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9화 (20/279)

19. … 대로 제대로!

화요일 아침.

대흥시 3선 시의원 양상택은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 더부룩한 아랫배에 손을 올린 채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비서이자 조카가 룸미러를 흘끔 하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어제 술 많이 드셨어요?”

“... 응.”

“속이 불편하신 것 같은데요?”

“... 어.”

“... 가다가 약국에 잠깐 들릴까요?”

“... 아니다.”

양상택의 심기가 불편함을 알아챘는지 조카도 더는 말을 잇지 않고 운전에 집중했다.

양상택은 그런 조카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계획은 완벽했는데···.’

대통령과 당의 지지율이 ‘역대급’으로 높았으니 당선은 떼 놓은 당상이었다.

무척 친했던 강운천 시장이 탈당하고 자신에게도 손짓했을 때, 끝내 거부했던 이유도 그 때문.

그간 지역구에 공도 들였고, 당선 이후를 생각해 물밑작업도 열심히 했기에 세 번째 당선은 하나의 과정에 불과했다.

아니,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재선된 서태기를 제외하고는 시의원 당선자 전원이 초선이었기에 내심 ‘됐다’고 환호했다.

서태기가 알아서 기지 않는 게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자신이 의장이 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없다고 자신했다.

‘... 저놈 때문에라도 의장이 돼야 했는데···.’

지방대 졸업 후 구직활동도 안 하고 게임이나 하며 형네 부부에게 얹혀살던 조카 뒤통수를 바라보며 양상택이 이를 악물었다.

형이 제발 좀 데려다 일 좀 시키라 성화였고, 선거 때 고사리손이라도 빌려 쓰고 싶은 마음에 데리고 왔다.

비서 겸 운전기사로 조카 하나 쓰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큰소리쳤지만, 그때는 계획이 ‘완벽히’ 성공할 거라는 계산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 빌어먹을.’

기초의회 의원의 ‘연봉’은 평균 4천도 안된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금액이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랐다.

국회의원은 몇 명이나 되는 보좌진을 채용할 수 있고 그들의 급여도 따로 지급되지만, 기초의원은 그런 게 없다.

즉, 4천도 안되는 연봉으로 모든 걸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같은 기초의원이라도 ‘의장’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의장은 의회에 사무실이 제공되며 비서도 있다.

대흥시는 전대 의장이 의회 혁신의 일환이라며 관용차를 없앴지만, 원칙적으로는 기사가 딸린 관용차도 쓸 수 있었다.

거기에 연 2천이 넘는 업무추진비도 주어진다.

즉, 의원과 의장의 대우는 하늘과 땅 차이라 할 수 있었다.

이번 선거에 임하는 양상택의 목표는 일개 의원에 그치는 게 아닌, 그런 여유로운 혜택을 누리는 ‘의장’이 되는 것이었다.

‘... 김 의원, 이 망할 자식!’

며칠 전, 갑작스레 민의당 소속 대흥시 시의원 당선자 전원을 소집해 저녁을 함께 한 자리에서 지역 국회의원 김용진이 했던 말.

- 전국적인 승리라지만, 정작 우리는 시장 선거 패배가 뼈아파요. 안 그렇습니까?

그때부터 눈치가 이상했다.

- 시장이 전국 최연소 당선자라 중앙당에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제가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젊은 이미지의 시장에 밀리지 않도록 시의회도 젊은 의장단을 꾸리는 게 어떤가 싶어서요.

난데없는 김 의원의 ‘참견’ 때문에 양상택의 거창한 계획은 그렇게 끝장났다.

아무리 같은 의원이라도 기초의회 의원, 그것도 시골 풍경 물씬한 소도시 의원과 국회의원은 서로 비교가 안 되는 상대.

김 의원의 논리도 논리지만, 우리끼리 알아서 할 테니 참견하지 말라고 용감하게(?) 이야기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남은 얘기는 여러분끼리 하십시오. 다만, 신선한 충격을 주기 위해서라도 이 얘기가 의장 선출 전에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되겠지요.

그 뒤 의장 후보로 주목받은 건 43살의 안준식.

원래 대전에서 활동하다 김 의원의 권유로 2년 전에 대흥시로 온 사람이었다.

가장 젊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김 의원과 끈끈한 관계라는 게 의원들이 그를 지지한 중요 요인이었다.

‘듣보잡들이 내 계획을 망쳤어.’

난데없이 나타나 시장에 당선된 35살 새파란 애송이.

겨우 2년 전에 굴러들어온, 입은 겸손해도 눈빛이 무엄한 발칙한 후배.

새파란 애송이가 시장이 되었을 때, 시의회 의장으로서 쉽게 다룰 수 있겠다고 남몰래 좋아했던 양상택.

그 애송이가 핑계가 되어 경쟁 상대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안준식에 의해 성대한 계획의 마지막이자 핵심이 물거품이 될 줄이야.

‘망할···.’

김 의원이 다녀간 이후, 시의회에 잠시 발길을 끊었다.

너무 열이 받아서.

간신히 다스리고 어제 임시회에 가서 안준식과 다른 초선이 의장, 부의장이 되는 걸 봤다.

안 그래도 울화가 터질 것 같았는데 설상가상으로 시장 비서실장이랍시고 나타난 게 송두진이었다.

그와 구원(舊怨)이 있는 양상택으로서는 최악의 비서실장이랄 수밖에.

‘눈치 없는 것들 같으니라고···.’

어제 송두진과 인사할 때 초선들은 드디어 시의원 됐다고 마냥 희희낙락했지만, 송두진을 상대한 경험이 있는 자신과 서태기는 잘 알았다.

넉넉한 미소 뒤에 감춰진 ‘비서실장’의 지랄 맞게 꼬장꼬장하고 집요한 낯짝을.

‘... 잠시라도 의회에 발길을 끊는 게 아니었어.’

의장에서 밀려나 속상한 마음에 잠시 신경을 끊었던 게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울화를 삭이느라 비서실장 인선이 발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흘려 들었던 게 계속 후회되고 있었다.

“마음대로 되는 게 없네.”

양상택이 자기도 모르게 속마음을 소리 내어 말했지만, 운전하는 조카는 아무 대꾸가 없었다.

“응?”

양상택이 차창 너머로 보이는 광경에 인상을 썼다.

산사태로 흘러내린 토사를 완전히 치우지 않고 교통에 방해되지 않게 길가에 밀어낸 후 포장을 쳐놓은 모습.

“아니, 저걸 왜 아직도 저렇게 놔뒀어?”

벌컥 짜증을 내는 양상택.

붕괴 사고가 난 게 일요일 새벽이었고, 월요일인 어제도 낮에 비가 와서 작업을 실행하기 어려운 형편이었음은 전혀 생각나지 않고 있었다.

“이것들이 내 지역구 일을 이렇게 소홀히 해? 내 가만 놔두나 봐라.”

‘잘 걸렸다’는 표정으로 으르렁거리는 양상택.

그는 의장에서 밀려난 것으로 시작된 자신의 불행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짐작도 못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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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시간 뒤, 대흥시청의 한 사무실.

사무실이 쥐죽은 듯 조용한 가운데, 한 직원이 전화를 받고 있었다.

“... 물론입니다, 양 의원님. 어제 비가 오느라 일을 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어찌 감히 소홀히 하겠습니까?”

직원은 무척 짜증스러운 표정임에도 아주 정중한 목소리로 통화하고 있었다.

“... 네. 과장님하고 팀장님은 시장실에 가셨습니다. 일부러 전화 피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네, 네. 오시면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탁.

질린다는 표정으로 통화를 마친 직원이 한숨을 내쉬었고, 다른 직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양 의원이 뭐랍니까?”

“... 당장 현장 정리하라고 난리지. 과장님, 팀장님 핸드폰으로 전화했었나 본데 왜 자기 전화 안 받냐고 거품을 무네.”

“... 무시당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러게. 의장 못 된 것 때문에 더 그러나 봐.”

“... 그렇기도 할 겁니다. 우리도 너무 놀랐잖습니까.”

“어제 놀랄 일이 그것뿐이었나?”

“... 하긴요.”

초선 시의회 의장, 부의장의 선출이 놀랍긴 했지만 진정 시청 직원들을 경악하게 한 것은 송두진 비서실장의 등장.

놀라긴 모두가 놀랐지만, 간부급으로 갈수록 놀람에 그치지 않고 바르르 몸을 떤 사람이 제법 많다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였다.

“... 그나저나 우리 과장님하고 팀장님은 어쩌다가 그 무서운(?) 비서실장님께 처음으로 불려가는 신세가 됐을까요?”

“말은 바로 해야지. 비서실장이 아니라 시장님께 불려간 거야.”

“... 그거나 그거나 아니겠습니까?”

“아닌 것 같아. 사실, 난 이번 일로 시장님 다시 봤어.”

“어떻게 말입니까?”

“대개 무표정이다가 사람 마주치면 좋게 웃는 법만 아는 줄 알았는데 칼도 벼를 줄 아는 사람이더라고.”

“... 글쎄요.”

“하하, 송 실장님이면 칼도 보통 칼이 아닌데? 자네도 모르지 않잖아. 내 말이 틀려?”

“... 틀린 건 아니네요.”

두 선배 직원의 소리 죽인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직원들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1년 치 공사계약서 들고 오랄 때부터 좀 조짐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 분명 유서면 사방공사 때문이겠죠?”

“아마도. 비 좀 왔다고 무너지면 그게 무슨 사방공사야.”

“... 휴우.”

“휴우.”

두 직원이 한숨을 쉬었고, 다른 직원 중에도 남몰래 한숨을 내쉬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에 ‘건설교통과’, ‘행정‧시설팀’이라는 팻말이 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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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실.

“... 하자보수 이행각서를 받아 놓았고, 다행히 그 보증기간이 만료되기 전입니다. 또한, 무너진 구간에 미루어 볼 때 각서에 기재된 금액 안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시 말해, 보수 비용이 추가로 나갈 필요는 없습니다, 시장님.”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건설교통과 행정‧시설팀장이었고, 그 옆에 굳은 얼굴로 건설교통과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상석에 앉은 도훈과 그 옆의 송두진이 각각 무심하고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듣는 가운데, 말석에 앉은 영배가 얌전한 모습으로 열심히 메모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완공 1년도 되지 않아 일부 구간이 무너진 건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만, 추가 예산이 집행될 필요가 없다는 건 불행 중 다행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 그게 전부입니까?”

“... 네, 네?”

“더 덧붙일 말씀 없냐는 뜻입니다.”

“... 그, 그게···.”

무덤덤한 도훈의 반문에 팀장이 일순 당황했지만, 도훈은 그를 추궁하지 않았다.

팀장이 이마에 솟아난 진땀을 닦는 사이, 도훈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각서 덕분에 불필요한 시 예산의 지출이 없을 거라는 얘기는 잘 들었습니다.”

“... 네.”

“그런데 전 다른 부분에 주목하고 싶네요.”

“... 네?”

도훈이 옆에 놓인 서류 더미에서 집어 들어 자신의 앞에 내려놓은 건 유서면 도로 인근 사방공사의 원래 계약서.

그중 도훈의 손가락이 콕 짚은 부분에 과장이 시선을 줬다.

형광펜으로 덧칠까지 된 부분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 ‘시방서’대로?”

“네. 전 이 부분이 아주 마음에 들더라고요. ‘합의한 시방서대로 시공하여야 한다’.”

눈가를 좁힌 건설교통과장이 도훈에게 물었다.

“... 그 무너진 부분을 이대로 다시 재시공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씨익.

과장의 물음에 도훈은 아주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움직였다.

위에서 아래가 아니라 좌에서 우로.

그리고는 옆에 있던 지도를 끌어왔다.

“... 그게 아니면 어떻게···?”

의아해하는 과장 앞에 지도를 내민 도훈이 손가락으로 문제의 사방공사가 시행된 지역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 여기부터 여기까지요.”

“... 그러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포함되는데요.”

“맞아요, 처음부터 끝.”

“... 네?”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니까 공사구간 전부가 맞단 얘깁니다.”

“......”

“언제 누구한테 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은데, 이런 말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

“하자보수 함부로 하는 거 아니라고요.”

“... 그, 그러면.”

당황해하는 과장과 팀장에게 도훈이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해당 건설업체에 전하세요. 공사구간 전부 시방서에 나와 있는 대로···.”

“......”

“... 제대로 해놓으라고.”

미소는 해맑으나 눈빛이 더없이 싸늘한 도훈의 말에 과장과 팀장은 아무런 대꾸도 못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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