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7화 (18/279)

17. 취임일 - 2.

도훈과 영배가 시청에 돌아온 것은 오전 10시가 조금 안 된 시각.

비는 다행히 그쳤고, 도로에 무너져 내린 흙은 차량 통행에 방해되지 않게 한쪽으로 치운 뒤 포장을 쳤다.

당연히, 작업 과정 전체는 도훈과 영배의 핸드폰으로 세세히 촬영됐다.

교대하러 나온 직원에게 마무리를 맡긴 뒤, 집에 들러 순심이 밥 주고 갈아입을 옷을 챙겨 시청에 복귀한 도훈과 영배는 후줄근한 모습에 비옷까지 입고 도훈의 SUV에서 내렸다.

탁.

“... 네 차 실내 세차해야겠다.”

“... 하지, 뭐.”

“... 냄새 제거 신경 써달라고 그래.”

“... 형이 내 비서관인데 형이 갖다 맡길래?”

“사양하련다. 공은 공, 사는 사.”

“... 하하.”

추적추적 걷는 두 사람의 몰골은 참으로 볼만했다.

흠뻑 젖은 건 둘째 치고, 무너진 현장을 촬영한다고 왔다 갔다 하면서 흙도 잔뜩 묻은 상태.

비옷을 입고 차를 타야 했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어머, 시장님!”

청사 현관에서 도훈과 영배를 알아본 누군가가 화들짝 놀라 달려왔다.

“정임 씨네.”

“그러게.”

다급히 달려오는 고정임에게 영배가 손을 들어 신호했다.

“정임 씨, 거기 스톱!”

멈칫.

두 사람의 몇 걸음 앞에 멈춰 선 고정임.

“왜요?”

“더 가까이 오면 코가 썩어버릴지도 모르거든요.”

“......”

말문을 잃은 고정임에게 도훈이 입을 열었다.

“정임 씨 비상근무 아닌 것으로 아는데, 왜 나왔어요?”

“시장님이 나오셨을 것 같아서 저도 나왔죠.”

“... 하하.”

“그래도 이런 모습이실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네요. 직접 복구 작업이라도 하셨어요?”

“... 그건 아니고 좀 미끄러졌습니다.”

“......”

“이거 너무 초짜 티 내는 것 같아 민망하네요.”

뭐가 됐든 경험 있는 사람은 일 처리를 요란하지 않게 한다.

도훈은 마음이 급해 밤새 분주했던 흔적이 온몸에 역력해 뒤늦게 멋쩍어하고 있었던 것.

그런 도훈에게 고정임이 미소를 보냈다.

“틀린 말씀은 아닌데, 그래도 그것대로 멋져요.”

“... 하하.”

멋쩍게 웃고 난 도훈과 영배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고정임의 앞을 스쳤고, 고정임이 냄새에 흠칫 놀랐다가 거리를 두고 뒤를 따랐다.

“혹시 상황실에 가 봤어요?”

“네. 조금 전까지 거기에 있었습니다. 유서면 산사태 말고는 관내에 별문제 없습니다.”

“다행이네요.”

청사 현관에 거의 다다랐을 때, 영배가 도훈을 멈춰 세웠다.

“도··· 아니 시장님? 잠깐만 서 보세요.”

“... 왜··· 요?”

“이것도 기념인데, 사진 한 장 찍죠. 정임 씨!”

영배가 정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예쁘게 찍어주세요.”

“... 네.”

핸드폰을 넘긴 영배가 어이없다는 표정의 도훈 곁에 와 속삭였다.

“야, 웃어.”

“... 꼭 찍어야 돼?”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얘기 못 들어봤어?”

“......”

비가 그치고 구름 사이로 살짝 해가 얼굴을 내민 하늘 아래, 대흥시청 청사를 배경으로 시장과 비서관이 취임 기념사진(?)을 찍었다.

“하나, 둘, 셋!”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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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훈과 영배 둘이 사진 찍고, 지나가던 다른 직원에게 핸드폰을 넘긴 뒤 도훈, 영배 옆에서 고정임이 손으로 코를 막은 모습으로 또 사진 찍고, 다른 직원들까지 달라붙어 고정임과 같은 포즈로 사진 찍고···.

“... 취임 기념사진의 레전드가 될 거야.”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화장실을 나오는 영배가 중얼거렸다.

시장실 한쪽에 작은 화장실이 붙어있었는데, 그 안에서 샤워도 할 수 있었다.

“... 자랑이냐, 그게?”

“자랑일 수도 있지.”

먼저 샤워하고 나와 소파에 앉았던 도훈의 말에 영배가 능글맞게 웃으며 답했다.

도훈이 손수 탄 인스턴트커피를 건네주자 영배가 소파에 앉아 향을 맡았다.

“휴우, 땀 냄새, 쉰 냄새만 맡다가 커피 냄새를 맡으니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이네.”

“그게 다 형 몸에서 났던 냄새야.”

“정확하게 말하면, 네 것도 반 섞였지.”

잠시 실없이 툭탁거리던 중, 영배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참, 너 상황실에 얼굴 비쳐야 하는 거 아니냐? 거기 직원들 다 날 샜을 텐데.”

“그게 이제야 생각났어? 벌써 갔다 왔네, 이 양반아.”

“벌써? 내가 그렇게 오래 씻었냐?”

“정임 씨랑 상황실 들러서 이것저것 확인하고 교대 근무자들 출근했길래 날 샌 직원들은 들여보내고 왔어.”

“... 그, 그랬냐?”

“김밥에 컵라면도 얻어왔어. 어제 야식으로 준비한 건데, 우리 몫을 남겨 놨더라고.”

“......”

“그러고 왔는데도 형은 아직도 씻고 있대?”

“......”

“데이트라도 있어? 그렇게 공들여 씻게?”

“... 하하.”

“에휴. 누가 시장이고, 누가 비서관인지···.”

“... 쏘리. 시원한 물줄기를 맞고 있다 보니 너무 기분이 좋아서···.”

영배가 머쓱한 표정으로 사과하자 도훈이 피식 웃었다.

공석에서나 시장과 비서관이지, 사석에서는 그냥 하던 대로 하자고 한 게 바로 도훈 자신이었다.

그리고 이 관계는 영배뿐만 아니라 송두진에도 똑같이 적용될 터.

도훈이 테이블에 김밥 포장지를 풀며 물었다.

“먹고 갈래, 아니면 그냥 갈래?”

“가? 어딜 가?”

“집에 안 들어가?”

“야, 네가 나와 있는데 내가 어딜 가?”

“정임 씨도 나왔는데 들어가서 잠이라도 좀 자.”

“너는? 안 자고 버틸 수 있겠냐?”

“여기서 잠깐 자면 되지.”

“그럼 나도 여기서···. 아.”

뒤늦게 뭔가를 깨달은 영배에게 도훈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나는 상관없어.”

“... 하하, 내가 지, 직원들 눈치가 좀 보이겠구나.”

“쯧쯧.”

도훈이 혀를 찼고, 영배가 뒤통수를 긁었다.

“형 안 들어갈 거면 정임 씨 들어가라고 할게. 최소한 낮에는 비가 안 올 것 같으니까.”

“... 그, 그래.”

“그리고 여기서 자는 게 눈치 보이면 인수위 사무실 소파에서 자. 거기 내일이나 치운다고 했어.”

“아, 거기가 있었네. 오케이!”

도훈은 짧은 실랑이 끝에 고정임을 집으로 보냈고, 김밥과 컵라면으로 배를 채운 뒤 시장실 소파에서 잠을 청했다.

정오가 되기 전에 누웠는데, 눈을 뜨니 오후 3시가 살짝 지나 있었다.

“... 그새 비는··· 안 온 모양이네.”

하늘은 흐렸지만, 청사 앞 주차장에 물기가 마른 곳이 보였다.

세수한 뒤 상황실에 내려가니 부시장과 몇몇 간부가 나와 있는 게 보였다.

“오셨습니까, 시장님.”

“안녕하세요.”

“시장님, 잠은 좀 주무셨습니까?”

“네. 그새 아무 일 없었습니까?”

“네. 비도 안 왔고 조용했습니다, 시장님.”

인수위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이미 낯이 익은 사람들이었지만, 어쩐지 오늘은 느낌이 달랐다.

왜 그런가 생각하던 도훈은 곧 이유를 깨닫고 헛웃음을 지었다.

‘... 다들 시장님 소리가 그렇게 하고 싶었던 거야?’

도훈을 상대하는 사람 모두가 말끝마다 ‘시장님’ 소리를 하고 있었다.

어제까지는 ‘당선자님’하고 부르긴 했지만, 이렇게 말끝마다 꼭 붙이지는 않았었다.

도훈이 피식거리고 있는데 내내 조용하던 조상님 귀신이 말을 걸어왔다.

- 왜, 듣기 좋냐?

‘그건 아니고 사람들이 저렇게까지 하니까 웃기긴 합니다.’

- 그럼 사람들이 굽신거리는 게 기분 좋은 거냐?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제 수준을 뭐로 보고 그러십니까?’

- 쯧쯧쯧.

조상님 귀신이 혀를 차더니 목소리를 엄하게 바꿔 말을 이었다.

- 인마, 아부가 처음부터 아부고 감언이설이 시작부터 감언이설인 줄 알아?

‘... 네?’

- 그것도 다 천천히 무감해지고 중독되는 거야. 조선 시대 관리들은 다 태어날 때부터 탐관오리였다더냐?

‘... 네?’

- 주위에서 ‘도련님’, ‘서방님’, ‘나리’, ‘어르신’, ‘영감’, ‘대감’ 하고 하도 떠받들어 주니까 차츰차츰 그런 것에 무감해지고 중심을 잃는 거라고. 알아? 이 모자란 놈아!

‘......’

조상님의 낮지만 차가운 일갈에 도훈은 말문을 잃었다.

- 막말로 저기 서 있는 놈 중에 몇이나 진심으로 저러겠냐?

‘......’

- 새파랗게 젊은 네놈이 뭐가 그리 존경스럽다고 저렇게 저자세로 말끝마다 ‘시장님’, ‘시장님’ 하겠냐고!

‘......’

- 너 지금 작은 사고 하나 뒷수습하느라 고생 좀 했다고 목이 뻣뻣해진 거 아니냐?

조상님의 싸늘한 질타에 도훈이 찔끔했다.

직원들의 저자세를 즐기는 건 아니었지만, 밤새 고생 좀 했으니 그건 좀 인정받아도 괜찮다 생각하기도 한 것 같아서.

‘... 아닙니다.’

- 진짜 아냐?

‘... 네, 아닙니다.’

도훈의 답에 조상님이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

- 지금은 진짜 아니겠지. 하지만, 너 긴장을 놓는 바로 그 순간부터 무감해지고 중독된다.

‘... 명심하겠습니다.’

- 그리고 너 사고 뒷수습 다 끝냈어?

‘... 아니지요.’

- 그래. 날림이라며? 그럼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겠지?

‘... 물론입니다.’

- ... 내 오늘은 첫날이니까 1절만 한다.

‘... 네.“

조상님의 말이 끊겼고, 도훈은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 경세가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경계다. 그리고 이건 가장 중요한 것임과 동시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기도 하다.

수없이 들었던 조상님의 가르침.

잠시 그 기본에 해이했다.

아니, 해이할 뻔했다.

‘... 잠이 모자라서 그래.’

변명 아닌 변명을 속으로 쓰게 중얼거리고 난 도훈이 직원들에게 말했다.

“그렇게 말끝마다 시장님, 시장님 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도 제가 시장인 줄 알아요.”

“... 하하, 네.”

“그리고 서로 필요한 예의만 갖추시죠. 예의도 너무 과하면 꼴불견이잖습니까?”

“... 하, 하하. 그, 그렇죠.”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봐 직설적으로 ‘그러지 말라.’고 하지 않고 웃으며 돌려 말한 도훈.

다행히 부시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잠시 머쓱한 표정을 하긴 했지만, 웃으며 도훈의 말을 수긍했다.

도훈이 담담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생각난 김에 말하는 건데, 재해복구를 위해서 포크레인 기사분들 섭외한 것 있잖습니까?”

“... 네.”

직원들이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말이 섭외지, 정작 긴급한 일이 생기니 아무도 제때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문제점은 다들 아실 테고, 그거 방법을 좀 달리하는 게 좋겠어요.”

“... 어떻게 말입니까?”

“인원은 늘리되, 당직 개념을 적용하는 겁니다.”

“... 당직이라면···?”

“음, 실제로 대기시키자는 건 아닙니다. 일곱 분 정도 섭외해서 최소한 1주일에 하루 정도는 외지 출타 안 하고 술도 안 마시는 날을 정하자는 거죠.”

“... 아?”

“그러면 최소한 한 분은 즉각 투입할 수 있지 않을까요?”

“... 흠, 나쁜 생각은 아닙니다만, 기사들에게 그에 대한 혜택으로 제공할 게 없습니다. 제 경험으로 이번처럼 토사가 무너지는 일은 흔치 않은데 정식 계약을 하기도 뭐합니다. 정식 계약을 하면, 비용을 지급해야 해서···.”

부시장이 대표로 말했고 도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뭐, 방법이 없으면 그렇게 섭외된 분들 모시고 제가 밥이라도 한 번 사면 되겠죠. 그걸로 모자랄까요?”

“하하, 그, 글쎄요.”

“한 번으로 모자라면 두 번 사고요.”

“......”

도훈의 말이 엉뚱하다 여겼는지 다들 말이 없는데, 간부 하나가 얼른 입을 열었다.

“나쁜 생각은 아닌데 고민을 좀 더 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시죠. 당장 어떻게 하자는 건 아니니까요.”

직원들과 좀 더 대화를 나눈 뒤 도훈은 상황실을 벗어났다.

시장실에 들어선 도훈은 핸드폰을 꺼내 송두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 날세. 무슨 일인가?

“잊어버리기 전에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 뭔데?

“내일 출근하셔서 실장님께서 하실 일이요.”

- ......

도훈은 송두진과 통화를 마치고 다시 영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 끄응. 어.

“아직도 자?”

- 어우, 깼어. 이제 일어나야지. 너 시장실이냐?

“응.”

- 후아암, 아이고 죽겠다. 나 금방 갈게.

“깨우려고 전화한 건 아니야. 형, 기준이 형이랑 혹시 아직도 연락해?”

- 기준 선배? 가끔 하지. 근데 왜?

“그러니까···.”

도훈이 담담히 영배와 통화했고 어느새 나타난 조상님 귀신이 그런 도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 초장부터 버릇을 제대로 들여야지.

조금 전 엄하게 질책했던 때와는 달리 따스한 눈빛으로 후손을 바라보며 조상님 귀신이 남몰래 중얼거렸다.

그렇게 대흥시 시장 김도훈의 임기 첫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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