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8화.마탑 (168/200)

 # 168

마탑

총장의 방은 마탑에서도 근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었다.

최상층은 아니다. 골렘이 넘어갈 수 없는 좁은 구멍 위로는 아직 탑이 이어지고 있었다. 비상하는 것을 멈춘 골렘은 계단 너머에 있는 방 앞에 손을 내렸다. 계단으로 내려온 알베르트는 아리시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가씨가 내리자 골렘은 지면으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문을 앞에 둔 아리시엘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각오를 다지고 손을 든다.

그러나 손과 문이 맞닿는 일은 없었다. 두 사람의 방문을 환영하듯이 문이 저절로 열렸다.

“어서 오게나, 젊은 루드비히여. 리 한델 란제스터 총장이다. 마탑에 온 걸 환영하네.”

방 안쪽, 커다란 책상 너머에 6서클 마법사 리하델 총장이 있었다.

“리하델 총장님을 뵙습니다. 작은 검을 이끄는 자. 아리시엘 루드비히입니다. 이쪽은 제 집사인 알베르트 라나예요.”

알베르트는 고개를 숙였다. 치마 끝을 잡은 아리시엘은 정중히 예를 갖췄다.

두 사람을 조용히 바라보던 리하델은 두 손을 꼈다.

“연락은 받았네. 나한테 줄 것이 있지 않은가?”

“알.”

알베르트는 저택에 나서기 전 라시엘 공작에게 받은 서신을 꺼냈다. 다가갈 필요는 없었다. 손에서 떠오른 서신은 바람을 타는 것처럼 리하델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서신의 내용을 확인한 리하델은 입을 열었다.

“라시엘 이 친구는 잘 지내고 있나 보군. 변방에서 수도로 올라올 일도 없으니 마음이 편하기도 하겠어. 최근 마족은 조용하니. 다음 휴가는 루드비히령으로 내려가는 것도 재밌을 것 같군.”

리하델의 손이 흔들자, 아리시엘의 곁으로 의자가 날아왔다. 연이어서 티 세트가 차곡차곡 움직이며 잔을 채우기 시작했다. 향긋한 향이 올라오는 찻잔을 바라보던 아가씨가 물었다.

“실례지만 총장님은 아버님과 잘 아는 사이신가요?”

“음, 그 눈치를 보아하니 듣지 못했나 보군. 라시엘과는 전선에서 몇 번이고 등을 빌려줬던 사이네. 크로만의 애송이와 달리 라시엘은 진솔한 친구였지. 물론 그 핏줄을 이은 자네에게도 기대하고 있네.”

“부담스러운 이야기네요. 저는 저고, 아버님은 아버님이에요.”

“나와 같이 전장에 나왔던 라시엘도 그렇게 말했었지. 하지만 전장에 선 그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어. 젊은 영웅의 탄생을 알린 그 날의 기억을 나는 잊지 못할걸세.”

그 시절이 그립다는 듯 리하델은 먼 곳을 바라보는 눈이 되었다.

“젊었지. 그 친구도, 나도. 국경을 침범한 마족을 쫓아 금지된 숲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지. 그때 입은 상처는 지금도 밤이 되면 시려 오지만, 그 일을 후회하지는 않네. 값진 경험은 목숨이 몇 개나 있어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

늙은이가 주책을 떨었군, 하고 그는 말을 이었다.

“영애는 올해로 나이가 어떻게 되는가?”

“아직 성인식까지 2년 남았습니다.”

아리시엘은 얼굴을 붉혔다.

레이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시기까지는 2년이나 남아있었다.

“나쁘지 않군. 마도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아니야. 그래, 전장에 나가본 경험은 있는가?”

“라베린 도시에서 있었던 언데드 사태를 두 눈으로 봤습니다.”

“아예 경험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가. 무에서 유를 가르칠 필요는 없겠어. 하나와 둘의 차이는 별 것 없지만, 0과 1의 차이는 이야기가 다르지.”

잔을 든 리하델은 말했다.

“이제 젊은 아가씨의 뜻을 물어봐야겠군. 서신에는 딸아이가 마도의 길을 걷겠다면 부디 도움을 줬으면 한다고 말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라시엘, 이 친구의 의사겠지. 아리시엘 루드비히. 자네의 의사는 어떤가? 검을 이끄는 자가, 검을 포기하고 마도의 길을 걸을 각오는 되어있는가?”

“저는….”

마탑의 총장이 묻는다.

아리시엘은 아직 망설임을 버리지 못했는지, 잠시 고민한 뒤 입을 열었다.

“대답하기 전에 한 가지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음, 물어보게나.”

“제가 마도의 길을 걷는다 하면 그 결실을 거둘 수 있을까요?”

“그거야 해보지 않으면 모르지. 라시엘 이 친구는 자네의 몸에 어린 가능성을 본 것 같지만, 마법사 중에서 재능이 없는 자는 존재하지 않네. 애초에 마법이란 것은 재능을 가진 소수를 위한 기술이네. 천재 중에서도 고르고 고른 자들만이 위로 올라갈 수 있지. 어중간한 마음으로 탑의 문을 두들기겠다면, 지금이라도 돌아가기를 바라네. 이건 마탑의 총장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지우의 딸인 자네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네.”

“…….”

확답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모르는 곳에 발을 내딛는 것은 언제나 무섭다. 돌아올 길조차 보증할 수 없다면 말이다.

“두려움과 공포가 산재하여 있군. 잘 생각하게. 지금 공포는 필요하지 않아. 부적인 감정에서는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지. 자네는 아직 젊네. 꼭 성공할 필요는 없어. 실패해도 좋아. 실패는 또 다른 경험이 되어 살이 될 테니. 중요한 건 그 이후네. 넘어진 자네가 다시 일어나서 걸을 수 있겠는가? 부러지고, 무뎌져도 언제나 그 날을 날카롭게 갈 수 있겠는가?”

검의 역할은 무엇인가.

목적은 단순하다. 상대를 베고 그 목숨을 가져온다. 무언가를 베고 찌르는 것이 검의 본분이다. 일격에 자르지 못했다면 이격을 가져온다. 이격에도 실패했다면 삼격이 나아간다. 베고, 찌르고. 목적을 다 할 때까지 나아가는 것이 검이다.

“마도는 신비로 향하는 길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고, 심연 끝에 있는 미지의 지식마저 탐구해야 하는 것. 자네는 그 길을 걸어갈 각오가 되어있는가, 아리시엘 루드비히?”

“각오라면….”

아가씨는 말끝을 흐렸다.

그녀를 보호해주던 방파제는 아무것도 없다.

마도로 향하는 길은 고독하며 괴롭다.

선지자가 밝혀주는 빛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따라가기만 해서는 쟁취할 수 없다. 스스로 어둠을 향해 걸어갈 수밖에 없다. 언젠가 그 심연이 자신의 몸을 집어삼킬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다. 그것이 마도다.

아리시엘은 알베르트를 돌아보았다.

“지금 아가씨가 스스로를 작게 느껴도 상관없습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중요한 건 앞으로 아가씨가 바라는 모습이 무엇인가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목표를 잡고, 그 길을 계속 추구한다면. 반드시 원하는 답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망설여질 때면 쉬어가도 좋습니다. 아가씨의 곁에는 항상 저희가 있으니까요.”

“…….”

작은 손이 주먹을 말았다.

이제 그녀는 망설이지 않는다. 순간 아가씨의 등이 크게 느껴졌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무언가 느꼈는지, 리하델은 부드럽게 말했다.

“자네가 진정 마도의 길을 걷겠다면 나는 마탑의 총장으로, 자네에게 최대한 도움을 줄걸세. 마탑은 언제나 재능 있는 자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검의 명가에서 엄청난 마법사가 나타난다면 그것 또한 하나의 유희겠지. 크로만 가의 그 이단아처럼 말이네.”

“셀렌느 후작 말씀이군요. 마법과 검을 병행한 마검사라고 들었어요.”

“그래, 마도 또한 떨어지지 않는 자지. 스승을 잘 만난 덕도 있지만, 그의 재능은 진짜배기였어. 그럴 마음만 있었다면 더 높은 곳을 노리는 게 가능했을지도 몰라. 물론 그를 둘러싼 환경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지.”

셀렌느 후작의 출신을 알고 있는 리하델은 혀를 찼다.

차라리 마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마도를 추구했다면, 그는 자유로웠을지도 모른다.

“만약 셀렌느 후작처럼 검과 마도. 둘 다 택하겠다고 하면…. 총장님은 받아들이실 건가요?”

“내가 받아들이고 하는 문제가 아니지. 그건 자네가 선택해야 하는 문제야.”

자신의 의견은 참고밖에 되지 않는다.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본인이다.

“검과 마도는 상극을 이루는 힘이지. 정반대에 놓인 두 길을 동시에 걷겠다는 건 욕심이지. 마도를 걷는 선배로서 말한다면 하나만 선택하라고 말하고 싶네. 셀렌느와 자네는 상황이 달라. 굳이 가시밭길을 택할 이유가 없어. 빵도 먹지 못하는데, 케이크까지 바라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그렇지 않나?”

“그럼 빵을 먹고 난 뒤라면 상관없나요?”

“먹고 난 뒤?”

그런 발상은 생각하지 못했는지 리하델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지. 먹고 난 뒤라면 상관없겠군. 하지만 먹을 수 있겠는가? 이 빵은 말이지. 텁텁한 귀리 빵이야. 그것도 너무나 커서 단숨에 먹을 수조차 없지. 물이 있어야 간신히 먹을 수 있는 수준이야. 얼마나 먹을 수 있을 것 같은가?”

“맛있는 차가 있다면 아무리 빵이 팍팍하더라도 먹을 수 있는 법이죠.”

마음속의 매듭을 맺은 아리시엘은 잔을 들었다.

부드러운 차가 입을 적신 뒤 목을 타고 넘어갔다. 고급스러운 찻잎을 쓴 건지, 그 맛은 깊고 썼다.

“그렇게 하게나. 그대가 마탑에 남아있는 동안은 리하델의 이름으로 최대한 조력할 것을 약조하지. 아리시엘 루드비히. 작은 검을 이끄는 자여. 마도의 문을 두들긴 걸 환영하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가씨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 자세가 마음에 든다는 듯 리하델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알고 있을 거로 생각하지만, 마탑에 입문한 술사는 기본적으로 자립을 요구한다. 사용인의 보좌는 받을 수 없다. 사전에 약속한 시간 외에는 만나선 안 된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고 내일 다시 오게나. 작별 인사는 나눠야 하지 않겠는가?”

“그럴 필요 없어요. 인사라면 이미 저택에서 끝내고 왔으니까요.”

필요한 건 결단뿐이었다.

모처럼 마지막 발자국을 떼었다. 선 안쪽으로 다시 돌아오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나중에 보자, 알.”

“짐은 돌아가는 대로 들고 오겠습니다.”

“고마워. 마린이랑 루인에게도 말해둬. 나 없다고 너무 풀어지지 말라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있으니까요.”

“그래, 믿고 있을게.”

창가에 앉아 있던 검은 독수리가 아리시엘의 앞으로 날아왔다.

“따라가게. 정식으로 절차를 밟아야 할 터니.”

“알겠어요. 절차가 끝나고 뵙도록 하죠.”

총장의 방에서 나가는 아가씨의 뒷모습을 알베르트는 끝까지 바라보았다.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멀어졌다.

발소리가 완전히 멀어지자 집사는 총장을 돌아보았다.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알베르트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가라앉아 있었다.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지. 알베르트 라나.”

지금부터 꺼내는 이야기가 본론이다.

아가씨에게는 밝힐 수 없던 주인님의 명이다.

“공화국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이 제국의 암계에서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크로만 가의 원활한 협조를 위해서 마탑의 지원을 바란다. 그렇군.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내가 지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네.”

하지만, 하고 총장은 말을 끊었다.

“마족의 황녀라는 건 무슨 이야기인가?”

“공화국에서 활약했던 은빛의 인형사, 유피에르 바토리입니다. 마족의 황녀인 그녀가 직접 루드비히 저택으로 찾아왔습니다.”

“마족의 황녀가 제국의 위기를 경고하러 왔다는 건가? 선전 포고를 잘못 말한 거 아닌가?”

“믿기 힘든 이야기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아니지, 검의 집사. 이건 신뢰 이전의 이야기야. 적국. 그것도 제국의 오랜 숙적인 마족의 황녀가 겁도 없이 제국의 땅을 밟았네. 그것도 모자라 두 공작 중 한 명인 라시엘과 대면했지. 한데. 국경을 지키는 수호신이 검을 들기는커녕 역으로 적을 반기고, 이 황도까지 그녀를 안내했다고? 내 물어보겠네. 자네들은 혹시 단체로 세뇌라도 당한 건가?”

리하델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방 안에 6서클 유저인 그의 마나가 퍼져나갔다. 일대를 장악한 기운은 순식간에 알베르트를 덮쳤다.

“감히 이 신성한 황도에 마족의 더러운 발이 들어서는 걸 용납하다니. 그것도 제국의 검이 직접 나서서? 라시엘 공작은 반역을 꿈꾸는 건가?”

피부가 따끔거린다.

방 안의 마나는 이미 리하델의 수중에 넘어가 있다. 그의 손짓 하나면 자연의 법칙을 일그러뜨리고 알베르트의 목숨을 위협하겠지.

“아직 늦지 않았네, 검의 집사. 다프네 신전으로 향하게. 가서 자네의 죄를 구하고 용서를 빌게나. 이번 대의 성녀님이라면 이 대역죄를 너그러이 봐주실지도 모르지.”

“농담이 짓궂으시군요, 리하델 총장님. 서신이 어떤 내용인지는 알 수 없지만, 굳이 절 시험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검을 받드는 자. 모셔야 할 분을 착각하는 우는 범하지 않습니다.”

리하델은 침착하게 대답하는 알베르트를 응시했다.

그럴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 수급을 취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곳을 피로 더럽힐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집사는 태연자약하다. 라시엘의 서신에는 신용이 갈 때까지 시험해도 좋다고 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사람을 보는 안목은 라시엘 쪽이 더 확실했다.

“마계에 다녀왔다고 했지. 자네는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나?”

“마족의 황녀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저희 공작령에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제국을 위협하는 진짜 적을 봤습니다. 그 강대한 마족마저도 두려워하는 적을 말입니다.”

“캘러미티에게 그런 힘은 없네. 이 제국의 존립을 위태롭게 했던 괴물은 마족 뿐이지. 오히려 캘러미티와 작심해서 우리 제국을 무너뜨릴 흉계를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네.”

“마족은 지금도 국경선에서 캘러미티와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간단한 눈속임이네. 녀석들이 놈과 전면전을 벌인 건 손에 꼽지. 이교도라는 이유만으로 놈들과 대화조차 나누지 않는 우리와는 달라. 마족이 뒤에서 무슨 짓을 획책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네. 말해보게나. 그 진짜 적이 누구길래 마족이 이리 나온다는 건가?”

“…….”

서신에는 적의 정체가 쓰여 있지 않았다.

오랜 지우가 남긴 말은 단 한 마디.

「내가 말해도 믿지 않을 테니, 직접 물어보고 듣게나.」

검의 집사는 적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우리의 적은 지옥에서 뛰쳐나온 악마입니다. 총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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