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7화. 대마법사 카라스(2) (17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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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 카라스(2)

“황도로 들어온 캘러미티의 소재를 쫓고 있어.”

“캘러미티라면 북부의 야만인들을 말하는 거군. 그들이라면 세인트 월 위에 있다. 올라가게나. 내 특별히 마탑의 전송진을 이용하는 걸 허락해주겠네.”

“나는 황도라고 말했어.”

“마족은 모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사악한 이교도가 신성한 이 땅에 들어오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아무리 검을 잘 숨긴다고 해도, 호주머니를 뚫고 나오는 날은 막을 수 없어. 민족배반자는 어디에나 있어. 불온분자는 제거한다고 해서 제거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 제국에게만큼은 통용되지 않는 이야기다. 루미에르 교를 믿고 따르는 우리는 이 신성한 대지에, 이 터전에 야만인의 발길이 닿는 걸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독실하지 않은 나조차도 그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하면, 다른 신도들은 어떻겠는가. 설령 목 밑에 검이 드리워진다 해도 그들을 들여보내지 않아. 그것이 신성 델리아 제국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있는데?”

“레이디는 마족이지. 캘러미티가 아니야. 둘 다 불청객인 건 확실하지만, 적어도 마족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네. 그렇지 않은가?”

카라스의 까마귀가 그렇지! 그렇지! 하고 대답했다.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제국이 우릴 이리 높게 사줄 거로는 생각도 못 했어.”

“피차일반이지 않나. 서로 검을 맞댄 시간이 길었던 만큼.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고 있지. 천 년의 시간 동안 제국이 쓰러뜨리지 못한 적은 너희 마족뿐이니까.”

서로 이빨을 드러내면서 반목해온 지도 어언 천 년. 전선은 소강상태에 들어섰고, 이전만큼 마족을 두려워하는 이들도 줄어들었다. 제국이 직접 쳐들어가지 않는 한, 마족은 위협이 되지 않는다. 마족도 구태여 국경선을 넘어오는 일은 없다. 이는 북부의 캘러미티와는 극명하게 갈리는 성향이었다.

그 결과 마족을 향한 적대감은 시간이 흐를수록 퇴색되었다.

일각에서는 마족과 교류하는 건 어떻겠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시대는 변했다.

계속되는 전쟁은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사람들은 평화를 원했다.

“지금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건 마족이 아니라 캘러미티지. 그리고 마족은 캘러미티와 적대하고 있다. 적의 적은 동지다.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도 하루 이틀 일이다. 우리가 자네들이 내민 손을 잡지 않을 이유가 없어.”

“성녀가 자신의 이름으로 보장하더군. 근시일 내로 우리와 화친을 맺을 거라고.”

“성녀를 만나고 왔는가?”

“그래. 프랑소와가 당신을 소개했어.”

유피는 알베르트를 향해 예의 물건을, 하고 말했다.

몽환기가 아니다. 그 마도구는 유피의 아공간 속에 처박혀 있었다. 집사는 책상 위로 나무 조각상을 올렸다. 썩은 루미너스 일루젼이 열린 나무는 불길한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내가 만든 마도구를 왜 자네가 갖고 있지?”

“이걸 만든 게 당신이야?”

“교황 성하의 부탁을 받아 만든 물건이다. 한데, 안에 담긴 힘은 다르군. 내가 만든 조각상에는 신성력이 담겨 있었지, 이처럼 마기가 담긴 마도구가 아니었어. 혹 자네가 넣은 건가?”

“실례인 소리를 하네. 우리는 이런 음습한 방식은 사용하지 않아.”

맞선다면 정면에서다.

뒷공작은 부리지 않는다.

“현재 제국 내에서 돌고 있는 마도구야. 이 마도구에는 마기가 담겨 있어서 말이지. 루미너스 일루젼이라는 독특한 열매가 열려. 있는 그대로 사용하면 마약과 같은 물건이지만, 신성력을 바탕으로 다루게 되면 비정상적인 마기를 손에 넣게 돼.”

“이해할 수가 없군. 내가 만든 마도구를 양산한 물건으로 보이는데. 그리 간단히 다룰 수 있는 물건이 아니네. 마나도 그렇지만, 신성력도 일정 이상이 아니라면 반응하지 않아. 하나 묻지. 독특한 열매가 열린다고 했지. 혹시 원료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과연 대마법사. 이야기하기 편하네. 원료는 인족의 시체야.”

“사람 그 자체를 양분으로 삼는다는 건가. 악랄한 수법이군. 어떤 녀석이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과하게 저질러주셨어. 그래. 교황 성하는 지금 어디에 있나?”

“교황님이라면 부재중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알베르트의 대답에 카라스가 반문했다.

“저희도 자세한 사정은 모릅니다. 성녀님에게 들었을 뿐입니다.”

“또 성녀인가.”

썩 내키지 않는다는 듯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프랑소와 성녀를 너무 신뢰하지 말게. 나는 교황 성하보다 그녀가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니까.”

“비오 교황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이번 대의 교황 성하는 속물이라고 말이죠.”

“사사건건 성녀와 부딪친다는 소문은 들었겠지. 사실이다. 이전이라면 모를까. 교단을 이끄는 지금의 비오 교황은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 사람이지. 하지만 그렇기에 믿을 수 있다. 적어도 자신의 이득에 반하는 짓은 저지르지 않아. 기반을 충실하게 다지고, 그 이후에 루미에르 교의 권위를 세우고자 하지. 반면, 성녀는 그렇지 않아. 여신님의 말씀이라는 불확실한 것에 집착하지. 무엇을 밟고 서 있는지, 무엇을 희생해서 서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지 않아.”

“성녀가 이상론자라는 말이구나.”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

딱 잘라 말하는 카라스의 모습에 유피는 시선을 들었다.

다프네 신전에서 시작된 신석의 빛은 이곳까지 닿고 있었다. 마기를 억누르고 신성력을 활성화하는 축복의 빛. 신전 내에서는 신석의 힘을 끌어내는 사제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겠지.

그리고 성녀는 한쪽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당신의 말도 일리가 있어. 내가 만나고 온 성녀는 확실히 이상론자에 가까운 사람이었어. 하지만……. 성녀라면 그래야 하지 않겠어? 난 딱히 그것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마법사가 할 말은 아니군. 그것도 마족이.”

“예전의 나라면 당신과 같은 의견이었을 거야. 그래도 지금은 아니야.”

“확실히 자네는 특이한 마족이군. 그 고집불통인 성녀가 대면한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

마녀를 응시하던 마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이번에는 성녀의 의사대로 움직여주지. 나는 교황을 추적하겠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지.”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카라스 님.”

“자네가 감사를 표할 바는 아니야. 그런데 뒤쪽에 있는 아가씨는 누구지? 특이한 마나를 갖고 있군. 마족은 이런 마나도 다룰 수 있는 건가?”

“그쪽은 인족이야.”

“인족?”

카라스는 흥미롭다는 듯 아리시엘을 바라보았다. 잔을 내려놓은 아가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치맛자락을 잡은 그녀는 정중히 예를 갖췄다.

“죄송합니다. 인사가 늦었군요. 아리시엘 루드비히라고 합니다, 카라스 님.”

“루드비히? 그러고 보니 그쪽 집사도 루드비히의 사용인이라고 했지.”

아리시엘. 아리시엘 루드비히. 익숙한 이름인데……. 하고 곰곰이 생각하던 카라스가 손을 부딪쳤다.

“리 하델이 그랬지. 루드비히 가의 귀빈이 마탑의 문을 두드렸다고. 설마 자네가 검의 영애인가?”

“그렇습니다.”

부담스러운 칭호라는 듯 아가씨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허, 이것 참. 어려운 결정을 했군. 자네도. 자네의 아버님도.”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고. 아버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대가 변한다면 우리도 당연히 그 흐름을 타야 한다고요. 고여 있는 것은 썩기 마련이니까요.”

“라시엘 공작은 소문과 달리 사고방식이 유연하군. 우리 가문의 가주도 조금 배웠으면 할 정도야. 그 양반은 머리는 좋은데. 꽉 막힌 구석이 있다니까.”

라인하르트 크로만.

현 크로만 가의 가주를 떠올린 대마법사는 혀를 찼다.

“그래, 마법은 언제부터 접한 건가?”

“아직 정식으로는 배우지 못했습니다. 스승님을 찾는 중이에요.”

“아직?”

아리시엘이 마탑에 들어온 지 불과 수일째다.

마나의 운용 방법은 물론이고, 그것을 어떻게 접해야 하는지도 들은 것이 없었다. 마법의 속성은 어떻고, 종류는 어떠하며, 각 방면에 관해 전문가는 누가 있는지. 그중에서 어떤 스승을 찾아가는 것이 좋을지. 말 그대로 입문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자네의 마나는 이미 싹을 피웠어. 목에 걸고 있는 마석 때문인가? 아니. 설령 마정석이라고 해도 그런 건 불가능해. 그럼 이건 뭐지?”

“그리 간단한 게 아니야. 그쪽의 아가씨는.”

잔을 내려놓은 유피가 지나가듯이 중얼거렸다.

“음……. 정령과 계약을 맺었는데. 혹시 그것 때문에 그런 건 아닐까요?”

“정령의 냄새와 마나는 별개의 것이네. 됐네. 한번 확인해보면 알겠지.”

어디 보자, 하고 카라스는 손을 올렸다. 그 어깨에 앉아 있던 까마귀가 날아올랐다.

위층으로 올라간 녀석은 부리에 작은 돌을 문 채 돌아왔다. 아가씨에게 다가온 녀석은 그 앞에 돌을 떨궜다.

“잡아라! 잡아라!”

돌은 거무튀튀한 색을 띠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조약돌이다.

“마석이네. 만진 사람의 마나를 확인할 수 있는 일종의 테스트기지. 만져보게나.”

아리시엘은 손을 뻗었다.

하얀 손길이 닿자 거무튀튀한 마석의 색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아가씨의 마나다. 환한 금빛이 방을 가득 채웠다. 유피와 카라스는 빛 속에서 마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빛은 강하다. 확실히 마나의 소유량은 많다. 이 정도의 마나를 소유한 술사는 마탑 내에서도 한 손으로 꼽을 정도겠지.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다음 순간, 방을 가득 채웠던 금빛이 마석에서 빠져 나왔다. 아리시엘의 손으로 다가온 금빛의 실은 천천히 그녀의 손을 맴돌기 시작했다. 손목을 타고, 팔을 타고, 어깨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한 금빛은 이윽고 그 곁에서 반짝였다.

실의 끝이 아리시엘의 볼을 간지럽혔다.

아가씨는 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손끝이 금빛의 실과 맞닿았다. 단지 닿았을 뿐인데, 그 행위만으로도 마나가 춤을 춘다. 그 모습은 마치 마나가 기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무의식중에 마나를 인도하는 건가? 설마 그런 일이…….”

“가능하지. 세계의 축복을 받은 아이라면.”

그리운 것을 봤다는 듯 유피의 목소리는 살짝 젖어 있었다.

“세계의 축복? 말도 안 되네. 그건 전설이야. 신화의 시대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지. 허무맹랑한 그런 말을 누가 믿겠나?”

“전설로 치부하는 건 너희 인족 뿐이겠지. 실제로 내 언니도 세계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었으니까.”

그것이 유피가 아리시엘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였다.

처음 보는 순간 알아차렸다.

할아범이 갖고 있던 신석을 목걸이로 갖고 있던 소녀. 알베르트가 받들어 모시는 아가씨. 저택에서 행복한 듯이 미소를 짓고 있던 소녀는 세계의 축복을 받고 있었다.

정말로 보기 드물게 나타나는 재능.

마도를 탐구하는 자들에게는 전설과도 같은 축복을 몸에 받은 아이.

그 재능은 항거할 수 없는 폭력에 가깝다.

아마 이 남자는 알고 있었겠지. 유피는 곁에 선 알베르트를 바라보았다.

그는 놀라워하는 기색도 없이 아리시엘의 곁에서 노니는 금빛의 마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압도적인 광경이군요.]

‘아가씨에게 어울리는 모습이네.’

[세계의 축복은 저주이기도 합니다. 마스터. 아리시엘 루드비히는 이 재능을 알아보는 이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랐을지도 모릅니다.]

‘이전과는 다르네. 아가씨는 무엇 하나 잃지 않았으니까.’

[그렇죠. 아무것도 잃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꼭 좋은 거로는 생각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아직도 아가씨가 싫은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저……. 그렇군요. 용서하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모릅니다.]

알베르트의 곁에서 아리시엘을 지켜봤기 때문이겠지. 천칭은 씁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네도 성장했구먼. 사춘기의 아이가 어른이 된 느낌이야.’

[여기서 아이는 제가 아니라 마스터겠죠.]

‘그런가?’

[그렇습니다.]

“검의 영애.”

“네?”

황홀경에 빠진 아리시엘을 카라스가 불렀다.

“내 제자가 되게나.”

“…….”

“그대가 가 보지 못한 세계로 이끌어주지. 아마 자네라면 내가 보지 못한 그곳까지 도달하는 게 가능할지도 몰라. 마도를 먼저 걸은 선배로서, 자네를 반드시 그곳으로 데려가 주지.”

카라스는 손을 내밀었다.

일평생을 탐구해온 미지의 신비를. 이 소녀와 함께라면 같이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두근거림에. 아리시엘 루드비히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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