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4화 (5/279)

4. 화제의 인터뷰.

이틀 뒤 저녁.

- 그제부터 지방선거 이색 당선자들을 소개하고 있죠? 오늘은 전국 최연소 기초자치단체장 당선자를 전화로 연결했습니다. 충남 대흥시 시장 당선자 김도훈 씨입니다.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김도훈입니다.

- 올해 나이가 몇이십니까?

- 서른다섯입니다.

- 하하. 놀랍습니다. 정말 젊은 시장이시네요!

- 아직 시장이 아니고 당선잡니다.

“아, 그걸 왜 또 틀어?”

도훈이 불퉁스럽게 쏘아붙였지만,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영배는 시선도 주지 않고 손을 훠이훠이 저으며 답했다.

“너 보라고 튼 거 아니니까 막걸리나 마셔.”

“지겹지도 않냐!”

“야, 이게 얼마나 달달한데? 나 이걸로 안주할 거니까 신경 꺼라.”

“하, 이 인간이 진짜···.”

- 32% 득표하셨고, 2위와는 3% 차이더군요. 그리 높은 지지율은 아니었네요?

- 네, 그렇습니다.

- 본인이 생각하시는 당선 요인은 뭡니까?

- 우선, 여야 각 당이 공천을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한 걸 꼽겠습니다. 여당과 제1 야당의 주요 후보가 모두 당내 경선에 탈락할 것 같으니 미리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를 했거든요. 야당에서 탈당한 후보는 전 시장이었고, 여당에서 탈당한 후보는 심지어 현 시장이었습니다.

- 지지층이 갈렸겠군요.

- 네.

-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 두 번째로는 후보들이 너무 저열한 선거운동을 했던 걸 꼽고 싶습니다.

- 저열해요?

- 네, 저열했습니다.

“큭큭, 온다, 와. 클라이맥스가 와.”

“......”

-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건가요?

- 선거라는 건 현안분석과 그 해결책, 자신이 그걸 얼마나 잘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셀링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 뭐, 그게 기본이겠죠.

- 그런데도, 다른 후보들은 서로를 비방하고 깎아내리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마치 정책 대결 같은 건 딴 동네 얘기인 듯, 공약은 언급조차 잘 안 하더라고요.

- 정책 말고 인물로도 대결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 그렇죠. 하지만 인물 대결을 나 이렇게 살아왔고, 이런 비전을 가졌고, 앞으로 이런 식으로 잘할 테니까 뽑아 달라는 식으로 한 게 아니고 저 후보는 이래서 나쁘고 저래서 믿을 수 없는 놈이니까 절대 뽑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했다는 거죠.

- 네거티브로 일관했다는 말씀이십니까?

- 네. 무소속 후보들이 먼저 시작했는데, 정당 후보들이 이성을 잃고 거기에 말려들었달까요?

- 심했던 모양이네요?

- 방송이라 제가 그분들의 말을 그대로 전할 수 없는 게 정말 유감입니다.

- 흠, 좀 순화해서 해보신다면요?

-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저놈은 바람피우고 시치미떼는 더러운 난봉꾼이고, 저놈은 상속 때문에 부모, 형제도 고소한 천하의 쌍놈···.

- 커, 커험! 거기까지만 하시죠.

- 네, 죄송합니다. 제가 흥분했네요. 하지만, 실제로는 훠~얼씬 심각했습니다.

“와하하하!”

“......”

침착하기로 유명한 모 방송국 앵커가 당황하는 모습에 영배가 배꼽을 잡았다.

지상파는 아니었지만, 방송에다 대고 욕을 해버렸으니까.

앵커가 얼른 화제를 전환했다.

- 대흥시 유권자 평균연령이 전국에서 가장 젊더군요? 이것도 한 요인이 아닐까요?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방선거는 정치 성향에 따라 1번 아니면 2번에 몰아주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 아닙니까? 그런데 여러 장의 투표지 중 대흥시장 투표지에는 다른 선택을 했어요. 마치,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상대적으로 젊거나 진보 성향인 유권자들이 지역구는 민의당을 찍되 비례 대표는 진보정당을 선택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뭐, 물론 선거운동이 워낙 저열하지 않았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겠지만요.

- 김도훈 씨는 다르게 선거운동을 하신 겁니까?

- 네. 그랬으니까 지금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거겠죠.

- 흠. 다른 후보들이 김도훈 씨에게는 네거티브를 걸지 않은 겁니까? 아니면 대응을 안 하신 겁니까?

- 전자입니다. 제 추측이지만 분명 제게는 관심조차 없었을 겁니다.

-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 그 사람들에게 저는 ‘듣보잡’이었을 테니까요.

- ......

“우하하하!”

“......”

영배가 다시 ‘빵’ 터졌고, 도훈은 말없이 막걸릿잔을 입에 가져갔다.

잠시 말문을 잃었던 앵커가 질문을 이어갔다.

- 저희가 진즉부터 인터뷰 요청을 했는데, 응하시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 바빴거든요. 당선 인사 하느라고.

- 당선 인사 와중에 잠깐 짬을 낼 수 있는 것 아닌가요?

- 제가 자금이나 조직이 없이 오로지 발로 뛰는 선거운동을 했는데, 당선 인사도 그런 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대흥시가 그렇게 크지는 않은데, 자전거 타고 다니면서 시민들께 인사드리는 거 만만치 않습니다.

- 하하, 그러시군요. 그래서일까요? 지금 시청자 여러분께는 당선자의 약력 사진만 보이실 텐데요. 제가 취재기자에게 듣기로는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새카매지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얼굴 나오는 걸 극구 사양하셨다던데, 맞습니까?

- 저도 이번에 알았는데 6월 뙤약볕이 선탠에 아주 좋더라고요.

- ... 하하. 그, 그렇군요.

앵커가 얼른 고개를 숙였지만,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는 게 빤히 보였다.

그래서인지 얼른 화면이 전환되더니 도훈의 선거홍보물이 등장했다.

- 공약이 좀 색다릅니다?

- 제가 확실히 할 수 있는 것만 적으니까 그렇게 되더군요.

- 시청자 여러분이 지금 보시는 것처럼, 김도훈 당선자의 공약은 단 다섯 가지입니다.

달랑 한 장짜리 홍보물에 굵직한 글씨로 적힌 도훈의 공약은 이랬다.

-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고 항상 시민의 의견을 듣는 시장이 되겠습니다.

- 시정(市政)을 냉정히 평가하겠습니다.

시장 바뀔 때마다 사업이 축소되고 폐지됐던 일을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각종 사업의 타당성을 시간을 두고 냉철히 평가해 지속 여부를 결정하겠습니다.

- 치적 쌓기용 신규 사업을 펼치지 않겠습니다.

정말 필요한 사업이 뭔지 시민의 의견을 듣고 근거부터 튼튼히 한 후에 시정에 반영, 추진하겠습니다.

- 시민에 의한 시정 감시를 제도화하겠습니다.

시장과 공무원만의 시정이 아닌, 시민이 기획부터 평가까지 함께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정착시키겠습니다.

- 시정을 최우선으로 지역의 힘을 모으겠습니다.

소속 정당을 무조건 추종하고 상대를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아닌, 시정이 최우선인 일꾼의 자세를 견지하겠습니다.

다시, 화면에 앵커가 등장하고 도훈과 대화를 이어갔다.

곧 앵커가 마무리 멘트를 했다.

- 혹시, 하고 싶은데 못 하신 말이 있습니까? 잠깐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 네. 사실 이것 때문에 인터뷰에 응한 거나 마찬가지인데요. 우리 인수위원회에서 인재를 모집합니다. 많은 사람이 필요한 건 아니고요. 저와 함께 대흥시 시정을 고민하고 개혁해 나갈 일꾼을 찾고 있습니다. 성별, 나이, 학벌 안 봅니다. 인터넷에 제 이름 검색해보시면 전화번호와 이메일이 노출된 기사가 있을 겁니다. 거기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 하하, 구인광고가 목적이셨네요. 혹시 별정직 공무원으로 임용되는 겁니까?

- 그건 장담 못 합니다. 시장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보수가 있긴 하겠지만, 많이 드릴 거라고도 약속 못 합니다.

- 이런, 그래서야 사람이 모일까요?

- 사람 꼬시려고 거짓말할 수는 없죠. 대신에 지방행정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경험할 거라는 건 약속드립니다. 아, 시험은 없고 면접을 통해 뽑을 겁니다.

- 하하하! 대흥시 거주자만 가능한 겁니까?

- 아뇨. 전국을 대상으로 모집하는 겁니다. 뽑힌 뒤에 대흥으로 이사를 오면 되는 거니까요.

인터뷰가 마무리됐고, 영배가 핸드폰을 내려놓고 막걸리잔을 들었다.

“짠 한번 하자.”

“그래.”

탁!

건배한 두 사람이 시원하게 잔을 비웠다.

새카맣게 타고 후줄근해진 것은 도훈이나 영배나 마찬가지였다.

선거일 다음다음 날부터 오늘까지 사흘.

도훈과 영배는 새벽부터 밤까지 대흥시 곳곳을 누비며 당선 인사를 했다.

짬짬이 찾아온 기자들과 인터뷰도 했는데, 방금 영배가 재생한 뉴스의 방송국이 최초였다.

그 뒤로도 도훈과 인터뷰한 언론사나 방송사는 여럿이었지만, 그중 가장 화제가 된 것이 조금 전 인터뷰였다.

방송에서 욕을 한 데다가 대놓고 구인광고를 했다나?

“연락 많이 왔냐?”

“오기는 많이 왔는데···.”

“왔는데 뭐?”

“진지한 게 없어. 스팸에, 장난에, 욕하는 게 제일 많고···.”

“첫술에 배부를 수야 없겠지.”

“... 그렇긴 하지.”

오늘 선본 뒤풀이를 했다.

1차로 선본 사람들과 삼겹살집에서 저녁을 먹고 간단한 2차를 거쳐 도훈과 영배 단둘이 마주 앉은 3차.

한참 신나게 뛰놀던 순심이가 도훈의 발치에 누운 가운데, 두 사람은 뒷산 공원 작은 정자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강 시장 앓아누웠단 얘기 들었냐?”

“아니.”

“‘우리 뉴스’에 나간 네 인터뷰 보고 그랬다더라.”

“큭큭큭.”

“킥킥킥!”

무소속 출마했던 현 시장이 앓아누웠단 말에 도훈과 영배가 키득거렸다.

사실, 도훈의 충동적인 출마에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게 그 사람이었다.

“그날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질문했어도 강 시장 반응이 그랬을까?”

“글쎄다.”

운명의 그 날(?), 여당 시장 예비 후보 간 토론회가 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도훈과 영배는 시청 청사 옆 체육관 탁구장에서 운동한 뒤, 청사 안 화장실에 갔다가 우연히 그 토론회를 봤다.

썰렁했던 토론회장 뒷줄에 앉아 잠시 구경하던 도훈이 막판에 질문을 던졌다.

운동 뒤 후줄근해진 모습의 도훈이 생활체육 지원 계획을 물었는데 현직 시장이 도훈을 거지 취급했다.

물론, 대놓고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으나 바보가 아닌 바에야 누구라도 은근히 돌려서 했던 말의 속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 아니, 생활체육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탁구에만 돈을 퍼부으면 되겠습니까? 자기가 좋아서 하는 운동이면 자기들 돈도 쓸 줄 알아야겠죠?

추측하기에, 시장은 도훈과 도훈의 의도를 오해한 데다가 사실관계를 잘 모르고 그런 말을 했다.

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전 시장의 부인이 탁구 동호회 부회장이고 제법 영향력이 있었다.

그러니까, 시장은 탁구 동호회는 ‘자기 표’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터.

또한, 6년 전에 시에서 가건물 체육관을 짓고 한쪽에 탁구대를 비치한 것 이외에는 일체의 금전적 지원이 없이 동호회가 자체적으로 회비를 걷어 탁구장을 유지, 관리하고 있었다.

즉, 시에서는 6년간 탁구 동호회에 돈을 지원한 일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탁구의 ‘탁’ 자도 꺼내지 않은 탁구 동호회 운동복 차림의 도훈에게 시장은 어림짐작으로 그런 발언을 했던 것.

“그 인간이 제대로 사과했으면 오늘 같은 날은 없었을 텐데.”

“그러게.”

실수, 실언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게 실수임이 밝혀졌을 때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실수가 인간적 결함으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당시 도훈이 차분히 사실관계를 밝혔음에도, 시장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토론회가 끝난 직후 복도에서 마주친 도훈이 ‘공직자가 그래서야 되겠느냐?’ 한마디 했더니 도훈의 귀에다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 왜, 내가 마음에 안 들어? 그래서 어쩔 건데? 당신이 날 떨어뜨리기라도 할 거야? 네깟 놈이?

만취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몰상식한 발언.

안 그래도 과거에 막말, 폭언 전력이 있는 시장이었지만, 그 짧은 속삭임이 초래한 파장은 컸다.

뚜껑이 열린 도훈이 짧은 고민 끝에 시장의 낙선을 목표로 출마해버리고 말았으니까.

‘우리 뉴스’라는 인터넷 신문에 나간 인터뷰는 그런 일화를 담고 있었다.

“그나저나 너 왜 학교 때 경력은 얘기 안 하는 거냐?”

“무슨 경력?”

도훈이 갑자기 뭔 소리냐는 표정으로 묻자 영배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인마, 너 정치나 행정에 관심 많았잖아. 아버지 정년퇴직하시고 동생 학비 부담 때문에 행시 포기하고 취업한 거 아니었어? 그리고 휴학하고 시민단체 활동도 반년이나 했었잖아.”

“... 그게 무슨 경력이라고···.”

“아, 그 얘기 안 하니까 정치에 전혀 관심도 없다가 열 받아서 출마한 똘아이로 보잖아.”

“딱히 틀린 얘기도 아니지, 뭐.”

“어휴, 이게 정말···.”

심드렁한 도훈이 못마땅한 영배.

대학교 때 반년의 시민단체 상근자 활동이 도훈에게 상처라는 건 영배도 잘 알았다.

‘개혁’, ‘시민참여’, ‘정치’에 관심 많던 도훈은 시민단체를 그만둔 뒤 곧바로 입대해버렸고, 제대한 뒤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으니까.

캐물어도 제대로 답을 안 해 자세한 사정은 몰랐지만, 그 6개월이 도훈을 바꿔놨다는 건 명백했다.

“뚱한 표정 하지 말고 막걸리나 마셔. 내일도 바빠.”

빈 잔을 채우며 딴소리하는 도훈을 영배가 딱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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