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6화 (17/279)

16. 취임일 - 1.

시장 취임 당일 오전 0시 45분, 대흥시청 상황실.

도훈이 상황실에 들어서자마자 직원이 달라붙어 설명을 시작했다.

“전에도 토사가 무너져 도로로 흘러내린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작년 가을에 사방공사를 했는데, 그 시작 부분이 무너지면서 상황이 더 안 좋게 됐습니다.”

“... 혹시 현장 사진 있습니까?”

“현장에 나간 직원이 찍어서 보내준 동영상이 있습니다. 여기···.”

직원이 핸드폰으로 영상을 재생했다.

대흥시청이 있는 남가동에서 유서면으로 가기 위해서는 하천을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 천변 야트막한 산을 가로지른 4차선 도로를 통해야 한다.

산사태는 그 다리를 넘자마자 시작되어 토사가 4차선 도로 일부와 천변 길로 흘러내렸다.

문제는 천변 길 바로 옆에 인근 농지에서 하천으로 연결된 배수로가 있다는 것.

도훈은 가장 시급한 문제가 뭔지를 곧바로 알아챘다.

“... 이거 빨리 배수로 뚫지 않으면 논이 잠기겠는데요?”

“네. 지금으로썬 그게 가장 큰 문젭니다.”

“배수로 위치 표시된 지도 있습니까?”

“이리로 오십시오.”

큰 테이블 위에 펼쳐진 지도를 보니 상황실 근무자들도 이미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있었던 모양.

“여기 파랗게 표시해 놓은 게 하천과 연결된 배수로입니다. 100m 정도의 간격이죠.”

“만약 다리 옆 배수로가 계속 막혀 있으면 어느 정도의 논이 영향을 받는 겁니까?”

질문하는 도훈의 눈은 지도가 아닌 상황판에 가 있었다.

충남지역에 호우 주의보가 내려진 상태.

내일 낮까지 계속, 혹은 간헐적으로 비가 내릴 것이 예상되었다.

“아마, 여기부터 여기까지는 잠길 겁니다.”

직원이 손바닥으로 어림하는 지역은 제법 넓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많이 영향을 받을 겁니다.”

“막힌 배수로가 다른 곳보다 커서요?”

“네. 물론 강수량에 따라 안 잠길 수도 있습니다만, 지금처럼 비가 내려서는···.”

상황을 이해한 도훈이 말을 이었다.

“포크레인 기사 섭외해놨었죠? 연락됐습니까?”

장마가 오기 전부터 시청은 재해 대책반을 꾸렸고, 긴급복구를 위해 건설 중장비를 동원할 준비도 해놨으며 도훈도 그걸 확인했었다.

중장비에는 당연히 중장비의 대명사 포크레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도 세 대나.

그런데···.

“그게···. 당장은 기사들이 올 수가 없는 형편이랍니다.”

“예?”

“두 사람은 외지 출타 중이고, 한 사람은 술을 먹고 뻗어서···.”

“......”

“그래서 지금 직원들이 관내 중장비를 보유한 업체 사장들에게 연락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지금 시간이 늦어서요.”

“......”

말문을 잃은 도훈의 눈에 그제야 자신에게 설명하던 직원을 제외한 전원이 전화기나 핸드폰을 붙들고 있는 게 들어왔다.

“포크레인 기사들과 정식으로 계약을 맺거나 한 게 아니라 놔서···.”

“......”

도훈이 어쩔 줄 모르고 변명하듯 말하는 직원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재해복구를 위해 섭외했다지만, 진짜로 재해가 발생할지 아닐지 발생해도 중장비가 정말 필요할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비용’이 나가는 실제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문제 생기면 너에게 연락할 테니, 즉시 달려와라.’ 는 ‘합의’만 이루어진 것이었다.

미처 그것까지 확인하지 못했었다.

입을 꾹 다문 도훈의 이마에 핏줄이 솟았다.

‘... 이 사람에게 화낼 일이 아니야.’

그렇게 속으로 탄식하는 도훈의 눈에 저만치서 핸드폰을 손에 들고 누군가와 통화하는 영배의 모습도 들어왔다.

보아하니, 도훈보다 먼저 도착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도훈과 눈이 마주친 영배가 환한 미소를 짓더니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 지금 뭔 일이 벌어진 줄 알고 저리 웃고 있담?’

도훈이 어처구니없어하고 있는데, 영배가 전화를 끊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됐습니다!”

“... 영배 씨, 뭐가 돼요?”

“포크레인, 현장으로 출발했답니다.”

“응? 포크레인?”

“네!”

전화기를 붙들고 있던 직원들이 얼른 통화를 마무리하고 영배 주위에 모였다.

“아니, 영배 씨 포크레인 기사 아는 사람 있어?”

“그러게. 친구 중에 포크레인 기사 있는 거야?”

“하하, 그건 아니고요.”

“그럼 어떻게 이 야밤에 섭외했어?”

영배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꾸했다.

“제가 포크레인 기사 아는 사람을 좀 알거든요.”

“누구?”

“우리 비서실장님요.”

“응?”

“비서실장님?”

“네.”

그 몇 마디만으로 도훈은 모든 정황을 이해했다.

“지금 유서면 산사태 난 거 말고 다른 문제는요?”

“... 아, 아직은 거기뿐입니다.”

“알겠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포크레인 한 대쯤 더 섭외해 놓으세요. 실제 동원할지는 제가 현장에 가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일 생기면 핸드폰으로 연락하세요.”

“... 알겠습니다.”

도훈이 걸음을 옮기자 직원들에 둘러싸였으면서도 도훈에게 시선을 주고 있던 영배가 얼른 따라붙었다.

재치있게, 구석에 준비되어 있던 비옷까지 챙겨서.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직원들이 수군거렸다.

“... 비서실장이 누군지 알아?”

“알면 내가 이 표정이겠어?”

한편, 복도를 서둘러 걸으며 도훈이 영배에게 속삭였다.

“어떻게 송 실장님에게 연락할 생각을 한 거야?”

“저번에 너 없이 나 혼자 갔던 날 그 양반이 으스대며 했던 얘기가 있거든. 시정도 시정이지만 자기가 대흥시 토박이나 다름없어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오호.”

“혹시나 싶어서 전화했더니, 바로 되더라.”

“잘했어.”

도훈이 주먹을 들어 보였고, 영배가 가볍게 마주 부딪혔다.

“하하.”

마주 보고 씨익 웃은 도훈과 영배가 시청 청사 현관에 섰다.

쏴아아아아.

여전히 비가 억수로 퍼붓는 밖을 바라보며 도훈이 입을 열었다.

“갑시다, 조 비서관.”

“그럽죠, 시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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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둑, 후두둑.

“비 그치려나 보다.”

“... 그러게.”

저만치 포크레인이 흘러내린 흙을 치우는 걸 버스정류장 지붕 밑에서 도훈과 영배가 바라보고 있었다.

붕괴 규모가 크지 않아서 흘러내린 흙을 치우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치우면 또 흘러내리고 해서 아직 철수를 못 하고 있었다.

“곧 6시야.”

“그래 보여. 밝아졌잖아.”

“하하, 네 취임 첫날부터 참 빡세다.”

“겨우 이 정도가?”

“음, 사고는 작은데 우리 몰골이 그렇다고.”

“... 하하.”

비옷을 벗어놓은 두 사람은 흠뻑 젖어있었다.

그게 다 비 때문은 아니었다.

이곳 토사 붕괴현장뿐 아니라 대흥시 전역의 폭우 취약지역을 둘러보느라 밤새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흘린 땀이 반은 될 터.

현장에 나왔던 시청 직원 둘은 잠깐 눈이라도 붙이라고 차에 밀어 넣은 뒤 취임일 아침을 빗속 길거리에서 맞는 두 사람.

인생에 다시 없을 기념비적인 날이라 할 수 있겠지만, 두 사람 주변에는 박수도 축하도 없었고 퀴퀴한 냄새만 진동했다.

“킁, 킁.”

“... 냄새 많이 나?”

“하하, 나라도 나를 집에 안 들이겠다.”

“......”

“어우, 너도 마찬가지야. 너 그러고 집에 가면 순심이가 쫓아내겠는걸?”

“......”

띠리리리.

영배가 액정을 확인하고 스피커폰 모드로 전화를 받았다.

“네, 실장님. 옆에 시장도 있어요.”

- ... 아직은 자네 시장이지, 내 시장 아니네.

“오늘로 임기 시작했는데요?”

- ... 시의회 의장은 아직 안 뽑혔잖아.

“실장님도 참 쓸데없는 데서 끈질기시네요.”

- 흠!

도훈과 영배가 동시에 피식 웃었고, 영배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쩐 일이세요? 아직 실장이길 거부하시는 분께서?”

- 아니, 뭐. 일이 잘 수습되고 있나 궁금해서···.

“배수로 막은 건 다 치웠고요. 이제 도로 쪽만 남았습니다.”

- 그래? 논에 물 안 찼어?

“간당간당했습니다만, 다행히 잠기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은 물 잘 빠지고 있어요.”

- 다행이네. 하하, 광태 자식이 역시 쓸모가 많아.

“광태? 광태가 누굽니까?”

- 거기 나간 포크레인 기사 이름이야. 전에 작은 건설회사 했는데, 머리 복잡하다고 문 닫더니 이따금 포크레인 기사 노릇 하거든.

“아, 그래요?”

- 걔가 젊었을 적부터 온갖 공사현장에서 안 해본 게 없다네. 그래서 내 건설교통과에 있을 때 요긴하게 써먹었지.

“... 하하.”

송두진의 말에 도훈의 눈이 반짝였지만, 영배는 알아채지 못했다.

- 어쨌든, 급한 일 수습했으면 적당히 하고 걔 집에 보내게. 나이 든 애가 밤새 고생했으면 됐지.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다른 포크레인 7시부터 섭외했거든요.”

- 그래? 첫날치곤 머리 회전이 빠르네그려.

“하핫, 원래 그 정도 생각은 하는 사람들입니다, 저희.”

영배가 송두진과 실없는 대화를 이어가는데 배수로 쪽 토사를 다 치운 포크레인에서 사람이 내렸고, 도훈이 얼른 다가갔다.

“정말 감사합니다.”

깊숙이 허리 숙여 인사하는 도훈에게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가 웃으며 답례했다.

“공짜로 한 것도 아닌데요, 뭐. 오광태라고 합니다. 허허, 내가 살다 살다 시장님한테 인사를 다 받아 보네요.”

“기분 좋으시다면 이 자리에서 절도 할 수 있습니다.”

“아이고, 됐어요.”

수더분하게 웃는 남자와 잠시 대화를 이어가던 도훈이 본론을 꺼냈다.

“한가지 여쭤볼 게 있습니다.”

“나한테요?”

“네. 보시기에 여기 사방공사 제대로 한 것 같습니까?”

오광태는 도착하자마자 배수로를 덮은 흙을 퍼내고, 잠시 쉬는 시간에도 불빛이 없어 도로 쪽 무너진 부분을 살피지 못했었다.

지금은 하늘이 어스름하게 밝아져서 사방공사를 한 구간 중 10여 m 정도가 무너지고 흙이 밀려 내려온 게 선명하게 보였다.

오광태가 말없이 걸음을 옮겨 무너진 토사 가까이 가더니 흙 속에 파묻힌 콘크리트 구조물을 살폈다.

“흐음.”

오광태가 무너진 부분을 오가며 살폈고 그의 한 발짝 뒤에 선 도훈은 말없이 오광태가 하는 양을 지켜만 봤다.

곧 오광태의 ‘진단’이 내려졌다.

“... 이거 날림 같은데요?”

“날림이요?”

“예. 겉에 콘크리트 구조물을 박아놔서 공사한 시늉은 했는데, 두께가 이렇게 얇아서는 밀려 내려오는 흙을 막을 수가 없죠.”

“......”

“그리고 언덕 밑에다 콘크리트 구조물로 담장 친다고 다가 아니에요. 언덕 위쪽으로도 해야 할 작업이 있는데 그걸 제대로 안 한 것 같아요. 뭐, 전 구간이 그런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무너진 부분은 확실히 날림이에요.”

“......”

도훈이 말을 잃었다.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사방공사를 했는데, 하필 공사한 부분이 무너져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는데 날림이라니.

“혹시 다른···.”

“다른 사람이 보면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냐고요? 아뇨. 사방공사 한 번이라도 제대로 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나같이 얘기할 거에요. 아마 두진이 형님도 대번에 알아볼걸요?”

‘느낌이 이상하더라니···.’

속으로 한숨 쉬며 중얼거린 도훈이 고개를 돌려 영배를 부르려다 깜짝 놀랐다.

어느새 영배가 도훈 뒤에 바싹 다가와 서 있었기 때문.

그리고 그도 오광태가 한 이야기를 다 들은 표정이었다.

“... 들었어?”

“응.”

“휴우. 첫날부터 별걸 다 경험하게 되네.”

“... 그러게 말이다. 그나저나 어떻게 해?”

“어떡하긴 뭘.”

도훈이 품에서 비닐 봉투를 하나 꺼냈다.

비에 젖지 말라고 넣어둔 지갑이며 핸드폰 중 도훈이 꺼낸 것은 업무용 핸드폰.

오광태가 두 사람과 인사하고 멀어진 뒤, 핸드폰을 손에 든 도훈이 영배에게 말했다.

“... 찍어.”

“응.”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고···. 아무튼 다 찍어.”

“걱정하지 마라. 돌 하나, 나무 하나, 시멘트 덩어리 하나 빠트리지 않고 세밀하게 다 찍을 테니까.”

얼굴이 굳은 도훈과 영배가 핸드폰을 들고 오가기 시작했다.

조금씩 비가 잦아드는 가운데, 그렇게 도훈의 취임 첫날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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