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
마녀와 성녀(1)
마탑의 휴게실. 이른 아침부터 아리시엘을 찾아온 알베르트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가씨가 마탑에 입문한 지도 어느덧 5일째. 처음에는 불안감으로 가득했던 얼굴도 지금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듣고 있는 거야, 알?”
“물론입니다, 아가씨.”
집사의 대답에 아가씨는 얼굴을 찌푸렸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다.
“그럼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 말해봐.”
“마법을 접했는데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고 하셨죠. 처음부터 알고 있던 것을 사용하듯이 익숙하다는 말씀도요.”
“또.”
“나이드라 교수가 짜증 난다고 하셨습니다. 마나를 다루는 것도 이상하고, 비명이 들린다고 했더니 면박을 주셨다고요. 혹시 검의 소리를 잘못 들은 건 아니냐고. 대뜸 무시하길래 수업을 박차고 나오셨다고 말입니다. 제 사견을 드리자면, 너무 눈에 띄는 행동은 피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가씨는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마탑에서는 유명인사니까요.”
“…….”
아리시엘은 알베르트를 응시했다.
푸른빛으로 물든 두 눈에는 무언가 기분 나쁜 기색이 어려있었다.
“어디 불편하신지요, 아가씨?”
“아니, 묘하게 재수가 없어서.”
마카롱이 아가씨의 입안에서 부서졌다. 오도독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뭐,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받아.”
아리시엘은 쿠키가 담긴 작은 봉지를 꺼냈다.
“이건?”
“황도에 있는 기념일이래. 평소 신세 진 사람에게 쿠키를 선물하는 날이라던데?”
“그럼 아가씨가 직접?”
“나름 힘냈어.”
거절할 이유가 없다. 알베르트는 쿠키를 입으로 가져갔다.
달달한 맛이 퍼질 거로 예상했지만, 입안을 채운 건 아프기까지 한 매운맛이었다. 반사적으로 집사는 내공을 운용했다. 통증이 빠져나가자 얼얼해진 혀에 감각이 돌아왔다.
아가씨를 바라보니 흥미진진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맛있어?”
“네, 맛있습니다.”
“진짜?”
“그렇습니다.”
하나 더 쿠키를 입으로 가져간다.
맛있다는 듯 우물거리는 알베르트의 모습에 아리시엘은 쿠키로 손을 뻗었다.
모양새는 어디 한 군데 나무랄 곳이 없는 쿠키다.
킁킁, 한 번 냄새를 맡아본 그녀는 쿠키를 입으로 옮겼다.
“!”
아가씨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의 손이 잔을 찾았다. 정신없이 과일음료를 마신 그녀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혀를 쭉 뺀 아가씨는 열심히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이게 뭐가 맛있다는 거야?!”
“아가씨가 준 건 뭐든지 맛있습니다.”
“너, 진짜…….”
“아가씨가 만든 게 아니군요.”
쳇, 하고 아리시엘은 혀를 찼다.
“그래. 받은 거야. 눈이 깜짝 뜨이는 재밌는 맛이라고 들었거든.”
“그렇군요. 확실히 재밌는 맛이긴 했습니다.”
“난 별로 경험하고 싶지 않았어.”
노려보는 시선이 무섭다.
누구 때문에 경험하고 말았다는 듯 사뭇 힘이 들어간 눈이다.
숙소에서 챙겨온 마카롱을 한 상자 더 꺼낸다.
조금 화가 누그러들었는지, 아가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스승님은 누가 될 것 같습니까?”
“몰라. 실력만 놓고 보면 홍염의 마법사라는 슈뢰드리가 괜찮아 보이는데. 솔직히 괴팍해서 싫어. 어떻게 된 게 정상인 사람이 없다니까. 마법사라는 건 하나 같이 왜 그 모양인지 모르겠어.”
“실력만 놓고 본다면, 대마법사인 카라스님도 계시지 않습니까.”
“그 양반은 저 위에서 나오질 않아.”
고려할 것도 안 된다는 듯 아가씨는 위를 가리켰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마탑의 천장. 총장실보다 위에 자리 잡은 그곳은 대마법사의 공방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 방문이 열린 적이 없다든가. 이제는 아예 죽었다는 소문이 돌 정도라든가. 그녀는 껄끄럽다는 듯 덧붙였다.
“갔던 일은 어떻게 됐어? 잘 풀린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조금 막히긴 했지만,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그 건으로 오늘 신전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다프네 신전을?”
“네, 조금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고 사료되어서.”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아가씨.”
마카롱을 오물거린 아리시엘은 쪽, 하고 손에 묻은 크림을 빨아먹었다.
*&*
다프네 신전.
제국과 천년의 역사를 함께해온 역사적인 건물이다. 본래 블러드 캐슬에서 보관 중이던 신석을 옮겨온 장소로. 황도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반드시 들려야 하는 관광 명소로 손꼽히는 장소였다. 일반인들에게 열린 구간은 몇 되지 않는다.
사제들이 활동하는 내실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고, 바깥 미사를 관장하는 홀만이 공개되어 있었다. 그것도 몇몇 미사가 행해질 때만 들어갈 수 있다. 일정을 조절하지 않으면 다프네 신전을 찾아와도 앞에서 발길을 돌리는 일도 있었다.
알베르트 일행이 대기하고 있는 곳은 다프네 신전 내에서도 귀빈을 모시는 응접실이었다.
하얀색과 금색이 기조를 이루는 방 안은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역대 교황 성하들의 초상화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자수가 들어간 법의와 루미에르 교의 글귀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 의자와 테이블. 가구도 장인들의 손길이 닿은 건지 세심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알베르트는 소파 쪽을 쳐다보았다.
부드러운 의자에 몸을 맡기고 있는 것은 소피아와 란랑이다. 소피아는 루미에르 교의 경전을 살펴보고 있었고, 란랑은 피곤하다는 듯 눈을 감고 있었다.
의자에 앉은 유피는 테이블을 두들기고 있었다.
다리를 꼰 그녀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언제나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레이첼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 며칠간 지하수로를 탐색한 유피는, 결국 공작령에서 올라온 루미너스 일루젼을 찾지 못했다. 수로 중앙에서 자라는 거목을 제외하고는 단서가 끊겨버렸다. 장성한 나무는 사람의 사체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열매는 보이지 않는다. 그 점을 이상히 여긴 유피의 물음에 수로의 사람들이 말하길. 원래 열매가 맺히지 않는 나무라는 모양이다.
블러드 트리에서 재배 중인 묘목들과는 다르다.
완성된 루미너스 일루젼이 맺힐 거로 생각한 거목은 열매를 만들 수 없는 나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하수로를 계속 조사했지만, 조사를 거듭할수록 나오는 사실은 하나였다. 이곳은 블러드 트리에서도 발을 붙이지 못한 빈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양지에서는 활동할 수 없는 사람들. 음지의 일을 도맡아 처리하며 하루하루 목숨을 연명하는 이들이 모여 이룩한 마을이다.
사회 내에서도 최하위에 속하는 약자들.
그런 그들을 억지로 살리고 있는 것이 모란다와 하로. 갤메크라는 길드의 간부들이었다.
모란다는 지하수로의 전체적인 관리를.
맨홀을 이용해서 들어온 알베르트 일행이 들어온 입구는 본래 사용되지 않는 출입구다. 루나 평원에서 이어지는 지하길이 있었는데, 그쪽이 지하수로의 입구라는 모양이다.
하로는 지하수로와 환락가의 연결을.
양지는 그들을 받아주지 않는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음지의 일을 처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연결책이 되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었다.
갤메크는 지하 투기장을.
고상한 취미를 가진 귀족들을 상대로 여는 시합이다. 지하수로 내에서도 가장 많은 돈벌이가 되는 곳이다. 투기장의 대전료는 대부분 식재료로 빠지고 있었다.
유피가 꼰 다리를 몇 번이나 더 바꿨을까. 기다리던 노크 소리가 났다.
유피는 방 안으로 들어온 레이첼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늦었네.”
“죄송합니다. 오늘은 소개해드려야만 하는 사람이 있는지라.”
고개를 숙이는 레이첼의 뒤로 한 여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유피와 마찬가지로 은발이 아름다운 여자였다.
기억 속에 있는 얼굴이다.
무심코 알베르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로 아르웬 성녀를 쏙 빼닮았군요.”
성녀 프랑소와.
루미에르 교의 성녀가 차분히 방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머니를 아나 보네?”
직감적으로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본 걸까. 프랑소와를 응시하는 유피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초면에 반말은 조금 어떤가 싶군요, 마녀.”
“너한테 존댓말을 쓸 이유가 없어, 성녀.”
그녀의 앞으로 다가온 프랑소와는 자리에 앉았다.
레이첼이 내온 밀크티와 쿠키가 테이블 위에 차려졌다.
“설마 아르웬 성녀의 따님이 이런 분일 거로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실망이 큰가 보네. 미안해서 어쩌지. 보다시피 교양이라고는 배우지 못해서 말이야.”
“괜찮습니다. 제가 이해해야죠. 귀한 피를 이은 것과는 별개로 마족 사이에서 자라난 사람이니 말입니다.”
“말만 번지르르한 온실 속의 화초와는 다르지. 황도에서 애지중지 자랐으니, 당연히 익숙하지 않을만해.”
“온실 속의 화초? 설마 황도를 온실이라고 부른 건가요? 어리석군요. 여기는 전장이나 다름 없습니다.”
“진짜 전장에 나가본 적도 없으면서 무슨 소리래.”
“검이 오가는 곳만이 전장은 아닙니다.”
“당연하지. 전장은 정념과 광기가 몰아치는 미친 장소니까.”
성녀와 마녀의 시선이 교차했다.
두 사람 다 물러설 생각이 없다. 알베르트는 기 싸움을 벌이는 유피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눈에 실려 있던 힘이 빠진다. 알았다는 듯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좋아. 성녀가 나한테 무슨 볼일이야?”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프랑소와는 입을 열었다.
“지하수로에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당신이 원하는 대로 갔다 왔지.”
“그렇다면 전부 봤겠군요. 부끄럽지만 그 모습은 저희 루미에르 교가 만들어낸 광경입니다.”
“가진 자가 있으면, 가지지 못한 자가 생기기 마련이야. 모두가 행복해질 방법은 없어. 행복이라는 의자는 언제나 그 수가 정해져 있으니까. 의자에 앉지 못하는 사람은 생겨날 수밖에 없어. 하지만 행복의 척도는 다 다른 법이야. 성녀인 당신이 그들을 불쌍히 여길 필요는 없어. 적어도 내가 본 지하수로의 사람들은 웃음을 잃지 않았으니까.”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행복을 구가하면서 살아간다는 거겠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선택조차 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싶습니다.”
양지에서 살아갈 것인가.
음지에서 살아갈 것인가.
그 권한조차 그들에게는 없었다.
음지로 떨어진 그들은 두 번 다시 신석의 빛을 보지 못했다.
프랑소와는 그 사실이 슬프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찾아올 사람이 잘못된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라면 내가 아니라 너희의 잘나신 황제를 봐야 하지 않겠어?”
“폐하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최소한 국고의 돈이 몇 배는 더 늘어야 가능하겠죠.”
“이상론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한테 털어놓았다는 거네. 사족은 그만 달아.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신성력을 상징하는 은발과 끝없이 타오르는 붉은 눈.
거울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유피를 지그시 응시하던 프랑소와가 말했다.
“마계. 지금은 연 제국이라고 칭한다고 들었습니다. 저희는 제국과 교역을 맺고 싶습니다. 당신이 그 도개교 역할이 되어줬으면 합니다.”
“흐응.”
흥미가 인다는 듯 마녀는 아랫입술을 핥았다.
“중재자를 바란다는 거네. 그건 이전에 보낸 화친 제의를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면 될까?”
“길면 일주일. 그 기간 내로 화친은 맺어집니다. 연 제국에 요청하고 싶은 것은 교역의 사전 준비입니다.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물자 운송이 시작되었으면 합니다.”
“아직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나라 간의 교역을 준비해라. 말의 앞뒤가 맞질 않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는 거야?”
“제 이름을 걸고.”
“그런 언약으로는 우리를 설득할 수 없어.”
“저는 루미에르 교의 성녀 프랑소와입니다.”
“…….”
“저는 루미에르 교의 성녀 프랑소와입니다. 그 이름의 무게를 모르시진 않겠죠? 연 제국의 13황녀 유피에르 바토리.”
성녀는 한 번 더 자신의 이름을 강조했다.
프랑소와를 넌지시 바라보던 유피는 손을 들었다. 검은 아공간이 열린다. 흘러나온 종이와 깃펜이 유려하게 흔들렸다.
“소피아.”
작성된 서신이 소피아를 향해 날아갔다.
“5황자 아벨 워스테인에게. 연락책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지?”
“알겠습니다, 황녀 전하. 30분 내로 돌아오겠습니다.”
“20분 줄게.”
“존명.”
고개를 숙인 시녀는 방을 뒤로했다.
“고마워요, 유피에르.”
“감사의 말은 필요 없어. 쌍방 모두 이득이니까. 그럼 이제 내 용무로 넘어올까? 녀석들은 어디에 있지?”
“캘러미티의 소재를 물어보시는 거라면, 저희도 알지 못합니다.”
“질문을 바꾸지. 레이첼이 그랬어. 폭풍이 다가오는 것은 막을 수 없다고 말이야.”
“여신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황도에 검은 폭풍이 몰아칠 지어니, 그것을 막으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