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2화.지하수로(1) (172/200)

 # 172

지하수로(1)

블러드 로열의 지하에는 뿌리처럼 엮이고 설킨 수로가 존재했다.

그 수로는 오수와 우수를 처리하기 위한 하수구에 가까웠다. 황도는 제국 내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다. 당연히 그들이 쓰고 나오는 것 또한 비례했다. 알베르트 일행이 향한 곳은 바로 그 수로의 입구였다. 유피는 맨홀 뚜껑에 걸린 마법을 해제했다. 잠금이 풀린 걸 확인한 알베르트는 뚜껑을 열어젖혔다.

수로 안쪽은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다.

천장의 틈에서 흘러들어오는 빛이 길을 밝힌다. 황도를 비호하는 신석의 빛은 지하까지 닿고 있었다. 오히려 길을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쪽은 냄새 쪽이다. 손수건을 꺼낸 유피는 코를 덮고 있었다. 태연스레 걸음을 옮기는 소피아가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던 란랑이 말했다.

“그래도 더럽지는 않네요.”

“정화 작용은 잘 되는 편이야. 여기가 관리가 안 되면 공공위생은 물론이고, 수질도 나빠질 수밖에 없으니까. 황도에서 환자들이 속출하면 체면이 말이 아니잖아.”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묻고 싶었어요. 여기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데, 이것도 마법으로 뚝딱 관리하는 건가요?”

“그런 편리한 마법이 어딨어. 이걸 관리하는 건 마법 같은 게 아니야. 엄연히 손을 쓰고 있는 거야. 하지만 인족은 아니야. 여기를 관리하는 건…….”

어딘가 짚이는 바가 있던 걸까. 유피가 말꼬리를 흐렸다.

수로는 막힘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이 돌아다니는 걸 전제로 만든 길이 아니다. 길은 미끄럽고 벽을 타고 내려오는 물기는 깨끗하지 않다. 지독한 냄새와 생리적인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탁수. 눈앞에서 떨어지는 오수를 본 란랑은 히익, 하고 몸을 떨었다.

“빠, 빨리 찾으면 안 될까요? 이 냄새가 몸에 전부 밸 것 같다고요.”

“그렇게 재촉하지 마. 탐색이라는 건 바로 끝낼 수 있는 게 아니야. 잘못 짚었다가는 며칠을 더 고생해야 할지도 몰라.”

조심스레 몸을 숙인 유피는 바닥을 짚었다. 손끝에서 은빛의 마나가 반짝였다.

그녀를 중심으로 빛이 달렸다. 원이 퍼지는 것과 같다. 일순간 터진 빛이 통로를 밝혔다. 고개를 든 유피는 좌측 통로를 가리켰다.

“이쪽이야.”

유피가 일행을 안내한 곳은 커다란 구멍이 있는 장소였다.

아마도 하수가 흘러나오는 배수구다. 신석의 빛도 이곳까지는 닿지 않는다. 어두컴컴한 배수구는 마치 마물이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았다. 통로 안에서 뚝뚝 떨어지는 오수를 본 란랑이 침을 삼켰다.

“설마 여기를 들어가자는 건 아니죠?”

“다른 곳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 근처에서 반응이 없는 건 여기 정도야.”

“내는 안 들어갈 낍니다.”

얼마나 싫었는지, 란랑의 목소리가 뒤집혔다.

“그럼 제가 갈게요.”

“괜찮겠어?”

“제가 살던 곳이나 비슷한데요.”

뭐 어려운 일이라는 듯 소피아는 통로 위로 손을 올렸다. 철벅 철벅하고 끔찍한 소리가 울렸다. 유피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란랑의 안색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소피아는 통로 안쪽을 응시했다. 어두운 구멍 안에는 무언가 투명한 것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보이는 거라도 있어?”

“뭔가 꿈틀거리네요.”

“버, 벌레야? 벌레인 거야!?”

“아니. 벌레는 아니야. 벌레는 아닌데……. 음,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황녀 전하가 좋아하는 푸딩 같기도 하고. 조금 귀여운데?”

“…….”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유피는 알베르트를 보았다.

아무리 그녀라도 직접 올라가기는 싫은 모양이다.

가볍게 발을 튕긴 알베르트는 통로 위로 올라갔다.

착지는 조심스럽게. 오수가 튀지 않게 주의한다. 올라온 알베르트를 본 소피아가 통로를 가리켰다. 오수가 떨어지는 그 안에는 볼록볼록한 것들이 뭉쳐 있었다. 갈색과 푸른색이 고루 묶인 그것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맥동 거리고 있었다.

“저게 뭔가요? 오빠.”

그런가. 소피아는 처음 보는 모양이다.

“슬라임이야.”

“슬라임이라면……. 마물이지 않나요? 왜 이런 곳에?”

“수로에 왔을 때 란랑이 물었지?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오수를 관리하냐고. 슬라임이 그 정답이야. 이 하수구의 청소부를 맡은 거겠지.”

슬라임이 기분 나쁜 색을 띠고 있는 건 그런 까닭이겠지.

이 지하수로로 내려오는 오수와 폐수를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몸에 닿는 걸 무엇이든 녹여 먹는 녀석들이다. 산성이 강한 개체는 사람마저 녹일 수 있는 놈들이니, 위에서 내려오는 폐기물 따위를 녹여 먹는 건 일도 아니리라.

“제국은 정말 신기하네요. 마물을 이런 식으로 이용하다니. 위험하지는 않나요?”

“그래서 맨홀에 마법이 걸려있던 거야. 혹여라도 사람들이 이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게.”

일반인은 다가오지 못하게. 관리라면 주기적으로 마탑의 마법사들에게 맡기고 있는 거겠지.

“그런데 슬라임은 잠도 자나 봐요?”

“잠? 저건 그런 게 아니야. 아마도 먹어치운 것을 소화하는 중이겠지.”

알베르트의 대답에 소피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그렇다고 쳐도 이상한 것은 맞다. 슬라임의 개체마다 소화 속도에 차이는 있겠지만, 안쪽으로 들어오는 오수는 딱히 소화 능력을 크게 요구하지는 않을 터다. 이렇게 한군데 모여서 있을 이유가 없다고 할까. 알베르트는 슬라임의 지척까지 다가갔다.

“어딘가 아프기라도 한 걸까요? 산성도 없고, 먹은 걸 소화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확인해보면 알겠지.”

슬라임에게 적의는 보이지 않는다. 녀석은 그저 부풀었다가 작아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육안으로는 녀석의 몸 안쪽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알베르트는 손을 뻗어 슬라임을 만졌다. 미끈거리는 놈의 몸통으로 쑥 손이 들어갔다. 산성을 경계해서 호신강기를 두르고 있었지만, 손에 닿는 이질감은 없었다. 안쪽에서 무언가를 잡은 알베르트는 그대로 손을 뺐다.

무언가 무게감 있는 걸 잡았다 싶었더니, 그가 꺼낸 것은 녹다 만 사람의 머리였다.

“…….”

차분히 바닥에 머리를 내려놓은 알베르트는 다시 슬라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만둬, 알.”

어느새 뒤따라온 걸까. 알베르트의 뒤에 다가온 유피가 말렸다.

그녀의 발은 지면에서 살짝 떠 있었다. 떨어지는 오수가 그녀의 위에서 고였다. 마나로 둥근 방패 같은 걸 만든 것 같다.

“그런 식으로는 끝이 없어. 거기에……. 여기서 더 냄새나는 걸 꺼내도 곤란해.”

무슨 소리인지 되물을 필요는 없었다. 울먹이는 얼굴로 유피의 옷자락을 잡은 란랑이 보였다. 통로 끝에 있는 슬라임 뭉치를 본 그녀의 얼굴이 하얘지는 걸 넘어 새파랗게 물들었다.

“뭐. 뭐뭐뭐뭐야, 저건!?”

“슬라임이래. 란랑도 보는 건 처음이야? 어때. 한 번 만져봐.”

“산뜻한 표정으로 뭘 갖다 들이대는교, 이 가시나가!”

소피아가 가져온 슬라임의 몸체를 란랑이 쳐냈다. 바닥과 부딪친 몸체가 비산했다. 그 안쪽에서 검은빛의 덩어리가 보인 것 같았다. 우욱, 하고 란랑이 헛구역질했다.

“더, 더러워.”

“너무 그러지 마. 먹고 안 싸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다 큰 여자가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랬어!”

“란랑은 가끔 이상하다니까.”

“너만큼은 아니거든!?”

꺅꺅거리는 두 사람을 내버려 둔 채 유피는 슬라임을 만졌다. 감촉을 확인하고 점성을 본다. 바닥에 떨어진 돌을 슬라임의 몸체로 집어넣어 산성을 확인한 그녀는 흐응, 하고 입을 열었다.

“대체 뭘 먹은 거니, 너희?”

손에 달리는 은빛이 강렬해진다.

거무튀튀한 슬라임의 몸이 빛에 휩싸였다. 응집된 빛이 순간 폭발했다. 몸체는 튀지 않았다. 은빛의 구 안에 갇힌 슬라임은 그 상태 그대로 형체가 녹아 없어졌다. 오물조차 남지 않는다. 무엇 하나 없을 것 같은 구 안에서 두둥실 떠다니는 물건을 본 유피는 말했다.

“찾았다.”

사이한 기운을 흘리는 환 같은 공. 그건 마기의 결정체였다.

“루미너스 일루젼.”

“이 정도나 남아 있다면 추적하는 건 일도 아니지.”

검은 연기로 화한 환은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것처럼 통로 바깥으로 이어졌다.

“가자. 이 냄새 나는 곳에 보금자리를 만든 놈의 얼굴이 누구인지 보고 싶어졌어.”

*&*

환이 이끈 곳은 이제는 말라버려 사용되지 않는 수로의 끝이었다.

지하수로 안에서도 더 안쪽으로 떨어져야 한다.

슬라임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서 통로조차 확보하기 힘들다. 제발 그냥 돌아가면 안 되겠냐는 란랑을 억지로 던져 넣은 뒤 알베르트와 소피아. 유피가 마지막으로 내려왔다. 한쪽에서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는 란랑의 모습이 안쓰럽다. 엉덩이만 쭉 이쪽으로 뺀 모습은 영락없이 겁에 질린 꼬마다.

“정말 싫어, 다 싫어. 황녀 전하고 뭐고 모조리 때려치우고 낙양으로 돌아갈 거예요.”

“진정해, 란랑.”

“시끄러워, 란랑.”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

울먹이는 란랑을 위로하러 가는 건 소피아다.

두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던 유피는 머리가 아파진다는 듯 손을 얹었다.

그사이 알베르트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수로의 안쪽은 생각 외로 밝은 편이었다. 이곳까지 떨어지는 건 신석의 빛이 아니다. 천장과 벽면. 모두 마조명이 반짝이고 있었다. 황도의 거리를 밝히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다. 걸음을 옮긴다. 통로 중간까지 나아간 알베르트는 밑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검은 나무가 있었다.

슬럼가에서 봤던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크기다. 묘목 따위가 아니다. 장성한 나무는 주변에 선명한 마기를 흩뿌리고 있었다.

[위에도 한통속이군요. 혹은 알면서도 눈을 감아주고 있다거나.]

‘수로를 관리하는 건 귀족 측이네. 예전부터 황실과 반목하고 있었으니, 아마 이 거점을 내준 것으로 모종의 대가를 받고 있지 않을까 싶네.’

[차라리 위를 찔러보는 건 어떻습니까?]

‘그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위에서 따로 움직이는 자들이 있을 걸세.’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가만히 있던 놈들입니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리라.

분명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 없었던 거겠지.

루미너스 일루젼에서 눈을 돌린 알베르트는 통로 너머를 바라보았다.

인기척이 가까워진다. 유피를 한 손으로 만류한다. 다가오는 것은 한 무리의 남자들이었다. 역시 이쪽이 침입한 것을 알고 있었는지, 그들은 하나같이 무장한 상태였다.

“오빠가 나설 필요도 없어요.”

란랑의 곁에서 떨어진 소피아가 앞으로 나섰다.

순식간에 앞으로 치고 나아간 그녀는 다가오는 남자들을 제압했다. 일격일발. 그 움직임에 거칠 것은 없다. 요 몇 년간 유피의 곁을 지켜온 것은 허투가 아니었다는 듯 정확하면서도 날카롭다. 어딘지 모르게 눈에 익은 몸놀림이다. 원을 그리듯이 나아가는 발. 검을 받아넘기는 손은 강보다 유를 중요시한다. 들어오는 힘을 몇 배로 돌려준다.

“유능제강(柔能制剛). 이전에도 그랬지만 저걸 가르친 건 너야, 란랑?”

“그래요. 뭐 잘못된 거 있어요?”

조금 울었던 걸까. 알베르트의 물음에 대답하는 소녀의 목소리는 잠겨있었다.

이제 보니 코끝이 빨갛게 물든 건 물론이고, 눈가도 충혈되어 있다. 정말로 싫었던 모양이다.

“아빠에게 혼나는 거 아냐?”

“이 정도로요? 농담이 심하네요, 란. 전 무공의 기초밖에 가르치지 않았어요. 더 가르치고 싶어도 가르쳐줄 수가 없거든요. 애초에 제가 배운 무공은 겉핥기식. 정식으로 무공을 이은 것은 란이니까요.”

“…….”

묘하게 원망하는 어조다.

날카롭게 째려보는 그녀의 시선을 피한다. 알베르트는 소피아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확실히 화려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 움직임은 정직하다. 최소한의 동작으로 녀석들을 제압하고, 전의를 앗아간다. 사내들의 공격은 닿지 않는다. 녀석들을 정리하는 데 긴 시간은 필요하지 않겠지. 불협화음이 들린 것은 그쯤이었다. 사내들 사이에서 튀어나온 그 남자는 소피아의 목을 노렸다.

그것보다 한발 앞서, 알베르트의 손이 소피아를 잡아 던졌다.

피가 흩날렸다.

“!”

뒤로 날아간 소피아가 아얏, 하고 목소리를 냈다.

팔이 따끔거린다. 날카로운 비수를 털어낸 남자를 알베르트는 응시했다.

“그쪽이 끼어드는 건 반칙이지 않나.”

“기습을 가한 자네의 움직임도 반칙이지.”

상처는 깊지 않다.

사내는 알베르트의 대답에 입꼬리를 올렸다.

“모란다라고 한다. 우리도 그냥은 물러날 수 없어서 말이지.”

“알베르트 라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