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7화.황도 공방전(6) (18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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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 공방전(6)

비장의 수는 다룰 수 없다.

여기에 있는 적은 군단이 아닌 한 개체다. 무엇보다 인족이 말려들 가능성이 컸다. 롯의 몸이 조각난다. 떨어진 뼛조각이 그녀의 생각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으로 지시를 내릴 필요는 없다. 롯과 블라우는 유피에르의 수족이다. 레드 드래곤 본이 공격을 담당하고, 블루 드래곤 본이 방어를 담당한다. 아무리 악마라도 드래곤 본을 부수는 건 불가능한지, 놈의 마기는 유피에르에게 닿지 않았다.

절단면에서 독충이 흘러나왔다.

유피에르의 곁에서 붉은 나비가 떠올랐지만, 벌레가 향한 곳은 그녀가 아니었다. 반대쪽 방향. 신전이다. 벨제붑과 교전 중인 그녀를 지원하기 위해서였을까. 그 앞에서는 성가대가 움직이고 있었다. 독충에 발이 묶인 그들을 향해 벨제붑이 입을 열었다.

「거슬리는 인족 놈들. 분명 경고했을 터다. 섣불리 움직인다면 이 벌레들의 목숨은….」

벨제붑이 앉아 있던 자리.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구슬 위로 마기가 떨어졌다.

마기에 짓눌린 구슬이 터질 것처럼 꿈틀거렸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다. 허나, 마기는 구슬의 안쪽까지 침범하지 못했다. 구슬 위에 둘린 신성력이 마기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이 신성력을 다루고 있는 것은, 진열을 유지하고 있던 성가대다.

“그리하여 모든 은총이 이 손에 닿을 지어니.”

“길잃은 양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성가대가 기도문을 읊기 시작했다.

신성력이 좀 더 분명한 색을 띤다. 벨제붑의 전신을 압박하고, 차오르기 시작한 신성력은 그 몸에 영향을 미쳤다. 푸른 육체에서 불길이 달렸다. 거슬린다. 갖고 놀 것이 아니라 먼저 제압해두는 쪽이 맞았다. 지금이라도 손을 쓴다. 마기가 녀석의 손을 따라 신전으로 향했다.

「크윽!」

등을 두들기는 충격에 벨제붑의 몸이 휘청거렸다.

흘러가던 마기가 끊긴다. 세피로스의 지팡이를 든 유피에르가 기분 나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쪽을 신경 쓸 여유가 있나 보네?”

「죄인!」

성가대가 잠시 이목을 끌어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준비한 술식이 하나 둘 마녀의 곁에서 떠올랐다. 양손에서 회전하는 차륜은 이미 하나의 마법진이다. 신성력과 마나가 한 데 느껴졌다. 상대하기 껄끄러운 힘이다. 거기에 드래곤 본 역시 건재하다. 성가대의 지원도 마음에 걸린다. 금방이라도 출격할 것처럼, 검을 뽑은 신전기사단이 말 고삐를 쥐고 있었다.

그러나 물러설 이유는 없다.

패배는 한 번이면 족하다.

「이 몸이 왜 군단장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마, 죄인.」

벨제붑은 절단면으로 자신의 손을 넣었다.

안쪽에서 끄집어내는 것은 무엇인가. 살점과 고기가 아니다. 그 손에 잡혀 나온 것은 검은 연기다. 구름과도 같은 연기를 끄집어낸 녀석은 그것을 뒤로 던졌다. 진격하던 신전기사단 앞으로 떨어진 연기는 천천히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한 녀석은 흔히 볼 수 있는 마물로.

한 녀석은 흔히 볼 수 없는 악마로.

한 녀석은 악마와 마물을 섞어놓은 것 같은 이형의 괴물로.

제각각의 모습을 한 놈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다.

「이것이 이 몸이 이끄는 탐식의 군단이다.」

바로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푸른색으로 빛나는 입이 있었다.

「연회를 벌여라!」

그 지시에 군단이 대답했다.

「---!」

*&*

루나 평원의 언덕에서 그 남자는 연기가 올라오는 황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으로 가득 찬 검은 하늘.

황도가 누리고 있을 신석의 비호는 느껴지지 않는다. 눈을 감고 있으면 비통한 비명이 들리는 것 같다. 젊었을 시절에는 언제나 맡았던 냄새다. 지울 수 없는 전장의 냄새. 지켜야 할 황도에서 그 냄새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단장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부관, 로엔 발 나하드의 모습에 라시엘 공작은 뒤를 돌아보았다.

일평생을 그와 함께해온 기사단이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대의 수는 많지 않다. 데려오지 못했다는 표현이 맞다. 루나 평원까지 올라오는 전송진은 이용할 수 있는 수가 한정되어 있었다. 결국, 선별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이 자리에 모인 기사들은 정예 중의 정예다. 사자기사단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실력자들만이 이곳에 나와 있었다.

마족의 의도대로 움직인 것은 달갑지 않지만, 이번만큼은 감사를 표한다.

사태는 이미 한 시 앞을 다투고 있었다.

“우리는 리하델 신성제국의 수호자.”

“제국의 적을 멸하는 존재.”

불타는 황도를 바라보며 라시엘 공작은 검을 들었다.

“검을 들어라, 기사단이여! 황도를 수호하라!”

“이 검 끝에 영광이 있으리!”

라시엘 공작의 호령에 기사단이 대답했다.

유그피르의 검이 오러로 빛났다. 신호를 본 로엔은 뿔피리를 힘껏 불었다.

“사자기사단 출진!”

“루드비히 가를 위하여!”

*&*

신전 앞은 난전에 돌입했다.

신전으로 진입하는 군단을 막는 건 성가대다. 신전기사단과 악마들이 엉켰다. 신성력과 마기가 충돌한다. 고함과 비명이 어우러지고, 병장기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부상자가 속출한다. 축복이 문제가 아니다. 사상자를 챙길 시간은 없다. 쓰러지는 동료를 뒤로 한 채 성기사는 검을 뽑았다.

전장의 불이 번진다.

곳곳에서 여신의 이름을 울부짖는 이들이 늘어난다. 쓰러지는 악마보다 동료의 수가 훨씬 많다. 점점 희생자가 늘어나고 사람의 목숨이 꺼져간다. 열기가 번지는 건 순식간이다. 지휘자의 목소리가 닿지 않게 되고, 통솔에서 벗어난 군대는 광기에 휩쓸린다.

전쟁을 일으킨 자. 전쟁에 말려든 자.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하늘에서 이를 내려다보던 유피에르는 혀를 찼다.

신전기사단을 이끄는 단장들이 분발하고 있지만, 결과는 썩 미덥지 못하다. 하다못해 지휘권을 가진 이들을 도와줄 수 있다면 상황이 좀 더 나아지겠지만, 유피에르에게도 그런 여유는 없었다.

악조를 휘두른다.

발밑까지 추적해온 독충이 바스러졌다.

그 밑에서 벨제붑이 따라오고 있었다.

「이제 도망갈 곳도 남지 않았군.」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 녀석은 웃고 있다.

유쾌할 만하겠지.

이 혼란을 가져온 것은 놈이다.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즐기는 악마다. 낙양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도 그랬지만, 벨제붑은 전승에서 전해지는 악마 그 자체였다.

「두려운가, 죄인?」

“설마. 두려운 건 너겠지.”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다.

유피에르의 목소리에 떨림은 없었다.

오히려 이런 상대가 대처하기 쉽다.

일말의 동정심을 품을 필요조차 없으니까.

벨제붑은 유피에르의 대답에 마기를 방출했다.

블라우의 본이 그녀의 앞에서 실드를 만들었다. 차륜이 가속한다. 마법진의 빛이 선명해지고, 술식이 세상을 침식했다. 목적을 다하지 못한 마기가 흩어진다. 벨제붑은 다시 손을 움직였다. 마기가 형체를 갖춘다. 커다란 입으로 변한 벨제붑의 마기가 유피에르를 향해 쇄도했다.

우드득.

본 실드에 균열이 생겼다.

정면에서는 받아낼 수 없다. 유피에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그 공격에 맞춰 롯의 본이 벨제붑의 배후를 노렸다. 창과 같은 그 찌르기에 벨제붑은 반응하지 못했다. 굳건한 악마의 육신을 레드 드래곤의 본이 파고들었다. 신성력이 담긴 공격이다. 검은 피가 맺혔다. 가볍게 넘길 타격이 아닐 텐데, 벨제붑의 힘은 빠지지 않았다.

턱에 힘이 실린다.

아귀의 힘을 견디지 못한 본 실드가 박살 났다.

방패를 잃은 유피에르는 소매의 인형을 전부 털어냈다.

다가오는 아귀의 발을 조금이라도 잡을 생각이었지만, 소용없다. 인형의 저항은 헛되다. 블라우의 드래곤 본까지 씹어먹은 강도다. 단 한 번의 삼킴으로, 인형이 사라졌다.

「지고한 왕관이 고한다.」

1절 이상의 술식은 공정할 수 없다.

손목에서 도는 마법진을 전부 희생하여 방패를 만들어 낸다. 부서졌다. 속도는 늦춰지지 않는다. 그래도 약간의 시간은 벌었다. 벨제붑의 뒤로 돌렸던 롯의 본을 앞으로 가져온다. 악마의 아귀와 실드의 형태를 취하던 롯의 본이 충돌했다.

충격에 휘말린다.

부유한 상태에서 유피에르의 몸이 맥없이 날아갔다.

시야가 뒤집어진다.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며 유피에르는 벨제붑을 확인했다. 놈의 추적은 계속되고 있다. 롯과 블라우의 본은 주변으로 흩어졌다. 백업용으로 사용하던 마법진은 없다. 주변을 둘러본다. 하늘에 인족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악마들만이 보일뿐이다.

공중에서라면 말려드는 이는 없다.

시간에 맞출 수 있을까.

세피로스의 지팡이를 쥔 유피에르는 입을 열었다.

「오너라. 경계의 그림자에 선 자여. 지고한 왕관이 그대를 부르노라.」

의식이 멀어진다.

세계수에 발을 들인 그녀는 한 마리의 백묘가 되었다. 나무의 위를 올려다볼 필요는 없다. 그때의 미숙한 고양이가 아니다. 원했던 가지에 손을 뻗은 고양이는, 열매를 입에 물었다.

「」

추락하는 유피에르의 뒤에서 마법진이 나타났다.

은빛을 머금은 마법진이 머금은 원의 수는 총 10개.

「」

흩어졌던 드래곤 본이 유피에르의 앞에 모였다.

하나의 형태를 취하기에는 뼛조각의 수가 몇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유피에르의 술식으로 모인 드래곤 본은 곧 한 형체를 만들었다.

「드래곤?」

용의 두개골.

붉은 용안과 푸른 용안이 빛난다. 반쯤 날아간 턱에서 입이 크게 벌어졌다. 벨제붑도 이에 응했다. 마기가 끊임없이 부풀어 오른다. 유피에르가 자아낸 본 드래곤의 입보다 다섯 배는 큰 악마의 아귀가 벌어졌다. 마기가 일렁이는 그곳을 향해 본 드래곤은 입을 벌렸다.

「사룡」

본 드래곤의 브레스가 벨제붑을 향해 쏟아졌다.

하늘이 갈라진다. 검은 하늘로 붉은 숨결이 달렸다. 지면으로 추락하던 유피에르는 간신히 몸을 다잡았다. 얼굴이 뜨겁다. 지척에서 사용한 브레스 탓이다. 충격에 휘말린 전신이 고통으로 삐걱거리고 있었다. 신성력을 사용한 반동일까. 입안에서 비릿한 쇠 맛이 났다.

잦아드는 브레스 사이로 벨제붑의 모습이 보였다.

검게 그을린 놈은 아직 숨통이 붙어 있었다. 놈은 지면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유피에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죄인.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

“유피에르 바토리.”

「자랑스럽게 여겨도 좋다. 유피에르 바토리. 너는 이 탐식의 벨제붑을 두 번이나 쓰러뜨렸다.」

“업적으로 여기라는 거야?”

황당함이 어린 그녀의 목소리에 벨제붑은 대답했다.

「물론이다, 유피에르 바토리.」

말을 마친 악마의 육신에서 푸른 독기가 새어 나왔다.

사르르 녹아들 듯이 그 육체가 부서진다. 하나하나 떨어지기 시작한 몸은 이내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

벨제붑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지상에서 일전을 벌이던 군단은 녀석과 마찬가지로 역소환 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은 몇몇 악마도 있지만, 이들을 상대하는 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 유피에르가 몸을 추스르는 사이, 신전 앞의 전투는 매듭이 지어졌다.

숨을 돌리는 유피에르를 향해 소피아가 다가왔다.

“고생하셨습니다, 황녀 전하.”

“이 정도야 간단하지.”

소피아가 건넨 환약을 먹은 유피에르는 다가오는 기사단을 확인했다.

신전기사단이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조금 전 그녀의 모습은 어느 모로 보나 악마와 다를 것이 없었다. 유피에르의 정체가 마족이라는 것은 이곳에 모인 모두가 알고 있겠지. 검을 내리지 않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교단 내에서도 소수만이 그녀의 존재를 알고 있겠지. 즉 이곳에 모인 대다수는 유피에르를 모른다.

그들의 눈에는 그녀가 증오스러운 마족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황녀 전하.”

불온한 분위기를 감지한 소피아가 유피에르의 앞으로 나왔다.

“그럴 필요 없어.”

그녀의 말에 소피아는 뒤로 물러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성기사에게 물었다.

“프랑소와 성녀는 어디에 있지? 상황이 이 모양인데, 대처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불경하다, 마족!”

“감히 성녀님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이냐?”

“잡설은 집어치워! 지금 무엇이 더 중요한지 모르겠어? 너희가 이러고 있는 사이에도 황도의 인족이 죽어 나가고 있어. 나와 논쟁을 벌이기 전에 그들의 목숨을 먼저 생각해!”

유피에르의 일갈에도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악마와 함께 나타난 마족이다. 경계심을 사지 않는 쪽이 이상하다. 알고는 있지만….

“날 성녀에게 안내해.”

여유롭게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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