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알바하는 시장.
금요일 아침, 대흥시청 기획감사실 기획팀 사무실.
“... 그런 식으로 점검하고 차츰 구체화하는 게 좋겠습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는 일이니만큼 고민을 꾸준히 이어나가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차분히 회의를 정리하는 기획팀장.
도훈이 자기 생각을 입에 올렸다.
“팀장님 말씀이 옳습니다. 담당자 선정해서 맡긴다고 일이 끝나는 게 아니니까요.”
“물론입니다.”
“그리고 한 말씀 더 드리자면, 모든 사업은 필요하니까 합니다. 다만, 정례화된 사업은 주기적으로 재검토가 필요할 테고 신규 사업은 근거를 탄탄히 하되 유연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훈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직원 하나가 조금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발언권을 얻고 끼어들었다.
“두 분 말씀이 모두 옳긴 한데··· 행정도 문제가 발생한 뒤 대처하는 것보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 예방하는 게 좀 더 효율적이지 않겠습니까?”
“음, 그래서요?”
“제 생각에··· 뒤따라가는 게 아닌 선도하는 시 행정을 위해서는 선제적으로 고민하고 정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아마 이 부분에 시장님 공약 중 기획단계부터 시민이 참여하도록 하는 것의 의의가 있지 않나···.”
“바로 그렇습니다!”
짝!
직원의 말이 너무 반가워 도훈은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고 손뼉을 쳤다.
직원이 머쓱해 했지만, 도훈은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바로 그 때문에 어떻게 시민의 참여를 담보할 것인가가 무척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방안을 완성한 뒤에 그 찬반을 묻는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해요 그렇다고 너무 앞서나가도 곤란하죠. 안 그렇습니까?”
“그, 그렇습니다.”
“사업이나 정책의 필요성은 우리보다 시민들이 더 절실하게 체감하게 마련이잖아요? 그런 시민의 절실함이 정책에 녹아들게 하는 것이 이 고민의 핵심입니다.”
힘주어 말하는 도훈을 바라보는 몇몇 직원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런 직원들과 시선을 마주한 채 이야기하는 도훈도 기운이 넘쳤다.
“이 고민을 어떻게 구체화 시키나 고민이었는데, 기획팀을 믿어도 될 것 같습니다.”
“... 과, 과찬이십니다.”
도훈이 직원들에게 일일이 시선을 주며 말했고, 직원들이 얼굴을 붉히거나 쑥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그중 자신의 기대에 쏙 맞는 이야기를 한 젊은 남자 직원에게 도훈은 따스한 눈빛을 보냈다.
“... 매 회의가 이번 같으면 정말 좋겠네.”
회의를 마무리하고 사무실을 나오며 도훈이 중얼거렸고 뒤따르던 두진과 정임이 빙긋 웃었다.
정임이 작게 속삭였다.
“마지막에 발언한 남민우 주무관이 미대 출신이라 그런지 창의적인 면이 남다릅니다. 임용된 지 만 3년이 안 돼서 참신한 편이기도 하고요.”
“그래요? 다음이 기대되네요.”
시장실로 돌아가는 도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직원들 분위기가 달라졌어.’
단 며칠이었지만, 각성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일부 직원들이 수동적으로 지시받은 일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말하고 있었다.
아직 갈 길은 멀고도 멀고, 태도 변화를 보이는 직원은 극소수였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그런 이가 보이면 그만큼 기운이 나는 도훈이었다.
압수수색이라는 충격적인 사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시장이 자신의 잘못도 아닌 일을 직원들에게 책임을 씌우지 않고 두둔했다고 여긴 이유도 있으리라.
‘너무 자주 하면 안 되겠지만, 역시 충격요법이 효과가 있었어.’
도훈이 비서실에 들어서는데, 밖에 나갔던 영배가 돌아와 있었다.
어제 재민이네 사정을 물으려던 지구대 팀장이 휴가여서 오늘 영배가 직접 다녀왔던 것.
“... 뭔가 알아냈어요?”
“네.”
뭔지 몰라도 반가운 내용이 아니라는 건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 내 방으로 들어가죠.”
“네.”
담담한 표정의 도훈이 시장실로 들어갔고, 영배가 뒤를 따랐다.
두진과 정임이 제자리에 앉아 궁금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시장실의 문이 조용히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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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상황이래.”
“......”
잠시 말이 없던 도훈이 확인하듯 질문을 던졌다.
“확실한 거야?”
“응. 재민이네 집에 경찰이 출동한 게 지난주까지 세 번인데 지난주에 실장님 아신다는 그 팀장님이 직접 가셨단다. 그때, 재민이 아버지가 신세 한탄하듯 사정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라고.”
“... 흐음. 쯧쯧쯧.”
영배가 알아온 재민이 부부의 사정은 이랬다.
재민이네 집은 운계면이지만, 부모가 금선면 군인아파트 단지 인근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했다.
낮에는 백반집, 심야에는 야식을 배달하는 형태.
작은 식당이 그럭저럭 유지될 수 있었던 건 야식 배달 덕분이 컸다.
그 야식 매출의 반 정도가 어느 체인 음식점의 공장에서 나왔다.
야간에 식재료를 선별해 차에 싣는 작업을 하는 직원 및 아르바이트 인원의 야식 매출이 상당하단다.
그런데 지지난달 공장장이 바뀌고 문제가 생겼다.
“주문을 안 한대?”
“그건 아니고 계속 주문을 하긴 하는데, 대금을 전처럼 바로 지급하지 않는대. 몰아서 준다고 했다나? 그뿐 아니라 이런저런 트집을 잡는다고 하더라고.”
“트집?”
“뭐, 배달이 늦다거나 음식이 맛이 없어졌다거나 하는 식으로 사실이 아닌 일로 노골적으로 트집을 잡는다고 하던데? 공장장 말고는 아무도 불만이 없다는데.”
다시 도훈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했다.
“뭐야, 그게?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데서 시키면 되는 거 아니야?”
“그 공장 인근에 치킨이나 족발집은 있어도 본격적으로 야식을 취급하는 건 재민이네뿐이래. 치킨이나 족발을 먹어도 하루 이틀이겠지.”
“... 흐음?”
“재민이 아버지 얘기로는 새 공장장이 자기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는 같은데, 이유를 모르겠대.”
“......”
“아직도 거의 매일 야식을 배달하는데 나름 애써 참고는 있지만, 심하게 당하고 나면 홧김에 술을 마셨고 그게 부부 싸움이 됐던 모양이야.”
영배의 말이 끝나고 도훈의 미간을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 이거 제삼자가 끼어들기 애매하네.”
“그러니까.”
영배도 맞장구를 쳤다.
“지구대 팀장님도 경찰이 도와줄 방법이 없다고 하더라고. 식대를 떼어먹거나 한 것도 아니라서···.”
“밀린 식대가 있을 것 아니야?”
“그게 아주 오래된 것도 아니고, 단골식당에 장부 만들어 놓고 밥 먹는 게 보기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
잠시 둘 다 말이 없다가 영배가 질문했다.
“이제 어떻게 해?”
“... 안타깝지만 당장은 우리가 도와줄 방법이 없겠네.”
더는 대화가 이어지지 않고 둘의 대화가 끝났다.
영배가 나간 뒤 도훈이 생각에 잠겼다.
시장이 나선다고 해결될 성격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여겨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분노하고 재민이 아버지를 응원하겠지만, 그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라는 법이 없고 예상 못 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한참 생각하던 도훈은 미간을 찌푸린 채 뒤통수를 긁었다.
“... 하, 그 녀석 눈빛이 도저히 외면이 안 되네.”
투덜대듯 중얼거린 도훈이 컴퓨터 앞으로 가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자판을 두들기며 뭔가를 찾던 도훈이 원하던 걸 발견했고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 네, 공가 식품 유통센텁니다.
“알바 광고 보고 전화했습니다.”
- 저희 알바, 주간이 아니라 야간인 거 알고 전화하신 건가요?
“네. 혹시 자리가 있나요?”
- 음···. 잠깐만요.
도훈이 뭔가를 받아적은 뒤 전화를 끊었다.
자기가 적은 걸 빤히 바라보던 도훈이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 내 팔자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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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니 자정이 지났으니 월요일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야식 먹고 합시다!”
누군가의 외침에 냉장 화물트럭에 식재료를 옮기던 사람들이 일손을 멈추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중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유난히 어깨가 처진 한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어때? 할 만해?”
“... 예.”
“말은 잘하네. 목소리는 다 죽어가는구먼.”
“......”
“한 사흘 해야 몸이 적응돼. 내일이나 모레는 좀 나을 거야.”
“... 다행이네요.”
40대 남자에게 답하는 어깨 처진 남자는 도훈.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중간 휴식 및 야식 시간 1시간을 제외한 단 4시간의 알바 이틀째였다.
식재료를 나르는 열 명이 넘는 사람 중 직원은 두 명뿐.
나머지인 알바생도 모두 한 달 이상 일한 이들.
그래서 겨우 이틀째라 적응이 덜 된 도훈보다 다들 쌩쌩해 보였다.
‘... 하루면 될 줄 알았는데.’
운이 좋아 어제 토요일 밤부터 알바를 할 수 있었다.
원래 계획은 딱 하루 일하며 사정을 알아볼 생각이었는데, 하필 어제는 재민이네 아빠 가게에서 야식을 시켜먹질 않았다.
그래서 이제 불과 몇 시간 후면 출근해야 하는 시간에 알바를 하는 중이었던 것.
“그나저나 자네 얼굴 분명히 어디서 본 것 같은데···.”
“... 그런 얘기 자주 듣습니다.”
누구도 도훈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건 그들이 시장의 얼굴을 몰라서가 아니라 도훈의 얼굴이 살짝 바뀌었기 때문.
- 내 덕이다. 알지?
‘... 물론입죠.’
- 알면 좀 잘해, 인마.
‘......’
조상님이 빙의해 힘을 쓰면 도훈의 얼굴이 조상님과 흡사하게 바뀌었다.
조상님이 귀신이라는 걸 실감케 하는 신통한(?) 능력 중 하나.
‘지금껏 써먹어 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앞으로는 유용할지 모르겠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식당 쪽으로 걸어가는데, 누군가의 고함이 들려왔다.
“아,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왜 매번 늦는 건데! 이럴 거면 배달하지 마!”
“... 죄송합니다.”
도훈이 보니 식당 문앞에서 공장장이 누군가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쯧쯧. 저 인간, 또 시작이네.”
한발 앞서 걷던 40대 직원의 말에 도훈이 다가가 질문했다.
“무슨 일인데요?”
“우리 공장장이 야식 가게 사장을 잡고 있어. 쯧쯧! 차라리 대놓고 얘길 하지.”
“대놓고 얘길 하다뇨?”
“공장장이 저러는 이유가 야식을 다른 사람에게 밀어주고 싶어서거든.”
“... 네? 그냥 안 시키면 되는 걸 왜 저렇게···?”
“저 사장을 구박하면서 우리한테 눈치도 주는 거야. 그러니까···.”
직원의 짤막한 설명은 이랬다.
공장장은 재민이네 아빠에게 야식을 주문하는 대신 야식 시간에 푸드트럭을 불러오고 싶어 한다고.
“... 푸드트럭이요?”
“응. 공장장이랑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는데, 야식을 그쪽에 전담시키고 싶은 것 같아. 그래서 저 사장을 갈구는 거고 우리한테 눈치 주는 거지.”
“... 왜 직원분들에게 눈치를 줘요?”
“그 푸드트럭이 닭꼬치하고 닭고기 들어간 볶음밥에 면 파는 거야. 여기 한번 와서 먹어본 적이 있는데 영···.”
맛도 맛이지만, 낮부터 팔다가 남은 재료를 그대로 챙겨오는 듯하다는 푸드트럭.
반면에, 미리 요청만 하면 가게 메뉴에 포함되지 않은 음식도 정성껏 준비해 가져다주는 평범 이상의 맛을 보장하는 야식.
공장장을 제외한 모두가 재민이 아버지의 야식을 선호한단다.
공장장의 위세가 무서워 침묵하고 있을 뿐.
“... 본사에다 얘기하지 그러세요?”
“쩝. 저 공장장이 그냥 직원이 아니라 회장님 인척이거든.”
이 공장의 본점은 대전에 있는 5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24시간 감자탕 집.
전국에 수십의 가맹점을 보유한 프랜차이즈 식당을 키워낸 ‘회장님’은 요즘도 대전 본점에 새벽부터 출근해 국물 맛을 확인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공장장이 ‘인척’이란 말에 도훈의 얼굴이 순간 흐려졌고, 묵묵히 공장장에게 갈굼을 당하고 있던 재민이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는 차를 몰고 공장을 떠났다.
직원들이 식당에 들어서는데, 공장장이 직원들 들으라는 듯 투덜거렸다.
“하, 참! 자식이 이렇게까지 했으면 눈치껏 물러나야지. 맨날 맛대가리 없는 걸 꾸역꾸역 들고 오네. 벨도 없는 거야, 뭐야? 왜 이렇게 세상에 눈치 없는 놈들이 많아?”
얼마간 더 투덜거리던 공장장이 사라졌고, 직원들이 조용히 야식을 먹기 시작했다.
젓가락을 든 도훈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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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
흐느적거리며 걷는 도훈이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내가 운전하면 분명 사고 낼 거야.”
졸린 것도 졸린 것이지만, 운전대를 제대로 돌릴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팔에 힘이 없었다.
“... 오늘 해결했으면 좋겠는데···.”
메시지를 보내긴 했지만, 시간이 너무 일러 상대가 응답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도훈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도훈의 핸드폰이 울렸다.
위이잉.
“제가 주무시는 걸 깨웠죠? 죄송합니다.”
- 아닙니다, 시장님. 그런데 이 새벽에 무슨 일이십니까?
전화기 너머 홍영진에게 도훈이 쭈뼛거리며 말했다.
“... 정말 죄송한데요.”
- ... 뭔데 그러십니까?
망설이던 도훈이 눈을 질끈 감고 말을 이었다.
“... 저랑 대전으로 감자탕 드시러 안 가실래요, 홍 주무관님?”
- ......
상대의 답이 없는 가운데, 머쓱한 표정의 도훈이 뒤통수를 긁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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