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
인형극
북부 교류단이 방문한 저택은 오늘도 바쁜 하루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잠자리에서 일어난 사용인들이 복도 이곳저곳을 청소한다. 간밤 사이에 생겨난 얼룩을 지워내고, 창틀 사이에 쌓인 먼지를 닦아낸다. 어떤 아가씨가 흘리고 간 건지 알 수 없는 수건을 챙기고, 주인을 잃은 장갑을 치운다.
평소의 노동과 비교하면 배라고 할 정도로 노동량이 늘어나 있다.
그러나 사용인들의 손길은 멈추지 않는다. 언제나 이만한 일을 처리해왔다는 듯 그들의 동작은 무뎌지지 않는다. 다른 가문의 사용인이라면 모를까, 루드비히 가에 한해서는 흐트러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위한 체력 단련이다.
무가의 사용인이 이 정도로 쓰러져서는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 약한 소리를 낼만큼 단련이 게으른 사용인은 없었다.
물론 들어오지 얼마 안 되는 시녀와 시종에 한해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임시로 하인과 하녀를 더 고용했다고는 하지만, 따라오지 못하는 톱니바퀴가 하나쯤은 나오기 마련이다.
시녀 레이첼은 자신이 헐거운 톱니바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지 벌써 두 시간이 흘렀지만, 떨어지는 눈꺼풀을 막을 수가 없다. 창틀의 같은 자리를 몇 번이고 닦고 있다. 평소에도 체력이 부족해, 단련 시간 때마다 뒤로 쳐지는 그녀다. 거기에 이런 큰 행사를 맞이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한계가 다가온 것은 오후 행사에 참석한 시점이었다.
간신히 아침 업무를 버텨낸 것도 소용없다. 다리가 안쓰러울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간신히 눈을 뜬 레이첼은 꿈과 현실을 오가고 있었다.
막다른 코너다.
달아날 곳이 없다.
다른 때라면 마린에게 부탁해 어떻게든 쉴 짬을 만들 텐데. 지금은 그럴 수도 없었다.
의지할 수 있는 친구는 교류단이 온 첫째 날. 쌍둥이 언니와 함께 의식을 잃은 채 저택으로 돌아왔다. 거리로 심부름을 나갔다가 무언가 끔찍한 일에 휘말렸다고 한다. 덕분에 교류단이 가는 내일까지 두 사람은 절대안정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해코지를 당한 건 아니라고 들었다. 실제로 병상에서 본 마린은 약하게나마 웃고 있었다. 걱정할 필요 없다면서 손을 든 그녀였지만, 반쪽이 되어버린 얼굴은 불안한 생각이 들게 했다.
“역시 사자기사단이군요. 피에르 경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기사가 있을 거로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로엔 경은 현재 소드 마스터에 가장 근접한 기사라고 들었습니다. 아직 본 실력을 전부 드러내지 않은 걸지도 모릅니다.”
“호오, 저게 전력이 아니다라……. 무섭군요.”
어렴풋이 들리는 귀족들의 목소리에 레이첼은 간신히 눈을 떴다.
연무장에서는 대련이 이어지고 있다. 사자기사단의 부단장인 로엔 경과 백기사단의 기사 피에르 경의 시합이다. 아름다운 오러가 반짝이고 있었지만, 그런 모습도 레이첼의 눈을 끌지 못했다.
한계다.
이제 더는 안 된다. 그냥 이대로 쓰러져서 잠시 쉬는 편이…….
툭, 하고 쓰러지는 레이첼의 몸을 누군가가 잡았다.
“어라?”
언제 옆에 와있었던 걸까. 레이첼의 옆에는 검은 연미복을 입은 집사가 있었다.
알베르트 라나. 공녀님의 집사다.
기대고 있다. 누가? 자신이다. 쓰러지는 몸을, 집사가 받쳐주고 있었다.
잠기운이 단숨에 달아났다.
알베르트의 몸에서 떨어진 레이첼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저, 저기. 아니에요, 이건! 기사님이 밀리시는 것 같아서……!”
“가서 조금 쉬고 와.”
“네?”
레이첼의 반문에 알베르트는 대답했다.
“시녀장님에게는 내가 따로 말할게. 걱정하지 말고 쉬고 와.”
“그, 그래도…….”
“네가 쓰러지면 다른 동료들도 더 힘들어져.”
“알겠습니다.”
레이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알베르트는 바로 걸음을 옮겼다. 주변에서 귀족들의 지시를 기다리는 사용인 사이를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레이첼과 마찬가지로 동료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것 같다.
마린의 말이 맞았다. 무서운 건 첫인상뿐이었다. 생각 외로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비틀비틀 저택으로 돌아가는 레이첼의 발걸음은 조금 가벼워져 있었다.
*&*
교류단을 맞이한 저택은 하루하루가 전쟁터다.
사용인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움직이고 있었지만, 곧 한계가 오겠지. 고비는 오늘 밤이 되지 않을까. 내일 오전 중에 교류단이 떠난다고 하니. 아슬아슬할지도 모른다. 세바스찬 집사장님도 그 점을 고려해 교대 형식으로 돌리고 있었지만. 마린과 루인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던 모양이다.
일손이 부족하다.
아가씨의 전속 집사인 알베르트가 일에 투입된 건 그런 까닭이었다.
여유를 찾은 것은 두 기사의 시합이 끝난 후였다.
다음 순서까지는 시간이 있다. 주방으로 내려온 알베르트는 차와 쿠키를 준비했다. 평소 아가씨가 즐겨 마시는 홍차가 아니다. 피곤을 달래기 위한 라벤더 차다. 준비를 마친 알베르트는 정원으로 올라갔다.
공연을 기다리는 아리시엘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정원에 준비된 무대가 가장 잘 보이는 상석. 아가씨는 그곳에서 몸을 꼬고 있었다. 알베르트가 가져온 간식거리를 본 아리시엘의 눈이 빛났다.
“고마워, 알.”
“보는 눈이 많습니다. 천천히 드세요, 아가씨.”
알베르트의 등에 숨은 아가씨는 쿠키를 입으로 가져갔다.
파티장에는 다양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보는 눈이 많았다.
알베르트가 가져온 쿠키를 전부 비운 아리시엘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조금만 참으세요, 아가씨. 다음 차례는 인형극이고 하니, 잠시 자리를 피하시는 게 가능할지도 몰라요.”
“진짜지?”
“물론입니다.”
“다행이다. 사실 엉덩이가 아파서 죽을 것 같았어. 이거 말고 좀 더 푹신푹신한 거로 준비해주지.”
노아가 준비해준 쿠션을 두들긴 아가씨는 얼굴을 찌푸렸다. 솜이 빠진 쿠션은 손이 닿기 무섭게 모양이 변했다. 라벤더 차를 든 아가씨는 무대를 확인했다. 짧은 티타임을 가진 사이 인형극은 시작을 앞에 두고 있었다.
인형극의 시작은 한 마을이었다.
평화로운 시골. 마물의 습격도 없고, 폭정을 일삼는 영주도 없다. 작은 산골 마을에서 도시로 나가는 것이 꿈인 소녀의 하루.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족과 지내는 그런 나날.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이 바뀌게 된 것은 어느 날, 마을로 들어온 한 남자 때문이었다.
“저거 인형이야?”
“아니요. 사람이군요.”
가면을 쓴 소녀와 남자는 사람이다. 몸의 윤곽으로 봤을 때 두 사람 다 여자지 않을까.
인형극은 인형과 사람이 섞인 연극에 가까웠다.
정교한 인형을 이끄는 건 은빛 실이다. 무대 뒤쪽에서 이를 조종하고 있는 걸까. 정말로 그렇다고 한다면, 실력이 대단한 인형사다.
몸에 상처가 가득한 남자는 국경을 지키는 병사였다.
남자는 소녀의 간호를 받고 정신을 되찾았다. 전령으로 뽑힌 그는 수도에 전할 소식이 있었고, 다친 몸을 무릎 쓰고 움직이고자 했다.
우여곡절 끝에 소녀와 남자는 함께 수도로 여행을 떠났다.
어떤 때는 마물을 쓰러뜨리고, 어떤 때는 이국의 용병과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이며. 그렇게 여로에 박차를 가한 두 사람은 수도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놀랍게도 남자의 정체는 왕국의 왕자님이었던 겁니다!」
연극에서 흘러나온 내래이션의 목소리에 아리시엘은 헛웃음을 지었다.
“우와. 너무 뻔해서 할 말이 없어. 안 그래, 알?”
“한 번 봤던 이야기입니다.”
“그야 그렇겠지. 이런 이야기는 흔하잖아.”
“똑같은 이야기를. 아주 오래전에, 봤습니다.”
잊을 수 없는 이야기다.
병정 인형과 시녀 인형의 사랑 이야기.
그때도 이와 같은 저택에서.
폐허가 되어버린 저택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무대를.
돌과 잔해 속에서 만든 작은 무대를.
행복한 인형극을 봤다.
슬픈 인형극을 봤다.
이제 여인이 된 소녀와 헤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두 사람의 신분 차이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떨어져 있었으니까.
그러나 두 사람은 인연을 포기하지 않는다.
긴장된 기색으로 이야기에 집중한 아가씨와 달리 알베르트는 입안이 마르는 걸 느꼈다.
왕궁의 암계. 왕위를 놓고 싸우는 형제의 다툼. 그 암투에 휘말리고 만 여인.
결국, 왕자는 자신을 따라온 여인을 지키다가 목숨이 다한다.
홀로 남은 여인은 왕자의 시체를 안은 채 독약을 마셨다.
이루어지지 못한 두 사람은 그렇게 숨이 다했다.
내용 자체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
음유시인이 들려주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
하지만 인형과 사람이 섞인 연극의 완성도는 어디에나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과 인형이 인사를 올리자, 관람객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뭐, 뭐야. 제법 괜찮은 내용이잖아. 알은 어떻게 생각해?”
훌쩍, 하고 아가씨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
“알?”
“죄송합니다, 아가씨. 잠시만…….”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곳에 모인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알베르트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이 광경을 지켜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다. 그것만으로도 보답받은 기분이 들었다.
“잠시만 쉬겠습니다.”
집사가 소리 없이 우는 모습을, 그날 아리시엘은 처음으로 봤다.
*&*
“다 들었어, 알. 어제 인형극을 보고 울었다면서? 벌써 저택에 소문이 자자해.”
“그런가요? 부끄러운 소문이 나버렸군요.”
고양이처럼 입가를 오므린 노아의 말에 알베르트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교류단이 돌아간 뒤, 알베르트는 평소의 적막함이 돌아온 저택의 청소를 돕고 있었다.
복도에는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용인이 가득했다. 청소는 아무리 해도 끝이 없다. 요 며칠간 저택에서 나온 쓰레기는 그야말로 살인적인 양이었다. 먹다 남은 음식물 쓰레기도 얼마나 밖에 내놓은 건지 모르겠다.
“부끄러워하는 거 맞아?”
“그럼요. 부끄럽네요.”
“노아 언니, 알베르트 님을 괴롭히지 마세요. 자기도 펑펑 울었으면서.”
“누, 누가 울었다고 그래?”
“눈이 팅팅 부었다고 아침부터 물수건 찾아간 게 누구인데. 그것도 잘 자는 날 깨웠다니까.”
“어디 그것뿐이겠어? 내 팔 좀 봐. 어제 손수건이 없어서 날 대용으로 쥐어짰다니까.”
“사실인가요, 누님?”
“너희들……! 듣자 듣자 하니까!”
캬오, 하고 노아가 소리를 높였다.
더러운 물수건을 던져버린 노아는 시녀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노아 언니가 화 났다!”
“다들 도망쳐!”
“잡히면 끝이야!”
“붉은 돼지야, 붉은 돼지! 하늘을 날지도 몰라!”
“누가 돼지라는 거야! 다 봤거든, 레이첼!”
“저, 저저저 아니거든요!”
꺅꺅거리며 도망치는 시녀들을 쫓아 노아는 저택 복도를 헤집기 시작했다.
소란스러운 하루가 될 것 같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는 그녀를 막은 것은, 소식을 듣고 도착한 시녀장이었다.
물수건을 든 노아는 레이첼을 인질로 삼았지만, 빅토리아 시녀장의 움직임을 읽지 못했다.
능숙하게 그녀의 배후로 잡은 빅토리아는 노아의 뒷목을 가격했다.
의식을 잃은 그녀는 그렇게 시녀장의 방으로 질질 끌려갔다.
교류단이 돌아간 저택은 평소의 분위기로 돌아와 있었다.
청소에 임하는 분위기가 너무 가벼운 건 아닌가 싶지만, 당분간은 이런 기류가 이어지리라.
청소를 마친 알베르트는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아가씨의 티타임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다. 다른 것을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고,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잠시 고민하던 알베르트는 주방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버터를 올린 팬 케이크를 준비하자.
요 며칠간 고생한 아가씨에게는 좋은 간식이 될 것 같다.
로버트에게 양해를 구하고 간식을 준비한다. 재료는 충분하다. 로버트가 특별히 준비했다는 딸기까지 팬 케이크 위에 올린 알베르트는 아가씨의 방으로 향했다.
가볍게 노크를 넣는다.
“아가씨. 알베르트입니다.”
“응, 들어와.”
어딘지 모르게 기뻐하는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실례하겠습니다.”
쟁반을 든 채 알베르트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눈에 익은 광경이 들어왔다.
아가씨의 방은 언제나와 같다. 화려한 레이스 자락이 가득 달린 침대. 창가에는 물망초가 담긴 화병이 보인다. 아침마다 노아 누님이 준비하는 꽃이다. 테이블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전자는 아가씨인 아리시엘 루드비히다.
그리고 후자는…….
별무리 지는 은빛이 반짝였다.
“오랜만이네, 알.”
유피에르 바토리.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