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불청객 2 - 2.
“하하! 사장님 정말 맛있게 먹고 갑니다.”
“하하하! 고맙습니다, 도지사님.”
“사장님 가게가 도청 앞에 있으면 매일 올 텐데 정말 아쉽네요.”
“음. 도지사님 위해서 분점을 열까요?”
“저야 그래 주시면 고맙죠.”
얼굴이 불콰해진 강정문과 살짝 얼굴이 달아오른 중국관 사장.
이 요리에 저 요리로 솜씨를 자랑하던 그는 강정문의 초대(?)를 받아 술자리에 합석까지 했다.
사진도 여러 장 찍고 술잔도 여러 잔 주고받으며 애로사항을 이야기하는 시간도 가졌다.
“2차를 가야 하는데, 못 그래서 정말 아쉬워요, 김 시장.”
“... 여기서 마신 술을 다 합하면 3차로도 부족할 겁니다.”
“에이, 술 안 마시고 그런 거나 계산하고 있었어요? 오늘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말이네요, 그렇죠?”
“... 그건 도지사님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요.”
강정문의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답하는 도훈.
빼갈로 시작해 소주에 맥주를 거친 술자리는 두 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담배를 피우고 돌아온 뒤부터 강정문이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 바람에 다들 꽤 마셨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양하며 빠지며 가장 술을 많이 마신 건 강정문과 도훈.
다행히 두 사람 모두 주량이 상당해 술주정을 부리는 추태까지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여하튼, 오늘 잘 먹고 갑니다. 우리 다음에 또 이러고 놉시다.”
“... 네. 그때는 제가 사겠습니다.”
도훈은 예의상 한 말이었는데, 강정문은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하하, 좋아요! 약속한 겁니다?”
“... 네.”
“하하하! 잊지 않겠습니다. 다음에는 우리 비서실 직원을 다 데리고 와야지. 아, 그리고 아까 우리 둘이 있을 때 했던 말 진심이었고 진짜였습니다. 잊지 말아요. 알았죠?”
“... 네.”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하는 도훈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강정문과 일행이 승합차에 올라 어둠 속으로 멀어졌다.
도훈이 가만히 한숨을 내쉬고 중얼거렸다.
‘휴우. 어째, 접대를 한 것도 같고 받은 것도 같고··· 기분이 묘하네.’
그렇게 중얼거리고 돌아서던 도훈이 움찔 놀랐다.
“... 왜 그렇게들 보십니까?”
비서실 직원 넷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고, 영배가 대표로 입을 열었다.
“단둘이 있을 때 도지사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별거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별거 아닌 게 뭐냐고요?”
- 지난번에는 내가 김 시장을 좀 시험했었어요. 젊은 초짜 당선자가 도지사에 국회의원을 상대하는 모습이 무척 의외였거든. 하하, 그때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밝히는데 나도 김 의원도 김 시장 의견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거래에 응했던 거고요.
그런 식으로 시작했던 강정문의 이야기는 ‘앞으로 친하게 지냅시다.’로 끝났다.
그렇게 ‘고백’까지 했는데 도훈의 표정에서 떨떠름함이 가시지 않자, 강정문은 이런 얘기까지 했다.
- 나랑 친하게 지내주면, 언제 뭐가 됐든 김 시장 부탁 하나 정도는 들어주겠습니다. 물론, 불법적인 건 안 됩니다. 하하!
조상님이 옆에서 매번 ‘진심’이니, ‘진짜’니 하고 판별해 주지 않아도 도훈도 강정문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았다.
그래서 더 떨떠름했다.
강정문은 말 그대로 프로 정치인인데 그런 사람과 친해져서 뭐 좋을 게 있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 요약하면 친하게 지내자··· 는 얘기였죠.”
“호오?”
영배는 물론, 모두가 묘한 표정을 했다.
“... 왜요?”
“아니, 도지사님이 시장님께 친하게 지내자고 했다니 놀랍잖습니까?”
“그러게요. 연배도 차이 나지만, 경력만 봐도···.”
“비교가 불가능하죠.”
“인지도는 물론이고요.”
“......”
잠시 말문을 잃었던 도훈이 미간을 찌푸리고 투덜거렸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러분과 동고동락하는 사람은 전데···.”
“하하하!”
“호호!”
다들 기분 좋게 술을 마신 뒤라 그런지 발언이 ‘살짝’ 과감했다.
물론, 그렇다고 악의 없는 장난에 기분 나빠할 도훈이 아니었지만.
도훈에게 장난스럽게 웃어 보인 직원들이 말을 이어갔다.
“아이고, 한 잔 더했으면 좋겠다.”
“내일 출근해야죠. 이 정도가 딱 좋아요.”
“택시 불러야죠? 몇 대나 부를까요?”
처음엔 잘 융합될까 걱정했던 비서실이었는데, 이제는 전혀 스스럼이 없는 모습.
송두진이 중심을 잡고 다른 이들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니 도훈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고작 한 달 만에 이런 모습을 보여주니 앞으로의 발전된 모습이 당연히 기대될 수밖에.
“커피라도 한 잔씩 드시고 가시지 않겠습니까? 요 앞에 괜찮은 커피숍이 있습니다.”
“커피요? 좋아요.”
“자네가 사나?”
“에이, 우리 원칙은 더치페이 아닙니까.”
친근하게 대화하는 직원들을 향해 피식 웃고 난 도훈이 돌아섰다.
강정문의 차가 사라진 어둠을 바라보며 도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 다 좋은데 갑자기 왜···?’
당선자 시절의 일이 ‘시험’이었다는 건 진심.
그리고 도훈과 가까이 지내고 싶다는 것도 진심이었다.
강정문 같은 인물이 특별한 목적 없이 그런다는 게 의아하긴 했지만, 딱히 도훈이 그에게 득 될 게 없으니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라면 내내 잠잠하던 그가 오늘을 선택한 이유랄까.
‘... 에이, 모르겠다. 그딴 걸 고민해서 뭐해.’
도훈이 중얼거리는데, 뒤에서 영배가 불렀다.
“시장님 커피 드시러 가시죠!”
돌아선 도훈이 직원들에게 다가가며 호기롭게 말했다.
“갑시다. 커피는 제가 쏘겠습니다.”
“오호!”
“시장님, 멋있어요!”
웃고 떠들며 도훈과 일행이 어둠 속으로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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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을 빠르게 가르는 승합차 안.
- 주목할 만한 친구를 하나 발견했어. 인터넷에서는 ‘듣보잡’이니 ‘갑툭튀’니 하는 말을 듣고 있지만, 목적의식이 지나치게 강한 이들보다 오히려 낫지 않을까 싶더군. 아, 목적의식 강하다고 나쁘다는 뜻은 아니야. 다만, 그런 이들은 좌절하면 깊은 구렁텅이에 빠졌다가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잖나.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선배님.’
- 먼저 들이대면 거부반응을 보일까 봐 관망하는 중이야. 그 친구가 낸 구인광고에 응하려는 우리 당 젊은 친구들이 있었는데 웬만하면 참으라고 말해놨네. 사람이 만나는 것도 때라는 게 있을 테니까.
‘그 친구가 저한테 먼저 찾아왔으니 제가 새치기 한 게 아니라는 건 아시죠?’
- 젊은 데다 원칙이 뚜렷한 것 같다고 하더군. 하하, 아무래도 자네보다 내 쪽이 더 가능성이 크지 않겠어? 뭐, 동시에 친해지면 좋겠지만 말이야.
‘... 우리끼리도 더 자주 보고 더 친하게 지냈어야 했습니다, 선배님. 못 그런 게 정말 아쉽고 후회됩니다.’
- 그 친구나 우리 당 젊은 사람들을 보면 내가 그새 이렇게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 이루어놓은 것도 별로 없는데 말일세.
‘... 네, 늙긴 늙었습니다. 많이 늙었죠. 이룬 게 없는 건 제가 더한데도요.“
- 조만간 밥이나 한 끼 같이하자고. 자네 당선 축하를 아직도 제대로 못 했잖아. 하하.
‘......’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은 사람이 먼저 간 지인과의 전화통화를 떠올렸다.
분명 차이가 있었지만, 공감하는 부분이 커 때때로 대립하고 대게 협력했던 지인.
그 지인과 끝내 함께하지 못한 밥 한 끼가 못내 마음에 걸려 충동적으로 대흥시를 찾은 강정문이었다.
‘... 아마 선배님도 쉽지 않으셨을 겁니다. 보통내기가 아니거든요.’
연배나 경력, 직위의 차이가 너무도 분명한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는 걸 오늘 다시 확인했다.
좋게 보면 패기 넘치고 나쁘게 보면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욕먹기에 딱 좋은 모습.
다만, 직원이나 시민에게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소문은 이미 들어서, 자신에게 딱딱하고 날을 세우는 도훈이 전혀 밉지 않은 강정문이었다.
창밖 어둠에 시선을 고정한 강정문이 가만히 속으로 중얼거렸다.
‘... 그 패기 넘치는 친구가 앞으로 닥쳐올 파도를 어떻게 버텨낼지···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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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세요, 실장님. 정임 씨도 조심해서 가시고요.”
“네, 내일 봬요, 시장님.”
부웅.
택시가 떠난 자리에 남은 건 두 사람.
영배가 커피를 한 잔 더 마시겠다며 커피숍에 리필을 하러 들어가 남은 건 도훈과 홍영진이었다.
“택시 두 대 부른 것 맞죠, 홍 주무관님?”
“네. 그런데 한 대는 좀 천천히 오라고 했습니다.”
“네?”
영문을 몰라 하는 도훈에게 홍영진이 빠르고 작게 속삭였다.
“잠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시장님.”
“......”
“조용히요.”
“......”
커피숍 쪽에 시선을 주고 말하는 홍영진의 모습에 도훈은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써야 했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기만 하던 홍영진이 조금씩 말도 하고 간간이 수줍게 웃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은 일.
그런 홍영진이 비밀스러운 대화를 청하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잠시만요.”
홍영진에게 답한 도훈이 커피숍에서 나오는 영배에게 다가가 말했다.
“먼저 들어가, 형.”
“응? 아쉽지 않아? 맥주 한잔 더, 어때?”
“어제도 마셨고, 그제도 마셨어. 그러다 간이 파업하면 어쩌려고?”
“... 쩝.”
“자꾸 이러면 나 형수 얼굴 못 본다, 알지?”
“하긴, 어제도 아슬아슬했지. 알았다, 간다.”
영배가 도훈과 홍영진에게 인사한 뒤 커피잔을 들고 멀어져갔다.
그가 멀어지는 걸 확인한 도훈이 홍영진에게 일렀다.
“저쪽으로 가시죠. 조용한 곳이 있습니다.”
“... 네.”
도훈이 홍영진을 안내한 곳은 큰길에서 벗어난 텃밭 앞.
간간이 선 가로등 불빛에 사방이 훤히 보이는 곳이었고 오가는 이도 전혀 없었다.
“말씀하시죠.”
“... 네.”
홍영진은 꽤 긴장된 얼굴이었다.
누가 그에게 정보를 구한 적은 있었어도, 그가 먼저 정보를 제공한 적이 없었으니 소심한 그로서는 당연한 일.
“뭔데 그러십니까?”
“걱정돼서 말씀을 드리기는 하는데, 확증이 있는 게 아니라서요.”
“... 저 혼자 알고 있겠습니다. 뭔가 있으면 신경 쓰고 아무것도 없으면 잊어버리면 되겠죠.”
담담히 말하는 도훈에게 홍영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요즘 간부들이 청사 구내식당에서 잘 안 보입니다.”
“... 그래요?”
“네. 전부가 그런 건 아닌데, 몇몇 분들은 그렇더라고요.”
“... 그게 이상한 겁니까?”
“나가서 밥 먹는 게 이상한 건 아니죠. 제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 그분들이 보이면 다 함께 보이고, 안 보이면 다 함께 안 보인다는 겁니다.”
“......”
담담하던 도훈의 눈빛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함께 점심을 먹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다 각자 나갔다가 각자 돌아옵니다.”
“... 우연은 아닙니까?”
“후배 중에 쓰레기차 모는 녀석이 있습니다. 그 녀석이 유서면 어느 가든 주차장에서 그 차들이 한꺼번에 주차된 걸 본 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
“우연히 그럴 수는 없겠죠.”
“... 언제부터입니까?”
도훈이 묻자 홍영진이 차분히 답했다.
“오래된 건 아닙니다. 지난주부터니까요.”
“... 지난주부터라면···.”
도훈이 조금은 놀랍다는 눈빛으로 홍영진을 바라봤다.
불과 지난주부터의 움직임을 곧바로 잡아냈다는 건 평소에도 그들을 ‘관찰’했다는 뜻이 되니까.
도훈의 눈빛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챈 홍영진이 어색한 표정으로 답했다.
“... 그분들이 대개 제 고객들이었던지라···.”
“고객이라뇨?”
홍영진이 더듬더듬 사정을 설명했다.
마지막에 도훈이 취임한 뒤부터는 시장의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왜요?”
“그, 그게 시장님은 전대 시장님들과는 다른 분인 것 같아서요.”
도훈은 홍영진이 꽤 큰 결심 끝에 이런 행동을 하고 있음을 이해했다.
과거라고는 해도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니까.
다만, 자신에 관한 얘기가 상품이 되지 않는다면 굳이 문제 삼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모른 척 대화를 이어갔다.
“... 혹시 그 간부들이 전 사업소장과 친한 이들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냐면요···.”
홍영진이 언급하는 이들은 과거 양상택이 언급했던 여당과 가까운 이들.
‘... 갑자기 왜···?’
아직 도훈은 좋은 일이든 싫은 일이든 여당 쪽과 본격적으로 엮인 적이 없다.
양상택과 전 시장이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그건 각자에게 국한된 문제.
3선 의원과 전 시장이라곤 해도, 지금도 간부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거로 생각하긴 어려웠다.
도훈이 생각에 잠겨 있는데, 홍영진이 말을 이었다.
“한 사람이 더 있습니다, 시장님.”
“... 누굽니까?”
“부시장이요.”
“......”
침묵하는 도훈에게 홍영진이 말했다.
“여성식 부시장이 그들과 어울리는 것 같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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