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그의 비서들.
퇴근이 가까운 시간 시청 청사 옆 자판기 앞.
“... 얘기 들었어?”
“응. 난 소스라치게 놀랐어. 거기 부실공사라며? 아예 사기 수준이라던데?”
“그렇다더라고. 쯧쯧. 시장이 취임하자마자 건수를 잡았어.”
인상 쓴 한 직원의 말에 다른 이가 반박했다.
“그건 아니지. 애초에 그렇게 개떡같이 해놓은 놈들이 잘못한 거지.”
“... 그래도 다르게 대처할 수도 있지 않을까?”
“다르게 어떻게? 얘기 들어보니까, 자재부터 바꿔치기한 것 같다는데? 그러니까 무너졌지. 제대로 했으면 고작 그 비 왔다고 무너져?”
“... 그건 그렇지.”
“상황이 그러면 원칙대로 처리하는 게 맞지.”
“쩝. 자네 말이 틀린 건 아닌데···.”
“그러면 됐지. 사안이 명확한데 오히려 시장이 알아채지 못하고 넘어갔다거나 두루뭉술하게 덮으려 한다고 생각해봐. 그러면 자네 입에서 좋은 말 나오겠어?”
“......”
인상 쓴 직원은 동료의 말에 단 한 마디도 반박하지 못했다.
“자네가 시장 못마땅해하는 건 알겠는데, 이건 누가 좋고 나쁘고에 따라 판단이 갈릴 문제가 아니잖아.”
“... 하하, 할 말이 없네.”
“당연하지. 사실이 그러니까.”
“......”
“어쨌든, 우리 시장님 그냥 사람 좋게 웃고만 다니는 허깨비가 아니었어. 안 그래?”
“... 그러게.”
“우리한텐 그게 중요해.”
“... 맞는 말이야.”
두 직원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시선이 닿지 않은 곳에 쪼그려 앉아 홀로 담배를 피우던 조 모 씨가 웃으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같은 시각, 청사 2층 여직원 화장실.
“정말요, 선배님?”
“그렇다니까. 지금 건설교통과 난리 났어.”
“거기만이 아니에요. 법무팀도 비상이에요.”
세 명의 여직원이 작게 속삭이고 있었다.
“어째 전부터 이상했어요. 거기, 전에 비로 산사태 났다기보다는 강풍에 나무가 쓰러지면서 흙이 밀려 내려왔다고 보는 게 맞잖아요.”
“그랬지. 야산 경사가 가파른 것도 아니고, 잡목도 많아서 쉽사리 산사태 날 곳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도 시의원이 그거 해달라고 난리를 쳤다는 얘기가 있었죠?”
“... 진짜? 그럼 설마?”
“쉿! 입조심.”
찔끔한 여직원이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그녀에게 선배라 불렸던 이가 말을 이었다.
“가만히 알고 있는 것하고 입에 올리는 것하고는 완전 다른 거야. 조심해.”
“알았어요, 선배님. 그나저나 역시 송두진 팀장, 아니 실장님이네요.”
“글쎄. 내가 듣기로는 이 건은 송 실장님이 캐낸 게 아닌 것 같던데.”
“그래요?”
“응. 시장님이 거기 무너진 것 때문에 일요일 새벽부터 출근했다잖아. 무너진 현장 수습하느라 옷이 엉망이 됐었다던데?”
선배의 말에 두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이 임기 첫날부터 ‘흙 강아지’가 됐다는 얘기는 진즉에 시청에 널리 퍼졌으니까.
“그럼 시장님이 직접 부실인 걸 알아냈다는 거네요?”
“그랬대.”
“... 와! 난 그냥 젊고 잘생긴 시장님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면이 있대요?”
“그 사람 좋은 미소가 다가 아닌가 봐. 최소한 빠릿빠릿하긴 하잖아.”
“그러게요. 아무튼, 잘했으면 좋겠네요.”
“아무렴.”
수다를 떨던 여직원들이 사라졌고, 그 직후 누군가 닫혔던 화장실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 이건 좋은 징조겠지?”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를 머금은 고정임.
도훈에게 선을 지키던 그녀가 어느새 도훈의 입장에서 직원들의 얘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 영배, 두진이 말고도 아군이 최소한 한 명은 생기겠군.
정임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조상님 귀신이 중얼거렸다.
-----
얼마 뒤, 시장 비서실.
“... 청사 안이 시끌시끌한 것 같습니다.”
“그러고도 남지. 부실공사, 이게 절대 보통 일이 아니거든.”
“그 공사 감리한 건축사가 달려왔다면서요?”
“앞으로 우리 시 관급공사 두 번 다시 못 맡게 생겼으니 그러고도 남지.”
영배와 두진의 대화에 정임이 끼어들었다.
“거기서 끝나면 다행이게요? 시장님이 아까 기획감사실 법무팀에 그 건축사 고소 검토하라고 지시하셨어요. 건설회사는 물론이고요.”
일반적으로 공사가 끝난 후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하자 보수’를 한다.
그런데 공사에 쓰인 자재부터 속인 부실, 사기공사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래서 도훈은 고소를 검토하는 동시에 무너진 부분만 보수할 게 아니라 공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시방서대로 ‘다시’ 하라는 얘기를 한 터였다.
당연히, 추가로 지급되는 공사비는 없을 터.
관급공사의 부실은 건설회사와 감리, 담당 공무원이 ‘짜고 치는 고스톱’인 경우가 태반.
때문에, 이미 담당 부서 감찰 지시도 은밀하게 내려졌다.
“허허, 소 뒷발에 쥐 잡은 격이야. 아니, 멍청한 쥐가 소 뒷발 디디는 곳에 머리를 들이밀었다고 해야 하나?”
두진의 평에 살짝 발끈한 영배.
“아니, 실장님. 정임 씨도 있는데 꼭 그렇게···.”
“제가 뭐요?”
두진은 말없이 웃고 정임이 반문하며 끼어들었다.
“그, 그게 정임 씨 듣는 데서 시장님 평가를 그리 박하게···.”
“저랑 실장님 사이가 시장님, 조 비서관님과의 사이보다 훨씬 역사도 깊고 끈끈할 텐데요?”
“......”
“그리고 실장님이 뭐라고 하시든, 저도 제 나름의 판단 기준이 있어요.”
고정임은 송두진이 비서실장이라는 걸 알게 된 불과 하루 사이에 좀 달라졌다.
도훈과 영배에게 살갑긴 해도 절대 선을 넘지 않던 그녀였는데, 아주 조금 과감해졌다고나 할까?
게다가 송두진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한 것만으로도 도훈을 훌륭한, 최소한 평균 이상인 시장으로 인정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살짝 ‘본색’을 드러낸 듯한 정임을 본 도훈과 영배는 거의 동시에 중얼거렸었다.
- ... 왠지 정임 씨한테서 진주 냄새가 나는데.
웬만한 일에서는 두 사람을 손바닥 위 손오공처럼 꿰고 있는 부처님 윤진주.
정임이 진주처럼 된다는 잠깐의 상상만으로도 아찔했다.
그래도, 정임이 자신들과의 사이에 세웠던 ‘벽’을 낮춘 것 같아 반가웠다.
그만큼 진심이라는 얘기니까.
두진이 정임에게 당하고 있는(?) 영배를 보며 웃더니 입을 열었다.
“이봐, 조 비서. 내가 아무 데서나 이런 말 할 것 같은가?”
“... 그건 아니죠.”
“그럼 됐지. 그리고 이건 시장님이 허락한 거야. 일체의 가감 없이 평가하고 충고하라는 얘기, 기억나지?”
“... 네.”
도훈은 두진을 비서실장으로 영입하며 한 가지 특권을 줬다.
시정에 관해서라면, 뭐가 됐든 언제 어디서든 평가하고 비판하라는 것.
심지어 공개적으로 비판해도 상관없다는 도훈의 말은 두진에게 상당한 유혹이었다.
물론, 한 가지 단서가 있었다.
공개적으로 평가하고 비판하기 전에 도훈이나 영배를 한 번은 거쳐달라는 게 그것이었다.
어쨌든, 그런 달콤한 유혹과 요구사항(?) 관철로 두진은 결국 비서실장이 됐다.
6개월 근무가 기본이고 상황을 봐서 3개월씩 연장할 수 있으며 마음에 안 들면 당장 그만두는 조건으로.
절대 오래 하고 싶지 않다는 두진의 의지가 담긴 ‘계약’이었다.
영배를 침묵시킨 두진의 화살이 이번에는 고정임을 향했다.
“고 주무관도 눈치껏 적당히 해.”
“... 네.”
“나야 비서실장인 동시에 선생이지만, 고 주무관은 아니잖아. 자칫하면 나 믿고 위세 떠는 거로 보여. 자네가 그런 캐릭터가 아니라는 건 잘 알지만, 남들 눈은 조심해야지.”
“네, 조심하겠습니다.”
“그래. 허허.”
두진이 여유롭게 웃는데, 난데없는 정임의 반격이 돌아왔다.
“실장님도 조심하셔야 해요.”
“응? 나?”
“네. 자칫하면 실장님도 시장님 믿고 위세 떠는 거로 보일 수 있으니까요. 그런 분이 아니라는 건 제가 잘 알지만, 직원들 눈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
똑같은 논리로 공박 당한 송두진이 말문을 잃었고, 영배가 웃음이 터지려는 걸 가까스로 참아냈다.
“... 허허, 정임 씨 많이 컸네.”
“그럼요. 제가 누구한테 배웠는데요.”
웃으며 V자를 그려 보이는 정임, 묘한 미소를 머금은 두진, 웃겨 죽겠다는 영배.
왠지 환상의 팀워크를 자랑할 듯한 비서실 직원들이었다.
구석에서 가만히 관찰하던 조상님 귀신이 미소 띤 얼굴로 중얼거렸다.
- 역시 저놈이 신의 한 수였어.
자기도 모르게 전설적인 인물에게 엄청난 칭찬을 받은 두진이 뒤늦게 뭔가를 알아채고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홍 주무관은 어디 갔어?”
-----
대흥시청 청사 밖,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으슥한 곳.
“후우.”
수증기를 길게 내뿜는 시장 비서실 소속 운전직 7급 직원 홍영진의 얼굴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다수 직원이 도훈의 ‘또 다른 얼굴’에 놀라고, 다른 비서실 직원들이 그런 시장을 뿌듯(?)해하는 데 비해 홍영진은 홀로 얼굴을 구기고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 계속 이런 식이면 안 되는데···.”
시장이나 시의회 의장 등 ‘높은 양반을 모시는’ 관용차 기사는 대개 그 사람이 집에서 출근할 때부터 집으로 퇴근할 때까지의 이동을 책임진다.
물론, 이동 목적이 ‘공무’여야 한다는 제한이 붙긴 하지만, 행인지 불행인지 홍영진은 그 제한을 철저히 지키는 시장을 모셔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이번 김도훈 시장 전까지는 그랬다.
- 앞으로는 정시에 시청으로 출근하고 정시에 시청에서 퇴근하시면 됩니다. 물론, 특별한 일이 있으면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못을 박듯 말하던 도훈의 모습을 떠올리며 홍영진이 중얼거렸다.
“... 담배가 맛이 없네.”
남들보다 늦은 34의 나이에 운전직 공무원이 된 홍영진.
처음에는 청소차 운전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운 좋게도 대흥시가 생길 때 대흥시 소속이 됐고, 남들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청소차가 아닌 시장 관용차 운전대를 잡았다.
시장이 바뀌며 밀려날 뻔한 적도 있었지만, 특유의 빠른 눈치를 발휘해 운전대를 지킬 수 있었다.
그렇게 올해로 12년 차 공무원인 홍영진.
“요즘 한참 대목이어야 하는데···.”
입 무겁고 불평 없이 성실하다는 좋은 평을 받는 그였지만, 어찌 홍영진이라고 불만이 없었겠는가.
밥 먹듯 막말하는 시장도 참아냈고, 싸가지없는 시장 본인은 물론 개떡 같은 인성(人性)의 시장 마누라 등쌀도 묵묵히 견뎌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것도 있지만, 바로 고객(?)의 요구에 화답하기 위해서.
“휴우.”
그가 모시는 사람은 시장이나, 그의 고객은 극소수의 시청 간부를 비롯한 직원들이었다.
‘출세’가 절대적으로 시장에게 달린 간부들은 시장의 일거수일투족에 민감했다.
시장에 당선되기 전부터 줄 댄 이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당연히 그런 이들은 극소수.
새 시장이 취임하면 거의 모든 간부가 시장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고, 홍영진은 그중 알음알음으로 찾아드는 극소수를 고객으로 두고 있었다.
기사로서 홍영진의 철칙은 ‘최대한 없는 듯’ 업무에 임한다는 것.
항상 그런 건 아니나 기사, 그것도 말 없고 존재감도 없는 기사 앞에서 ‘높은 양반’들은 대개 언행을 조심하지 않았다.
술이 적당히 취해 차에서 전화 통화라도 하면 어렵지 않게 ‘대박’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얻은 정보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받는 것이라야 아주 소소한 것들이었다.
소심한 홍영진은 비리를 저지를 용기라고는 전혀 없었고, 대가보다는 정보를 모으고 제공하는 행위 자체에 쾌감을 느꼈으니까.
그래서 홍영진은 시장뿐만 아니라 대흥시 공무원 사회에 대해 꽤 빠삭한 정보를 갖고 있었다.
물론, 그걸 아는 사람도 이용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지만.
어쨌든, 새 시장이 취임하면 은밀히 접근해 새 시장의 ‘취향’에 관해 물어보던 간부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혜성처럼 등장한 신임 시장과 알고 지낸 간부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고객이 늘어야 함에도 오히려 파리만 날리는 이유.
당선자 때는 논외로 하고 벌써 취임 사흘째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도훈은 홍영진이 모는 차를 탄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 공무원 생활 최대 위기야.”
홍영진이 탄식하듯 중얼거리고 다시 전자담배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런 홍영진의 몇 걸음 등 뒤에 조상님 귀신이 팔짱을 끼고 양반다리 자세로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 ... 저놈도 멀쩡한 놈은 아니군.
호기심 가득한 표정의 조상님 귀신.
- 그래도 저놈 의외로 쓸모 있겠는데···?
홍영진의 뒤통수에 시선을 고정한 조상님 귀신이 중얼거렸다.
그렇게 다산(茶山)이라는 호로 널리 알려진 조상님 귀신에게 또 한 명의 비서실 구성원이 인정받고 있었다.
#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