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41화 (42/279)
  • 41. 너도 한번….

    “... 이런 상황입니다.”

    “음, 좀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지금 우리 시 형편에 과연 이 체육관 건설이 타당한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체육관이 있으면 좋긴 하겠죠. 하지만, 체육관이 필요한 실업팀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관내 학교에 운동부가 활성화된 것도 아니질 않습니까? 시민 의견도 반대가 우세한 것으로 아는데, 그 부분 빠트리지 마세요.”

    “... 사업자 선정을 마친 단계입니다.”

    “절차를 속행해서라도 시급히 정비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음식물 쓰레기 수거를 제대로 못 하면 냄새는 물론이고 벌레가 끓게 되니까요. 더군다나 여름 아닙니까.”

    “... 유치가 가능하다면 그 유발효과가 상당할 거로 생각합니다.”

    “허허, 저는 좀 냉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내에 공사 교육센터를 유치하면 정말 좋겠습니다만, 과연 가능성이 있는지를 먼저 따져야겠죠. 자칫하면, 힘은 힘대로 빼고 실망은 더 크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따져볼 건 제대로 따져봐야 합니다.”

    “... 그런 상황인데, 최종 점검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차로 조성된 공단 부지 중 4할 이상이 아직 비어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미리 계획했다고 해서 2단계 공단 부지 조성을 강행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보고서에 장, 단점을 빠트리지 말고 기재하세요.”

    화요일 현안 점검 회의.

    부시장이 주재하는 이 회의는 각 부서가 현안을 보고하고 논의하는, 대개 열띤 논의가 벌어지기보다 빠르게 확인과 점검이 이어지는 자리였다.

    여기서 논의된 안건은 월 2회 열리는 확대간부회의에 올려져 최종 결정되므로 이 회의는 중간 확인 절차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긴장감이 팽팽하기보다는 자기 부서의 안건 논의를 마치면 담당 간부들조차 좀은 느슨해지는 자리였다.

    다만, 오늘 참석한 모든 간부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 것은 의장석 옆에 앉아 조용히 듣고만 있는 한 사람 때문이었다.

    “제 생각에는···.”

    “우리 자치행정과 입장은···.”

    “기업지원팀에서 판단하기로는···.”

    게다가 간부들은 딴 때 같지 않게 안건에 대한 발언도 아주 활발하게 했다.

    “오늘 안건은 이걸로 끝이군요.”

    회의가 30분이 넘게 진행됐고, 모든 안건의 논의가 끝났다.

    의장석의 부시장 여성식이 옆에 앉은 이에게 말했다.

    “시장님, 혹시 하실 말씀 있으시면···.”

    “아, 짧게 하겠습니다.”

    내내 담담한 표정으로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회의에 집중하고 있던 도훈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현안 점검 회의 분위기가 어떤지 보려고 참석했는데, 그러길 잘한 것 같습니다. 부시장님의 회의 진행도 그렇고 각 부서의 현안 정리도 그렇고 참 효율적이라고 느꼈습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과찬은요. 여러분이 이렇게 업무에 집중하시니 우리 대흥시 시민에게 좋은 일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말을 마친 도훈이 정중히 허리를 숙였고, 부시장을 비롯한 다른 간부들이 얼른 일어나 마주 허리를 숙였다.

    도훈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수고들 하셨습니다. 저는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구석에 앉았던 영배가 얼른 따라붙어 도훈과 함께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자리에 남은 간부들이 서류를 챙기며 수군거렸다.

    “시장님이 갑자기 왜···.”

    “일 잘하나 확인하고 싶으셨던 거지. 부서별 회의까지 일일이 다 참석하셨었지만, 현안 점검 회의는 처음이잖아.”

    “어휴, 저는 긴장해서 그런지 뒷목이 다 뻐근합니다.”

    “그래도 다행이지. 만족하고 가셨으니까.”

    “하하, 제가 시장님이 칭찬하는 걸 직접 보는 날이 오긴 오는군요.”

    “하긴, 나도 좀 놀랐어.”

    칭찬을 받아서 그런지 간부들의 표정은 밝았다.

    도훈은 직급이 낮은 직원들에게는 칭찬이 후한 사람이었지만, 간부들에게는 좀 달랐다.

    그래서 간부 중에는 도훈이 칭찬하는 걸 처음 보는 사람도 있었다.

    간부들이 밝은 표정으로 두런거리며 흩어져 가는 사이, 비서에게 서류를 넘긴 여성식도 묵묵히 걷고 있었다.

    다른 간부들과 달리 무표정한 얼굴이었는데, 실상 그는 상당히 언짢은 상태였다.

    ‘시장이 갑자기 왜···.’

    회의 시작 전, 부시장실로 직접 찾아와 현안 점검회의를 참관하고 싶다 말한 도훈.

    회의 내내 일절 발언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기에, 회의 진행에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성식이 언짢은 이유는 도훈이 참가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 짧게 인사말 한마디 했던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넘치게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르고 달래고··· 철딱서니 애들을 상대하듯 해야 하는데···.’

    간부들을 추스를 필요를 느끼고 조심스럽게 행동에 나선 여성식.

    접근대상으로 꼽은 간부 중에서도 핵심 두셋을 조심스레 만났다.

    ‘목적’을 갖고 접근하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시장 취임 후 궂은 일(?)이 있었던 기획감사실 실장과 건설교통과 과장을 위로하는 자리를 만든 게 시작이었다.

    그들을 시작으로 조금씩 간부들과 개인적 접촉면을 늘려가던 여성식에게 ‘상하수도 사업소’ 일은 꽤 도움이 됐다.

    경각심을 가진 이들이 먼저 여성식을 찾기 시작했던 것.

    여성식과 같은 직급의 간부도 있지만, 부시장은 시장을 제외한 행정 공무원의 대표로 상징성을 가진 자리.

    불만까지는 아니더라도 시장에게 경계심을 갖게 된 간부들이 여성식에게 시선을 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여성식이 더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 없이 자기들끼리 상의해 은밀한 점심 식사자리까지 만들었다.

    여성식은 거기에 ‘초대’받는 형식으로 참여해 동석했다.

    그 자리에서 시장에게 섣불리 노골적인 불만을 표하는 간부는 없었지만, 시장의 종잡을 수 없는 행보에 불안감을 느끼고 ‘우리끼리’라도 힘을 합쳐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 허허, 너무 ‘우리’를 강조할 필요 없습니다. 시장님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거지, 우리를 적대하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는 일에 매진하면 됩니다. 그게 시장님과도 상생하는 길이에요. 물론, 그 와중에 ‘우리끼리’ 의견을 교환하는 거야 나쁠 게 없지요. 다 동료 아닙니까.

    여성식은 그렇게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게 말하며 간부들을 다독였다.

    그들끼리는 원래부터 공통점이 있었고, 거기에 여성식이 끼어든 정도였기에 첫 번째 모임부터 화기애애했다.

    그 모임을 그대로 유지하며 구성원만 점차 늘리면 되었기에 아주 만족스러웠다.

    ‘... 그랬는데···. 빌어먹을.’

    그날 이후, 계속 좋았던 여성식의 기분은 지금 무척 나빴다.

    30분 정도의 짧은 회의일 뿐이었지만, 그 한 번의 회의로 시장이 왜 시장이고 부시장은 왜 부시장인지 간부들의 반응에서 똑똑히 느낄 수 있었기에.

    으득.

    여성식이 지긋이 이를 악물었다.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도훈은 자신과 비교가 되질 않았다.

    도훈이 똑똑하고 참신하며, 뜻밖이라 할 정도로 행동력이 있다지만, 자기도 못할 리 없다 여기는 여성식이었다.

    ‘... 갈 길이 멀어.’

    자기 사무실을 향해 걷는 여성식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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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각 시장실.

    “어떻게 보셨습니까?”

    - ... 묘해.

    “... 예?”

    - 관상이 묘하다고. 음, 쉽게 말해 뒤틀렸어.

    “... 그런 관상도 있어요?”

    - 자주는 아니지만, 이따금 그런 사람도 있다. 인생의 큰 굴곡을 겪으면 흔치 않게 그런 관상이 보이기도 하지.

    “... 제가 알기로는 여 부시장은 굴곡 없기로 유명한 사람인데요?”

    - 알려지지 않은 게 있겠지, 그럼.

    “......”

    조상님의 단정적인 말에 도훈은 대꾸를 못 했다.

    인사 자료에 한 사람의 인생이 전부 담기는 건 분명 아니니까.

    - 여하튼, 당장은 ‘악의’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욕심은 좀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것 같긴 하더라만.

    “... 그렇습니까?”

    - 그래. 다른 놈 중에서도 너 미워 죽겠다는 놈은 보이지 않았다.

    “제 눈에도 저를 향해 레이저 뿜어내는 사람은 없는 것 같더라고요.”

    - 그래서 어쩔 거냐?

    “... 글쎄요.”

    심드렁한 표정의 도훈.

    어제저녁 홍영진에게 이야기를 들을 때 심각했던 표정과는 무척 대조적인 얼굴이었다.

    - 어젯밤에는 좀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 같더니 어째 좀 심드렁하다?

    “저로서도 좀 놀라운 이야기였으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 그렇지. 우두머리 모르게 부하들이 모인다는 게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우두머리에게 좋은 일일 가능성은 크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말입니다.”

    - 어쨌든, 놀람이 가라앉고 나니까 별일 아닌 것 같냐?

    “... 생각해보니까 그렇더군요.”

    - 왜? 뭐가?

    “그렇잖습니까. 간부들이 따로 모여서 저를 쫓아낼 궁리를 하는 건 아닐 테니까요.”

    - 왜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조상님이 묻자 도훈이 담담히 답했다.

    “그들에게 이득 될 게 없으니까 말입니다.”

    - 흠?

    “저라는 사람이 시장을 하는 게 자기들에게 좋을지 나쁠지 간은 보고 있겠죠. 그리고 지난번 대기발령으로 경계심도 좀 들었겠죠. 불안한 마음에 모여서 얘기 정도 나눈 것 아닐까 싶습니다. 욕도 좀 했을지 모르죠.”

    - 그래서?

    “다른 것 생각할 것 없이 그들은 수십 년 경력을 가진 간부입니다. 무시할 수 없죠.”

    - ... 그리고?

    “타협 같은 걸 하는 건 아니지만, 일에 충실하면 자기들에게 해될 게 전혀 없다는 걸 알려주면 큰 문제는 없을 거로 생각합니다.”

    - 흠···. 틀린 말은 아니다만.

    “그냥 원칙대로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들을 추궁할 수도 없고, 그들과 싸우는 것도 대안이 아니니까요. 게다가 쪽수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잔머리나 꼼수 같은 거로는 제가 그들에게 상대가 안 될 테니까요.”

    - ......

    아무리 위대한 조상님이라지만, 잔머리나 꼼수 쓰는 법은 후손에게 가르치지 않았다.

    애초에 조상님 자신부터가 그런 것에 가깝거나 능한 사람도 아니니까.

    “제가 중심을 지킨 상태에서 그들에게 호의적이면, 그들도 괜히 일을 크게 벌일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이득이 아니라 해가 될 테니까요.”

    - 흐음. 틀린 말은 아닌데···.

    “... 아닌데 뭡니까?”

    - 아니다.

    심드렁한 조상님의 답에 도훈이 서류로 시선을 가져갔다.

    구석으로 물러난 조상님이 그런 도훈을 바라보며 가만히 중얼거렸다.

    - ... 이미 딴마음을 품은 놈이 없다면, 네 생각이 맞을 것 같다만···.

    여하튼, 홍영진의 큰 용기를 낸 조언으로 도훈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볼 수 있었다.

    분명 동요하긴 했지만, 따로 대책을 마련할 필요 없이 원칙대로 하는 게 가장 나은 대안이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다만,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문제가 불거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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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일 오후, 대흥시 시의회장.

    출석 요구를 받은 도훈이 영배와 함께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마침, 참석해야 할 다른 회의가 있어 비서실장인 두진이 함께하지 못한 상황.

    원래 오늘의 의사일정에 자신이 참석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도훈은 조금은 의아한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회의를 속개합니다.”

    안준식이 의장석에 앉아 회의 속개를 선언하자마자 대자당의 차혜진 의원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의장님.”

    “말씀하세요, 차 의원님.”

    발언권을 얻은 차혜진이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득의만만하면서도 비장했다.

    ‘... 뭔데 저런데?’

    도훈이 의아해하는데 차혜진이 입을 열었다.

    “시장님께 질문하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시장님께서는 답변석에 자리해 주세요.”

    곧, 도훈이 답변석에 서서 차혜진을 바라봤다.

    ‘정말 궁금하네. 도대체 뭘 물으려고 저렇게 의기양양한 표정을 한 거야?’

    영한리 지하수 관련 일이 드러나면서 전국적으로는 몰라도 대흥시 시민들에게 엄청난 욕을 먹은 대자당이었고, 차혜진은 그 당 소속 유일한 시의원이었다.

    그날 이후, 대자당 지역위원장 못지않게 도훈에게 칼날 같은 시선을 보내던 그녀의 표정이 무척 의미심장했다.

    마치, ‘너도 한번 당해봐라.’랄까?

    그녀가 발언하기 시작했다.

    “시장님께 묻겠습니다.”

    도훈이 담담하게 선 가운데, 차혜진의 눈빛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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