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7화.의혹(2) (157/200)

 # 157

의혹(2)

류드 거리에 도착한 알베르트는 도둑 길드의 앞에 와있었다.

아직 해는 떨어지지 않았다. 철판으로 뒤덮인 두꺼운 문은 노크를 넣어도 대답을 돌려주지 않는다. 알베르트는 판잣집을 살펴보았다. 이곳을 제외하면 따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정면으로 돌입할 수밖에 없다. 녀석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삼엄한 방비가 되어 있을 게 뻔하다.

마지막으로 확인해본다.

‘어떤가, 천칭. 느껴지는가?’

[있습니다. 이 거리라면 착각할 수가 없죠.]

하얀 가면을 얼굴 위에 쓴다.

별 볼 일 없는 위장이다. 이런 걸 쓴다고 해서 정체를 숨길 수는 없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알베르트는 문 위로 손을 올렸다. 운용한 내공을 손바닥에서 토해낸다.

문에서 푸른 마법진이 떠올랐다.

방어 마법의 일종이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마법이 발동했지만, 그 정도로는 알베르트의 내공을 막을 수 없었다.

쿵!

찌그러진 철판 문이 건물 안쪽으로 날아갔다.

비명이 울렸다. 문 뒤에는 남자가 서 있던 걸까. 문과 함께 벽에 처박힌 길드원은 바닥에 붉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책상을 엄폐물로 삼고 있던 남자들이 알베르트를 보았다.

불청객의 손에는 무기가 없다.

깔끔하게 정돈된 연미복. 얼굴을 가린 하얀 가면. 맨손으로 문을 날려버린 그는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멍하니 알베르트를 바라보고만 있다. 그는 말없이 방을 둘러보았다. 당연하지만, 두 시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천칭의 말이 맞다면 안쪽에는 지하 창고가 있을 터다. 그곳에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겠지.

“저, 적이다!”

“지부장에게 보고해!”

“팬텀 소드를 데려와라!”

뒤늦게 정신을 차린 놈들이 소리를 질렀다.

알베르트의 발을 잡기 위해 엄폐물 뒤에서 뛰쳐나온다. 상대는 고작 한 명. 무기조차 없다. 제압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알베르트는 손을 들었다. 권기를 두를 필요도 없다. 그저 내공으로 신체를 강화하는 선에서 끝난다.

대화는 차후에.

일단 달려드는 놈들을 모조리 제압한다.

도끼를 들고 다가오는 놈. 동작이 크다. 손목을 친다. 그대로 놈의 뼈가 부러진다. 도끼가 목표를 잃고 떨어진다. 손을 부여잡은 녀석의 몸이 꺾인다. 턱을 가격한다. 뇌가 흔들리는 충격에 놈은 쓰러졌다.

암기를 던지는 놈. 그대로 받아친다. 알베르트를 노렸던 암기가 역으로 녀석을 노렸다. 독이라도 발려 있던 걸까. 암기에 찔린 녀석은 게거품을 무는가 싶더니, 이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자신 있게 단검을 들고 뛰어오는 놈. 발을 건다. 볼썽사납게 쓰러진 놈은 동료들과 엉켰다.

끝이 없다.

이 건물 내부에 얼마나 많은 길드원이 있던 건지. 놈들은 끊이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거리를 두고 경계하는 눈빛이 알베르트를 향했다.

“이게 무슨 소란이냐?!”

“적입니다, 지부장님!”

“적? 모험가 길드에서 온 거냐?”

안쪽에서 나온 한 남자가 소리쳤다.

키가 작은 얍삽한 인상의 남자다. 어딘지 모르게 목소리가 낯익다. 분명 알베르트에게 정보를 남기던 남자다. 나름대로 지위가 있을 거로는 생각했지만, 이 길드의 지부장이었던 모양이다.

알베르트는 손을 멈췄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겠다.

“너희가 납치한 사람들을 풀어줘라.”

“납치?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순순히 말하지 않으면 행동을 취할 뿐이다. 지부장에게 보고를 올리던 남자가 날아간다.

복부를 가리고 있던 얄팍한 갑옷에는 주먹 자국이 찍혀 있었다.

“시치미를 뗄 생각이라면 더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기다려라. 우리는 자네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네. 알베르트 라나.”

지부장은 한숨을 쉬었다.

“우리 길드는 검을 등지지 않는다고 말했을 터이다. 한데, 검을 받드는 집사가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우리를 적으로 돌릴 생각인가?”

“검을 받드는 시녀를 먼저 건드린 건 자네들이다.”

“시녀?”

지부장은 뒤를 돌아보았다.

얼굴이 마주친 길드원들은 고개를 저었다. 짚이는 바가 없다는 모양이다.

“너희들이 납치한 사람 중에는 루드비히 가의 시녀가 있다.”

“아무리 우리라도 노예매매는 취급하지 않는다. 사업에도 선이라는 게 있는 법이니까.”

“노예매매는 아니겠지.”

“…….”

의미심장한 알베르트의 말에 지부장의 눈이 굴러갔다.

이윽고 계산이 끝났는지 그는 머리로 손을 옮겼다. 앞머리를 뒤로 넘긴다. 단지 머리를 넘겼을 뿐인데, 얄팍하기 짝이 없던 인상이 일변했다.

“그래. 루드비히 가의 시녀를 우리가 잡았다고 하지. 만약 그게 사실이라 한들, 풀어주는 건 불가능하다.”

“불가능?”

알베르트의 반문에 지부장은 말을 이었다.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위험을 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제안하는 바다. 거래다. 여기서 자네가 돌아가 준다면 지금 있던 일은 없던 거로 해주지.”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그래. 이래 보여도 많이 양보하고 있다. 자네는 우리 단골손님이니까.”

지부장의 웃음을 본 알베르트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이 나오질 않았다. 지금 입을 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쏟아낼 것 같다. 가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데, 머릿속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자네는 뭔가 착각하고 있군.”

냉정한 알베르트의 시선에 지부장은 한기를 느꼈다.

루드비히 가의 가신이 무를 익히는 건 알고 있다. 그건 사용인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실제로 집사장인 세바스찬도 오러를 다루지 못할 뿐이지, 육체 능력은 출중했다. 눈앞의 알베르트도 마찬가지다. 그의 능력이 범상치 않다는 건 알고 있다. 이 사태를 만든 것만 봐도 마나를 다룰 줄 안다는 건 기정 확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사용인이다. 기사조차 아닌 집사에게 당할 정도로, 도둑 길드는 만만한 곳이 아니다. 하다못해 사자기사단의 부단장인 로엔 발 나하드가 왔다면 모를까. 알베르트 혼자서는 어떤 위협도 되지 못했다.

그럴 터인데. 이 압박감은 뭐지?

“여기서 자네가 할 말은 협상이 아니네. 용서를 구해야 했지.”

“용서?”

지부장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자네, 미쳤나? 자네의 행동이 가문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전혀 모르는 모양이군. 고작 시녀 때문에 루드비히 가는 암계를 적으로 돌리겠다는 말인가? 생각 잘하게나. 일개 집사 나부랭이가 감당할 수 있겠나? 이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

도둑 길드는 공작령에만 있는 게 아니다.

제국 암계를 장악한 길드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루드비히 가라도, 암계를 적으로 돌릴 수는 없다. 지부장의 말은 일리가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게 맞다. 녀석들이 손대고 있는 사업이 조금 구린내가 나더라도, 가문의 이득을 생각하면 그냥 넘어가는 게 맞다.

하지만 도둑 길드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자네의 말이 맞네. 일개 집사인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하지만 그건 상관없네. 선택은 내가 아니라 자네들이 했으니 말이네.”

알베르트는 주먹을 쥐었다.

분수도 모르는 놈.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다.

도둑 길드의 지부장 따위가, 루드비히 가를 이렇게나 얕보고 있을 줄은 몰랐다.

“무슨 말이냐.”

“일개 시녀가 아니지. 두 사람은 루드비히 가의 가신이다. 그리고 자네들은 루드비히 가의 가신을 향해 검을 뽑았다. 그것도 모자라 거래를 통한 증거인멸을 시도했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나?”

도둑 길드인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암계 전체가 적으로 돌아선다고 해도 상관없다.

루드비히 가는 그 모든 걸 감당할 수 있었다.

이 자리에 주인님이 있었다면, 분명 그와 같은 선택을 했으리라.

“루드비히 가에 검을 겨눈 대가가 무엇인지. 내 자네들에게 알려주지.”

중요한 사실은 딱 하나. 루드비히 가의 가신을 향해 놈들이 적의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아, 그런가? 알겠네. 본의는 아니지만, 검의 비호에서 벗어나야겠군.”

시간이라면 충분히 벌었다.

침묵의 암살자 데지마와 무투가 벨마.

방 안에서 나온 두 사람을 본 지부장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죽이지는 마시길. 거래에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거래?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힘 조절이 가능할지 모르겠네.”

길게 걸리지는 않겠지. 암계에서는 이름 높은 용병이다.

아무리 알베르트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정식 기사도 아닌 그가 이길 가능성은 없다.

침묵의 암살자 데지마.

그녀가 수족처럼 부리는 무기는 독사의 혀라 불렸다. 암계에서는 대체할 자가 없다는 암살자 중 한 명이다. 암살 대상이 되고 나면 막을 방법이 없다. 몸에 이상이 생긴 걸 알아차렸을 때면 늦는다. 이미 골수까지 침투한 독기는 그 생명을 앗아갔다. 몸이 안쪽부터 녹아내려도, 비명 하나 지르지 못한 채 말이다.

그렇기에 독사의 혀.

그러나 트릭은 간단하다. 인비저블(Invisible) 마법으로 모습을 숨긴 암기를 이용할 뿐이다.

무투가 벨마.

뒤를 노리는 것이 데지마라면, 이 남자는 정면에서 대상을 쓰러뜨리는 무인이다. 그러나 정당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대련에 임하기 전 상대방의 심신을 몰아세운 뒤 반드시 이기는 싸움을 고집한다. 그 뒤에서 사전 작업을 마치는 것이 데지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오늘 갑자기 도둑 길드에 쳐들어온 알베르트에게는 그런 수를 취할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수를 쓸 필요도 없다.

암계의 거장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무방비한 알베르트를 보며 데지마는 윗입술을 핥았다.

“요컨대 살아만 있으면 되는 거지? 마침 실험해보고 싶었던 독이 있었거든.”

“그거 쓰면 죽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설마. 마나를 다룰 줄 아는 놈인데. 그 정도는 버티겠지.”

“난 모른다. 책임은 네가 져라.”

데지마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꺼낸 암기는 총 3개. 어디를 노리는 것이 좋을까. 얼굴은 안된다. 통증에 일그러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없다. 그럼 신체의 자유부터 빼앗자. 정했다. 하반신이다. 두 다리와 배를 노린다.

손을 당긴다.

철사 끝에 맞닿은 독나이프가 소리 없이 날아갔다.

그리고 데지마는 쓰러졌다.

“뭐?”

목소리를 낸 것은 데지마가 아니다.

무료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벨마다.

그는 파트너의 취향을 익히 알고 있었다.

말 그대로 죽이지만 않고, 놈을 갖고 놀 생각이겠지. 그러니 자신이 나설 필요는 없다. 이번에도 그렇게 될 거로 생각했다.

자세를 취한 벨마는 두 눈을 의심했다.

기분 나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보이지 않았다. 확인되는 사실은 단 하나. 눈을 깜박이고 나니, 데지마가 당했다.

작은 호흡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녀가 죽었다는 것을 벨마는 받아들였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렇게 호락호락…….”

벨마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가까워진 검은 연미복이 그가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권기를 두른 알베르트의 손바닥이 벨마의 몸에 닿았다. 발경. 내부에서 충격이 폭발한다. 날아간다. 붕 떠오른 벨마는 그대로 벽과 충돌했다.

“…….”

주변이 경악에 휩싸였다.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지부장은 벨마를 보았다. 아직 숨이 붙어 있다. 부들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자세를 취했다. 뒤집힌 속을 감당할 수 없다. 한 움큼의 피를 토해낸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 너는 뭐냐?”

“집사입니다.”

그 물음에 알베르트는 대답했다.

일격.

알베르트의 주먹은 망설임 없이 녀석의 머리를 터뜨렸다. 비릿한 피 냄새가 방 안을 채운다. 뚝뚝, 하고 붉은 피가 지면에 자국을 남겼다.

백전백승의 무투가 벨마의 몸이 천천히 넘어갔다.

알베르트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피로 더러워진 주먹을 닦는다. 조용해진 주변을 둘러본 그는 얼어버린 지부장을 보았다.

“그래, 이제 조금 생각이 바꿨나?”

“검의 비호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했지. 말만 하게나, 알베르트 라나. 우리가 검의 힘이 되어주겠네.”

시체가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싸늘하게 식은 두 사람을 본 지부장은 냅다 자리에 엎드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