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화.천칭(1) (198/200)

 # 198

천칭(1)

신전 내부는 병적일 정도로 하얀 것에 집착하고 있었다.

바닥부터 벽, 천장에 이르기까지 하얗지 않은 것이 없다. 눈에 띄는 장식물은 보이지 않는다. 망망대해를 나아가는 것처럼, 그저 앞으로 뻗어질 뿐인 단순한 구조를 하고 있었다. 그 양식은 이전에 보았던 어떤 구조물을 떠올리게 했다.

이신설교의 월궁.

이 신전이 월궁을 모방한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월궁이 이 신전을 모방한 것일까.

길을 따라 쭉 나아가던 알베르트는 한 방에 도착했다.

투명하게까지 느껴지는 순백의 방에는 검은 점이 떨어져 있었다. 고양이를 모방한 마물이다. 머리 위로 솟은 외뿔과 6개의 다리. 앞발을 핥던 고양이는 손님을 보고 고개를 들었다.

「어서 와. 예상한 것보다 일찍 왔네.」

기억에 있는 목소리였다.

고양이를 닮은 마물로부터 그 악마를 연상한 알베르트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 목소리. 설마 아스모데우스인가?”

「그래. 내가 그랬지? 멀지 않은 시기에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살벌한 기색은 집어치워. 이곳에서는 굳이 너와 싸울 이유가 없거든. 결과도 뻔할뿐더러, 시간 보내기도 안 되니까.」

알베르트가 허리춤의 월아를 잡자 아스모데우스가 말했다.

「따라와. 널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

그녀에게서 적의는 보이지 않는다.

천칭은 신용할 수 없다는 듯 경계하는 기색을 보였으나, 그것이 전부다. 이 상황을 타개할 뾰족한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알베르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커다란 흐름에 휘말린 것 같다. 애초에 이곳으로 떨어졌을 때부터 그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월아에서 손을 거둔다.

알베르트는 아스모데우스와 걸음을 맞췄다.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아, 물론 그렇겠지. 이곳은 어디인지. 어째서 이 몸이 널 안내하고 있는 건지. 궁금한 게 아주 많을 거야. 하지만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내가 줄 수 있는 게 아니야.」

“지금 만나러 가는 사람이 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럴지도 모르지. 물론 네가 바라는 해답일지는 모르겠지만.」

끝이 세 갈래로 갈라진 꼬리가 살랑거렸다.

신전 안쪽으로 향할수록 정체를 알 수 없는 구조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구조물 대부분이 하얀 벽과는 상반되는 검은 색을 띠고 있다. 작은 기둥 위에 커다란 외눈이 두둥실 떠 있었다. 마물의 그것과도 같아 보이는 눈은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선반을 비롯한 테이블도 있다. 단순한 구조물과 달리 그 표면에서는 실과 비슷한 것이 꿈틀거렸다. 하나같이 평범한 구조물과는 거리가 있다. 몇몇 물건은 대놓고 살아있다는 것을 강조하듯이.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신전 안쪽으로 향할수록 이따금 마물의 모습이 보였다.

알베르트를 보고 적의를 드러내는 놈들도 더러 있었지만, 그때마다 아스모데우스의 낮은 울음소리에 꼬리를 내리기 바빴다. 하지만 문을 앞에 두고 마주친 기운은 달랐다. 아스모데우스의 모습을 확인하고도 놈은 살기를 늦추지 않았다.

천장 위에서 발해지는 살벌한 기운에 알베르트는 고개를 들었다.

거미라고 해야 할까? 그곳에는 곤충과도 비슷한 커다란 마물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멈춰라, 아스모데우스. 이 앞은 옥좌다. 아무리 네가 있다 한들, 한낱 죄인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언제부터 네가 내 일에 간섭했지, 벨제붑? 네가 끼어들면 이야기가 복잡해지니까, 거기 가만히 있어. 다 끝나고 나면 따로 설명해줄 테니까.」

귀찮다는 듯 이야기를 넘긴 아스모데우스는 발을 옮겼다.

그 앞으로 가시와도 같은 창이 떨어졌다. 벨제붑이 쏘아 보낸 마기의 형체다.

「경고치고는 조금 지나친 것 같은데.」

「너는 항상 지루한 걸 싫어했지. 무료함이야말로 고양이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천적이라고 말이야. 그렇게 따분하다면 내가 상대해주지. 대신 그 죄인은 두고 가라.」

「요컨대 너는 내가 불순한 의도를 품었다고 생각하는 거네. 불쾌하게시리.」

입가를 찡그린 아스모데우스는 말을 이었다.

「그분이 친히 내린 명령이야. 이제 만족해?」

「그분이? 나는 들은 이야기가 없는데.」

「역으로 내가 묻고 싶네. 벨제붑.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그분이 내린 명에 의문을 품다니. 너도 꽤 기고만장해졌구나? 미리 말해두겠는데, 이번 뒷감당은 도와주지 않을 거야.」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길을 막고 있던 마기의 창이 사라졌다.

살기를 거둔 벨제붑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안쪽에는 마몬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상관없어. 순서를 따지면 이쪽이 먼저니까.」

아스모데우스는 문을 향해 발은 얹었다. 그녀의 마기에 문이 반응했다.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문이 열렸다. 문틈 사이로 보이는 방 안은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 앞으로 갈 수 없어. 안쪽에는 마몬이 있다니까. 녀석의 안내를 받아.」

“이 안에 있다는 거지? 날 기다리는 사람이.”

「그래. 모쪼록 무례를 범하지는 말아줘.」

천칭과 함께 알베르트는 문 안쪽으로 들어섰다.

칠흑 같은 어둠.

방 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깨에 손을 얹어 본다. 천칭은 그 자리에 있다. 녀석은 알베르트의 손이 귀찮다는 듯 볼멘 목소리를 냈다.

“설마 무서우신가요, 마스터?”

“무서운 건 자네겠지.”

망망대해를 걷는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나아간다.

그리고 알베르트는 눈부신 빛과 마주했다.

어둠 속에서 그 공간만이 빛나고 있었다. 불에 이끌리는 불나방처럼 알베르트는 그곳으로 다가갔다. 신기한 장소였다. 어둠 속에 떠 있는 문과 문을 앞에 두고 앉아 있는 푸른 늑대. 문의 양옆에는 가고일을 닮은 석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가오는 알베르트를 알아차린 걸까. 녀석이 입을 열었다.

「알베르트인가.」

“그쪽은 마몬이군.”

알베르트의 대답에 갸르릉 거리는 울음소리가 돌아왔다.

어딘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 보인다. 숙적이 자신을 알아봤다는 사실이 기쁜 모양이다.

「영광으로 받아들이게. 하계의 손님 중에서 이곳을 방문한 건 자네가 세 번째네.」

“세 번째?”

「그래. 놀랍게도 말이야. 나는 아직도 그분의 의중을 헤아릴 수 없다네.」

마몬은 천천히 문 앞에서 몸을 일으켰다.

「들어가게. 자네는 꽤 마음에 드는 인간이니까. 부디 원하는 대답을 얻길 바라지.」

마몬이 자리를 비키자 문은 어떤 전조도 없이 열렸다. 마치 처음부터 알베르트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이곳까지 와서 머뭇거릴 이유는 없다. 알베르트는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그곳에서 알베르트가 처음으로 들은 소리는 새의 지저귐이었다.

동물과 곤충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코를 간지럽히는 풀 내음에 알베르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푸른 하늘이 보이는 정원이다. 어디 한 점 나무랄 곳 없이 정돈된 화원(花園)과 연못이 눈에 들어왔다. 인공 구조물은 보이지 않았다. 신기한 장소다. 지면도 평범한 땅이 아니다. 발이 닿을 때마다 투명한 물이 지면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잔잔히 흘러나간 물결이 누군가의 발에 닿았다.

그 위에 앉아 있는 것은 검은 그림자 같은 형상을 한 소년이었다.

「늦었구나, 하계의 손님. 기다리다가 지쳐 죽는 줄 알았어.」

“당신이군요. 절 보고 싶다는 사람이.”

소년은 웃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너희 죄인은 이 몸을 보면 항상 그 물음을 던지더군. 한때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우자(愚者)도 그 물음을 입에 담았었지. 자, 하계의 손님. 한 번 물어볼게. 너는 내가 무엇으로 보이지?」

“마왕.”

「맞았어. 짐이 곧 마왕이니라.」

압도적인 마기가 방출되었다.

풍요롭게 느껴지던 자연의 기운이 사라지고, 부적인 감정이 알베르트를 덮쳤다. 저항할 수 없다. 전신의 내공을 끌어올렸지만, 간신히 호흡을 쉬는 것 외에는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다. 완전히 얼어버린 알베르트를 보며 소년은 손을 들었다.

죽는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신기루처럼 마기가 흩어졌다.

소년의 손끝에서는 찻잔과 주전자가 나타났다.

「너무 긴장하지 마. 명칭이야 아무래도 좋은 거니까. 와서 앉아. 하계의 손님. 차린 건 없지만 차라면 마실 수 있잖아? 음료는 너희 죄인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니까.」

“절 죽이지 않는 겁니까?”

「죽여? 뭐하러? 애써 이곳까지 널 초대했는데, 왜 그런 수고를 들여야 하지?」

“하지만…. 당신들은 우리를 적대하고 있습니다.”

알베르트의 대답에 소년은 소리 내어 웃었다.

「아니. 아니지, 그건 아니야. 하계의 손님. 우리가 너희를 적대하는 건 그렇게 해주길 바란 죄인의 소망에 답했을 뿐이야. 소환사의 파괴 충동. 마음속 깊은 곳에 잠재된 의식. 반면 이곳에서는 그럴 이유가 없어.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갖고 있으니까.」

“악마가 인간을 적대시하는 건, 본의가 아니라는 말입니까?”

그 살육을 벌여놓고도?

알베르트는 뒷말을 삼켰다. 찻잔을 든 소년은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렇고말고. 너희가 벌레를 죽일 때 어떤 감정도 품지 않듯이, 우리 또한 죄인을 죽이는 데 큰 의미를 두지 않아. 물론 벌레를 터뜨릴 때의 감각을 즐기는 동족은 있겠지. 그렇지만 그런 개인적인 취향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절 이곳으로 초대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그런 건 싫은데. 모처럼이니까 이야기를 좀 해보자.」

“악마와 나눌 이야기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 상대가 마왕이라면….”

「악마. 마왕…. 흐음. 좋은 화제네. 우리를 악마라고 부르는 건 하계의 죄인뿐이야. 반면 이곳의 부족민들은 우리를 뭐라 부르는지 알아? 신이야. 너희가 여신을 찬양하는 것처럼. 여기 주민들은 우리를 찬양하지. 선과 악. 정의와 불의. 그런 건 아무 의미도 없어. 우리는 악마인 동시에 신이야. 잣대에 따라 달라지는 개념에 매달리고, 집착하는 건 너희 죄인뿐이지.」

“…….”

침묵하는 알베르트를 보며 소년은 말했다.

「생각보다 아둔하구나. 내 본신을 하계에 강림시킨 죄인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내 존재를 불러옴으로써 여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어둠이 있다면 그에 상반되는 빛 또한 존재한다. 어리석은 종족이라니까. 너희가 믿는 다프네 여신은 이미 이 세상에서 손을 놓은 지 오래됐어. 그렇지 않아, 천칭?」

소년의 목소리가 알베르트의 어깨에 앉은 천칭을 향했다.

“왜 나한테 물어봅니까?”

「네가 아니면 대답할 수 없으니까. 말해봐, 천칭. 너는 알지 못하는 게 아니라, 자각이 없는 것뿐이니까. 그게 성좌라는 존재지.」

자, 그럼. 하고 소년은 차를 들었다.

「네가 바라는 것처럼 본론으로 들어가지. 그 녀석을 이곳에 두고 가. 그러면 지금 일어나는 모든 적대적인 행동을 중단하지.」

“…….”

소년은 천칭을 원하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알베르트가 멍하니 두 눈을 깜박였다.

「이해가 안 되나 보네? 말해두지만, 그건 풀려나서는 안 될 존재야. 천칭은 성좌 중에서도 특히나 골치 아픈 녀석이지. 그 존재는 말이야. 세상의 균형을 통괄하는 의지 중 하나야. 지금처럼 내버려 두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왜 천칭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나야말로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혹시나 하지만 너. 지금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만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호오. 과연. 그래. 그랬구나. 그러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겠네.」

찻잔을 내려놓은 소년이 말을 이었다.

「원망해야 할 대상이 잘못됐어. 네가 이전 시대에서 겪었던 일도. 지금의 일도. 모두 그 녀석이 있어서 벌어진 일이야. 천칭이 수호하는 세상의 균형은, 말 그대로 세상의 의지를 대변해. 알기 쉬운 말로 설명해줄까? 녀석이 보는 균형은 죄인의 관점이 아니라는 말이야. 어째서 제국의 황제가 신석을 강탈했지? 그야 녀석은 천칭을 관측한 죄인이었으니까.」

소년은 초대 황제 이실리아를 언급했다.

먼 옛날, 마족의 침공으로부터 제국을 지켰던 구국의 영웅.

「무인은 과분한 힘을 손에 넣고 말았거든. 그 힘이 넘치면 세상의 균형이 무너질 것은 자명했지. 그래서 천칭이 움직였어.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이후에 내 본신이 왜 하계에 강림했을까? 죄인이 힘을 원했기 때문에? 보이는 것만 놓고 본다면 틀린 말은 아니지. 그러나 그건 좁은 소견이야. 진짜 이유는 무인이 다시 일어날 낌새가 보였기 때문이야. 우자가 일으킨 파도는 아직 제국이 막을 힘이 아니었거든. 천칭이 남긴 유산은 세상의 균형을 요구했어. 그렇기에 싹을 완전히 밟아버릴 필요가 있었던 거야.」

소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줄지 않는 찻잔과 마찬가지로 그는 말을 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어. 생각보다 제국이 받은 타격은 크지 않았거든. 천칭도 설마 두 세력이 힘을 합쳐 우리에게 대항할 줄은 몰랐겠지. 당초 예정대로라면 제국의 인족이 반절 이상은 죽었어야 했을 텐데. 생각과 달리 너무나도 많이 살아버렸거든. 그 결과, 부득이하게도 세상에 더 간섭할 이유가 생겨버린 거야. 제국이 최전성기를 달리는 바로 이 시기에. 아리시엘 루드비히라는 이름을 쓰는 인족 앞에서. 하지만 여기서도 계산 착오가 생겨버렸지. 아리시엘이라는 인족은 천칭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거든. 철저히 외면하고, 자신의 주관대로만 움직이는 마스터. 이에 천칭은 또 하나의 변수를 던지게 됐어. 바로 너라는 마스터를.」

천칭은 대답하지 않는다.

소년을 가만히 바라보는 그 얼굴은 충격으로 굳어 있었다.

“거짓말입니다!”

「자각이 있을 리 없지. 너희는 그런 자각을 가질 수 없어. 그게 성좌다. 세상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인형. 본인이 가진 의지조차 자신의 의지가 아니지. 그걸 자각하지도 못하는 불쌍한 마리오네트. 설마 그것이 널 돕는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 널 살려두고, 위험한 순간마다 구해주고. 적절한 간섭으로 죄인들이 힘을 기르게 한다. 영원한 평화는 없지. 언젠가 가져올 분쟁을 위해서. 동시대에 깨어난 쌍둥이가 있어서 다행이었지. 결국, 그 두 성좌가 너를 이곳으로 안내했으니까. 그래. 이번 여행은 조금 즐거웠나?」

“아, 아닙니다. 저는…!”

「말해두겠는데, 알베르트 란. 만약 세상에 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에 가장 가까운 존가 바로 성좌다. 누구의 편에 서는 일도 없다. 철저히 세상의 관점에서 모든 걸 관찰하고, 균형을 조율하지. 우리는 신도, 악마도 아니야. 너희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아.」

언제나 알베르트와 함께했던 파트너.

아가씨의 유산. 세상을 대변하는 일곱 개의 의지라는 것에 긍지를 갖고 있던 천칭. 언제나 자신만만했던 그가 충격으로 말을 더듬고 있었다.

「너는 피해자가 아니야. 이 모든 사단을 체스판 위에 올리고 조종할 뿐이지.」

“…….”

천칭은 완전히 침묵했다.

고개를 떨군 그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게 사실인가?”

“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마스터.”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는 소년은 재밌다는 듯 웃고 있었다.

「자, 그럼 이제 천칭을 내주지 않을래?」

그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천칭을 내준다면 델리아 신성제국과 연 제국을 침공한 악마는 잔학한 발걸음을 멈추겠지. 소년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미 규격 외의 힘을 지닌 신과 같은 존재다. 굳이 알베르트를 이곳까지 초대해서 이야기할 이유가 없다. 그런 수고를 들이지 않더라도, 알베르트의 의사를 짓밟고 천칭을 가져가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을 테니까.

이것은 진실이다.

부정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은 알베르트는 소년을 보았다.

허리춤의 월아에 손을 얹은 채.

「무슨 의미인지 물어도 될까?」

“내가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는 없겠지.”

「진심이야? 재앙의 씨앗을 넘기기만 하면 모든 걸 해결해주겠다고 했는데?」

“설사 사실이 그렇다고 해도, 몇십 년 동안 고락을 함께 넘어온 친구를 팔 이유는 되지 않는다.”

대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것. 고민할 여지조차 없다.

망설임 따위 보이지 않는 알베르트의 즉답에 소년은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벌레를 짓밟는 취미는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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