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
황도(2)
중앙대로에서 알베르트 일행과 헤어진 유피에르는 거리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고향, 연 제국의 수도인 낙양과 마찬가지로 황도는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늘진 구석은 보이지 않는다. 행인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장사치들의 어조는 더할 나위 없이 밝다. 꽃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소녀로부터 히아신스를 산 유피에르는 향을 맡았다.
“둘 다 몸 상태는 어때?”
“마기가 억눌려있습니다. 제국의 다른 도시와 비교해서 배는 강한 억제력입니다. 힘을 쓴다 해도 평소의 반절이나 끌어내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내공 쪽은 그나마 괜찮은데, 마기는 이야기가 달라요. 아무래도 신석의 힘은 아직도 건재한 모양이네요.”
움직이기 힘들겠어요, 하고 란랑은 덧붙였다.
유피에르는 수도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주의를 기울였다.
먼저 알베르트 일행이 향한 다프네 신전.
그곳에서는 독보적인 신성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분명 성녀 프랑소와의 신성력이다. 루미에르 교와 얽히는 것은 최대한 피하자. 개인적인 호기심은 있지만, 가급적 만나고 싶은 상대는 아니다. 루미에르 교는 여전히 그녀의 뒤를 쫓고 있다. 어머니의 말을 떠올려본다면, 호의적인 감정이 있다고는 볼 수 없다.
황도 어디에서나 보이는 끝을 알 수 없는 높이의 탑.
제국이 자랑하는 마법사 양성소, 마탑이다. 잠룡처럼 웅크려 앉은 마나의 주인은 대마법사 카라스의 것으로 보인다. 블러드 캐슬에서 느껴지는 기운도 있다. 이쪽은 라시엘 공작과 마찬가지로 소드 마스터다. 자신의 기운을 그대로 드러낸 것은 강자 특유의 오만함일지도 모른다.
셋 모두 무시할 수 있는 기운이 아니다.
만약 유피에르가 힘을 사용한다면, 셋 모두 그 순간 포착하는 것이 가능하겠지.
양팔을 자르고 시작하는 조사인가. 뭐, 가끔은 이런 것도 재밌겠지.
“암계로 가는 길은 어디인지 알겠어, 소피아?”
“물론입니다. 저한테 맡기세요.”
자신만만하게 앞에서 걷기 시작한 그녀는 대로를 따라 나아가기 시작했다.
황도를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일 텐데도 불구하고, 소피아의 발걸음은 거칠 것이 없었다. 안내나 지도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빠져나가고, 비좁은 골목길을 망설임 없이 들어간다.
그러나 거리의 광경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중앙대로에서 민가로 나왔을 뿐이지, 여전히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많다. 거기에 소피아가 두 사람을 안내하는 방향에는 시장까지 있었다.
상인들의 호객 행위에 질려버린 란랑이 물었다.
“잘 찾아가는 거 맞아?”
“걱정하지 마. 공화국에서도 그랬지만, 제국도 빈민가의 냄새는 다르지 않아.”
길을 잘못 찾을 리 없다.
소피아는 낙양의 빈민가 출신이니까. 같은 냄새를 흘리는 슬럼가를 찾는 건 귀갓길을 더듬는 것과 비슷했다. 부유한 귀족들이 모여 사는 가로를 빠져나간 세 사람은 곧 어두운 골목길과 마주했다. 겹겹이 쌓인 판잣집이 햇빛을 가린다. 기이할 정도로 쌓아 올려진 집들은, 마치 나무가 얽매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블러드 트리(Blood Tree).
블러드 로열의 슬럼가가 그곳에 있었다.
“고생했어, 소피아. 이제 조사를 시작할까?”
사전 정보는 거의 없다.
독자적인 루트로 구한 정보는 있지만, 참고할 만한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상관없다. 루미너스 일루젼이 흘리는 기운을 그녀는 착각하지 않는다. 그 열매가 흘리는 기운은 다름 아닌 마기니까. 자신이 다루는 힘과 같은 그 기운을 알아보는 것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자, 어디에 있을까.”
유피에르는 블러드 트리로 발을 내디뎠다.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마기를 감지한다. 초입 부근에서는 뚜렷이 느껴지는 기운은 없다. 하지만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것은 확실하다. 냄새의 근원지를 하나하나 좁혀가면 될 뿐이다.
아랫입술을 핥은 마녀의 발치에서 은빛이 반짝였다.
*&*
다프네 신전을 둘러본 아리시엘이 다음으로 향한 곳은 하늘 높이 솟은 탑이었다.
주변에 건물이 하나도 없는 탓일까. 탑은 그 존재만으로도 매우 높게 느껴졌다.
마탑.
제국 내에서도 엘리트로 취급받는 마법사들만이, 그 문을 두들기는 것이 허락된다는 마도의 최고봉이다. 드넓은 부지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 안쪽으로는 마차를 타고 들어올 수 없다. 어느 귀족이나 마찬가지다. 이전에는 마차가 부지까지 들어오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는 것 같지만, 위세 강한 두 귀족의 마차가 부딪쳐 큰 사고가 난 이후로는 이를 막게 되었다.
정비된 도로를 따라 걸음을 옮기는 것은 아리시엘과 알베르트뿐이다.
나머지 일행은 숙소로 향했다. 꺼내놓아야 할 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아마 아가씨가 볼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간신히 정리가 끝나있지 않을까. 여독이 쌓여있긴 하지만, 마린과 루인이 있으니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리라.
마탑으로 향하는 아가씨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어려있었다.
알베르트에게 몇 번이고 옷매무새를 확인하게 하고, 걸음걸이에 신경 쓴다. 루드비히 가의 문장을 만지작거리던 아리시엘은 창살 형태의 문을 보고 손을 내렸다.
마탑의 입구.
문의 양 끝에는 크로만 가를 상징하는 두 마리의 독수리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골렘의 일종인 건지, 녀석들은 다가오는 아리시엘과 알베르트를 보았다. 꾸륵, 하고 독수리가 우는 소리를 냈다. 문 앞에서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던 경비병이 창을 바로 쥐었다.
“안녕하십니까. 마탑에는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리하델 총장님과 사전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명부를 확인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혹 루드비히 공작 가문의…?”
“맞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절 따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경비병을 따라 마탑 안쪽으로 들어선다.
어두운 복도를 지나자 커다란 홀이 나타났다.
로비가 보이고 끝을 알 수 없는 계단이 이어진다. 끝과 끝을 찍고 올라가는 계단. 탑 전체가 원형 계단처럼 돌고 도는 형태다. 각 층수의 중간마다 두둥실 떠다니는 빛이 내부를 밝히고 있었다.
라운지를 지나 걸음을 옮긴다.
창구처럼 이어지는 카운터는 순서를 기다리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스크롤이 오가고 마도구를 내미는 사람들이 보였다. 흥미가 인다는 듯 로브로 몸을 가린 마법사들이 그 물건을 확인하고 있었다. 옷깃에서 반짝이는 문양은 가지각색이다. 사대정령을 연상하는 문양부터 시작해서 동물, 무기 등 각 가문을 나타내는 표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경비병이 안내한 곳은 카운터가 아니었다.
카운터의 뒤쪽, 관계자들만이 쓸 수 있는 통로다.
양피지와 마도구로 가득 찬 선반을 지나 걸음을 옮긴다. 조그마한 구가 빛을 뿌리며 길을 안내한다. 그 끝에는 커다란 골렘이 있었다. 외관은 신경 쓰지 않았는지 몰골이 참혹하다. 철사와 돌, 잡다한 광석을 이용해서 만든 것 같다.
경비병은 골렘을 앞에 두고 말했다.
“총장님. 루드비히 가의 영애가 도착했습니다.”
잠시 후 골렘으로부터 대답이 돌아왔다.
「고생했네. 여기부터는 내가 맡지.」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경비병은 아리시엘에게 고개를 숙인 뒤, 통로를 뒤로했다.
골렘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골자밖에 없는 손이 두 사람을 향해 뻗어졌다.
안쪽을 드러낸 커다란 손바닥. 아리시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했네. 타게나. 얼굴은 위에서 보도록 하지.」
“여기에?”
「돈을 낸다고 해서 경험할 수 있는 게 아니네. 두 사람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걸세.」
“…….”
불안한 것일까. 아가씨는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골렘의 손바닥 위에 오른 알베르트가 손을 내밀자, 마지못해 그 손을 잡았다.
“괜찮습니다, 아가씨.”
“알은 이게 뭔지 알고 있어?”
“골렘입니다. 아마도 운송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거겠죠.”
“마차 대용이라는 말이야?”
그렇습니다, 하고 알베르트는 대답했다.
“그냥 걸어서 올라가는 게 더 빠르지 않겠어?”
「그쪽의 집사는 몰라도, 영애는 오늘 안에 내 방까지 도달할 수 없을 걸세. 준비가 끝났으면 가도록 하지.」
두 사람의 위로 그림자가 졌다.
골렘의 반대쪽 손이 천장을 만든 것 같다. 쿠르릉, 하고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몸을 일으킨 골렘은 비상했다.
“-?!”
날아오른다. 몸이 붕 뜨는 부유감에 아리시엘은 눈을 크게 떴다. 계단이 순식간에 넘어간다. 조금 전까지 서 있던 로비가 점이 되어 멀어졌다. 천장 역할을 하는 손 덕분에 머리가 흐트러지는 일은 없지만, 들어오는 바람이 거세다. 아가씨는 자꾸만 붕 뜨는 치마를 손으로 눌렀다.
「루드비히 가의 일족이 마탑을 찾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지. 마탑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를 것 같으니, 이 참고 영상을 방에 도착할 때까지 느긋이 즐겨주게. 그 안의 영상이 우리 마탑의 일상이니.」
천장을 장식하던 골렘의 손안에서 하얀 구슬이 떨어졌다.
아리시엘의 앞에 떠오른 수정구에서는 영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처음 나타난 것은 황도 전역에 이르는 마법진에 관한 이야기였다. 제국을 수호하는 마정석의 빛은 기적의 산물. 이를 유지하기 위해 몇백 개가 넘는 마석이 순환하고 있으며, 마법사들 또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나타난 광경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마도에 대한 수업을 듣는 것 같다. 흡사 아카데미와 같은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다.
따분한 수업이 끝나고 나온 광경은 연구실이었다. 여러 개의 시약병을 섞고, 불길한 색의 촉매제를 떨어뜨린다. 이윽고 만들어진 약은 흙으로 더러워진 작업복에 사용되었다. 생활마법이 담긴 약이었는지, 옷은 순식간에 원래의 색을 되찾았다.
활짝 웃는 마법사들 앞에서 조잡한 문구가 떠올랐다.
『지금 바로 당신도 지원하세요! 마탑은 언제나 재능 있는 마법사들을 찾고 있습니다!』
“…….”
“…….”
영상이 끝나자 아가씨는 알베르트를 보았다.
“마법사는 다 이런 족속들이야?”
“하나를 보고 열을 판단하기에는 이릅니다, 아가씨.”
“하지만 총장이라면서? 마법사 중에서는 제일 강한 사람이잖아.”
“총장이라고는 해도, 실력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이 마탑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대마법사 카라스 님입니다.”
“이해할 수가 없네.”
“아무래도 저희와는 조금 다르니까요.”
무를 추구하는 것과 마도를 추구하는 것은 명백히 다르다.
마도는 강함의 지표를 명백하게 나눌 수 없다.
서클 마법에 따라서 그 경지가 달라진다고는 하지만, 5서클 마법사가 3서클 마법사보다 더 떨어지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마도의 뿌리는 같을지라도, 그것이 뻗어가는 줄기는 수천 갈래였으니까.
제국에서 다루는 서클 마법과 유피가 다루는 세계수의 마법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알은 어떻게 생각해?”
“무엇을 말씀입니까?”
“내가 검을 포기하고 마도를 걷는 것 말이야.”
“이미 답을 내셨다고 생각합니다만.”
아리시엘은 입을 삐죽였다.
“그런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야. 아버님이 말씀하셨으니까 이곳까지 온 거지만, 나는 아직…. 검을 놓고 싶지 않아.”
망설이는 아가씨를 향해 알베르트는 말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몇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죠. 아가씨가 검의 끝을 추구해도, 마도의 순환을 추구해도. 아가씨가 그 손에 쥔 것은 곧 힘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장차 루드비히 가의 힘으로 돌아오겠죠. 그래도 마법을 배우는 것이 탐탁지 않다면 억지로 가르침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결국, 선택은 아가씨의 몫입니다. 고심하고 또 고심하시길. 저는 무엇보다도 아가씨의 의사를 존중합니다.”
“그럼 여기서 내가 갑자기 다 때려치우고 나간다고 해도 존중할 거야?”
“그것이 진정 아가씨의 의사라면. 저는 따를 뿐입니다.”
“…….”
우직한 집사의 대답에 아리시엘은 피식 웃었다.
“알은 우리 가문이 아니라 나한테 충성하는 거야? 아버님이 들으면 별로 안 좋아할걸.”
“그렇지는 않겠죠. 주인님은 루드비히 가를 상징하는 분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자리를 이어받는 것은 아가씨죠. 아가씨가 있기에 비로소 루드비히 가가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아, 알.”
루드비히 가의 문장을 매만진 아가씨는 말했다.
“내가 검을 쥐고 있다고 해도 검을 완성하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 의미도 없어. 노아도, 마린도. 루인도. 알도. 모두가 있으니까 비로소 루드비히 가인 거야. 그게 한 가족이야. 그렇지?”
“…….”
아무리 자신이 루드비히의 아리시엘이라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가문에 충성을 바치는 가신들이 있기에 비로소 루드비히의 아리시엘이다.
더 많은 것을 누리는 건, 더 많은 것을 베풀기 위함이다.
그것이 위에 선 자가 베풀어야 할 선정이다.
“성장하셨군요, 아가씨.”
“거짓말은. 알이야말로 원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잖아? 알게 모르게 날 시험했으면서.”
“그거야말로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시치미 떼는 알베르트의 모습에 아리시엘은 고개를 저었다.
“그거 알아, 알? 넌 가끔 재수 없다니까.”
“서운하신 말씀이군요.”
집사는 진심으로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