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4화 (15/279)

14. 애매한(?) 영배.

점심시간, 대흥시청 청사 1층 구내식당.

“안녕하십니까.”

“아, 안녕하세요. 식사 맛있게 하세요.”

“네, 시장님도요.”

“... 아직 시장 아니라니까요.”

“하하, 며칠 남았다고요.”

식당에 들어선 도훈과 영배는 직원들과 인사한 뒤 음식을 배식받아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도훈이 아무리 친근하게 대해도 시장 당선자는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대.

게다가 누구에게나 예의를 갖추고 웃는 낯으로 대하려 노력하는 도훈이었지만, 직원들과의 거리감을 일소하기에 아직은 시간이 너무 짧았다.

당연히, 직원들이 불편해하지 않게 배려하기 위해서라도 구석진 자리를 찾을 수밖에.

후루룩.

“크으, 역시 국물 맛은 여느 식당 못지않다니까.”

“못지않은 게 아니고 이만큼 국물 맛 내는 식당 많지 않을걸?”

“뭐, 그렇겠지. 식당 자체가 많지 않다는 게 함정이긴 하다만.”

시청 앞에 시가지와 상가가 있긴 했지만, 워낙 작은 도시다 보니 그 규모가 작았다.

그나마 시청 앞 도로 북쪽에 자리한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면 더 작았을 터.

대흥시에 시가지 혹은 상가라고 부를만한 곳은 총 세 곳.

시청 앞, 금선면 군인아파트 단지 인근, 마지막으로 운계면 사거리 인근 지역이 그것으로 이중 시청 앞이 제일 규모가 작았다.

2018년 1월 기준, 등록인구 46,221명으로 전국 시(市에)중에서 인구 적기로 3등인 대흥시.

2위인 강원 태백시와 겨우 5백 정도의 차이였고, 4등인 경기 과천시와는 1만이 넘는 차이를 보였다.

즉, 숫자만으로는 향후 2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순위가 낮아질 가능성보다 훨씬 컸다.

‘규모를 무시할 수가 없는데···.’

도훈은 국물을 뜨다 말고 생각에 잠겼다.

시정(市政)을 공부하면 할수록, 각종 현안에 대해 이해하면 할수록, 인구나 시의 규모가 하나의 ‘한계’로 다가왔다.

애초에 대전의 위성도시로 계획된 곳이다 보니 주간과 야간, 주중과 휴일 및 주말 상주인구의 차이가 컸다.

다시 말해, 집은 대흥시이지만 직장은 대전인 이들이 많다는 얘기.

주 활동 시간대인 낮에 인구의 상당수가 대전으로 빠져나가니 그것 역시 중요하게 고려해야 했다.

“야, 밥 먹다 말고 왜 또 묵념이야?”

“응? 아무것도 아니야.”

“아니긴 뭘. 너 요새 그러는 게 한두 번이냐?”

“그런가?”

담담하게 대꾸하는 도훈을 좀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영배.

영배도 도훈이 이런저런 고민이 많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자신도 시정 자료를 공부하면 할수록 한숨이 나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야,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밥은 먹고 고민하자, 응?”

“... 내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먹어.”

“인마. 네가 그런 얼굴로 멍하니 앉아 있는데 내가 밥이 넘어 가겠냐?”

“... 하하.”

도훈이 머쓱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고는 숟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런 도훈에게 영배가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뭐, 고민이 시도 때도 없이 솟아나는 건 알겠다만, 때와 장소도 신경 써라. 직원들 눈도 생각해야지.”

“... 알았어.”

“그려.”

“... 고마워, 형.”

“고맙기는, 내가 비서 아니냐.”

도훈과 영배가 그러고 있는데 두 사람의 테이블로 직원 둘이 다가왔다.

“여기 계셨군요.”

“아, 예.”

“앉아도 되겠습니까?”

“네, 물론이죠.”

합석한 건 시장 비서실 직원인 고정임과 시장 관용차 운전기사 홍영진.

원래 시장 비서실 직원은 넷인데 시장이 출마를 위해 사퇴할 때 비서실장, 비서관이 같이 그만둬 지금은 두 명뿐이었다.

“아직 저희 챙기지 않아도 된다니까요? 두 분이 편하게 드시지 왜 오셨어요?”

“호호, 저희라도 챙겨야죠.”

“하하, 역시 같은 방 식구가 제일입니다.”

미소 띤 고정임의 말에 영배가 넉살 좋게 말했다.

‘같은 방 식구’는 영배가 비서가 될 것이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영배가 비서실장이 아닌 비서관에 임명될 것이라는 얘기는 월요일부터 시청 안에 공공연하게 돌고 있었다.

뭐, 당사자가 떠들고 다녔으니까.

“당선자님, 오늘도 안 알려주실 거에요?”

“네. 안 알려드릴 겁니다.”

“아,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제 상관이 누가 될 거냐는 건 당연한 질문이잖아요.”

“인정합니다. 하지만 어떡합니까? 깜짝쇼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어휴!”

영배가 비서실장이 아닌 비서관이라는 얘기가 돌면서 자연스럽게 ‘그럼 비서실장은 누구냐?’라는 의문이 커지고 있었는데, 도훈과 영배가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었다.

송두진이 기어코 시의회 의장이 누가 되는지를 보고 모습을 보이겠다고 우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업무 쪽은 걱정할 게 없는 사람이니 도훈은 그러라고 답하고는 인수위 자료를 넘겨준 상황이었다.

네 사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점심을 먹는데, 홍영진이 도훈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당선자님, 정말 취임식 안 하실 건가요?”

“네. 각 사무소를 방문해 인사하는 것으로 대신할 생각입니다.”

“직원들에게 취임사 정도는 하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메일로 보내면 되죠.”

도훈은 따로 취임식을 하지 않기로 했다.

연설 몇 마디 하겠다고 직원들 불러 모으는 건 도훈의 성미에 맞지 않았고, 향후 시정에 임하는 계획과 자세를 세세히 밝혀 취임사로 전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때문이었다.

“가족분들이 서운해하지 않겠습니까?”

홍영진의 질문에 도훈은 아버지와 여동생, 그리고 몇몇 친척들을 떠올렸다.

친척들은 잔치 한 번 하라고 얘기하는 모양인데, 아버지와 여동생이 나서서 이를 차단하고 있었다.

도훈의 아버지는 굳이 아들에게 전화해 단단히 이르기까지 했다.

- 친척들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엉뚱한 생각하지 말고 일 잘할 고민만 해라. 당분간은 집에도 오지 마.

아버지의 단호한 말을 떠올리며 도훈이 대꾸했다.

“... 아마 아닐 겁니다. 설사 취임식 한다고 초청해도 안 올 사람들이거든요.”

“설마요.”

“진짭니다.”

“... 하하.”

도훈의 담담한 말에 홍영진이 어색하게 웃었다.

공무원 경력 10년이 넘는 그는 대흥시청 개청 때부터 시장 관용차를 몰아서 그런지 은근히 도훈의 눈치를 좀 보는 편이었다.

“아, 생각난 김에 말씀드리는 건데 시장 관용차 바꿀 겁니다.”

“새로 구매하는 겁니까? 하긴 연한이 넘었으니까 바꿀 때가 됐죠.”

홍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는데, 도훈의 이어진 말은 그의 예상과 달랐다.

“그건 아니고 관용 승합차 중에서 한 대 달라고 했습니다.”

“네? 승합차를 관용차로 하신다고요?”

“네. 그게 합리적일 것 같아서요.”

“시 소유 관용 승합차라면, 다 낡은 것들뿐인데요.”

“뭐 제 차보다 낡았으려고요.”

도훈의 차는 10년이 다 되어 가는 SUV.

“그럼 직원들은요?”

“재산관리팀에서 전용차 새로 사자길래, 그 예산으로 업무용 소형차를 사자고 했죠. 재산관리팀 말이 세 대는 살 수 있다던데요?”

“......”

“뭐, 전기차 생각도 해봤는데 가격도 비싸고 충전시설이 마땅치 않아서 그건 좀 더 고민해 볼 생각입니다.”

“... 아, 예.”

홍영진의 표정이 묘해졌고, 고정임이 끼어들었다.

“참! 당선자님,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는데요.”

“또요? 이번에는 어디랍니까?”

“인터넷 신문사 한군데하고, 팟캐스트 하나 뮤투브 방송 두 곳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선거 직후부터 도훈은 인터뷰 요청을 꽤 많이 받았다.

전국 최연소 기초자치단체장 당선자였고, 여당인 민의당이 전국적으로 압승한 상황에서 여당의 실패를 증명하는 흔치 않은 사례이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도훈의 거침없는 입담이 재미있다며 초기 TV 인터뷰가 제법 화제가 됐던 이유도 있었다.

고심 끝에 인터뷰 컨셉을 ‘거침없음’에서 ‘담백함’으로 바꾼 다음부터는 그나마 많이 줄어들긴 했다.

도훈 대신 영배가 입을 열었다.

“웬만한 곳은 다 한 줄 알았는데 아직도 남았네요. 질문지 보내달라고 하셨죠?”

“네.”

“질문지 오면 제게 전해 주세요. 그거 보고 결정하죠.”

“알겠습니다.”

아직 임기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나름 비서 역할을 제대로 하는 영배였다.

“참, 의회 당선자들과 상견례는 언제 하실 건가요?”

“......”

도훈이 말없이 바라보자, 고정임이 반문했다.

“왜 그렇게 보세요?”

“... 상견례라고 하니까 기분이 묘해서요.”

“어머? 호호, 당선자님 아직 미혼이시죠.”

“하하!”

기혼자들이 한바탕 웃고는 대화가 이어졌다.

“원래 취임 전에 만나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임기 시작된 후에 상견례 겸해서 식사하는 자리를 갖죠. 하지만, 전에는 시장님이나 의원들이 서로 잘 아는 사이였거든요. 당선자님은 조금 경우가 다르시니까요.”

도훈이 잠시 생각하고 말을 이었다.

“밥값은 우리가 냅니까?”

“네. 나중에는 서로 번갈아 내는데 처음엔 시장님이 사는 게 관례에요.”

“그냥 취임 후에 만나는 것으로 하죠. 시장도 아닌데 업무추진비를 쓸 수도 없고, 제 돈으로 밥 사기에는 좀 부담됩니다.”

“인수위 몫으로 배정된 예산 있는데요?”

“임기 시작 전부터 공금 쓰는 습관 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호호, 알겠습니다.”

이런저런 대화 속에 식사를 마친 네 사람이 식당을 나섰다.

“먼저 올라가세요. 저희는 ‘식후땡’하고 갈 테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직원들을 올려보낸 도훈과 영배는 청사 옆 자판기로 향했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 담배에 불을 붙인 도훈이 영배에게 말을 걸었다.

“형.”

“어.”

“정임 씨나 직원들 대하는 거 어렵지 않아?”

“응? 왜?”

“형 직급이···.”

도훈이 말끝을 흐렸지만, 영배는 귀신같이 알아듣고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 인마, 내가 언제 그런 거 따지는 거 봤냐? 친화력 하면 조영배 아니냐.”

고정임은 도훈과 영배를 살갑게 대하면서도 분명한 선을 지켰다.

이 ‘선을 지킨다’는 건 시청 직원들의 공통적인 태도이기도 했다.

도훈 자신은 시장이니까 논외로 하고 영배를 향한 직원들의 태도가 좀 마음에 걸리는 도훈이었다.

원래 영배를 앉히려던 비서실장은 별정직 6급.

시장이 3급 대우를 받고 부시장이 4급 서기관인 대흥시 공무원 사회에서 그리 낮은 직위가 아니었다.

대흥시 공무원 중 4, 5급은 스물이 채 안 되니까.

그런데 영배가 실장이 아닌 비서관이 되면 별정직 8급.

300명이 살짝 넘는 대흥시 소속 공무원 중 7급 이상이 200명이 넘는다.

즉, 직원 대부분이 영배의 상급자.

그런데 영배가 도훈의 최측근임을 모르는 이가 없다.

그래서 영배는 직급은 낮지만, 절대 쉽게 대할 수 없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버렸다.

영배 본인이야 특유의 ‘친화력’을 내세워 어디서나 웃고 다니고 있지만, 그를 향하는 직원들의 어색한 표정을 한두 번 본 도훈이 아니었다.

‘역할을 바꿨으면 난 절대 형처럼 못 했을 거야.’

도훈은 그렇게 생각하며 영배에게 새삼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꼈다.

직책이 비서실장에서 비서관으로 하향 조정되면서 월급도 줄어들 것은 당연지사.

도훈은 나름 그 대책을 세워놓고 있었지만, 아직 영배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도훈이 담배를 맛있게 피우는 영배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왔다.

“도훈 씨!”

“... 안녕하세요.”

“아, 참! 이제 도훈 씨라고 부르면 안 되겠네. 호호호!”

호들갑스럽게 웃으며 다가오는 중년의 여인과 젊은 남자.

그들을 발견한 영배가 안 보이게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부회장님.”

“오랜만이야, 영배 씨.”

원래도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도훈의 선거 출마가 알려진 뒤로는 더 상종하기 싫었던 사람.

여인은 도훈과 영배가 소속되어 활동하는 탁구 동호회 부회장이자, 전전(前前) 시장의 부인인 장혜란이었다.

“우리 당선자님 요즘 많이 바쁜가 봐? 탁구장에서 도통 볼 수가 없으니.”

“그렇죠, 뭐. 말씀 편히 하십시오.”

“어머, 그래도 될까?”

“... 네.”

예의를 차리는 듯하면서도 묘하게 거들먹거리는 태도와 화법.

장혜란 특유의 모습에 도훈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전전 시장인 나경태는 말 그대로 지방 토호(土豪).

그는 대흥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땅 부자이자 건설업체 사장이었고, 그런 남편을 둔 장혜란은 어딜 가나 치맛바람을 세게 일으키는 사람이었다.

작은 친목단체일 뿐인 탁구 동호회 안에서도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이 제법 됐다.

“어떻게, 취임 준비는 잘 돼가?”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많이 바쁘지? 작은 도시라도 시장 노릇이 만만한 게 아니니까. 우리 나 시장님도 꽤 힘들어했는데, 도훈 씨처럼 경험도 없고 새파랗게 어린 사람은 아마 더 하겠지.”

‘... 경험도 없고···?’

‘... 새파랗게 어려···?’

장혜란의 깔보는 듯한 말에 도훈과 영배가 동시에 얼굴을 굳혔다.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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