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
오늘의 호랑나비 객잔
낙양의 호랑나비 객잔은 요 몇 년 사이 이름이 높아진 객잔 중 하나였다.
초기에는 말도 탈도 많았던 객잔이다. 손님은커녕 드나드는 사람이 없어서 며칠 내로 망할 거라는 둥. 곧 가게를 내놓을 거라는 둥. 이래서 혼혈은 안 된다. 며칠 내로 장사를 접고 떠날 거라고. 주변 상가 사람들은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지만, 그것도 벌써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호랑나비 객잔은 현재 발 디딜 틈 없이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커진다. 신경질을 부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즐거워하는 이들도 많았다.
“쓸만한 무기가 없다고 투정을 부리니 말이야. 요즘 아이들은 눈이 까다로워졌다니까.”
“전쟁터에서 의지할 수 있는 건 지 몸뚱아리와 손에 쥔 무기뿐이니, 당연한 거 아니겠는가? 최소한 검이 부러져서 죽는 일은 없어야지.”
“아, 물론 그렇지. 하지만 푼돈으로 명검을 달라고 하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해야겠나?”
“그건 외상으로 달아둬야지.”
“외상은 무슨. 언제 죽을지 모를 사람 상대로 그러라는 건가? 아주 망하라고 제사를 지내게나.”
당치도 않은 소리라는 듯 도공 곽부는 목소리를 높였다.
술병을 기울인다. 두 잔을 전부 채우고 보니 남는 게 없다. 술을 찾는 남자의 눈에 하얀 병이 들어왔다. 타이밍 좋게 술을 가져온 것은 호랑나비 객잔의 간판 아가씨, 송이였다.
“노주 두 병 추가. 맞으시죠?”
“이야. 역시 송이라니까. 어떤가? 자네만 괜찮다면 지난번에 말한 이야기를 진행하고 싶은데.”
“또 그 이야기 말인가요? 죄송하지만 아직은 생각이 없어요.”
“음, 희연 씨 때문인가? 그래도 그녀는 결혼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호랑나비 객잔의 아름다운 두 주인.
묘령의 나이를 넘겼음에도 홀몸인 여인을 떠올린 곽부는 술잔을 매만졌다.
“사람은 괜찮은 데 말이야. 들어오는 중매는 전부 거절하고. 역시 눈이 너무 높은 걸까.”
“그러네요. 어디의 황자님이라도 오시지 않는 한 힘들지도요. 이러다가 저도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버리겠는데요.”
쓴웃음을 머금은 그녀의 목소리에 두 남자는 껄껄 웃었다.
단예는 좀 더 자신의 행복을 챙기라고 말했지만. 희연은 그렇지 못했다. 낭만적인 것을 좋아하는 단예와는 다르게 희연은 남자를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았다. 기녀 출신인 자신을 포함해, 가족이나 다름없는 단예와 송이를 배려해줄 수 있는 남자. 거기에 경제력은 물론이고, 성격도 따져본다. 혼혈에 대한 선입견도 없어야 한다.
그렇게 하나하나 따지고 나니, 괜찮은 상대는 한 명도 남지 않았다.
송이는 다음 주문을 받으러 걸음을 옮겼다.
이쪽은 조금 나이가 있다. 볼에 큰 흉터가 난 노인의 이름은 이화. 눈을 살며시 뜬 그는 송이로부터 술병을 받았다. 그러나 내용물이 다르다. 잔을 채운 것은 술이 아닌 녹차였다.
“네가 실수하는 것은 오래간만에 보는군. 내가 시킨 것은 술이다.”
“알고 있답니다. 오늘은 그만 드셨으면 해요.”
“언제부터 네가 내 안사람이 된 거냐. 바가지 긁는 소리는 집에서만 듣고 싶다. 돈이라면 충분하다. 술이나 가져와.”
“죄송합니다. 팔 수 없어요.”
송이의 목소리가 강해졌다.
이화는 고개를 들었다. 이미 노주를 두 병이나 마신 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여기서 팔지 않겠다면 다른 곳에 가서 마실뿐이다.”
“고집부리지 말아요. 대신에 제가 말벗이 되어드릴게요.”
“가게가 이리 바쁜데. 간판 아가씨가 자리를 비우겠다는 건가?”
“단골손님을 위해서니까요.”
자리에 앉은 송이는 자신의 잔을 채웠다.
그녀의 빈 자리는 다른 점원이 대체한다. 바쁜 시간 때라 오래 있을 수는 없지만, 몇몇 이야기를 듣는 건 가능하리라. 자신의 앞에 앉은 송이의 모습에 이화는 애꿎은 잔을 두들겼다. 주변을 오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런저런 소음 사이에서 들려오는 ‘화친’이라는 단어에 송이가 입을 열었다.
“최근 제국과의 전쟁이 끝난다고 난리잖아요.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많고. 무엇보다 왜 우리가 굽히고 들어가냐고 말이 많던 것 같은데. 아저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너는 전쟁을 모르는 세대던가. 좋은 시대가 왔군. 정말로.”
이화는 과거 제국과의 전쟁에 참전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리 떠올리고 싶은 기억이 아니다. 끔찍한 당시의 상황을 머릿속에서 떨쳐낸 그는 말을 이었다.
“전쟁이 끝난다는 건 기뻐할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많잖아요.”
“용서할 수 없는 거지. 제국이 우리에게 저지른 짓은 시간이 흘렀다고 그냥 넘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러나 천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긴 반목은 우리 모두를 피폐하게 만들었어. 우리도 알고 있다. 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이라고. 우리가 제국의 손에 소중한 이를 잃었듯이, 제국도 우리에게 소중한 이를 잃었지. 끝나지 않는 악순환이야. 전쟁은 미친 짓이니까. 누군가는 연쇄의 사슬을 끊어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분쟁은 끝나지 않아.”
“알면서도 그럴 수가 없다. 억지로 이야기를 진행하면 반발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두 황자님이 어려운 선택을 하셨네요.”
“대단하신 분이지. 혼혈에 대한 정책도 그렇지만, 캘러미티와 유지하는 전선도 놀라울 뿐이다. 이전의 우리였다면 몸을 쓸 수 있는 동포들은 전원 장성으로 징집되었을 터야. 한데, 그렇지 않지. 방비는 물론이고 대책도 완벽해. 마녀들도 당연하다는 듯이 두 황자를 지지하고 있어. 어쩌면 우리는 시대의 전환점에 서 있는 걸지도 모르지.”
소문에 의하면 화친과 동시에 교류단이 꾸려진다는 것 같다.
손님의 신분으로 서로의 나라를 방문하고 이는 곧 교역으로 이어지겠지.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났던 금지된 숲은 두 나라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고, 이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광경으로 이어지리라.
물론 그 평화가 얼마나 지속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전쟁이 길었던 만큼 평화 또한 짧지는 않겠지.
두 나라가 생각하는 것은 똑같을 터이니.
“송이야, 아직 멀었니?”
“가봐라, 꼬마 아가씨. 제국과의 전쟁이 끝날 뿐이지. 네 일이 끝난 건 아니니까.”
“오늘은 더 안 마신다고 약속하면 갈게요.”
“마실 필요도 없다. 이미 취했으니.”
불안하게 이화를 바라보던 송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방 앞에는 몇 개나 되는 접시가 쌓여있었다. 각 번호표를 확인한 그녀는 빠르게 음식을 나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왔다 갔다를 반복했을까. 한차례 손님이 빠져나간 걸 확인한 송이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수고했어. 여기 냉차.”
“고마워요, 언니.”
계산대를 보고 있던 희연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홀을 보고 있던 다른 점원들은 2층으로 올라갔다. 저녁까지는 꽤 시간이 있으니, 다들 마음 편하게 휴식을 취할 터다.
“다른 때보다 더 바쁜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지. 분위기가 이러니 다들 낙양으로 몰리는 거 아니겠어? 날파리만 날리는 것보다야 좋지. 가게가 잘 돼야 우리도 먹고사니까.”
“수전노 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언니.”
“나도 변했나 봐. 왜 마담이 돈을 갖고 그렇게 뭐라고 했는지, 요즘은 이해가 가거든. 걸핏하면 돈 돈 그래서. 무슨 돈 귀신이 씌웠나 했는데. 사람이 먹고살려면 무엇보다 돈이 필요하다니까.”
“단예 언니는 잘 모르는 것 같지만요.”
“우리가 안 왔으면 귀화루로 다시 돌아왔을지도 몰라.”
쿡쿡, 하고 두 사람이 웃었다.
마침 이야기의 주인공이 객잔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곁에는 낯익은 두 사람이 있었다.
“나 왔어! 다들 힘들진 않아?”
“그렇게 생각하면 이 시간에 나가지 말고 좀 도와주지그래?”
“누가 들으면 놀고 온 줄 알겠다. 돼지고기라면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돼. 호 아저씨에게 신세 지기로 했어.”
“고생하셨어요, 언니. 그리고…. 또 뵈네요, 아란 씨. 아랑 씨.”
낙양의 외곽에서 약방을 운영하는 부부다.
작은 몸집과 달리 실제 나이는 꽤 있는 편으로. 송이와 비슷한 또래의 딸아이가 있었다.
「다들 안녕하세요.」
“오야, 시간을 잘 맞춰 왔구마.”
아랑은 테이블 위로 약가방을 올렸다.
하얀 판을 치운 아란 씨는 가방 안쪽에서 약을 꺼내기 시작했다. 희연의 눈이 반짝거린다. 이번에 그녀가 신청한 약은 피부에 생기는 종기를 지우는 약이다. 다른 곳과 달리 아란 씨가 가져다주는 약은 효과가 확실했다. 요 며칠간 과로로 껄끄러워진 피부가 탄력을 되찾고, 짙게 드리웠던 다크 서클도 옅어졌다.
가격이 조금 세긴 하지만,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고 할까.
「희연이가 신청한 약은 여기 있어요.」
“매번 고마워, 아란 씨.”
신기하게 바라보는 단예의 눈을 피하듯 희연이는 소매 밑단으로 약을 숨겼다.
다른 점원들이 신청한 약도 있는지, 아란 씨는 계속해서 약을 꺼냈다.
“마, 우리 공주님에게 들어온 연락은 없나?”
“제국으로 출발했다는 모양이에요. 아마 루드비히 저택을 먼저 방문할 거라고 그랬는데. 그 이후로는 들어온 이야기가 없어요.”
“결국, 제국으로 향한 모양이구마. 내 그렇게 거기는 가지 말라고 그랬는데. 으음….”
「당신은 너무 걱정이 많아요. 누구 딸인데 어련히 잘 하지 않겠어요?」
아란의 글을 본 아랑은 신음을 흘렸다.
“아니, 뭐 그야 그렇겠지만. 그래도 걱정되지 않나?”
「무소식이 곧 희소식이에요. 좀 더 란랑을 믿어줘요, 당신.」
알겠죠? 하고 아란은 아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희연이가 응시하고 있었다. 송이는 좋아하는 언니의 손을 잡았다.
“보기 좋네요. 그렇지 않아요, 언니?”
“글쎄. 나는 잘 모르겠네.”
“좋은 사람을 빨리 찾아야 할 텐데 말이에요.”
“…….”
“흐흥. 그러네. 그래야 우리 희연이도 시집을 갈 테고. 송이도 새색시가 될 텐데 말이야.”
단예의 능글거리는 미소에 희연은 고개를 돌렸다.
분하게도 대꾸할 말이 없었다.
머릿속이 꽃밭이 이 친구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지아비가 있는 몸이었으니까.
“급하면 부담 없이 말해. 단예가 좋다는 사람은 널렸으니까.”
“그 대머리라면 절대로 싫으니까.”
“대머리 아닌데….”
*&*
고서적이 가득한 방 안에서 연보랏빛 머리카락이 쫑긋거렸다.
무언가 찾고 있는 서적이 있는 걸까. 책이 휙휙 하고 날아갔다. 시약병과 마도구가 같이 있는지라. 몇몇 물건은 날아온 책과 부딪쳐 내용물을 드러냈다. 이상한 냄새가 방 안에 차오른다. 코끝을 쏘는 것 같은 독특한 향. 방으로 들어온 강의 마녀 루이스는 한숨을 쉬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니, 에르체베트.”
자신의 방에 들어온 불청객은 호수의 마녀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몰래 들어오다니. 장난이라고 해도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에르체베트.”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은 걸까.
날아오는 책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는다. 귀찮다는 듯 루이스는 손을 들었다. 아무렇게나 날아가던 책이 그녀의 마나를 타고 차곡차곡 쌓여갔다. 깨진 시약병을 되돌리고, 구겨진 책을 복원한다.
이쯤 되면 루이스가 들어온 걸 알아차리고도 남는다.
하지만 에르체베트는 여전히 책을 뒤지고 있을 뿐이다.
일부러 모른 척하는 거다.
“제국은 어땠어?”
“그냥 사람 사는 곳이었어.”
“이 말에는 대답해주는 거니. 너란 아이도 참.”
“애 취급하지 마.”
“그래. 그래.”
앉을만한 자리를 만든 루이스는 천천히 엉덩이를 내렸다.
그녀의 사역마인 고양이, 마리 씨가 스콘이 담긴 통을 가져왔다. 바삭바삭한 식감이 좋다. 스콘을 먹으며 루이스는 물었다.
“사람 사는 곳이라. 제국의 인족은 다 죽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 관광이 정말 즐거웠나 봐. 생각이 이렇게 바꿨을 줄이야.”
“지금 놀리는 거야?”
“아니. 대견하다고 말하는 거야. 큰 언니가 봤으면 기뻐했을 거야.”
“쳇.”
산의 마녀는 이제 이곳에 없다.
그랜드 위치의 자리는 강의 마녀인 루이스가 물려받았다.
“루이스는 알고 있었어? 신석이 그런 상태라는 걸.”
“언니라고 불러야지. 에르체베트. 제국에 다녀오더니만, 더 제멋대로 구는구나. 그건 그랜드 위치만이 볼 수 있는 서적이야. 아무리 너라도 함부로 봐서는 안 돼.”
“대답해줘. 신석은 정말로 한계에 가까웠던 거야?”
스콘을 만지던 루이스의 손이 멈췄다.
무얼 보고 있나 했더니만….
“그래. 아주 위험한 상태였다는 모양이야. 제국이 손을 쓰지 않았다면 지옥도는 물론이고, 지옥 자체가 강림했을지도 모르지.”
“그럼 제국의 선택이 옳았다는 거야?”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어. 우리의 선조가 손을 놓고 당하지만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만약을 가정해도 의미는 없잖아? 그러니까 에르체베트. 제국은 어땠는지 좀 더 이야기해 봐.”
“또 그런 이야기나 하고 있고.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가보지그래?”
“어? 그래도 될까? 그럼 마녀의 산은 에르체베트가 담당하는 거로.”
“언니.”
“알고 있어. 알고 있어. 울지 말렴, 귀여운 동생아.”
“누가 운다는 거야.”
루이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르체베트는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
마음도. 몸도 다 성장하지 않은 그녀를 루이스는 뒤에서 끌어안았다.
“넌 정말 어리광쟁이구나. 그러니까 유피에게 끌렸던 거겠지.”
“유피 언니가 보고 싶어.”
“그래. 그래. 나도 보고 싶네. 어딜 그리 싸돌아다니고 있는 건지.”
잘 지내고 있을지 모르겠어, 하고 루이스는 한숨을 쉬었다.
“진정되면 장성에 한 번 다녀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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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거기는 왜?”
“마기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아. 내 기우라면 좋으련만….”
그렇지는 않겠지. 그녀의 불안한 예감은 틀리는 일이 없었다.
그것은 이미 예지에 가깝다고 해도 좋다. 오늘날 이 자리에 그녀가 있게 만들어준 힘. 마녀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심상치 않은 힘이다.
“자매들이 전부 움직여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전란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