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5화 (16/279)

15. 연습 끝! 실전 시작!

꿈틀.

도훈은 얼른 평정을 회복했지만, 영배가 눈가를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장혜란은 도훈을 향해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우리 나 시장님처럼 경험 많고 재력도 든든하면 그거라도 믿고 배포 있게 일을 추진할 수 있을 텐데, 도훈 씨는 그런 처지가 아니잖아.”

“하하, 글쎄요.”

파르르.

영배가 눈가를 떨었고, 장혜란이 살짝 코웃음을 치면서 말을 이었다.

“에이, 김 작가 사정 다 알아, 내가.”

탁구 동호회 회원들 사이에 도훈은 ‘김 작가’로 통했다.

진주의 학원을 그만둔 뒤, 진주에게 부탁받은 몇몇 아이들 그룹과외는 때때로 했어도 도훈의 주업은 ‘판타지 소설 작가’였으니까.

물론, 그다지 유명한 작가는 아니었다.

그나마 장혜란이 도훈과 영배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던 것은 서울의 유명 대학을 졸업했기 때문.

쉽게 말해, 학벌을 인정했다고나 할까?

물론, 그것도 도훈의 시장 출마가 알려지면서 장혜란이 대놓고 ‘네까짓 게?’ 하는 투로 고까워하면서 달라졌다.

동호회 회원들이 ‘힘들겠지만, 잘 해보라.’며 말만이라도 응원하던 때에도 장혜란은 냉랭한 표정으로 코웃음만 쳤었다.

‘... 사실, 그게 일반적인 반응이었겠지.’

도훈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을 되새기고 있는데, 도훈과 영배의 반응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제 말 하기 바쁜 장혜란이 더 ‘막’ 나가기 시작했다.

“참, 괜찮으면 조만간 시간 한 번 내.”

“... 네?”

“우리 나 시장님이 도훈 씨에게 인생 선배이자 선배 시장으로서 조언을 해주신다네. 밥 한 번 사신다고 하더라고.”

“......”

‘낼 수 있냐?’고 묻는 것도 아닌 마치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대하듯, 당연한 걸 요구하니 두말없이 따르라는 듯한 태도.

짜증이, 성질이 안 나는 게 아니었다.

다가오는 그녀를 본 순간, 이미 도훈이 자포자기하고 있어서 충격이 덜한 것뿐이지.

3년 가까이 탁구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그녀가 동호회 회원들과 다투는 걸 몇 번이나 지켜본 도훈은 이미 그녀를 ‘말이 안 통하는 사람’으로 여긴지 오래였으니까.

‘... 아, 참.’

뒤늦게 혼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도훈이 담담한 표정으로 곁눈질했다.

아니나 다를까.

정작, 장혜란과 심기 뒤틀리는 대화를 하는 도훈은 담담한데 옆에서 듣고 있는 영배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고 있었다.

‘... 역시나···. 이러다 이 인간 사고 치···. 헛!’

영배의 입이 들썩거리는 걸 본 도훈이 얼른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취임하고 나서 상황이 좀 정리가 되면 시간을 내보겠습니다.”

“기대해. 내가 맛있는 것 사줄게.”

“... 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일이 밀려서요.”

“그래. 부지런히 해야지.”

냅다 인사하고 대화를 끝낸 도훈이 억지로 영배의 팔을 잡아당겨 자리를 떴고, 장혜란과 운전기사가 뒤돌아 멀어지는 걸 확인한 뒤 팔을 놓아줬다.

“휴우.”

“... 야, 왜···.”

영배의 말을 도훈이 잘랐다.

“...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고 더러워서 피한다는 말이 있지.”

“휴우. 젠장맞을!”

“형은 다른 사람하고는 잘 지내는데 유독 장 부회장은 못 참더라?”

“... 저 아줌마가 성질까지 참으면서 잘 지내줄 만한 사람이냐?”

“그건 아니지.”

“막말로 저 아줌마, 돈 많은 남편 둔 개차반일 뿐이잖아. 예의 갖출 필요가 뭐가 있어!”

“... 틀린 말은 아니네.”

영배는 탁구 동호회 활동을 시작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아 도훈보다 장혜란을 상대한 경험이 훨씬 적었다.

당연히 그녀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질 수밖에.

“... 언제 한 번 확 뒤집어엎어 버려야 하는데···.”

“하하. 우리 회원 중에 그런 생각 한 번도 안 한 사람이 있는 줄 알아?”

“인마, 방금은 회원끼리 얘기가 아니었잖아.”

“누가 몰라? 저런 진상 대처법은 동호회 안에서든 밖에서든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를 하는 거야.”

“... 휴우.”

“오늘 좀 심한 건, 남편 선거 떨어진 것 때문에 독이 오를 대로 올랐기 때문일 거야. 모르긴 해도, 부회장 남편은 더하겠지.”

“......”

“독 오른 뱀은 아예 머리를 잘라버릴 게 아니면 상대하는 게 아니야.”

“... 하하. 말은 되네. 어쨌든, 그놈의 돈이 원수지.”

영배가 허탈하게 웃으며 투덜거렸다.

도훈이 의미심장하게 한 말의 진의를 영배는 알아듣지 못했고, 정작 다른 이가 이해하고 물었다.

- 왜, 한 번 부딪힐 것 같냐?

‘분명 그럴 걸요. 소문이 반만 사실이더라도 저 아줌마 남편은 감방에서 푹 썩을 테니까요.’

- 하긴, 얼굴에 삿된 욕심이 그렇게 덕지덕지 달라붙은 놈은 보기 힘들지.

‘... 그러니까요.’

조상님의 말에 도훈이 맞장구를 쳤다.

장혜란의 남편인 나경태 전전 시장은 시장이 되기 전부터 돈 되는 일에 악착같고 물불을 안 가린다는 소문이 자자했단다.

시장 재임 시절엔 좀 덜했다는데, 지난 선거에서 떨어져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간 뒤에는 다시 마찬가지였다.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도훈이 나서야 할 일이 생길 가능성이 컸다.

- 쉽게 생각하면 안 돼. 토호가 괜히 토호가 아니니까. 네 말대로 독 오른 뱀은 없애버릴 생각이 아니면 건드리는 게 아니다.

‘... 압니다. 조상님께 한두 번 들은 게 아니잖아요.’

탐욕에 물들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몰라도, 그런 남편 믿고 유세 떠는 예의 없는 사람이야 외면하면 그만.

도훈은 애써 화를 삭이는 영배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 얼른 카드 만들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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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

“... 흐음.”

임기 시작 하루 전날 이른 아침, 도훈은 집 베란다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왈! 왈왈!

“... 오줌싸러 나가자고?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왈왈! 왈왈!

“에휴. 인마, 여기가 새로 지은 빌라라 아직 우리밖에 없어서 다행인 줄 알아. 시끄럽다고 쫓겨나면 네가 책임질 거냐?”

왈왈! 왈왈왈!

벅! 벅벅!

타이르는 듯한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짖고 도훈의 발등을 긁으며 보채는 순심이.

아침마다 소변 보러 잠깐 밖에 나가는 게 일과의 시작인 녀석의 당연한(?) 행동이었다.

“자, 밖에 봐라.”

순심이를 안아 든 도훈이 우렁차게(?)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여줬다.

쏴아아아!

“잠깐만 나가도 쫄딱 젖겠지? 부탁인데 오늘은 그냥 매트에다 해결해.”

왈왈! 왈!

“야, 좀 덜 깐깐하게 굴어. 내일부터는 너도 출근해야 돼. 내 사무실에 네 자리까지 다 만들어놨어.”

지금까지는 출퇴근과 거리가 먼 생활을 했던 도훈.

급한 일이 생기면 순심이를 진주네 집이나 영배네 집에 잠깐 맡기곤 했지만, 매일 그럴 수야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 순심이가 체중 5kg도 안 되는 소형견이라 도훈의 사무실 구석에 자리를 만들고 출퇴근을 함께할 계획이었다.

직원들의 시선과 관리를 걱정하는 도훈에게 걱정하지 말고 데리고 나오라고 가장 강력히 주장한 게 다름 아닌 송두진.

집에서는 강제 고양이 아빠지만, 직장에서는 기꺼이 개 잘 돌보는 비서실장이 되겠다나?

물론, 비서실장이 ‘되면’ 그러겠다는 얘기였다.

쏴아아아아.

“... 장마라더니 심상치 않네. 태풍도 올라온다던데···.”

오늘은 토요일이지만, 장마 때문에 일부 직원이 비상근무를 하고 있었다.

역사가 짧고 규모가 작은 대흥시에는 경찰서도 소방서도 없이 지구대와 안전센터만 1개씩 있기에 시청 공무원들의 책임이 그만큼 더 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일 출근하기로 하고 오늘은 임기 시작 전 마지막 휴일을 즐길(?) 예정이었는데, 거세게 쏟아지는 장맛비가 마음에 걸리는 도훈이었다.

“... 아무래도 시청에 나가봐야 할 것 같네.”

쏴아아아아.

도훈의 중얼거림에 대답이라도 하듯, 안 그래도 거세던 빗줄기가 더욱 굵어지며 소리를 키웠다.

“... 순심아.”

왈!

“... 출근 준비해.”

왈왈! 왈왈왈!

“야, 밥은 먹고 가야지.”

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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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얘가 그 ‘고기 불판 집’ 주인인 겁니까?”

“... 하하, 네.”

‘고기 불판’이라는 직원의 말에, 순심이를 안은 도훈은 경직되지 않은 미소를 보이려 조금 애를 써야 했다.

시장실 구석에 마련한 순심이 자리에 철망으로 울타리를 쳤다.

그런데 반려견 울타리용 철망 가격이 너무 비싸서 도훈은 직접 마트에서 고기 구이용 대형 석쇠 철망을 여러 개 사다 연결해 울타리를 만들었다.

그 얘기가 시청 내에서 돌더니 어느 순간부터 순심이 자리가 ‘고기 불판 집’이 됐다.

“그런데 시장실로 가시지 왜 이리로 오셨습니까?”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리고 저 아직 시장 아닙니다.”

“하하, 당선자님도 참···.”

“비가 많이 오는데··· 어떻습니까?”

“다행히 아직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비상근무 상황실을 들러 이상 없음을 확인한 도훈은 인수위 사무실로 왔다.

겨우 책상 세 개, 책꽂이 하나, 소파 하나, 냉온수기 하나만 있는 널찍한 공간.

웬만한 지자체 청사가 거의 다 포화상태인 걸 생각하면 다행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인수위 사무실이 뚝딱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건 대흥시의 정체를 의미했다.

시의 성장, 그에 따른 공무원 충원을 대비해 청사를 지을 때 고려한 여유 공간이 아직도 여유 공간으로 남아 있었으니까.

“뭔 생각을 해도 그쪽으로 이어지네. 하하.”

실없이 웃고 난 도훈이 순심이를 내려놓고 한쪽에 배변 패드를 깔았다.

순심이는 넓은 사무실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냄새를 맡다가 한참 만에 소파 위에 자리를 잡았다.

“... 개 팔자가 상팔자라더니.”

집에서 가져온 얇은 모포 위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는 순심이를 바라보며 도훈이 헛웃음을 지었다.

쏴아아아.

밖은 아직도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빗소리가 왠지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것 같아 눈을 감은 도훈이 창가에 서 있길 얼마.

띠리리리.

“응.”

- 너 어디야?

“... 시청인데.”

- 쯧쯧,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오늘 푹 쉬자며? 네 입으로 말해 놓고는 그새 거기에 갔냐?

“... 하하.”

- 쯧쯧쯧. 술은 깼어?

“깼으니까 운전해서 왔지.”

- 아이고, 역시 한 살이라도 젊은 게 좋다. 난 아직도 죽겠는데.

어제저녁 마지막 휴일을 즐기니 어쩌니 하며 도훈과 영배는 술을 마셨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지 않았다면 3차로 짧게(?) 마감하지 않았을 터.

- 나도 나갈까?

“그럴 필요 없어. 상황실에 확인해 봤는데 아직은 이상 없다네. 나도 인수위 사무실에서 자료나 읽을 생각이야. 형은 그냥 집에서 쉬어.”

- 쩝, 알았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라.

영배의 전화를 끊고 얼마 되지 않아 또 전화벨이 울렸다.

액정을 확인한 도훈이 피식 웃고 전화를 받았다.

“네, 실장님.”

- ......

잠시 말문을 잃었던 상대는 헛기침한 후에 입을 열었다.

- 커, 커험. 지금 시청인가?

“네, 시청입니다.”

- 흠, 별일 없다던가?

“네. 다행히요.”

- 음, 그렇군.

“용건은 그게 전부세요?”

- 응? 허허! 뭐, 비가 많이 오니까···.

다시 피식 웃은 도훈은 전화기 너머 송두진에게 짓궂게 말했다.

“흐음, 저한테는 아직 두고 봐야 한다고 하시더니 속으로는 마음의 준비를 다 하고 계셨나 봅니다?”

- ... 허, 허허.

“분위기로 봐서는 별일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출근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 내일은 모르겠네요.”

- 커, 커험! 끊겠네.

달칵.

송두진은 얼른 전화를 끊어버렸고, 도훈은 의자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벌써부터 내 행동반경을 짐작하다니···. 최소한 비서실은 잘 꾸린 것 같네.”

똑똑!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누군가 사무실 문을 노크했다.

“네.”

도훈이 목소리를 높여 답하자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비서실 직원 고정임.

조금은 놀란 도훈이 질문을 던졌다.

“정임 씨도 비상근뭅니까?”

“아뇨. 혹시 당선자님 나오셨을까 봐 잠깐 들렸는데,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어서요.”

“... 하하.”

도훈이 겸연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고는 말했다.

“오늘은 별일 없을 것 같다는데, 이왕 나왔으니 자료나 읽다 들어갈 생각입니다. 정임 씨는 바로 집에 가세요.”

“... 그래도···.”

“바로 가세요. 임기는 내일부터입니다.”

“... 알겠습니다.”

고정임이 묵례하고 문을 닫고 사라졌고, 도훈이 머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이거 너무 잘 꾸려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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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리리. 띠리리리.

더듬, 더듬.

띠리리리!

“끄응. 이 시간에 누가···.”

오후 늦게 비도 그치고 해서 편한 마음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도훈이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 시장님! 여기 상황실입니다. 저 안전총괄과 황민수 주무관입니다!

우뚝.

직원의 다급한 말에 눈을 비비던 도훈이 굳어졌다.

“... 무슨 일입니까?”

- 폭우로 유서면 쪽에서 산사태가 났습니다. 인명피해는 없는데 토사가 흘러내려서···.

잠시 설명을 듣고 있던 도훈이 가만히 귀에서 핸드폰을 뗐다.

쏴아아아!

열린 창으로 거센 빗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핸드폰을 귀에 가까이 대며 도훈의 시선이 벽에 걸린 시계를 향했다.

자정을 넘긴 12시 22분.

시간을 확인한 도훈이 차분히 입을 열었다.

“현장 통제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 지구대 순찰차가 나가 있고, 상황실에서도 현장 파악하러 방금 직원 두 명이 출발했습니다.

도훈이 얼른 생각을 정리하고 말을 이었다.

“저, 바로 상황실로 나가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도훈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상대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안 자고 있었어?”

- 어, 10시 넘어서부터 비가 마구 쏟아지는 게 왠지 불안해서 잠이 안 오더라. 근데, 무슨 일이야?

영배의 물음에 도훈이 답했다.

“이제 연습이 아니고··· 실전이야.”

도훈의 눈이 차분히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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