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홧김에 시장 되다-1화 (2/279)

1. 내가 왜 그랬을까.

충청남도 대흥(大興)시.

대전광역시 인근에 자리한 곳으로, 인구의 상당수가 대전에 직장을 가진 이들과 그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또한, 특이하게도 직업 군인과 그 가족이 많은데, 이는 대전, 계룡과 가까운 시 북서쪽 경계에 군인 아파트 단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대전광역시의 주거 안정을 위한 위성도시로 계획되었는데, 인근 계룡시의 군인 아파트 단지 과밀화 해소를 위한 군인 아파트 단지가 들어섬으로써 인구가 늘어나 시가 될 수 있었던 곳.

하지만 ‘크게 흥하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전체 인구는 5만이 되지 않아 대한민국 시(市)중에서 인구가 세 번째로 적은 도시였다.

2009년 동(洞) 1개, 면(面) 3개를 품에 안은 채 설립된, 한국에서 네 번째로 젊은 시이기도 했다.

그 대흥시의 한 빌라 주차장, 낡은 SUV 뒤에 30대의 남자 둘이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 휴우. 골이 띵하네.”

“나도 띵하다. 그런데 이게 담배 때문인지 다른 것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나도 그래. 담배 탓일 수도 있고, 어제 마신 술이 덜 깨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저것 때문일 수도 있지.”

“... 그렇지.”

빌라 벽에 등을 기댄 두 남자의 한 걸음 앞 주차장 바닥에 놓인 상장케이스.

펼쳐진 상장케이스의 오른쪽에는 두꺼운 종이 한 장이 꽂혀있었다.

윗부분에 ‘당선증’이라는 커다랗고 굵은 글씨가 선명하게 인쇄된 종이였다.

물끄러미 당선증을 바라보던 두 남자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 정말 놀랍고 충격적이다.”

“... 나만 하겠어? 저기 적힌 건 내 이름인데···.”

두 남자가 시선을 교환하고 한숨을 내쉬었고 키가 큰 남자가 말을 이었다.

“... 영배 형.”

“왜?”

“이게 꿈이 아닌 게 확실하지?”

“... 어.”

“어떻게 확신해?”

“... 너랑 내가 같은 꿈을 꾼다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차라리 꿈이 아닌 게 낫지.”

“......”

“와이프가 나 깨운다고 꼬집은 자리가 아직도 얼얼해. 절대 꿈이 아니야. 너랑 나랑 같이 가서 저 당선증 받아왔잖아. 기자들하고 잠깐 인터뷰도 했고.”

“... 휴우.”

남자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평범한 소시민에서 홧김에 시장 후보가 되고 졸지에 전국 최연소 기초자치단체장 당선자가 된 남자.

남자의 이름은 김도훈이라 했다.

“... 내가 왜 그랬을까?”

“... 그러게.”

“... 어째 남 말 하는 것처럼 들린다.”

“맞아. 내 일이 아니잖아.”

“와! 이 의리 없는 인간, 시장 출마하라고 꼬드긴 건 형이잖아!”

“내가 언제 꼬드겼냐? 네가 ‘한번 나가 봐?’ 할 때 그래 보라고 했지.”

“그게 꼬드긴 거지! 꼬드겼으니까 내가 후보하고 형이 선대 위원장 한 거잖아!”

“......”

김도훈과 툭탁거리는 남자의 이름은 조영배.

35세인 김도훈보다 세 살 많은 그는 김도훈과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온 동기이자 친구였다.

그리고 도훈의 말처럼, 시장 선거에 출마한 도훈의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다.

잠시 눈싸움을 하던 둘이 나란히 한숨을 내쉬고 다시 당선증에 시선을 줬다.

“... 도대체 어쩌다 내가 당선된 거지?”

“선거 결과를 보니까 우리 예측과 비슷하게 됐더라.”

“여당 후보하고 여당에서 탈당한 현역 시장이 그쪽 표를 갈랐고···.”

“2번 후보하고 역시 탈당한 전 시장이 그쪽 표를 나눠 먹었지.”

이번에 대흥시 시장 후보로 출마한 사람은 모두 다섯.

현역 시장은 여당 후보 경선에서 질 것 같으니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제1 야당에서는 역시 전 시장이 경선 전에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그렇게 1, 2번 후보와 도훈을 포함한 세 무소속 후보가 다퉜던 선거.

후보 난립, 분위기 과열 및 경선 전 탈당, 무소속 출마가 이어졌기 때문인지 인구 5만도 되지 않는 소도시답지 않게 감정이 잔뜩 섞인 ‘비방전’, ‘폭로전’이 벌어졌다.

- OO 후보는 인사권을 남용했다.

- $$ 후보는 공금을 착복했다.

- XX 후보는 불법 조직을 동원했다.

- ## 후보는 세금을 상습적으로 체납했다.

이렇게 시작했던 비방전은 낯 뜨거운 수준으로 발전했다.

- OO 후보는 불륜을 저질러 간통으로 고소된 적이 있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이다.

- $$ 후보는 사기 전과 2범의 철면피다.

- XX 후보는 유산 상속 문제로 부모, 형제와 고소전을 벌인 패륜아다.

- ## 후보는 자신의 회사 부하 여직원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전력이 있는 사람이다.

주요 후보들 사이에 정책은 사라지고 비난과 인신공격만 가득했던 선거였다.

원래의 계획은 그게 아니었지만, 비난전에 끼어들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공약을 설명하며 선거전을 치른 건 오로지 도훈뿐이었다.

초반에 각 후보의 이력과 정책, 소속 정당의 행태와 공약 등을 간략하게 논리적으로 비판했을 뿐, 도훈은 ‘남 얘기’가 아닌 ‘자기 얘기’를 하며 선거를 치렀다.

그 결과, 전체 유권자 중 32%의 지지로 당선되는 영광(?)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2위인 여당 후보와 불과 3% 차이.

“그런 판국이라 15% 얻을 수 있다고 형이 그랬었지?”

“... 그랬지.”

“그 예측이 보기 좋게 틀렸네. 두 배 넘게 얻었으니까.”

“... 1/2을 얻지 않은 게 어디냐.”

“그냥 원래 계획대로 주구장창 시장만 깔 걸 그랬나?”

“... 그랬으면 15% 못 얻었을걸?”

잠시 서로를 노려보며 눈싸움하던 두 사람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 휴우.”

“후우.”

비슷한 표정이 된 두 사람이 다시 주절거렸다.

“선거비용 보전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 그러게.”

“15% 받으려고 죽으라고 뛰었는데···.”

“... 그러게.”

“...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 그러게.”

잠시 끊겼던 대화는 도훈의 날이 선 말로 다시 이어졌다.

“강 시장 그 새끼, 왜 날 건드려서 일을 이렇게 만든 거야?”

“그러게 말이다.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그 새끼 떨어진 걸 생각하면 좀 위안이 되네. 하하하.”

“그러게 말이다. 하하하!”

소리 내어 웃던 두 사람이 곧 침묵했다.

출마의 ‘원흉’인 놈이 낙선한 건 기분 좋았지만, 도훈이 당선된 건 다른 문제였으니까.

다시 끊어진 대화가 이어진 건 도훈의 복부 중심에서 들려온 작은 소리 때문이었다.

꼬로로록.

“... 배고프냐?”

“그런가 봐.”

“그러면 그런 거지 그런가 봐는 또 뭐냐?”

“술 때문에 입맛도 없고 현실감이 없어서 배고픈지 아닌지도 모르겠는데, 위가 죽겠다고 하소연하는 거잖아.”

“... 말이나 못 하면.”

“그랬으면 이러고 있지도 않겠지.”

“... 하긴.”

도훈은 글도 제법 잘 쓰고 말도 조리 있고 설득력 있게 하는 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고 관심 가는 분야는 깊이 있게 파고드는 끈기도 있는 도훈.

또한, 나서서 말하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필요할 때 말하는 건 주저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형성된 능력이었다.

“우리 중국관 가서 짬뽕으로 해장이나 할까?”

중국관은 짬뽕이 맛있기로 인근에 소문이 자자한 두 사람의 단골 중국집.

“가고는 싶은데···.”

“그럼 가면 되잖아.”

“... 거기 가면 곤란한 건 나보다 너 아냐?”

“곤란해? 내가? 왜?”

도훈의 말에 영배가 말없이 당선증을 손으로 가리켰다.

“... 망할.”

도훈, 영배와 친분이 있는 중국관의 주방장 겸 사장님은 열렬한 여당 지지자였다.

단골인 도훈이 후보 등록 후 인사를 갔을 때.

- 열심히 해. 선전했으면 좋겠네. 하지만 난 자네 안 찍을 거야.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지.

라고 단칼에 잘랐을 정도로.

“설마 그 인자한 사장님이 단골을 쫓아낼까?”

“... 쫓아내지는 않겠지. 하지만 안 보이는 데서 짬뽕에 침 뱉지 말라는 법도 없지. 그 양반도 사람인데.”

“......”

“나중에는 분이 풀리겠지만, 지금은 선거 다음 날 오전이야. 아마 꽤 열 받으셨을걸?”

“......”

“너도 알잖아. 그 양반 열 받으면 성격 나오는 거.”

“... 하긴 중식도 뽑아 들지 말라는 법도 없네.”

“그래. 당분간 거긴 피하자.”

꼬로록.

이번엔 도훈이 아닌 영배의 배에서 소리가 났다.

“허기는 공평하네.”

“... 그러게. 그냥 네 집에 들어가서 라면이라도 끓여 먹자.”

“그럴··· 수는 없겠는데.”

‘그럴까’라고 답하려던 도훈이 말을 바꿨다.

“왜?”

“집에 라면 없어.”

“뭐? 그것도 안 사다 놓고 뭐했어?”

영배의 비난에 도훈은 어이없다는 표정이 됐다.

“내가 좀 정신이 없었거든. 선거운동이라는 걸 하느라고.”

“......”

“정신도 없었지만, 돈도 없었거든. 있는 돈, 없는 돈 박박 긁어서 선거운동이라는 걸 하느라고. 그래 봤자 유세차 한 대 빌리지도 못했지만.”

“......”

“오죽하면 내가 순심이 간식을 못 샀을까.”

“... 쩝. 미안하다.”

도훈은 유세차도 빌리지 않고 선거운동원도 최소로 고용한 채 아주 ‘경제적인’ 선거운동을 했다.

다른 후보들과 그들의 운동원이 유세차의 확성기를 빵빵 틀어대며 돌아다닐 때, 자전거를 타고 대흥시 이곳저곳을 누비면서.

그건 비교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기도 했지만, 돈이 없다는 현실적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천만 원의 후보 기탁금도 전셋집을 빼서 마련한 도훈이 아니던가.

막판에는 준비한 자금이 모두 바닥나 허덕대느라 유일한 식구인 순심이가 좋아하는 간식조차 사지 못했다.

‘... 사료가 아니라 간식이 떨어진 게 천만다행이었지.’

도훈이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는데 영배가 핸드폰에 온 문자를 확인하더니 반색했다.

“살았다!”

“... 왜?”

영배가 말없이 도훈의 면전에 핸드폰을 들이댔다.

- 해장했냐? 당연히 안 했겠지? 갈 데 있냐? 당연히 없겠지? 우리 집으로 와. 북엇국 끓여놨다. (진주)

“... 형, 얘는 부처님인가?”

“왜? 구원이라도 받는 것 같냐?”

“그게 아니라 우리가 얘 손바닥 위에서 노는 것 같아서.”

“... 틀린 말은 아니네.”

꼬로록!

“기분은 좀 그런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네.”

“... 가자.”

비슷한 표정의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도훈의 손에 들린 당선증 케이스의 파란 빛깔이 유난히 도드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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