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43화 (44/279)

43. 반전.

8월의 첫 일요일 낮, 대흥 지구대 주차장.

더위 예방 물품과 간식을 전달하러 온 도훈 일행이 용건을 끝내고 지구대장과 팀장의 배웅을 받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시장님. 잘 쓰고 잘 먹겠습니다.”

“더 넉넉하게 지원을 해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이고, 무슨 말씀을. 이 정도면 넘칩니다. 저희한테만 주시는 게 아니고, 여기저기 다 돌리셨다면서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아무쪼록 순찰 잘 부탁드립니다, 대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도훈은 자신의 SUV 운전석에 앉았고 두진과 영배를 태우고 차를 몰아 지구대를 떠났다.

멀어지는 도훈의 차를 바라보며 팀장이 입을 열었다.

“열심이네요.”

“그러게. 어제 박 경사가 마향리 순찰하다가 들에서 시장 마주쳤다던데. 오늘도 나왔어.”

“시장이 신경 쓸 만큼 요즘 무덥긴 하죠.”

“그러게 말일세. 비도 안 오고.”

“저렇게 열심인데, 간부들은 왜 그러는지···. 대장님도 시청 간부들 얘기 들으셨죠?”

“들었지.”

“대흥시 공무원이 전부 다 알 정도로 소문이 쫙 돌았는데, 정작 저 양반은 아주 의연하네요. 속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좀은 의외라는 팀장에게 대장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그럴 줄 몰랐어? 난 시장 나이가 서른다섯밖에 안 됐다는 게 아직도 잘 안 믿겨. 얘기하다 보면 최소한 그보다 열 살은 더 먹은 사람을 상대하는 기분이거든.”

“그렇긴 하죠. 제 개인적 소식통에 의하면, 시장 양반 대학교 신입생 때 선배들이 한동안 함부로 못 대했답니다.”

“왜? 싸움을 잘해서?”

“그게 아니고 말과 행동이 너무 묵직해서 선배들이 다 복학생인 줄 알았답니다. 잘생기긴 했는데 앳된 얼굴은 또 아니잖습니까.”

“하하, 왠지 상상이 가네. 그런데 자네 언제 시청에 정보원 만들었어?”

지구대장이 묻자 팀장이 으스대는 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정보원까지는 아니고 아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아이고, 이 친구야. 시청 말고 본서 사람이랑 좀 친하게 지내.”

“하하. 예.”

“들어가세. 어휴, 잠깐 나왔는데도 벌써 땀이 나네.”

대장과 팀장이 지구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름의 절정인 8월 첫 주말, 작렬하는 태양 아래 무더위가 기승을 떨치고 있었다.

-----

시청으로 향하는 도훈의 차 안.

“점심 드셔야죠, 실장님?”

“벌써 점심시간이 됐네. 그런데 너무 더워 입맛이 없어. 시장님, 식사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에어컨이 켜진 차 안인데도 두진은 손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나이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젊은 도훈이나 영배도 힘겨울 정도로 날씨가 너무 덥긴 했다.

“저희뿐입니다. 말 편하게 하세요”

“아닙니다. 이게 좋습니다.”

말을 편하게 하라는 도훈의 말에도 선뜻 말을 낮추지 않는 조수석의 두진.

운전하는 도훈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말을 이었다.

“에휴. 말 편하게 하시는 게 제 마음 편히 해주시는 겁니다. 요새 왜 그러십니까?”

“왜는요. 이게 맞는 것 같아서 그러는 것뿐입니다.”

“... 실장님도 제가 딱해 보이십니까?”

“커, 커험. 아, 아닙니다.”

시청 하급 직원들 중심으로 도훈이 딱하다는 얘기가 돌고 있었다.

무슨 생각인지 모를 간부들의 모임 때문에 시의회에서 시정 장악력이 의심스럽다며 공격을 받은 도훈.

화를 내도 모자랄 텐데 도훈은 그게 무슨 잘못인지 모르겠다 말하며 오히려 방어를 했다.

그 이후, 대흥시는 물론 인근 도시, 멀리는 충남도 공무원들에게까지 시장 몰래 모임을 한 간부들과 그들을 방어한 도훈의 소문이 퍼졌다.

분명 좋은 일이 아니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음에도 도훈은 일절 그 소문에 신경 쓰지 않으며 의연하게 행동했다.

그런 도훈의 태도 덕분에, 특정되지 않은 간부들만 눈총을 받을 뿐 도훈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시선이 늘었다.

대자당 지역위원회 사람들과 그 당 시의원조차 그런 공무원들의 분위기에 눌려 도훈의 시정 장악력이 의심스럽다는 소리를 더는 못 할 정도로.

여하튼, 도훈을 안쓰럽게 보는 직원들의 시선이 늘면서 그에 영향받았는지 두진이 사적인 자리에서까지 높임말을 쓰고 있었다.

아마 ‘나부터 시장을 높여줘야 한다’는 생각인가 본데, 당연히 두진의 그런 모습을 도훈은 불편해했다.

“그런 거 아니면 말씀 편하게 하세요. 우리끼리 있는 데도 높임말 쓰시면 정말 제가 불편하니까요.”

“... 알겠습···, 아니, 알겠네.”

두진이 말을 낮추자 뒤에 앉은 영배가 그제야 숨 좀 쉬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에고, 저도 이제야 좀 편하게 얘기하겠습니다. 실장님이 도훈이한테 말을 높이시니까 저도 눈치가 보여서요.”

“하하, 그랬나?”

“네.”

두진과 영배가 어색하게 웃는데 도훈이 투덜거리듯 말을 이었다.

“요즘 어디서 직원들을 마주쳐도 다들 너무 깍듯해서 좀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실장님이라도 저 숨 좀 편히 쉬게 해주십시오.”

“자네가 불편할 정도야?”

“조금요.”

“하하. 아닌 게 아니라 좀 오버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긴 합니다. 엊그제 청사 1층 화장실에서 작은 일 보는데 어떤 사람이 큰소리로 인사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영배가 끼어들자 두진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화장실에서? 누가?”

“아마 세무회계과 징수팀 막내일걸요? 이름이···.”

“차우진 씨요. 작년에 임용된 사람입니다.”

“맞다, 차우진! 어쨌든, 쉬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쩌렁 하고 화장실이 울릴 정도로 인사를 하더라고요.”

“하하, 그 친구도 얼떨결에 그랬겠지.”

두진의 말에 도훈이 다시 투덜거렸다.

“요즘 얼떨결에 그러는 사람이 꽤 늘었다는 게 문제죠. 저와 마주치면 그냥 가볍게 인사하고 지나치면 될 텐데, 그놈의 소문을 너무 의식하는 것 같습니다.”

“직원들도 나름대로 뒤늦게 드는 생각이 있어서 그럴 걸세.”

“무슨 생각이요?”

도훈이 묻자 두진이 진지하게 답했다.

“자네가 이전 시장들과는 다르게 ‘권위적’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아주 멀잖아. 반면에 한 번이라도 마주한 직원의 이름과 얼굴은 다 외우고 다닐 정도로 진심으로 상대하네. 안 그런가?”

“진심이랄 것까진 없지만 이름, 얼굴은 외우고 있죠. 그런데 그게 왜요?”

“그런 모습이 처음에는 어색했겠지만, 이제 슬슬 적응될 때가 됐어. 적응된다는 건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과 비슷하지. 안 그런가?”

“그렇죠.”

“그런데 마침 그럴 때 이번 일이 터졌어. 간부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냐는 비판과 별개로 ‘아, 우리가 그간 시장님을 너무 편하게 대해온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 것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자네를 마주치면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오는 걸 테고.”

“... 분석이라도 하셨습니까? 무척 논리적이신데요.”

“그냥. 나도 그런 생각을 했으니까. 직원들 마음을 공감하는 것뿐이야.”

두진이 웃으며 말했지만, 도훈은 여전히 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당선자님’, ‘시장님’하고 매사에 깍듯했던 직원들이 좀 풀어진 모습을 보이게 하기까지 꽤 공을 들였는데, 그게 도루묵이 되어버렸달까.

사람들은 이런저런 추측을 하는 모양이지만, 도훈의 관점에서 ‘소문’ 때문에 본 유일한 피해가 바로 그것이었다.

“뭐,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거로 생각하네. 그나저나 점심은 뭘 먹지?”

“이열치열이란 말도 있는데, 화끈한 거 어떠십니까? 예를 들면, 중국관 짬뽕이라던가?”

영배의 말에 두진이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이렇게 더운데 뱃속에까지 맵고 뜨거운 걸 넣자고? 사양하겠네.”

“중국관 냉면도 제법 괜찮습니다, 실장님. 냉 짬뽕도 있을 걸요?”

“그래? 뭐, 좋을 대로 해. 난 어딜 가든 시원한 거면 되니까.”

“도훈아. 중국관 어때?”

“오늘 일요일이라 사람 많지 않을까?”

“더운데 사람들이 직접 오겠냐? 배달을 시키겠지.”

“그러려나? 알았어.”

목적지가 정해지자 도훈이 사거리에서 방향을 틀었다.

의자에 등을 기댄 영배가 의미심장하게 눈을 빛내고 있었다.

-----

“수고 많으십니다, 시장님.”

“아, 예. 감사합니다.”

“고생하시네요.”

“아닙니다. 점심 맛있게 드세요.”

“날이 너무 덥죠? 일요일에도 일하시나 봐요.”

“하하. 뭐, 그렇죠.”

중국관에 들어선 도훈은 테이블을 지날 때마다 알아보는 시민들과 인사를 해야 했다.

홀 테이블의 반 정도를 차지한 이들과 인사를 마친 도훈이 구석 자리에 앉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어째 이상할 정도로 알아보는 사람이 많네.”

아무리 자기가 사는 곳 시장이라고 해도, 모든 사람이 시장의 얼굴을 기억하는 건 아니다.

그건 대흥시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도훈이 어느 식당을 가도 알아보는 사람은 제한적이었다.

그런데 오늘 여기서는 거의 모두가 도훈을 알아보는 듯했다.

“하하, 다 이유가 있단다.”

“응? 무슨 소리야?”

“저기 봐라.”

영배가 가리킨 곳은 이런저런 사람들의 사인이나 사진이 붙여진 곳.

나름 대흥시에서 유명한 맛집이라 꽤 많은 사인과 사진이 있었는데, 그 한쪽에 전에는 못 보던 사진 둘이 새로 걸려 있었다.

하나는 도지사와 사장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고···.

“어라? 저거 나잖아?”

강정문과 함께 식사했던 날, 사장은 도훈에게도 사진 찍기를 청했다.

웃으며 사진을 찍으면서도 도훈은 그 사진이 저렇게 떡하니 내걸릴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형은 알고 있었어?”

“어. 며칠 전에 진주가 준수 데리고 여기 왔다가 저거 봤다고 얘기해주더라.”

얼떨떨한 표정의 도훈에게 영배가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여기가 1호가 될 거야.”

“... 뭐가?”

“시장 사진 내건 가게 중에 1호가 될 거라고.”

“...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 시장이 뭐라고 음식점에서 사진을 내걸어?”

“글쎄다. 두고 보면 알겠지.”

영배의 의미심장한 미소에 두진이 물었다.

“뭔 꿍꿍이야, 자네?”

“하하, 실장님도 참. 그런 것 없습니다. 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꿍꿍이는 없어도 뭔가 아는 게 있는 것 같은데?”

두진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묻자 영배가 씨익 웃고는 속삭였다.

“음, 여기 사장님이 도훈이 지지자가 아닙니다. 도훈이와 제가 여기 오랜 단골인데 사장님이 지난 선거 때 도훈이를 안 찍었거든요. 그 정도로 민의당 골수 팬입니다.”

“... 그런데?”

“제 친구에게 들은 얘긴데요. 사장님도 ‘그 소문’을 들으셨답니다.”

“그래서?”

“벌컥 화를 내시고는 저 사진을 걸으셨다네요.”

“......”

“도훈이 팬이 되기로 하신 건 아니지만, 간부들이 몰래 딴짓할 정도로 형편없는 인물은 아니라면서요.”

“......”

“뭐, 이런 거겠죠. 마음에 쏙 드는 놈은 아니지만, 니들한테 박대받을 정도는 아니다. 그러니 나라도 편들어 준다.”

영배의 말에 도훈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했고, 두진이 다시 질문했다.

“그럼 사진 건 가게 1호라는 건 또 무슨 얘기야? 앞으로 더 걸 가게가 있을 거라는 말 아닌가?”

“여기 사장님이 상인 친목회인지 하는 단체 간부시랍니다.”

“... 그럼?”

“네. 거기서 시민들이라도 도훈이 지지해줘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셨대요. 공감하는 분들이 제법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세 사람이 소리 죽여 속삭이고 있는데, 중국관 사장이 옆을 지나쳤다.

“왔어?”

“아, 예. 안녕하세요.”

“어.”

심드렁한 태도로 도훈과 대화하고 지나가는 중국관 사장.

곧 점원이 주문을 받았고 잠시 후 사장이 직접 음식을 날라왔다.

“잘 먹겠습니다.”

“맛있게 드시게. 아, 그리고···.”

음식을 내려놓은 사장이 상의 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내 테이블에 내려놨다.

“... 이게 뭡니까, 사장님?”

“인근 음식점들인데, 사장들이 시장이 한 번쯤 와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그 리스트야.”

“......”

“당장 다 갈 필요 없고, 천천히 한 군데씩 들러 봐. 나쁜 일은 없을 테니.”

메모지에 적힌 리스트에는 10곳이 넘는 음식점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커험, 맛있게 드시게.”

도훈이 말없이 바라보자, 사장은 한 마디하고는 냉큼 주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이럴 때 ‘츤데레’라는 말 쓰지?”

“아마 그럴 겁니다.”

쓴웃음 짓고 속삭이는 두진과 도훈에게 영배가 덧붙였다.

“이건 그냥 제 추측일 뿐인데, 아마 지금 여론조사 하면 도훈이 지지율이 급등 중일 겁니다. 하하하!”

“......”

그렇게 ‘간부 모임’ 소동은 묘한 반전을 맞이하고 있었다.

# 4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