너무도 바보 같다는 걸 깨닫고 도지사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뒤늦게라도 깨달은 게···.’

자칫하면, 공직 연장은커녕 질시와 욕심에 눈이 멀어 정년퇴임조차 못 할지 몰랐다.

신흥 건설 나영철 이사에게 도훈의 약점은 영배라 컴퓨터로 익명 메시지까지 보내질 않았던가.

이대로 대흥시에 머물며 그 계획에 집착했다가는 분명 망가지고 말 거라는 불길한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대흥시를 떠나기로 한 선택에 후회는 없지만, 도훈에게 느끼는 패배감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당장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자신이 도훈을 이길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또한.

- 정말 이걸로 만족하냐?

‘그렇다니까요. 서로에게 ‘윈윈’이니 좋은 거 아닙니까?’

- 글쎄다. 저놈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식당에서 멀어지는 도훈 옆 허공에서 여성식에게 시선을 고정한 조상님이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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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실의 점심 커피 타임.

소파에 도훈을 비롯한 비서실 직원 모두가 둘러앉은 가운데, 커피나 차를 마시며 잠시 수다를 떠는 시간이었다.

“부시장이 다른 곳으로 가는 일은 좀처럼 없죠, 실장님?”

“우리 도는 그렇지. 다른 도에서는 꼭 그렇지도 않다고 들었네. 내 기억에 우리 도에서 부시장이 다른 임지로 간 경우가 많지 않아. 대개 그 자리에서 정년을 맞지.”

“여 부시장님은 운이 좋네요.”

“그 사람 일 잘하는 거야 두말할 필요가 없으니까.”

정임과 두진이 대화하는 걸 모두가 가만 듣고만 있었다.

도훈이야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이고, 영배는 정임과 두진의 대화에 집중한 상태.

좀 의외인 건 홍영진이랄까?

‘... 마치 오랜 전쟁 끝에 평화를 되찾은 병사의 모습이랄까요?’

- 내 느낌도 비슷하다. 너한테 그 얘기를 한 다음 마음고생을 좀 한 모양이다.

‘그러게요. 미리 불러서 얘기를 좀 할 걸 그랬어요. 미안하네요.’

해탈한 부처님의 표정에 가까운 홍영진의 모습에 도훈은 속으로 쓰게 웃었다.

아닌 게 아니라 자기 딴에는 큰맘 먹고 정보를 제공했는데, 정작 도훈은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았으니 어찌 속이 타지 않았겠는가.

“새 부시장님은 언제 올까요?”

“글쎄···. 여 부시장이 다음 주 목요일자로 발령 난다고 하니 지금쯤 열심히 찾고 있겠네. 아마, 여 부시장 가는 것과 비슷하게 오지 않을까? 업무 공백이 있으면 안 되니까.”

정임과 두진의 대화에 영배가 끼어들었다.

“혹시 어떤 분이 부시장이 될지 짐작 가십니까?”

“에이, 나는 도에는 잠깐 파견 나갔던 게 전부라 아는 사람이 전혀 없어.”

두진이 손사래를 쳤고, 정임이 기대를 담아 말했다.

“어떤 분이 됐든, 일 열심히 하시고 성격 좋은 분이면 좋겠네요.”

“흠, 그 정도면 ‘수우미양가’ 중에 우는 되겠네.”

“아니, 저 정도가 우라고요? 또 뭐가 있어야 수가 되는 겁니까?”

영배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두진이 그런 것도 모르냐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몰라서 물어?”

“모르겠는데요?”

“하, 조 비서관. 아직 갈 길 멀었네.”

“... 그렇습니까? 하하.”

머쓱한 표정이 된 영배에게 답한 건 정임이었다.

“아마 일반 회사도 비슷하겠지만, 공무원들이 제일 싫어하는 상사는 ‘오리발’ 내미는 사람이에요.”

“... 오리발이요?”

“네. 자기가 했던 말이나 지시한 일의 결과에 책임을 안 지고 미루는 그런 사람이요.”

“아하, 그런 사람 골치 아프죠.”

“다행히 저는 그런 상사 경험한 적 없는데, 동기나 후배들 얘기 들어보면 그런 상사한테 잘못 걸리면 정말 힘든가 보더라고요.”

정임의 말에 가만히 있던 영진까지 고개를 끄덕였고 두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공무원 생활 오래 하고 직급이 높아질수록 웬만한 사람은 ‘보신’이 생활화된다네. 자기 보호 본능이 점점 강화된다고나 할까?”

“뭐, 그건 일반 직장에서도 비슷하겠죠. 공무원 사회가 좀 더 신랄한 비판을 받는 건 국민, 시민을 직접 상대하는 거니까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도훈이 끼어들자, 다들 수긍 가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다음 부시장은 열정적이고 책임감 넘치는 분이 오길 바라며 커피 타임을 마치도록 하죠.”

“네.”

“일합시다.”

다들 마시던 찻잔을 정리했고, 도훈은 두진을 시장실 안으로 불렀다.

“저랑 인사 자료 검토 좀 하시죠.”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인사는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사안.

각 부서 건의안이 담당 부서를 거쳐 진즉 보고가 됐고, 도훈은 담당 부서장과 검토를 마쳤다.

오늘은 확정 및 발표를 하기 전 두진과 최종 검토를 할 계획.

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도훈과 두진 두 사람만 논의한 것은 아니었다.

“고 주무관, 잠깐만 들어봐 보게.”

“홍 주무관님 어디 가셨죠? 잠깐 시장실로 오라고 전화 좀 해줄래요?”

간간이 정임과 영진이 시장실에 들락거렸다.

직원 개인에 대한 인사 자료가 있긴 하지만, 보다 실재에 가까운 두 사람의 조언이 필요했으니까.

“이제 더 안 부르실 거래.”

세 번째로 시장실에 들어갔던 영진이 나오며 전했고, 정임과 영배의 얼굴이 풀어졌다.

영배가 시계를 봤다.

오후 4시가 넘은 시각, 바야흐로 퇴근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금요일인데 회식이나 하자고 해볼까요?”

“오늘은 공부 안 하세요?”

“음, 미루자고 하면 혼날까요?”

“호호, 시장님이나 실장님이나 공부를 미뤄도 회식을 하시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특히, 조 비서관님은 어디로 새지 말고 바로 집으로 가라고 토 다실 걸요?”

“쩝. 오늘 와이프가 애들 데리고 장모님께 간다고 했는데.”

“아하? 어쩐지···.”

“너무 속보였나요?”

“뭐, 이해는 해요.”

영배와 정임이 잡담하는 사이에도 도훈과 두진의 회의는 이어졌다.

그리고 두 사람만의 회의는 생각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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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경, 도훈의 집.

순심이를 안고 들어서는 도훈의 뒤에서 비닐봉지를 든 영배가 호기롭게 말했다.

“딱 맥주 1병씩만 하는 거야.”

멈칫.

영배의 말에 순심이를 내려놓은 도훈이 돌아서 말없이 절친을 째려봤다.

“... 왜?”

“아까는 한 캔이라며?”

“그랬나? 잘 기억이···.”

“나중에는 한 페트병씩이라고 하겠네?”

“... 하하.”

“그러다 여기서 자고 갈 속셈이겠지.”

“... 하하, 자식. 좀 봐주라. 나 오래간만에 프리야!”

“형수한테 전화를···.”

“야!”

도훈이 핸드폰을 빼 들자 영배가 기겁했고, 피식 실소를 흘린 도훈이 그제야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들어 와.”

얼마 뒤.

칙!

“건배!”

“... 그래.”

순서대로 샤워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마시는 맥주.

“크으!”

“... 꿀맛이긴 하네.”

“그렇지? 하하, 내 덕분에 꿀맛 보는 줄 알아, 인마.”

“퇴근 후의 맥주는 혼자 마셔도 꿀맛이야.”

도훈이 쏘아붙였지만, 영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첫 잔을 비우고 곧바로 다시 잔을 채우고 두 번째 잔도 비우더니 그제야 안주로 사 온 쥐포를 뜯는 영배.

“실장님이랑 무슨 얘기를 그렇게 오래 한 거야?”

“정기 인사에서 의견이 갈리는 게 좀 있었어.”

“몇 사람이나?”

“한 사람.”

“겨우 한 사람 때문에 30분 넘게 얘기를 했다고? 누군데?”

“월요일에 보면 알아.”

도훈과 두진의 회의가 길게 이어졌던 건, 두진은 한 사람의 이동을 강력히 주장했고 도훈은 딱히 그렇게까지 할 마음이 없었던 탓.

“이유는? 그것도 지금은 얘기 못 해?”

“응, 월요일에 인사발표 난 다음에 얘기해줄게.”

“... 내 친구지만, 참 철저하다.”

“친구니까 더 철저해야지.”

“쩝. 김도훈을 누가 말리겠냐?”

그 문제는, 두진이 도훈을 설득해 모 간부가 이동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리고 이 인사발령에 한해서, 두진이 월요일 아침 일찍 당사자를 직접 찾아가 전하기로도 했다.

그래야 인사이동의 의미를 명확히 전할 수 있다면서.

“서운해하지 마.”

“안 서운해. 하루 이틀이냐?”

영배는 그러려니 하고 넘기고는 맥주에 집중했다.

‘그 사람도 저렇게 넘기면 참 좋겠는데···.’

도훈이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도훈의 핸드폰이 울렸다.

액정을 확인한 도훈이 말없이 미간을 찌푸렸다.

“... 왜? 누군데?”

“반갑지 않은 사람.”

영배가 액정을 보니, 이름 대신 ‘반갑지 않은···.’라고 적혀 있었다.

의아해하는 영배 앞에서 도훈이 전화를 받았다.

“네, 도지사님.”

“......”

어이없다는 표정의 영배 앞에서 도훈이 진심으로 반갑지 않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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