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23화 (24/279)

23. 上.

“... 무서운 사람이었군, 자네.”

“......”

“직원들이 연루되기라도 했다면 어쩌려고···.”

“상관없는 일입니다.”

“... 상관이 없어?”

“범죄에 연루됐다면 죄의 경중에 따라 처벌을 받는 게 맞습니다.”

“......”

“아닙니까?”

두진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 이 건이 아니더라도 혹여 다른 게 있다면···.”

“그것도 같은 원칙 아래에 처리되는 게 맞습니다.”

“... 자네 직원들 아닌가? 잘못했더라도 그 경중을 정확하게 파악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게 맞지. 무조건 칼잡이들에게 던져 줘야겠나? 자네에게는 관리 감독할 책임도 있지만 보호할 의무도 있어!”

“원칙적으로는 틀린 말씀이 아니네요.”

“... 그런데 왜?”

“지금은 그냥 직원일 뿐이니까요.”

“뭐?”

이해를 못 하겠다는 두진에게 도훈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선생님께는 그들이 오랜 시간 애틋하고 복잡다단한 사연을 함께 한 동료이자 후배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게는 단순한 ‘직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무사안일에 사로잡혀 별다른 감흥 없이 하루하루 출퇴근하는 이들이 꽤 많은 것 같더라고요.”

“... 이보게.”

“선생님께는 그들이 각자의 세세한 사정까지 공유한 애정 어린 공동체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게는 각성을 촉구할 대상일 뿐입니다. 취임하자마자 벌어진 첫 사건이 그 판단을 더 강하게 해줬고 말입니다.”

“......”

“결정이 쉬웠던 건 아닙니다.”

“... 정말인가?”

“네. 경우가 달랐다면, 각성이 아닌 격려를 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하지만 아니잖습니까?”

두진이 말문을 잃었다.

이번 주 내내 도훈이 겉으로는 담담하지만 속으로 계속 실망하고 있다는 눈치는 챘다.

자신도 한숨이 나오는데, 도훈은 어땠겠는가.

그러나 이런 결정을 할 줄이야.

두진도 이번 일을 덮고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그가 생각했던 방법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뒤 일체의 자료를 제출하고 협조하는 것.

경찰을 뛰어넘어 검찰을 끌어들인다는 생각은 두진도 하지 못했다.

“각성의 계기로 전 대흥시 개청 초유의 검찰 압수수색을 선택했습니다.”

“......”

“나중에는 저도 직원들에게 선생님이 가진 것과 비슷한 애정과 유대감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

“그래서 이런 선택을 한 겁니다.”

“......”

평소와 다름없는 담담한 투였지만, 두진에게는 도훈의 목소리가 딴 때 없이 매몰차게 느껴졌다.

두진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조 비서관은 이 사실을 알아?”

“네. 상의한 검사 선배가 저보다는 영배 형이랑 친했거든요. 그리고···.”

“... 그리고 뭔가?”

“제 판단이 맞는지 가장 먼저 영배 형에게 물었습니다.”

“... 조 비서관이 동의했다는 말이군.”

“네.”

도훈은 복잡한 감정과 함께 일말의 분노가 선명하게 느껴지는 두진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왜 내게는 묻지 않았나? 아니, 왜 끝까지 비밀로 하지 않았나?”

“... 어느 것에 답해 드릴까요?”

“나중 거!”

벌컥 화를 내는 두진에게 도훈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제 각오를 가감 없이 보여드리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 각오?”

도훈의 말에 두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 당선된 뒤에 고민 많이 했습니다. 이걸 정말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요.”

“......”

“저, 시간 남아돌고 딱히 할 일 없어서 시장하겠다고 결심한 거 아닙니다.”

“... 그래?”

“네. 여기서 잘해서 본격적으로 정치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슬렁슬렁 적당히 시간 보낼 마음도 없습니다.”

“......”

“당연히 직원들에게 매사에 좋기만 한 시장이 될 생각도 없죠.”

두진이 도훈의 눈을 응시했다.

유난히 맑다고 생각했던 도훈의 눈빛이 서늘하고 차갑게 느껴졌다.

“전 대흥시 유권자들에게 제 계획을 밝혔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당선됐으니 그 약속을 지켜야 하고요.”

“......”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나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라면, 불법이 아닌 이상 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송 선생님.”

“......”

“선생님은 제 비서실장임과 동시에 시정 선생님이기도 합니다. 제가 도와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은 계속 드렸는데, 제가 어떤 각오와 마음으로 시장을 하려는지를 제대로 말씀드린 적은 없는 것 같더라고요.”

“... 듣고 보니 그렇군.”

두진이 고개를 끄덕였고 도훈의 말이 이어졌다.

“당연히 제 각오를 제대로 아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이번이 좋은 기회가 된 것 같고요.”

“... 그런가?”

“네.”

담담히 고개를 끄덕인 도훈이 말을 이었다.

“사실 저나 영배 형이나 별것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청 이후 최초의 압수수색? 수사 결과, 범죄 사실이 없다면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니까요.”

“... 그래도 직원들은 힘들어할 걸세.”

“정신도 바짝 차리겠죠.”

“예상 못 한 유탄에 맞을 수도 있어.”

“송 선생님의 감찰이 제대로 됐다면 그런 일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제 마음이 좀 더 편해졌죠.”

잠시 침묵하던 두진이 말문을 이었다.

“... 이건 나에 대한 시험이기도 한 거로군.”

“어떤 면에서는요.”

도훈의 긍정에 두진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 이런 식이면 난 자네랑 일할 수 없네.”

“......”

“날 시험해서 그런 게 아니고, 직원들을 그렇게 인식하고 대하는 것에 동의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

“공무원들? 문제가 있지. 하지만, 그게 그들만의 문제겠는가? 그들을 그렇게 만든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공무원 조직, 문화의 문제는 아닌가?”

“... 그쪽 문제도 있겠죠.”

“다들 능력 있는 사람들이야. 제대로 기회를 주면 더 뛰어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그들이 십분 능력을 발휘할 기회와 환경을 제공하는 게 바로 시장의 역할이란 말일세.”

“......”

“어떤 사람이 상사가 되느냐에 따라 180도 달라지는 게 공무원이야! 시장의 한 마디에 숨소리도 죽이고 복지부동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노력이 제대로 평가되고 인정받는다고 생각하면, 그 노력 끝에 뭔가 나아진다고 믿는다면 온 힘을 다하는 것도 공무원이야! 공무원 대부분이 그렇단 말이야!”

도훈은 항변하는 두진의 말을 끝까지 듣고서 담담히 말했다.

“... 동시에 시민을 위해 일하고, 시민에게 결과를 내보이며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공무원입니다.”

“......”

“저는 대흥시 공무원 맨 앞에서 제일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죠.”

“......”

“그걸 받아들일 각오를 하고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

두진은 반박하지 못했다.

그가 생각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까.

누군가는 일개 소도시 시장이 져야 하는 책임이 얼마나 중하기에 유난 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두진은 그런 축에 속하지 않았다.

흔하디흔한 ‘공복(公僕)’이란 말의 무게를 잘 알았고 오랜 시간 그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살았었으니까.

두진이 침묵하는데 도훈의 태도가 살짝 바뀌었다.

진지한 것에서 조금은 겸연쩍은 듯한 것으로.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선생님께 기대한 것은 저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시라는 게 아닙니다.”

“... 그럼?”

“선생님이 직원들에게 가진 애정을 포기하시라는 게 아니고 그 애정을 가지고 저와 함께 일하자는 거였죠.”

“......”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저는 아직 직원들에게 동료의식이나 애정이 없습니다. 당연히, 이번보다 더 가혹한 결정을 거침없이 할 수도 있겠죠.”

“... 나더러 그런 자네를 제어하란 말인가?”

“그런 면도 있죠.”

도훈이 머쓱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벅벅 긁고는 말을 이었다.

“이렇게 거창한 말을 하려고 한 게 아닙니다만, 어쨌든 제가 원한 건 이런 겁니다. 직원들의 객관적 상황을 잘 아시는 선생님은 시 행정의 개혁이나 변화의 필요성도 인정하십니다. 맞죠?”

“... 맞네.”

“저와 영배 형은 직원들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히 낮습니다. 자칫, 행정의 주체인 직원들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걸 개혁이랍시고 밀어붙일 위험성이 있죠.”

“... 그런 개혁은 단기적으로는 몰라도 끝내 실패하고 말지.”

“네.”

“......”

“그래서 선생님의 존재가 꼭 필요한 겁니다.”

도훈의 말뜻을 이해했지만, 두진은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의도야 어쨌든, 검찰 압수수색을 통해 직원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쉽사리 동의가 가질 않았으니까.

심지어, 더 거침없고 가혹한 결정도 할 수 있다고 하질 않는가.

두진의 서늘한 눈빛이 도훈을 향했다.

마치, 전혀 모르는 이를 대하는 듯한 새삼스러운 눈빛이었다.

“... 자네, 요즘 청년들과 어딘가 다르다고는 생각했네만···. 이렇게 무서운 사람인 줄 몰랐네.”

“그렇게 심합니까?”

“어떤 면에서는 좀 섬뜩하다 싶을 정도야.”

“... 하하.”

“웃자고 하는 얘기가 아닐세.”

“......”

머쓱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는 도훈.

그런 도훈의 수더분한 모습에 두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 모르겠어. 어찌해야 할지···.”

두진이 탄식하듯 중얼거리자, 도훈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주말에 더 생각해 보세요.”

“......”

“그리고 끝내 못 하겠다 생각되시면, 월요일부터 출근 안 하셔도 됩니다.”

그 말에 조금은 놀란 두진.

“... 진심인가?”

“네. 아무리 송 선생님이 제게 간절히 필요한 분이라지만, 원하시지 않는 일을 강요할 마음은 없습니다.”

“... 자네···.”

“원해서 해도 쉽지 않은 일이잖습니까? 원치 않는 일을 하는 건 일종의 자해가 아니겠습니까?”

“......”

“저 그렇게 염치없는 놈 아닙니다.”

“......”

“쉬세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꾸벅.

도훈이 허리를 숙이고 돌아서는 걸 두진은 가만히 바라만 봤다.

아주 복잡하고도 복잡한 표정과 눈빛을 한 채로.

차를 향해 차분히 걸음을 옮기는 도훈.

그에게 조상님 귀신이 말을 걸어왔다.

- ... 너무 비장하게 나간 거 아니냐? 좀 더 부드럽게 얘기할 수도 있었잖아.

‘... 진지할 땐 진지해야죠.’

- 너무 진지했으니까 그렇지.

‘... 그랬습니까?’

- 너 인마, 도대체 ‘적당히’할 줄을 몰라.

‘... 하하.’

씁쓸하게 웃는 도훈에게 딱하다는 표정의 조상님이 말을 이었다.

‘마지막 부분, 후회 안 해?’

- ... 네.

‘두진이 저놈 말고 대안이 없는데?’

- ... 네. 저분의 진심을 끌어내려면 언젠가 해야 했을 말인데요, 뭐.

‘그건 그렇다만.’

- 매도 일찍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있잖아요.

‘쩝.’

도훈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밤하늘의 별이 총총히 빛나는 가운데, 파란만장한 첫 주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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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점심시간, 도훈의 사무실.

왈! 왈왈!

“오냐, 녀석아.”

다른 직원들이 먼저 식사하러 자리를 비운 사이, 두진은 도훈과 마주 앉아 있었다.

마주 앉긴 했지만, 두진의 관심은 무릎에 올린 순심이가 독차지한 상황.

무릎에 드러누운 순심이가 예뻐 죽겠다는 두진을 도훈은 좀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불과 몇 분 전,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압수수색 끝났다고 보고하고 다른 이들을 먼저 내보낸 그가 아니던가.

헥헥! 헥헥! 왈!

“어이구, 그래. 우쭈쭈!”

“... 저, 선생님?”

“응? 아, 참. 하하, 미안하네. 내가 개만 보면 정신이···.”

미안하다 말하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순심이에게 고정한 두진.

어이없다는 도훈의 표정이 점점 더 진해지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두진이 툭 하고 말을 던졌다.

“앞으로도 나 모르게 일을 꾸밀 건가?”

“... 되도록 안 하겠습니다.”

“아예 안 하겠다고는 못 하겠나?”

“... 장담은··· 못 하겠습니다.”

도훈이 끝내 ‘안 하겠다’고 하지 않았지만, 두진은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시장질, 진지하게 할 거란 말이지···.”

‘시, 시장질?’

아연해 하는 도훈에게 그제야 두진의 눈빛이 향했다.

엄하고 매서운 눈빛이.

“... 물론입니다.”

“......”

두진은 한참이나 뚫어지게 도훈의 눈을 들여다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심드렁한 표정을 하고는 말했다.

“그럼 나도 자네만큼 진지하게 하겠네.”

“......”

말과 얼굴이 매치가 안 돼 도훈은 좀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두진의 말이 심상치 않았다.

“앞으로 기대하게.”

“... 예?”

씨익.

진득한 웃음을 보인 두진이 말을 이었다.

“내 지옥을 보여주지.”

“......”

두진의 뜬금없는 선전포고에 도훈이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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