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6화.의혹(1) (156/200)

 # 156

의혹(1)

노아는 신경질적으로 발을 구르고 있었다.

짜증을 억누를 수가 없다.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는 걸 증명하듯 그녀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고개를 든다. 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붉은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늦어.”

심부름을 보낸 쌍둥이 자매가 돌아오지 않는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하인들이 수군거렸다. 저택 내에서는 나름 고참에 속하는 시녀다. 그것도 아가씨의 유모. 다들 눈치만 보는 그 상황 속에서 한 남자가 노아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인가요, 누님. 이마에 주름이 가득하신데.”

“주름이 어디에 있다는 거야!?”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진다. 머릿속이 차가워진 노아는 자신의 반응이 과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끄응, 하고 이마에 손을 얹었다.

“말해두는데, 너도 잘못한 거니까. 한창때의 처녀에게 주름이라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정말 생길지도 모르죠. 기억하시나요? 누님. 우리가 처음 심부름을 받고 거리로 나갔을 때. 그때 물건을 파시던 분도 젊었을 적에는 둘도 없는 미녀였다고 했습니다.”

“설마 그 노파처럼 된다고 말하는 건 아니지?”

“역시나 누님. 마음이 통하시는군요.”

“그렇게는 안 되거든!”

능청스러운 알베르트의 모습에 노아는 입가를 찌푸렸다.

“별일 아니야. 마린이랑 루인에게 심부름을 시켰는데. 조금 돌아오는 게 늦어서.”

“마린이 같이 간 거라면 다른 곳에 들리고 오는 거 아닌가요?

“그걸 생각해도 너무 늦어. 마중을 보낸 손님이 혼자서 오질 않나.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고.”

“과연 그게 누님이 초조해하는 이유였군요.”

“됐어. 저녁을 먹기 전에는 오겠지. 늦으면 늦을수록 벌이 커질 뿐이야.”

“제가 찾아오죠.”

“뭐?”

잘못 들은 거로 생각했는지, 노아는 두 눈을 깜박거렸다.

“그래도 괜찮겠어?”

“아가씨라면 지금 신목에 있습니다. 믿을 만한 사람과 같이 있으니 괜찮아요.”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 에일린도 지켜보고 있다.

두 사람이 나간 거리는 그리 멀지 않으니, 저녁이 되기 전까지는 돌아올 수 있으리라.

“뭐, 금방 올 테니까요.”

“알았어. 그럼 부탁 좀 할게.”

*&*

북부에서 온 교류단 때문일까. 클레멘트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있었다.

가게 곳곳에 화관이 장식되어 있고, 평소보다 많은 기인이 가도에서 재주를 부리고 있다. 해가 지는 저녁을 대비해 마른 장작도 곳곳에 쌓여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약속한 것처럼 불을 붙이겠지. 즐거워하는 행인들을 지나 쟈스민 거리 안쪽으로 들어선다.

가는 곳은 정해져 있다.

노아 누님이 심부름을 보낸 가게는 「론씨의 신기한 공방」이다.

알베르트는 제법 세련된 느낌이 나는 가게 앞에서 발을 멈췄다.

저택의 사용인들이 자주 들락날락하는 가게다. 이제 40대 초반에 들어서는 노총각 로노드가 운영하는 잡화점은, 이런저런 물건이 많은 곳으로 유명했다.

그는 쌍둥이 시녀를 찾는 알베르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물론이야. 루인이랑 마린 말이지? 사복 차림으로 와서 그런가 오늘도 귀엽더만.”

“론 씨의 개인 감상은 아무래도 좋은데요.”

“같은 남자인데도 매정하네. 그래. 우리 가게에 왔다 갔어.”

“그렇군요. 혹시 어디로 간지 알 수 있을까요?”

“저택으로 돌아간 게 아니었나?”

“그게 아직이에요. 아무래도 어딘가에 들린 것 같아서 말이죠.”

“바로 안 갔다면……. 그러네, 참. 길 건너편의 식당을 보고 있었지.”

“식당이요?”

로노드는 창 바깥을 가리켰다.

「마족도 울고 가는 사나이 식당」. 알베르트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자매가 나간 시간은 오후 3시쯤이다. 금일 방문하는 교류단 때문에 점심을 일찍 먹긴 했지만, 딱히 허기가 질 시간은 아니다. 특히 마린은 주방에서 이것저것 몰래 먹고 있었던 것 같고. 굳이 식당까지 찾아갈 이유가 있었을까?

거기에 사나이 식당의 메뉴는 맵고 뜨거운 음식이 주다.

부드럽고 달콤한 걸 좋아하는 쌍둥이 자매의 입에는 맞지 않을 터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론 씨.”

“감사 인사는 됐다. 그것보다 자매를 찾으면 말해줘. 나는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고.”

“농담도 잘하시네요.”

“아니, 나는 진심인데.”

“농담이시잖아요?”

“…….”

시무룩해진 로노드를 뒤로 한 채 알베르트는 「마족도 울고 가는 사나이 식당」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매콤한 향이 올라왔다.

브레이크 타임에 들어간 가게는 손님 한 명 보이지 않는다. 계산대에 힘없이 널브러진 험상궂은 남자, 쵸 씨를 본 알베르트는 말했다.

“안녕하세요, 쵸 씨.”

“뭐야, 알베르트 꼬맹이인가. 지금은 쉬는 시간이다. 밥이라면 조금 있다가 와.”

“밥을 먹으러 온 게 아니라, 사람을 찾고 있어요. 저희 저택에서 일하는 시녀 자매가 여길 왔다고 들었거든요. 마린과 루인이라고 하는데. 혹시 기억하시나요?”

“그게 누구야?”

“지난번에 저랑 같이 온 자매요.”

“아버지, 손님인가요?”

“아니, 불청객이다. 들어가서 쉬고 있어라. 알베르트 꼬맹이. 미안하지만, 이름을 말해도 몰라. 우리 가게에 오는 손님이 한두명도 아니고. 어떻게 일일이 기억하고 있겠냐? 내가 저택에서 아는 사람이라고는 공녀님과 너 정도다.”

주방에서 나오는 아들을 들여보낸 쵸 씨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담배를 문 채 그는 그만 가보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알베르트는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기를 한 움큼 뱉어낸 그는 마지못해 말했다.

“뭐, 자매 같아 보이는 손님이 왔다 가긴 했다. 꽤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어서 기억하고 있어.”

“그 아이들입니다. 어디로 간지 알 수 있을까요?”

“아마 슬럼가를 간다고 했지?”

“슬럼가요?”

“아아, 그래. 주변 손님들이 위험하니까 그만두는 편이 좋다고 했는데. 뭔가 볼일이 있다는 것모양이다. 아가씨가 거기에 있다던가, 뭐라던가. 그거 혹시 공녀님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아가씨라고요? 그럴 리가 없는데요.”

알베르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가씨라면 저택에 계신다. 그건 마린과 루인도 알고 있다. 저택의 사용인들이라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교류단이 방문한 동안은 아가씨가 저택 밖으로 나갈 길이 없다. 만약 주인님이 외출을 허락한다고 해도 사자기사단이 호위로 붙는 게 기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집사인 알베르트와 유모인 노아도 따라붙게 되어 있다.

하지만 알베르트는 아무 언질도 듣지 못했다.

“혹시 다른 이야기는 더 없었나요?”

“모르겠군. 내가 아는 건 거기까지다.”

쵸 씨는 이만 나가보라는 듯 축객령을 내렸다.

가게 밖으로 나온 알베르트는 생각에 잠겼다.

이상하다. 이유를 모르겠다. 설령 정말로 아가씨가 슬럼가에 있다고 한들, 두 사람이 곧바로 그곳으로 향한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정상적인 절차를 밟는다면 저택에 보고하는 것이 우선이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마린만 있다면 모를까. 그녀의 행동력을 잡아줄 루인도 함께 있다. 왜 절차를 무시하고 그녀 둘만 움직인 거지?

‘천칭.’

[두 시녀를 추적해달라는 거죠? 마스터는 사람을 너무 함부로 굴리는군요. 이 넓은 도시 안에서 사람을 찾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고 하시는 말입니까?]

‘가능하겠는가?’

[예전이라면 당연히 불가능했겠죠. 하지만 지금은 가능합니다.]

‘부탁 좀 하겠네.’

[좋습니다, 마스터. 대신 아리시엘의 곤란한 모습을 보여드린다고 약속하셔야 합니다.]

‘…….’

[농담입니다. 잠시 마나를 빌리겠습니다.]

알베르트의 몸 안에서 내공이 빠져나갔다. 탐색마법을 펼친 천칭이 말했다.

[이 위치는……. 도둑 길드군요. 나름 길드라고 마법사도 있는 모양입니다. 제 탐색마법에 반응하다니, 제법이군요. 뭔가 숨기고 싶은 것이 많은 모양입니다.]

‘도둑 길드? 잘못 안 거 아닌가?’

알베르트는 반문했다.

[확실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매번 찾아가는 장소를 착각하지는 않습니다.]

‘…….’

이유를 모르겠다.

쌍둥이 자매가 왜 도둑 길드에 있는 걸까? 두 시녀가 암계와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걸까? 가장 가능성이 큰 이야기는 그녀들이 주인님의 밀명을 받고 있을 경우다. 하지만 그것도 이상하다. 세바스찬 집사장이나 빅토리아 시녀장이면 모를까. 아직 말단직인 두 사람이다.

그렇다면 막말로 납치라도 당한 걸지도 모른다.

납치?

알베르트는 사고를 전환했다.

마린과 루인이 도둑 길드를 찾아간 게 아니다.

마린과 루인을 도둑 길드에서 납치했다고 생각해보자.

일단 이유다.

도둑 길드가 루드비히 가를 건드려서 얻는 것이 무엇이 있지?

타 길드에 자신의 힘을 과시한다?

미친 짓이다. 아무리 암계에서 영향력이 강한 도둑 길드라고 해도, 루드비히 공작가를 상대로 그런 일을 할 이유가 없다. 그건 만용을 넘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혹은 두 시녀를 인질 삼아 루드비히 가와 거래를 원하는 걸까?

무언가 교섭을 하고 싶다. 아니, 바보 같은 짓이다. 차라리 인질이 없는 쪽이 낫다. 루드비히 가에도 도둑 길드와 접촉하는 사람이 있을 테니 말이다.

무얼 생각해도 득보다 실이 많은 이야기다.

애초에 양지와 음지는 서로 손대지 않는다. 그것은 암묵적인 룰이다. 도둑 길드가 떳떳지 못한 일에 손을 대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도 그 정도가 지나치지 않는다면 영주도 굳이 건드리지 않는다. 마약이나 노예매매 같은 영지의 질서를 파괴하는 일이 아닌 이상은 말이다.

도둑 길드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

굳이 위험한 일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아무리 이윤이 남더라도 길드의 존립과 직결되니까.

[마스터. 생각만 해서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의도는 알 수 없지만, 녀석들이 손을 댄 건 사실입니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남은 건 직접 물어보면 되겠죠.]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네. 나는 지금 루드비히 가의 가신이네. 원하는 대답을 얻으려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소란이 일어날 걸세.’

[마스터의 행동이 곧 루드비히 가의 뜻이 된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네.’

납치했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가설이다.

심증밖에 없는 상태에서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

[저는 빨리 움직이는 것을 추천해드립니다. 두 시녀의 정기가 약한 걸 봤을 때, 낙관적으로 지켜볼 상황이 아닙니다. 이것이 의도적으로 취한 일이라면, 정말로 노예매매에 손을 대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태평하게 흘러나온 천칭의 목소리에 알베르트는 마른 침을 삼켰다.

“설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과한 생각인가?

그렇지 않다. 마계에서도 그랬다. 마족 사이에도 이미 뱀을 추종하는 반란분자가 있었다. 녀석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그 사실을 구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겠지. 실제로 양양에서 일을 벌였던 놈들을 유피와 알베르트는 찾지 못했지 않았는가.

공화국의 모하메드 의장이 말했다.

뱀의 추종자.

놈들이 암계에 뿌리를 뻗었다면 도둑 길드는 이미 녀석들의 것일지도 모른다.

조각이 맞아떨어진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뛰어다녔건만. 발을 담근 곳이 이미 독 늪이었던 건가.

요 몇 년간 도둑 길드에서 얻은 정보.

도시에서 사라지는 사람들. 공화국의 상인이 가져온 마약. 뱀의 추종자. 네크로맨서가 엮여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호수의 마녀는 그들과 관계없었다. 에르체베트는 말했다.

이미 이 도시에는 사교도가 있다고. 그건 그냥 떠도는 소문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알베르트가 알지 못했을 뿐이다. 실체는 완성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도둑 길드가 거짓 정보를 흘리고 있었다.

“그런가.”

퍼즐이 완성됐다.

안일했다. 처음부터 검은 손은 그쪽에 섭외되어 있었던 건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돌아오자마자 접촉했던 건데.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두 시녀는 단순히 말려든 걸지도 모른다.

혹은 정말로 주인님의 정보원일 가능성도 있다. 무언가 알아낸 그녀들의 신병을 확보한 걸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면 시간이 없겠지.

한시가 급하다.

알베르트는 발을 재촉했다.

저택의 보고는 뒤로 미룬다.

그쪽은 누님에게 맡긴다. 알베르트의 귀가가 늦어지면 그녀는 자연스럽게 위로 보고를 올리리라. 가장 좋은 건 그 전에 상황을 끝내는 거지만,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법이다.

결정을 내린 그는 거리를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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