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2화.황도 공방전(1) (182/200)

 # 182

황도 공방전(1)

숨 막힐 것 같은 마기가 황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오늘 하루 황도를 관광하면서 뿌려놓은 거미줄이 일제히 울리고 있었다. 혹여라도 있을 사태를 대비해 설치한 간이 결계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우후죽순처럼 울리는 경고음이 감각을 의심하게 했다.

유피에르는 악마들이 쏟아지는 황도를 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녀석들이 지옥도를 펼쳐낼 것이라고. 사전에 놈들을 막을 수 없다면, 발현 이후를 준비한다. 아리시엘의 말대로다. 막을 수 없다면 그 이후를 대비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황도의 결계가 이리 쉽게 무너질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델리아 신성 제국의 수도. 블러드 로열.

신석의 비호 아래에 있는 황도는 부정한 것들의 접근을 일절 허락지 않는다. 그건 비단 마물에만 한하는 억지력이 아니다. 마기의 움직임 자체를 옥죄고, 축복을 내려 신성력 본연의 힘을 끌어낸다. 마기를 받아들인 마족은 본신을 드러낼 수조차 없다.

그렇기에 천년의 세월 동안, 마족은 단 한 번도 이 땅을 밟지 못했다.

한데, 설마 그 신석을 역으로 이용해 침범할 줄이야.

혼돈의 도가니에 빠진 황도의 모습은 헛웃음조차 자아내지 못했다. 차원을 찢고 나타나는 악마들. 인족의 육신을 가르고 강림하는 놈들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사태를 파악한 병사들이 침공에 대처하기 위해 거리로 나오고 있었다.

황도 수비대.

과연 제국 최고의 정예병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부장의 지휘 아래 전열을 유지하고 있었다. 방패를 세우고 벽을 만든다. 검을 들고 창을 겨눈다. 진형이 갖추어지자 수비대는 문어와 새를 반쯤 섞어놓은 악마와의 거리를 좁혔다. 교본의 정석에 가까운 진격이다.

그러나 무력의 차이는 압도적이다.

공허한 빛을 머금은 시선이 돌아간다.

다가오는 수비대를 알아차린 악마가 발을 들었다.

“방패!”

“하!”

악마의 다리가 타워 실드(Tower Shield)와 충돌했다.

“크악!”

모루 역할을 맡은 방패병이 단 한 번의 일격을 막지 못했다.

방패와 함께 병사의 몸이 뭉개졌다. 망치 역할을 하러 돌아간 별동대가 합류할 시간조차 벌 수 없다. 앞 열이 무너지자 뒤에 있던 검병이 노출되었다. 한 줌의 핏덩이로 변해버린 전우를 대신해 그들은 검을 들었다. 먼저 간 그들을 위해서라도 머뭇거릴 시간은 없다.

검이 악마를 향해 휘둘러졌다.

퉁!

수비대의 검은 악마의 피부를 뚫지 못했다.

두 손이 들리는 것과 동시에 문어의 다리가 그 머리로 떨어졌다.

유피에르는 참혹한 광경에서 시선을 돌렸다.

전장으로 변해버린 황도 곳곳에서는 그런 모습이 속출하고 있었다.

화살은 보이지 않는다.

악마와 시민이 한데 섞여 있다. 함부로 활시위를 먹였다가는 피해가 커질 수도 있었다. 애초에 창과 검으로도 상처를 입힐 수 없는 존재다. 화살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

수비대만으로는 악마들에게 대처할 수 없다.

단순한 고기 방패. 그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수비대는 물러나지 않는다. 무너져가는 진형을 유지하고 시간을 번다.

몇 겹이나 되는 벽을 세운다. 일반 시민들이 피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살리고자 무기를 들었다.

“유피.”

알베르트의 목소리에 그녀는 의식을 되찾았다.

거구의 악마를 쓰러뜨린 집사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 뒤로는 함께 나온 사용인과 안색이 파리하게 질린 아리시엘이 있었다. 가능하다면 어딘가 안전한 장소로 데려가고 싶지만, 황도 전체가 이 모양이다. 차라리 함께 있는 쪽이 안전할지도 모른다.

“상황은 어때?”

“내가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보이는 그대로야, 알. 양양에서 있었던 지옥도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어. 이건 단순히 문을 연 게 아니야. 마기에 영향을 받은 마물이 나타난 게 아니라, 지옥 자체가 넘어오고 있어.”

공간을 찢고 악마가 현현한 것이 그 결과다. 일반 마물과는 위험도 자체가 다르다.

안타깝게도 동포도 아닌 제국의 일반 병사들로는 해결할 수 없다. 무력의 차이가 너무 크다. 알베르트도 그 사실을 알고 있겠지. 바람 앞의 촛불이 꺼져가듯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었다.

“신석이 매개체라고 했지? 내가 다프네 신전으로 향할게.”

“신석을 부수는 것만으로는 이 현상을 해결할 수 없어. 말했잖아. 단순히 문을 연 게 아니야. 넘어온 악마들이 공간을 일그러뜨리고 있어. 최소한 주춧돌이 되는 녀석들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손을 쓸 수 없어.”

유피의 마나가 거미줄을 이었다.

라인이 떠오른다. 그림자 선이 크게 세 곳으로 나뉘었다.

검은 그림자.

황실이 있는 블러드 캐슬을 가리키고 있다.

하얀 그림자.

성녀가 있는 다프네 신전을 가리키고 있다.

회색 그림자.

높이 치솟은 마탑을 가리키고 있다.

“이 상황을 주도하는 적은 셋이야. 그나마 저항 중인 장소를 노리고 있어.”

“역으로 말하자면, 그 세 녀석을 쓰러뜨리면 지옥도를 막을 수 있다는 거지?”

“가능성은 생기겠지.”

확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알베르트는 감각을 확장했다.

교전이 벌어지는 세 장소를 살펴본다.

가장 먼저 확인한 곳은 블러드 캐슬이다.

이곳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최소 소드 마스터급이다. 아마도 황실기사단장인 데미안 류재스터다. 제국이 보유한 4인의 소드 마스터 중 한 명이다. 그가 직접 황실기사단을 지휘하고 있는 거라면 전선은 쉽게 무너지지 않으리라. 신성력과 술식 행사가 계속 행해지는 걸 봐서는 마법사는 물론이고, 사제의 수도 충분해 보인다.

다프네 신전도 상황은 괜찮아 보인다.

신성력이 짙게 드리워진 마기를 걷어내고 있다. 성녀 프랑소와의 지휘 아래에서 성가대가 움직이는 걸까. 혹은 신전기사단이 방비를 굳히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신전이 함락되는 그림은 그려지지 않는다. 악마와 대적할 수 있는 신성력을 갖춘 부대다. 이쪽은 걱정할 필요 없겠지.

반면, 마탑은 이야기가 달랐다.

마법사의 상징과도 같은 탑의 결계가 요동치고 있다. 하늘을 장악한 악마가 끊임없이 결계와 부딪친다. 충돌에서 생겨난 빗금이 수를 늘리고 있다. 점점 선명해지는 금은 위태로워 보이기 까지 했다.

“나는 마탑으로 향할게.”

“그럼 신전은 내가 맡을게. 성녀와 합류할 필요도 있으니까.”

여기서 전력을 나눈다. 함께 가면 좋겠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유피가 신전으로 향한다면 신석의 처분은 맡겨도 되겠지.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리라.

“란랑. 그쪽의 아가씨를 부탁할게.”

아리시엘의 시선에 유피는 말을 이었다.

“착각하지 마. 네가 다치면 알이 슬퍼하니까.”

“고, 고마워.”

아리시엘과 쌍둥이 자매를 응시하던 란랑이 유피를 보았다.

“황녀 전하는 괜찮으시겠어요?”

“나는 소피아가 있으니까.”

할 때는 하는 아이잖아, 하고 그녀는 덧붙였다.

뜻밖의 칭찬에 소피아는 볼을 긁적였다. 멋쩍다는 듯 그녀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알겠습니다. 잠시 떨어져 있어야 하니 조심하세요.”

“어머, 설마 내가 다칠 거로 생각하는 거니?”

“외상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내상을 말하는 거예요. 신성력. 다루실 생각이잖아요.”

마법만으로는 대처할 수 있는 적이 아니다.

부인하지 않는 유피의 모습에 란랑은 한숨을 쉬었다.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겠죠. 무운을 빌겠습니다, 황녀 전하.”

“너도. 마탑에서의 일이 해결되면 블러드 캐슬에서 보자, 알.”

“알았어. 몸조심해, 유피.”

아공간이 찢어진다. 검은 공간에서 세피로스의 지팡이를 꺼낸 유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 몇 가지 보험을 들어놓았으니까.”

“보험?”

“곧 알게 될 거야.”

정교하게 만든 인형이 유피의 손에서 날아올랐다.

은빛 궤적을 남긴 새는 이내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

황도는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가도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악마가 넘쳐난다. 지옥에서 풀려 난 악마의 고삐를 쥘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무장한 수비대가 종잇조각처럼 찢겨나갔다. 방패도, 검도. 창도. 악마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교전이 성립하질 않는다. 악마를 피해 달아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늑대에게 쫓기는 양 떼를 보는 것 같았다.

뿔뿔이 흩어진 병사들이 지휘관의 호령 앞에 모였다.

진열이 갖춰지고 거점이 만들어진다. 건물 안쪽으로 사람들을 피신시킨 수비대는 방패를 들었다. 그러나 몇 개의 대대가 모여도 시간 벌이밖에 되지 않는다. 보유한 무력은 이미 압도적인 차이를 보였다. 악마를 패퇴시킬 수 없다. 고기 방패가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럼에도 수비대는 전의를 잃지 않았다.

혼란은 길게 가지 않는다.

이곳은 제국의 심장, 황도 블러드 로열이다.

황도 수비대 5대대 단장 크라우스는 몇 번째일지 모를 욕설을 내뱉었다.

“이게 뭐냐고. 빌어먹을.”

오늘은 그에게 있어 경사스러운 날이 될 예정이었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간신히 낸 휴가였다. 모처럼 사랑하는 아르메와 만날 생각에 들떠 있었던 크라우스는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어떤 멘트를 꺼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된 거지?

황도 내에서도 고급 식당인 고양이의 손짓 창가 자리에 예약을 마치고, 옷도 유명한 노블웨어의 양복으로 차려입었다. 몇 달 치 급료를 털어서 반지마저 준비했다. 오늘이야말로 그녀에게 청혼할 생각이었는데, 왜! 어째서! 하필 오늘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왼쪽 벽을 만들고 있던 부하들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비명과 함께 부서진 방패가 날아왔다.

“대장! 파르메가!”

“알고 있어. 누에. 소란스. 좌측을 보강해!”

“보강은 무슨! 더는 방패가 없어!”

“방패가 없으면 검으로라도 막아. 어떻게든 버텨!”

“젠장. 버티라고 해도 말이지, 대장. 이것들은 일반 마물이 아니라고. 어디서 이런 괴물들이….”

“앓는 소리 내지 마라! 우리가 뚫리면 다 끝이다, 바보들아!”

이 벽 뒤에 있는 것은 황도의 시민들이다.

임시로 만든 구호소 안에는 그들이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이 사태에 갈 곳을 잃고 방황하던 사람들이다. 마침 5대대의 초소가 근처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전부 죽었을지도 모른다.

무기를 들고 저항을 반복한다.

다행히 금방 무너질 것 같았던 벽은 의외로 선전하고 있었다. 마물을 쓰러뜨려서 그런 것이 아니다. 마물의 수는 줄지 않는다. 쓰러뜨릴 수단이 없으니까. 벽이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이 거점을 본 다른 대대의 병사들이 합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마탑이 근처인데. 마법사님들은 다 어딜 간 거야?!”

“조금만 버텨. 이제 곧 올 거라고!”

크라우스는 고개를 돌려 마탑을 바라보았다.

마탑도 상황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곳에 있는 마물은 몇 되지 않지만, 마탑에는 그림자가 드리울 정도로 많은 마물이 모여있었다. 지원이 온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크라우스도 정말로 지원이 올까, 라는 불안감이 피어나고 있었다.

대여섯 마리도 안 되는 마물을 상대로 이렇게 고전하고 있다.

이 마물의 수십 배나 되는 마물이 모인 마탑은 어떨까. 말할 필요도 없다. 결계가 버티고 있는 것이 용하다. 고전이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전투가 이어지고 있을 터다.

“대장!”

“이번엔 또 뭐야!”

상가에서 방파제로 벽으로 쓸만한 가구를 꺼내오는데, 한 부하가 그를 불렀다.

“좌측이!”

“뚫린 거냐?”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조금 전 뚫릴 뻔했던 왼쪽 열을 확인한다.

검붉은 빛으로 물든 마물이 날뛰던 그곳에는 처음 보는 얼음 동상이 생겨 있었다.

“뭐?”

아니, 잘못 봤다. 벽을 두들기던 바로 그 마물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상황을 보고해야 할 부하들은 그처럼 말문이 막혀 있었다.

“대장, 우측의 마물이!”

“…….”

시선을 돌린다. 이쪽도 마찬가지다. 괴물과도 같은 힘을 휘두르던 놈의 움직임이 멎어 있었다. 그 몸에 성에가 어린다. 퍼져가는 한기에 먹히듯이 마물이 얼어붙었다.

그것으로 전투는 종결되었다.

이 상황을 매듭지은 남자가 병사들 사이에서 나왔다.

“이곳을 이끄는 지휘자가 어느 분인지 알 수 있을까요?”

“황도 수비대 5대대 단장, 크라우스 슈바이츠입니다.”

마물을 단숨에 제압한 이는 검은 연미복을 차려입은 집사였다.

뒤에서 따라오는 메이드와 아직 어린 아가씨를 보고 크라우스는 금방 상황을 파악했다.

다행이다.

어느 귀족인지는 모르겠지만 호위 기사와 함께 거리에 나와 있었던 모양이다.

“중앙대로 쪽에 몇 개의 대대가 모여있습니다. 민간인들과 함께 그쪽으로 향하세요. 마탑에서의 일이 해결되면 바로 지원을 보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혹 어느 분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 물음에 집사는 아가씨를 보았다. 아리시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제국의 수호자. 제국의 적을 멸하는 존재입니다.”

그것은 루드비히 가를 상징하는 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