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4화.블러드 캐슬(6) (194/200)

 # 194

블러드 캐슬(6)

「목자는 이곳에. 간절한 바람을 담아 나아갈 길을 찾으니.」

성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대기적의 준비가 되어가고 있는지, 알베르트가 내려왔던 건물 위에서는 신성한 은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허나, 우리가 바라는 것은 활로의 모색이 아니니. 이제부터 죄를 범하게 될 가련한 양의 두 눈을 멀게 하소서.」

마왕은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다.

황실수비대와 부딪친 놈의 뒤로 사자기사단이 움직였다. 라시엘 공작의 지시에 맞춰 발을 노렸다. 신성력을 두른 검이 놈의 마기를 갈랐다. 귀찮다는 듯 떠오른 마기가 검의 형태를 취했다.

「허니, 이 자리에 자비는 필요하지 않으니. 부디 부정한 것을 꿰뚫는 심판을 내려주소서.」

기사단의 위로 쏟아지는 마기의 검을 얼음 방패가 막았다.

셀렌느의 마법이다. 인명 구조를 끝내고 돌아온 그는 남은 마나를 모조리 쏟아부었다. 실드에 균열이 생겨났다. 버틴 것은 일순간. 실드가 깨지고 검이 추락했다.

“산개!”

기사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모두가 온전히 피한 것은 아니지만, 목숨을 잃은 이는 없다. 검의 숲을 통과한 로엔이 마왕의 발목을 노렸다. 로엔의 검은 강철과도 같은 놈의 갑피를 뚫었다. 검은 피가 그 끝에 맺혔다. 그러나 피해는 크지 않다. 긁어낸 것은 놈의 외피뿐이다.

역으로 떨어진 피가 살아 움직였다.

기포가 끓듯이 꿈틀거린 피는 촉수로 변해 로엔을 노렸다. 신성력이 담긴 검은 어렵지 않게 촉수를 끊어냈다. 날아오는 이격. 로엔의 뒤를 따라 들어온 기사들이 피를 마무리 지었다.

「용서를 바라는 이는 없으니, 이가 곧 양을 이끄는 여신님의 분노가 되리라.」

기사들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는다.

우익으로 들어온 신전기사단이 사자기사단의 공격에 답했다. 본격적인 협공을 당하기 시작하자, 마왕의 대처도 변했다. 파괴를 일삼던 마기가 기사들을 향했다. 단순히 검이나 창의 모습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마기는 커다란 파리의 형태를 취했다.

날갯소리가 시끄럽다.

순식간에 증식된 파리들이 목표를 향해 날아갔다. 수가 많다.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판단을 마친 기사들이 검을 들었다. 마기를 갈라낸 것처럼 그 검이 파리를 베었다. 마기가 폭사했다. 그러나 이곳에 모인 기사들은 정예 중의 정예. 움직임이 묶인 부상자는 몇 되지 않는다. 재빠르게 폭발에서 빠져나온다. 그 앞에 이빨을 드러낸 검은 구가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우리 가련한 양은, 여신님의 분노를 이끄는 창이 될지어니. 보지 말아라. 듣지 말아라.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심판은 눈먼 자들이 원하는 것. 구태여 양이 따를 이유가 없도다.」

폭발이 기사를 삼켰다.

역시 이것까지 피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는지, 무릎을 꿇는 기사들이 생겼다. 쓰러진 동료를 넘어선다. 한 번의 충돌로 전력이 꽤 줄어들었지만, 기사단의 돌격은 멈추지 않는다. 마왕의 시선을 끄는 것. 더 나아가 마왕이 대기적을 발현하는 장소로 가지 못하게 발을 잡아야 했다.

단순히 부딪치는 거로는 놈의 주의를 끌 수 없다.

이 거리에서 만드는 참격으로는 타격을 줄 수 없다. 좀 더 의표를 찔러야 했다. 일단 필요한 것은 검간(劍間) 안쪽으로 놈을 끌어들이는 것. 거리는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좋겠지. 위험도는 올라가겠지만….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다.

결정을 내린 알베르트는 하나의 파도와 같은 돌진에 가담했다.

“이럴 때는 말이 없는 게 아쉽다니까. 랜스 차지(Lance Charge)라면 위력이 다를 텐데.”

“이곳에 들어와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군마라…. 명마(名馬)가 아니라면 흉마(凶馬)겠어.”

“애초에 황도 거리를 자유분방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말이 어디 있겠나.”

“그것도 그렇군.”

긴장감 없는 기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딘지 모르게 목소리가 낯익은 것은 그들이 사자기사단이기 때문이겠지. 알베르트와 시선이 마주친 기사는 멋쩍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한쪽 팔이 완전히 그을린 그는 온전한 상태로는 보이지 않았다. 잘 살펴보면 작고 큰 부상이 그 몸에 남아있었다. 밝은 목소리를 낸 것은 이제부터 사지로 향한다는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것 같다.

마왕은 다가오는 기사들을 향해 손을 들었다.

꿈틀거리는 마기가 지각에 변동을 일으켰다. 발을 디디고 있던 지면이 비명을 질렀다. 뱀의 혓바닥과 같은 촉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칼끝이 지면을 향했다. 이 정도로는 기사단의 돌진을 막을 수 없다. 단칼에 촉수를 끊어내고, 앞으로 나아간다.

「구원을 바라는 이는 없으니, 양들은 나아가리라. 고행길을 돌고 돌아서, 정처 없이 나아가리라.」

기사들은 마왕의 앞에 당도했다.

마기가 그 앞에 드리워진다. 이전과 같은 그림은 나오지 않는다. 기사들의 도착과 맞물려 마법사의 포격이 들어왔다. 마기가 양쪽으로 갈렸다. 얼굴을 노리고 들어오는 포격. 투명한 마기의 막이 이를 막아냈다. 검격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마법과 반대로 기사의 검은 마왕의 육체에 닿았다.

그 일격이, 당연한 것처럼 튕겨 나왔다.

재차 검을 정비할 시간은 없다.

검과 맞닿은 부분에서 꿀렁거리는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 모습은 슬라임과도 비슷하다. 덩어리진 액체가 흘러나온다. 사람의 몸집만큼 커진 그것은 기사를 향해 떨어졌다.

「오오, 찬양하리라. 빛의 창은 곧 우리가 지고 가야 할 여신님의 분노일지어니.」

슬라임을 베어낸 것은 알베르트다.

조각은 둘, 넷. 그것만으로도 여유가 생겼다. 흩어지는 파편을 확인한 기사들은 몸을 피했다. 물러나는 기사단과는 반대로 알베르트가 앞으로 치고 나갔다. 굳이 발을 노릴 필요는 없다. 불청객의 침입을 막기 위해 펼쳐지는 마기를, 알베르트는 발판으로 삼아 뛰어올랐다.

[마기가 흩어집니다!]

개의치 않는다.

디딤대로 사용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을 벌었다. 마왕의 팔에 올라탄 알베르트는 위로 질주했다. 성벽을 오르는 것과 같다. 팔에서 일어나는 마기가 엉겨 붙는 것보다 먼저, 알베르트의 발이 움직였다. 전진한다. 이 정도로는 그를 막을 수 없다.

도약한다.

위로. 위로 올라간다.

적당한 대처로는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마왕도 경계의 대상을 바꿨다. 외피에 변화가 일어난다. 알베르트는 눈앞에서 형상화하는 마기를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땅딸막한 몸집과 작은 단도. 얼굴에는 이목구비가 없다. 조잡한 인형을 보는 기분이다.

하반신이 마왕의 외피에 들러붙은 그것은, 질척질척한 마기를 흘리고 있었다. 꺼림칙한 모습이 생리적인 혐오감을 불렀다. 아마도 두려움을 사기 위해 저런 형태를 취한 거겠지.

알베르트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잘라낸다. 길을 막는 놈들을 베고 올라간다. 그것은 형체가 무너질 뿐. 마왕이 자아낸 놈은 죽지 않았다. 애초에 저것은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흩어지는 마기가 괴물이 아닌 날카로운 창으로 변했다.

창은 이미 지나간 알베르트의 등을 노렸다.

뒤를 돌아볼 필요는 없다. 창은 쏘아지지 않았다.

마기는 알베르트를 따라 팔로 올라온 기사의 검 앞에 흩어졌다.

위로 나아가는 건 알베르트 혼자가 아니다. 월아의 빛이 반짝였다. 은빛이 나아갈 길을 밝히고, 기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양쪽 팔 모두 같은 상황이다. 심상치 않은 상태를 확인한 마왕이 직접 손을 움직였다.

파괴에 매진할 때가 아니다. 주제도 모르고 들러붙은 벌레를 털어낸다. 몸이 붕 떠는 기분 나쁜 부유감. 월아를 놈의 팔에 꽂는다. 알베르트는 순간적으로 기우는 몸을 지탱했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그 손짓에, 절반 이상의 기사들이 떨어졌다.

머뭇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흔들거리는 팔 위에서 알베르트는 자세를 잡았다.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다. 뒤집힌 팔 안쪽에서 조잡한 인형들이 나타났다. 치고 올라간다. 아래팔에서 관절로. 관절에서 위팔로 향한다. 팔에 상처를 남길 필요는 없다. 벨제붑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노린다면 치명상이다. 급소를 찌른다면 확실하게 놈의 관심을 가져올 수 있다.

참격이 닿는 거리다.

목표는 목. 인형의 형태를 무너뜨린 알베르트는 검을 쥐었다.

천마신공 오의

천마혈참

이제는 알베르트의 장기와도 같은 오의다.

은빛을 머금은 검붉은 검강이 달렸다.

어둠을 가른 월아의 빛이 마왕의 목을 베었다.

「---!」

불쾌한 목소리가 울렸다.

검격이 닿은 목에서 검은 마기가 흘러내렸다. 붉은 안광이 알베르트를 향했다. 그 눈에 담긴 감정은 분노다. 목적은 달성했다. 놈의 움직이기 전에 달아난다. 알베르트는 마왕의 어깨에서 뛰어내렸다.

마왕은 불쾌한 적대자가 도망칠 기회를 주지 않는다.

분노는 곧 힘의 표출로 나타났다. 솟구치듯이 올라간 마기의 전격이 지면을 가리켰다. 굉음과 함께 암광이 주변 일대를 내리쳤다.

“큭!”

간신히 마기를 피해낸다. 그렇지만 몸에 남은 피해는 막을 길이 없다. 몸 전체가 찌릿거리는 통증. 마치 전격에 당한 것 같은 느낌이다. 공중에서 자세를 잡는 알베르트를 향해 마왕의 손끝이 향했다.

[마스터!]

한 점으로 모인 마기가 일말의 전조도 없이 쏘아졌다.

무명검법

읽었다. 하지만 불안정한 자세에서 펼쳐진 검막은 견고하지 못했다. 눈앞이 붉어진다. 내준 것은 왼쪽 어깨다. 왼팔이 축 늘어졌다. 화상을 입은 것처럼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픔을 곱씹을 시간은 없다. 마기의 추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주어진 것은 찰나의 시간.

파악한다. 마기를 완전히 막아낼 수는 없다. 필요한 것은 검막인가? 아니. 검막의 내구도로는 버틸 수 없다. 차라리 전력을 담은 일격을 전개하는 편이 낫다. 펼칠 수 있을까. 거듭된 교전으로 인해 내공은 이미 한계에 가깝다. 온몸의 혈도가 들끓고, 기혈이 뒤틀리고 있다.

망설이는 알베르트의 앞으로 프로즌 실드(Frozen Shield)가 생겨났다.

급조한 얼음 방패는 전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실드가 부서지며 일어난 충격에 알베르트가 밀려났다. 떨어지는 알베르트를 셀렌느가 받아냈다.

“이봐, 집사!”

“괜찮습니다. 그보다….”

마기의 추격은 끝나지 않았다.

발판이 없는 상태에서 검을 든다. 몸 안이 부서지는 통증은 신경 쓰지 않는다. 어떻게든 시간을 번다.

알베르트가 각오를 다진 그 순간이었다.

마왕의 앞에 눈부신 광창(光槍)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새 대기적이 완성되어 있었던 걸까. 성녀와 마녀. 성가대가 모은 신성력은 성스러운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듣고 있다면 참회하거라. 우리가 진 짐은 죄인의 얼굴이오니.」

블러드 캐슬 위에 떠 오른 성창이 마왕을 향했다.

여신의 심판을 피할 길은 없다. 마기가 만든 방패 위로 성창이 꽂혔다.

「이 가련한 죄인을 심판하소서.」

궁니르가 죄인의 몸을 꿰뚫었다.

「----!!!」

찢어지는 비명이 울렸다.

성창에 몸이 꿰뚫린 마왕이 무너졌다. 붉은 안광에 고집스러운 빛이 담겼다. 마왕은 파고드는 이물질을 두 손으로 잡았다. 숨통을 끊고자 하는 궁니르와 이를 막고자 하는 마왕. 성창의 빛이 한층 더 강렬해진다. 그러나, 그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앞으로 한 발짝. 한 발자국만 더 나아간다면 매듭을 지을 수 있는데. 녀석의 매듭으로 다가갈 방법이 없었다.

셀렌느와 함께 지면으로 내려온 알베르트는 마왕을 응시했다.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주변을 잠식하고 있다.

끝을 모르고 솟아나는 사이한 기운 탓에, 마왕의 근처로 다가가는 것조차 용이하지 못했다.

사자기사단.

라시엘 공작은 기사단을 수습하고 있었다. 의식을 잃은 로엔의 모습이 보인다. 마왕의 앞으로 돌격한 기사는 피해가 컸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기사단에 진격할 여유는 없었다.

신전기사단.

성가대가 지원해줘야 할 신성력을 보충해준 성기사들은 탈진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무릎을 꿇은 미카엘라 단장의 모습이 보였다.

황실수비대.

이쪽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블러드 캐슬을 수비하기 위해 이미 수많은 사상자를 낸 쪽이다. 군대라고도 부를 수 없는 상황이다. 황실기사단 단장인 데미안조차 중상을 입고 다리를 절뚝거리고 있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월아를 쥔 알베르트는 성창을 받아내는 마왕을 향해 나아갔다.

‘만약 내가 의식을 잃는다면 뒷일은 부탁하겠네.’

[또 무슨 무모한 짓을 저지를 생각입니까.]

천칭은 알베르트를 말리지 않는다.

현재 상황에서 무엇이 최선인지, 그도 알고 있는 것이리라.

‘가세나, 친구여.’

[정말인지, 어울리고 싶지 않습니다.]

마지막 남은 불꽃이 타오른다.

주인의 의지에 월아의 빛이 답했다.

*&*

부드러운 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무언가 부드러운 것이 얼굴에 닿고 있었다. 몽롱한 기분으로 알베르트는 눈을 떴다. 푸른 하늘이 보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잘 모르겠다. 잠에 겨운 머릿속은 사고를 정리하지 못한다. 일단 이곳은 어디인가. 주변을 둘러보는 그 눈에 토끼와 뱀이 보였다.

“…?”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게 아니다.

토끼와 뱀은 나란히 알베르트를 응시하고 있었다.

“…….”

무언가 잘못 본 걸까.

알베르트는 두 손으로 눈을 비볐다.

사라지지 않는다.

토끼와 뱀은 여전히 알베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죽은 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는 그만두고 움직이시죠, 마스터.”

무심한 천칭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베르트의 앞에서 작은 정령의 형상을 한 천칭이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는 골치 아픈 곳으로 떨어지고 만 것 같습니다.”

대자연의 경관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숲.

비로소 알베르트는 자신이 처음 보는 장소에 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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